산산이 깨진 공간의 파편이 오색으로 빛을 반사한다. 스테인드 글래스처럼, 제각기 발하는 색들은 가히 최고의 예술작품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설령 살아있는 존재에겐 치명적인 것이라 할지라도.


 거미줄처럼 끝없이 금이 가, 저 너머의 형언할 수 없는 것들이 보이던 공간이 안정을 찾고, 공간의 주인이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 적만만이 남은 지금. 


 사건을 해결한 당사자인 탐정은, 멋들어진 포즈를 취하거나 승리를 자축하는 대신 무너져가는 신전 기둥에 기대어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아까전 화신과의 전투에서 다친 것인지, 배를 움켜쥐고 고개를 떨군 탐정의 옷이 장밋빛으로 물들어 간다. 


 복부엔 날카로운 공간의 파편이 박혀 있고, 여기저기 찢어진 옷 사이로 크고작은 상처들이 보인다.

 

 윤기가 흐르던 금발의 머리카락은 땀에 젖어 이마에 제멋대로 붙고, 빛을 받으면 보석처럼 빛나던 벽안도 서서히 반짝임을 잃어가기 시작했다. 


 이대로 놔둔다면, 곧 그녀의 친구를 따라 마땅히 향해야할 곳으로 떠날 것이다.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고 다시 자신이 있어야 할 곳으로 돌아가겠다는 듯, 떨리는 먼지투성이의 손으로 품안에서 회중시계를 꺼냈다. 


 예술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이 보아도 한눈에 그 가치를 알 수 있을 법한 외형. 완벽하면서도 묘한데서 허술한 일처리를 보여주던 시간의 감시자가 잃어버린 그것을, 탐정은 덤덤하게 조작했다.

 

 더이상 지켜보고만 있을 수 없어서, 그동안 지켜오던 규칙을 깨고 그녀에게 다가갔다. 

 

 나와 그녀를 나누는 얇은 한 장의 베일 따위, 치우면 그만이니까. 


"다시 돌아갈 생각인가요?"


 이런 장소, 이런 시간에서 마주칠 것이라 생각하지 못한 것인지 그녀의 푸른 눈이 크게 벌어졌다.


"다시 돌아간다고 하더라도 이번처럼, 그리고 그동안 그랬던 것처럼 살아남을 거라는 보장은 없어요. 어쩌면 그 '시계'를 사용할 틈도 없이 죽을지도 몰라요."


"...이거야 원. 언제부터 보고 있던거야, 아름다우신 천사님?"


"지금보다 훨씬 이전부터."


 시계를 만지던 그녀의 손이 멈칫한다. 이렇게 정면에서 그녀의 눈을 보는 것은 처음인데, 같은 벽안임에도 다른 느낌이 든다.


"천사님이 관음증일줄은 몰랐는데. 짖궃은 면이 있으시구만 그래?"


 그렇게 말한 그녀가 조금 경박하게 킬킬 거렸다. 그럼에도 고통은 숨길 수 없는 듯 올라갔던 입가가 일그러진다.


 다시 식은땀을 흘리며 탐정은 다시 시선을 내리고 다시 시계를 조작하기 시작했다.


어떻게해야 이 고집 센 탐정을 설득할 수 있을까, 그렇게 생각하며 허리에 손을 올리고 말했다.


"당신이 그동안 해온 일들은 모두 지켜봤어요. 시계를 얻기 전부터, 지금까지 전부를."


"그래서, 감상은?"


"하?"


이야기를 듣고 있기는 한 것인지 대답은 하지만, 손과 눈은 시계를 향해 있다.


키이-잉


폐허가 된 공간의 신전을 청명한 소리가 가득 채운다.


"지금 천사한테 감상을 물어본거에요?"


"당신이 천사든, 비둘기든, 고릴라든. 내 이야기를 봐왔다며? 그럼 감상정도는 궁금해 할 수 있잖아. 나름 열심히 살아 왔다고?"


"지금 그게 죽어가는 사람이 할 말이이에요? 아니, 너무 많이 죽을 뻔해서 모르나 본데, 당신 지금 엄청 위험한거 알아요?"


"알지. 그리고 이정도로 죽진 않아."


 그렇게 말하면서도, 호흡이 흐트러지는지 조금 떨리는 목소리로 그녀가 말했다. 


"언젠가는 죽겠지. 난 내 친구들과 다르게 평범한 인간이니까."


그녀가 고개를 들어 눈을 마주쳤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야."


