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명. 

그것은 인간이 걸어오며 남긴 지구상의 발자취이자 흔적. 인류가 노력해 온 것의 총합이자 그들의 삶과 열정의 증명. 


세계에 처음 모습을 드러낸 인간들은 놀라울 정도의 적응력으로 그들의 환경에 적응했고, 제각기 퍼져나가 그들 무리만의 문화를 쌓아 올렸다. 


그렇게 문명을 형성한 인류이지만, 세상에 내던져진 인간 하나하나는 너무나 나약한 존재들이었다. 


저마다 꿈을 품고 미래를 그리며 집단을 이루고, 마을을 이루고, 사회를 이루어 지구의 영장이 된 인간이었지만 한계는 존재했다. 


인간만이 존재하는 상냥한 세상이 아니기에. 하늘을 날고 불을 뿜거나, 손짓 하나로 산맥을 무너뜨리고 바다를 지배하며, 더 나아가 세계를 갉아먹는 초월적 존재들이 있는 세상이기에. 


인간 문명의 끝없는 번영과 유지를 무의식적으로 꿈꾸는 이들의 정신이 모여 그들의 수호자를 창조하게 되었으니, 그것이 문명의 수호자이자 '의회'의 일원이 된 '나나시 무메이'였다. 


아이러니하게도, 문명의 수호자인 그녀는 '애초에 인간이 아닌 존재들'을 상대하는 만큼 '인간이 낳은 존재들'역시 자주 상대했다. 


도시를 불태우고 자신의 둥지를 채우려던 욕심 많은 용과 하룻밤을 꼬박 새워가며 사냥할 때, 면죄를 바라는 광신교들의 추악한 죄의 산물들과는 사흘밤낮을 상대했다.


눈 부실정도로 번영한 해저도시를 집어삼킨 뱀의 목을 두 번 잘랐을 때, 가장 발전의 선두를 달리던 도시를 지배하려 용으로 우화한 폭군들의 목은 세 번 잘라야 했다. 


인간에 의해 빼앗긴 자연을 정화하겠다며 온 세상을 불과 잿더미로 뒤덮으려 했던 천사의 날개를 꺾었을때, 온 세상을 나노봇으로 뒤덮으려 했던 기업연합의 최종병기를 고철덩어리로 돌려보냈다. 


인간의 욕망은 끝이 없고, 같은 실수를 반복하기에. 그런 욕망과 욕망의 충돌로 일어나는 현상들이 세계를 구성하기에. 


살고자 하는 욕망, 더 나아지려고 하는 욕망, 더 번영하려는 욕망이 낳은 수호자이기에. 


용들이 하늘을 누비며 날아다니고 땅속에선 악마들이 문을 열고 올라오던 시대부터, 땅 위를 아스팔트가 뒤덮고 수많은 빌딩 숲이 빛을 내며 밤을 낮처럼 밝히는 지금까지. 


수호자인 그녀의 싸움엔 끝이 존재하지 않는다.


무의식적으로 그것을 이해한 그녀였지만, 다시 기억 저편에 묻어두고 다시 수호자가 나서야 하는 전장으로 발을 옮겼다. 


그런 의문에 신경쓰다간 또 하나의 작은 마을이 흔적도 없이 사라질테니까. 그런 문제를 고민하다가 또 하나의 생명이 무(無)로 돌아갈테니까. 


'끝없는 싸움에 의미가 있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 속에서 어느순간 떠오른 의문. 

수호자라는 업무를 위한 현명함이, 뛰어난 통찰력이. 


여유가 생길때마다 해결되지 않은 질문을 끝없이 떠올리게 했다. 그것에 신경 썼다가는 명확한 답이 존재하지 않는 사실이 발을 멈출 것이 분명하기에. 


많은 것을 봐왔고, 많은 것을 배운 그녀이기에. 


'잊는다'는 선택지를 골랐다. 

배우는 것이 탁월한 만큼 잊는 것도 잘하는 그녀이기에. 


눈을 돌린다는 선택지를 골랐다. 시선을 맞추고 이해하는 것을 잘하던 만큼 외면하는 것도 특출나기에. 