"하, 정말 오만한 발언이네요. 그동안 너무 많은 일을 겪어서 머리가 이상해진거에요? 공포라는 감정, 잊지 못할텐데요?"


웅-웅


 그녀의 시계가 묵직한 저음을 내며 울리고, 그녀가 앉아있는 곳을 중심으로 바닥에 황금색으로 문양들이 새겨진다. 


 아름답게 빛나는 기하학적 문양의 곡선들의 가운데에, 금발벽안의 탐정은 앉아 있다.


 이대로는 또다시 위험한 사건으로 자신을 던져 넣을 것을 알기에, 기왕 끼어든거 한번 더 선을 넘기로 했다. 


 서둘러 손을 들고 그녀를 중심으로 '흘러가는 시간'을 잡았다. 


파치치직!


 감히 자격도 없는 내가 잡았다는 것이 불편한지, 반발이 심하다. 


"크,윽..."


 거칠게 쏘아진 화살을 잡은 듯, 손바닥이 벛겨져 쓰리지만 개의치 않는다. 지금이 아니면 그녀를 설득할 기회는 다시 없으니까. 

 이런 내 모습을 보고 놀란 듯 그녀가 고개를 들었다.


"역시 천사(天使)라는 건가...?"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에요. 이대로 놔두면 또다시 사건에 몸을 던질 것을 아니까 잠깐 잡았을 뿐. 힘으로 잡고 있는거라 오래는 못해요."


 주르륵, 내 손아귀에 흐르는 피를 보며 그녀는 이해한 듯, 그러나 내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갸우뚱 했다.


"왜 그렇게까지 내가 돌아가는 걸 막으려는 거야? '인간이 죽음을 거스르다니, 오만하다! 지금까진 봐줬지만 더는 안된다!' 뭐 그런거?"


"그럴거였으면 당신이 시간을 돌리기 전에 진작 죽여서 데려갔을 거에요. 뭐, 그거랑은 별개로 오만하다고 생각은 하지만요."


"그럼 왜...?"


"당신은 이제 쉬어도 괜찮으니까요."


"---___."


 전혀 예상치 못한 대답이라는 듯 놀란 그녀의 표정이 괜히 마음에 들었다. 뭐든 아는 듯 의기양양한 얼굴을 한방 먹여주고 싶었는데. 


잘하면, 설득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가 말했죠? 오래전부터 당신을 지켜봐 왔다고. 과장이 아니에요. 정말 말그대로, 오래전부터 당신을 보고 있었어요."


"..."


"마치 저주라도 받은 듯, 다사다난하고 누구나 동정을 표하길 주저하지 않았을 유년기. 그럼에도 불구하고 버티고 버텨, 마침내 성인이 되고 사회에 발을 내딛은 당신.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 본 저는 알아요."


"...무엇을?"


"당신이 지쳐있다는 걸요."


"---___."


"성인이 되었음에도 얻지 못한 평온한 삶. 불가피하게, 운명의 장난이라고 밖에 받아들일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한 사건에 휘말리는 나날. 당신은 결국 남들과 같은 평범하고 평온한 삶을 포기하고 지금처럼 위험천만 한 사건들에 먼저 몸을 던지기 시작했죠."


성인이 되었음에도 그녀는 평온하지 못했다. 어떻게 한명의 인간이 이토록 많은 일을 겪을 수 있는 것인가, 누구나 한탄할 정도의 삶. 


"물론, 그 과정에서 당신의 멋진 친구들을 만났지만요."


 가장 가까이에서, 그러나 닿을 수 없는 얇은 차원의 베일 너머로 그녀를 지켜보았다. 


 불사조, 죽음의 대행자, 고대 아틀란티스의 후예, 머나먼 공허에서 찾아온 신의 사제. 


 한 사람이 평생, 아니 한 문명의 일순이 지나도 하나라도 마주치기 어려운 존재들. 


 그들과 놀라운 친화력으로 친구가 된 탐정이지만, 그녀의 시선은 항상 다른 어딘가를 보고 있었다. 


 그녀의 시선을 따라가자 보인 것은 다른 시간선의 그녀 자신이었다.


"여느 가정처럼 평온하고 화목한 평범한 가족. 전 세계를 뒤져도 마주치기 어려운 특별한 존재들이 아닌 평범한 인간인 친구들. 자신을 노리는 수많은 적들이 아니라 애정을 담아 쳐다보는 연인. 사랑하는 자녀들과 함깨하는 노후."


"다른 애들 모르게 봤다고 생각했는데...역시 관음증 천사인거 아니야 당신?"


 부끄러운 비밀을 들켰다는 듯, 어색하게 뺨을 긁으며 말하는 그녀이기에. 


물어보아야 할 것이 있었다. 

물어보고 싶은 것이 있었다.


"당신 자신도 알고 있지 않았나요? 수많은 생사의 기로에서, 가만히 다가오는 최후를 받아들였다면 당신의 친구가 직접 데려갈 것이라는 걸."


"알고 있었지. 몇번이고 얘기했던 거니까."


"그 다음은요?"


"뭐...천국이든 지옥이든, 가지 않을까 싶은데?"


후우, 한숨을 내쉬고 천기를 입에 담는다.


"당신의 판결을 미리 말해주자면, 당신은 '백(白)'입니다. 아슬아슬하긴 하지만 말이죠. '시간'을 건든다는 건, 그런 행위에요.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업을 산처럼 쌓는 행동."


"그거야 좋은 일이네, 천국행이라니. 전혀 생각도 못하고 있었는데. 그나저나, 이런거 말해줘도 되는거야?"


"뒷일 생각해서 안말해줄 거였으면 시간도 잡지 않았을거에요."


쿡쿡 웃으며 그녀가 말했다.


"퍽이나 감동이네. 그래서, 천사님이 지켜본 내 삶에 대한 감상인가 방금 건?"


"착각하지 말아요. 단순한 동정이었으면 이렇게까지는 안했어요."


"그럼?"


"아멜리아 왓슨. 당신에게 드리는 최초이자 최후의 제안이에요."


"무슨 제안이길래?"


"지금 다가오는 죽음에 순응한다면, 당신은 저와 함께 떠날 수 있어요. 저편으로. 피안(彼岸)으로."


"---___."


"아무 고통 없이, 당신이 그동안 누리지 못한 평온과 행복을 맛볼 수 있는 마지막 기회에요. 지금 제 손을 잡지 않는다면, 다음에 마중 나오는 건 제가 아니라 다른 친구일거에요. 그것도 뿔달린 친구."


"..."


"이건 당신한테 주어진 보상이에요. 있는 힘껏 발버둥치고, 고난의 삶을 견뎌온 당신에게 줄 수 있는 저의 최선이에요."


"선물..."


"그러니 부디 잘 선택해줘요. 두 번 다시 없는 기회니까."


그녀는 고개를 떨구고 생각에 잠긴 듯 보였다. 


영원(永遠)과 같은 수유(須臾). 

수유와 같은 영원.


탐정은, 멈춰있는 찰나의 시간속에서, 그러나 한참을 고민했다.


 그러던 중, 시계를 만지작 거리던 그녀가 무언가 발견한 듯 일순 눈이 커진다. 


 다시 고개를 들고 마주친 그녀는 통증으로 식은땀을 흘리면서도 웃고 있었다. 


그녀의 눈은, 죽음을 받아들인 사람의 눈이 아니었다.


 그 눈은 너무나 투명해서, 그녀의 마음이 그대로 전해져 오는 듯 아름답게 빛났다. 


 공포가 아닌, 기대와 희망이 담긴 눈. 


 시시각각 찾아오던 죽음을 앞에 두고 흔들리던 눈이 아닌, 스스로 빛을 발하는 '별'을 담은 눈. 


 말로 하지 않아도, 마주친 눈을 통해 그녀의 선택과 감정들이 흘러들어온다. 


"어째서, 어째서 당신은...?!"


"미안해 천사님. 제안해준 건 고맙지만, 받아들일 수는 없어."


"바보에요? 천치에요? 아니면 피를 너무 흘려서 제정신이 아니에요?"


"너무하네, 고심해서 내린 선택인데."


큭큭 웃으며 그녀가 말했다.


"다음에는 이런 기회가 없다고요! 계속해서 '시계'를 사용한다면, 사후가 있을지조차 장담하지 못해요!"


 죽은 후, 갈 곳이 있다는 것은 그 자체로 하나의 위안이 된다.

그녀의 곁에서 세상을 지켜보며 알게 되었다. 


인간은, 살아 있는 생명은 그들 자신의 끝을 슬프게 생각한다.


"그게 무슨 의미인지, 당신은 몰라요...천국과 지옥의 존재 그 이상의 것이라고요!"


"지금의 나에겐, 상관없어."


"후회할 거에요."


"후회할 수도 있겠지."


"두려워할 거에요."


"두려워할 수도 있겠지."