나중으로, 더 나중으로 미룬다는 선택지를 골랐다. 


눈 앞에 이빨을 드러내고 있는 괴물을 처리하는게 더 급하기에. 부러진 뼈를 맞추고, 베인 어깨에 붕대 감는 것이 더 시급하기에. 


언젠가는 반드시 마주해야 할 문제를 뒤로 미루었다. 


그러나 특정 부류의 문제들은, 제대로 마주하지 않으면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다. 


"요즘 무슨 일 있어?" 


"응? 아니, 별일 없는데. 왜?" 


오랜만에 조용한 주말을 즐기기 위해 시간의 감시자와 데이트를 나와 카페에서 조각 케이크를 먹고 있을 때였다. 


"그렇다기엔 뭔가 생각할 게 있다는 얼굴이라. 고민이라도 있나 해서." 


일할 때 입던 아름답지만 거추장스러운 옷 대신 '데이트'라는 목적에 어울리는 캐주얼 복장. 늘씬하게 뻗은 다리를 꼬고 있는 그녀가 말했다. 


"뭐, 없다면 됐어." 


그에 맞춰 동물 모양 후드티를 입고 나온 수호자의 머리를 한번 쓰다듬은 그녀가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대었다. 

귀엽네, 라고 속으로 생각하며 홍차를 한 모금 마신 후 감시자는 이어 말했다. 


"혼자 생각해서 안될 거 같으면 우리한테 의논해도 괜찮아. 부담 갖지 말고 말해줘. 같이 일하는 동료 이전에 친구니까." 


"언제는 집에서 나가라고 그랬으면서..." "아,아니 그건..." 


토라진듯 뺨을 부풀리며 대답하자 쿨하던 그녀의 표정이 당혹스러움으로 가득찬다. 


"요즘은 통화 끝내고 잘때 인사도 안해주고...나 좋아하는 거 맞아?" 


꼬던 다리를 풀고 어쩔 줄 몰라하며, 문명의 수호자를 달래는 모습을 보면 여자친구에게 잡혀사는 평범한 커플로 보일 것이다.


그런 모습을 보는 시선 대부분은 염장질하는 커플을 보듯 하는 것이 대부분. 그리고 기회를 노리며 보는 차가운 시선이 하나. 


두 블럭 떨어진 거리의 고층빌딩 옥상. 차가운 바람이 강하게 불어오는 그곳에 누군가 서있다.


마치 심야에 방송하는 애니메이션에 나올법한 악의 조직 여간부, 그런 생각이 들게하는 옷차림의 미인. 재밌게 노는구나,하고 중얼거린 그녀는 푸른 눈을 반짝이며 폰을 꺼내 어디론가 연락했다. 


"어, 코요짱. 나야, 루이. 목표는 확인했어. 시간의 감시자는 돌아갔고 수호자만 남았어. 회의에서 말한대로야. 작전대로 진행하면 될거 같아." 


불어오는 바람이 썰렁한지 코를 훌쩍인 그녀였지만, 곧이어 바닥에 놓여있던 주머니에서 꺼낸 물건은 심상치 않아 보였다. 


"어, 지금 작동시킬게. 설명서대로 작동시키면 된다고?" 


취급주의라고 빨간색으로 큼지막하게 한자로 써진 기계. 

큼지막한 뚜껑을 열고, 차례차례 레버를 올리고 다이얼을 돌리자 웅웅 거리며 서서히 작동하기 시작한다.


"오오, 작동한다! 뭐? 에이, 날 뭘로 보는거야. 이로하도 아니고 고장냈겠어? 응응, 준비는 다 해놨어. 그럼 이제 작전용 회선으로 전환할게." 


전화를 끊고, 장갑을 손에 끼며 그녀가 몸을 풀기 시작했다. 그에 맞춰 전원을 킨 기계 역시 점점 큰 소리를 내며 진동하기 시작했다. 


"자아, 그럼 시작해 볼까? 간부라는 이름에 부끄럽지 않게 열심히 해야겠지...?" 