"억겁의 시간이 흘러 태양이 지구를 삼키고, 우주의 불이 꺼져 어둠만이 남으면...당신을 기억해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거라고요!"


"그래도 괜찮아."


"설령 그렇게 되기전에 죽는다 하더라도, 사후가 있는 당신 친구들과는 다르게 당신은 죽으면 정말 아무것도 남기지 못하고 끝이라고요!"


 억지로 시간을 잡아 멈추는 것도 한계에 다다랐다. 손아귀에 힘이 점점 빠지며, 다시 조금씩 시간이 흐르기 시닥한다. 


"괜찮아 천사님. 사람은, 원래부터 끝이 있는 존재니까."


 그렇게 말하며 탐정은 기대어 있던 기둥을 잡고 자리에서 일어

났다. 


 그녀의 다리를 따라 핏방울들이 서서히 떨어진다. 떨리는 걸음으로 천천히 다가온 그녀는 만신창이가 되어 너덜너덜한 내 손을 잡고 말했다.


"내 끝을, 그리고 그 이후를 생각해줘서 고마워. 이제 괜찮아. 그러니 손에서 힘 빼도 돼."


처음으로 맞닿은 그녀의 손은 부드럽고, 따뜻했다.


 결국 더이상 버티지 못하고 손을 펴자, 막혀있던 흐름을 되찾기라도 하겠다는 듯 시간이 다시 거세게 움직이기 시작한다. 


 그와 동시에 바닥에 그려졌던 문양들이 다시 일렁이며 빛 나기 시작한다.


 손가락을 타고 흐르는 피가 뜨겁다. 그러나, 그녀를 설득하지 못했다는 사실에서 오는 슬픔이, 흐르는 눈물이 더 뜨겁게 느껴졌다.


"결국 당신은 돌아가는 거네요.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삶으로."


"그것이 내가 선택한 삶이니까. 나의 소중한 것들이 있는 삶이니까."


"설령 언젠가, 죽는게 뻔한데도?"


"원래 그런 거잖아. 끝이 있기에, 살아가는 하루하루가 아름다운 거니까."


내 손을 잡고 그녀가 웃으며 말했다.


"힘들지만, 지치지만 소중한 사람들을 보며 힘을 내고. 사랑하는 사람들을 통해 위로 받고. 자신이 바라는 것을 얻기 위해,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그렇게 열심히 살아가다 언젠가 끝을 맞이 하는 것."


그 미소가 너무나 눈부셔, 눈이 시려 눈물이 난다.


"그것이 내가 선택하고, 살아가고 싶은 지금이야."


"하지만..."


"나도 편한게 좋아. 고통은 싫어, 아프니까. 하지만 그것이 내가 선택한 지금을 살아가며 겪을, 피할 수 없는 것이라면 받아들일 수 있어."


"아깝지 않아요?"


"내 친구들, 내 가족들, 내가 사랑하는 것들. 천사님이 제시한 피안에는 없는 것들이니까. 아깝지 않아."


"고통을 피할 수 없어도?"


"수많은 위협이 날 노리는 만큼, 수많은 선의들이 나를 도와주니까. 많은 사람들이 나를 미워하지만, 그와 동시에 많은 사람들이 나를 사랑해주니까."


"세상은 더이상 당신의 사후를 보장해 주지 않을건데도? 그토록 열심히 사건을 해결하고 세상을 구해도, 아무것도 없는 최후만이 당신에게 남아도요?"


"세상이 나를 사랑하지 않아도, 나는 세상을 사랑할 수 있으니까."


그렇게 말한 그녀는 내 손을 놓고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그럼 작별이야, 이름 모를 천사님. 그동안 지켜보고 응원해줘서 고마웠어."


"저는...결국 당신을 설득하지 못했는걸요."


"그렇지 않아. 당신이 내게 끝을 알려주었기에, 나는 선택 할 수 있었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감사할만한 일이야."


"더이상 당신 곁에 머물며 지켜 볼 수 없어요. 정말, 혼자 살아가야 하는걸요."


"그럼 다음엔 내가 만나러 갈게."


"...?"


"나는 시간여행자니까. 그리고 탐정이니까. 천사님이 있는 곳으로 찾아갈수 있어."


"당신이...저를...?"


"그러니 미안해 할 필요 없어. 그리고 풀 죽을 필요 없어. 너는, 충분히 잘 해줬어."


그녀의 몸이 발끝부터 천천히 금빛 알갱이로 변해 이곳에서 사라져간다. 


"어디로 갈거에요?"


"뭐, 일단은 병원이려나? 안아픈척 하고 있지만 꽤 아프거든, 이거."


"아까 했던 말, 지킬 수 있어요?"


"응. 시간이 걸려도 약속은 반드시 지키는 사람이니까 난."


역시 그렇구나. 당신은 강한 사람이었어.


"카나타에요."


그렇다면 약속을 믿어봐도 괜찮겠지.


"응?"


"아마네 카나타(天音かなた). 제 이름도 모르면서 어떻게 찾아오려구요?"


"아아, 깜빡할 뻔 했네."


 면목 없다는 듯 웃는 그녀의 얼굴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벌써 그녀의 몸은 목 언저리까지 금빛으로 빛나 사라지고 있었다.


"고마워, 카나타. 꼭 만나러 갈게."


"잘가요, 왓슨. 그럼, 또 언젠가."


"그래, 또 언젠가. 다시 만나자."


 다시 만나자는 인사를 마지막으로, 시간여행자이자 탐정인 그녀는 눈 앞에서 사라졌다. 

 

 바닥에 떨어진 핏방울들과 새겨져 있는 문양들만이 그녀가 있었다는 걸 증명해주고 있다.


 소매로 대충 눈물을 닦고 주저앉아 이제부터 뭘 해야하나 생각했다. 


 더 이상 그녀의 곁에 있을 수는 없다. 다시 천계로 돌아갈 수도 없다.


 그렇다고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고 싶지는 않다. 그토록 빛나던 그녀의 모습을 보니, 가슴 속에서 무언가 꿈틀거렸다. 


 그녀는 하고 싶은 것을 알고, 그것을 행하기 위해 살아가기에 강했다. 


 나는 무엇을 하고 싶은걸까. 무언가 손에 잡힐 듯 잡히지 않아 답답하다. 


 그런 생각을 하며 끝없이 이어진 공간을 걸었다. 길이 무너진 곳은 날아올라 지나갔다. 


 그렇게 한참을 걷고 걸었다. 어느새 신전을 벗어나 알지 못하는 곳으로 온 듯, 주변 풍경이 변해 있었다. 

 

 푸른 하늘이 지평선 너머까지 펼쳐진 아름다운 정원. 더이상 걸을 수 없을만큼 지쳤기에, 잠시 쉬어가기로 했다. 


 올려다본 하늘은 구름 한점 없이 맑았다. 불어오는 바람은 시원하고, 잔디들이 자란 언덕은 부드러웠다.

 

 멍하니 시간을 보내고 있자니, 나도 모르게 어디선가 들었던 선율을 흥얼거리고 있었다. 무언가 실마리가 잡힐 듯 했다. 


"이 노래...어디서 들었지...?"


 앉았던 자리에서 일어나 다시 무작정 걷기 시작했다. 그렇게 또 얼마나 걸었을까. 땅이 아래로 꺼지는 느낌이 들며 중력의 힘을 느끼고 나무에 떨어졌다.


"아이고, 머리야..."


 욱신거리는 머리를 부여잡고 일어난 그 순간, 저 멀리서 노래가 들려왔다. 번쩍이는 무대와 그 앞에 몰려든 사람들. 

 

여러가지 악기의 소리가 울려퍼지자 통증도 잊고 눈앞이 뿌연 상태로 멍하니 무대 앞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보컬의 목소리가 들린 순간, 세상이 일순간 맑아졌다. 뿌옇던 세상이 다시 자신의 색을 되찾았다.


 무대에서 마이크를 쥐고 즐겁게 노래하는 보컬을 보자 마음속의 무언가가 열리고 따뜻함이 퍼져나가는 것을 느꼈다.


"그래, 내가 하고 싶었던 건...!내가 하고 싶은건...! 내가 바라고 있던건...!"



 '카나타'라는 이름의 가수가 데뷔한 건 그로부터 몇달 뒤였다. 


은은한 자색을 띈 벽안, 은색에 가까운 하늘색의 머리카락. 


 아름다운 겉모습 뿐만 아니라 넓은 음역대와 더불어 뛰어난 표현력과 곡 해석 센스. 


 한명의 목소리라곤 믿기 힘든 천의 목소리에 가까운 변화무쌍한 음색. 


 카나타는 데뷔와 동시에 '하늘(天)이 내린 소리(音)'라는 대중의 평가를 받으며 음악계의 새롭게 나타난 혜성이 되었다.


 그렇게 몇년이 지난 후, 한 금발벽안의 영국인 탐정이 카나타소의 콘서트에 찾아왔다.




The 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