이상을 눈치챈듯, 멀리서 수호자가 놀라운 속도로 달려오지만 기계의 작동을 멈추기엔 무리였다. 


키이이-잉! 


퍼져나가는 날카로운 소리와 밝은 빛과 함께 수호자와 그녀는 옥상에서 모습을 감췄다. 수호자와 간부가 다시 모습을 드러낸 곳은 황량한 언덕 위였다. 


군데군데 다양한 무기들이 꽂혀 있고, 하늘은 노을이 빨갛게 타들어가고 있다. 아직도 눈이 부신듯, 찌푸리고 주변을 둘러보는 수호자와 다르게 간부는 어느새 꺼낸 것인지 주황색 선글라스를 쓰고 있었다. 


"기다렸으려나?" 


으득. 즐거운 데이트를 끝내고 기분 좋게 집으로 돌아가려던 자신을 방해한 것이 여간 기분 나쁜지, 수호자가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가며 이를 악물었다. 


"너...뭐야?"


"흠흠, 우리가 누군지 묻는다면 대답해 주는 것이 인지상정! 우리는 비밀결사 HoloX! 나는 타카네 루이!" 


한참은 유행이 지난듯한 폼을 잡으며 외치는 간부의 뒤로 두개의 인영(人影)이 나타난다. 


"에에, 그거 진짜 하는 건가요?" 


"그,그래도 나름의 캐치프레이즈이지 않소, 클로에 공..." 


하오리라 불리는 일본의 전통복장을 입은 칼잡이, 그리고 눈부터 코까지를 가리는 가면을 쓴 소녀.


"뭐 그러면 어쩔 수 없나...네,네 비밀결사 Holox의 청소부, 사카마타 클로에입니다." 


질색한 듯한 목소리로 물어보는 클로에라는 소녀가 말했다. 


"비밀결사 Holox의 경호원! 카,카자마 이로하라고 하오! 한 수, 잘 부탁드리는 것이오!" 


겉으로 보기엔 여리여리한 소녀들이지만 그들에게서 풍기는 익숙하면서도 진한 철분의 향이 수호자의 정신을 예리하게 다듬는다. 


"비밀결사..."


"뭐, 당신에겐 익숙한 일이겠죠? 하지만 이번은 좀 다를 겁니다. 당신만을 위한 스테이지니까요, 여기."


어느새 노란색으로 빛나는 눈을 드러낸채, 루이가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수호자인 당신이 강한 이유는 여러가지 있죠. 하지만 그중에서도 제일 큰 비중을 차지하는 건, 역시 문명에서 전해주는 '백업'."


겉옷을 벗어 던지고 투기(鬪氣)를 피워 올린 그녀는, 방금까지 얼빠진 모습을 했다곤 생각 할 수 없었다. 


"이곳은 세계의 백업이 닿지 않는 곳. 우리들이 당신만을 위해 준비한 링."


"즉, 여기라면 사카마타도 당신과 해볼만 하다는 거지~" 


"카자마도 이러고 싶진 않았지만, 그대가 너무 강해서 그런 것이니 이해해주길 바라오." 


나머지 둘도 제각기 달려나갈 준비를 하며 투기를 발산하기 시작했다. 


"그러니 우리들의 목표, 세계정복의 가장 큰 방해물인 당신은 여기서 쓰러져 줘야겠어." 


"하, 세계정복? 진심으로 말하는 거야?" 


겨우 그런 것 때문에,라고 중얼거리며 문명의 수호자는 고개를 숙였다. 


분명, 세계와의 연결을 끊어 백업이 들어오지 않는 다는 것은 사실이다. 평소보다 몸이 무겁고, 육체의 한계가 더 명확하게 느껴진다. 


그와 동시에, 그녀의 머리속을 거센 태풍처럼 가득 채우던 '문명의 목소리'도 조용해졌다. 


살고 싶다고, 번영하고 싶다고, 나아가고 싶다고, 사랑하고 싶다고, 창조하고 싶다고, 먹고 싶다고, 아무것도 하기 싫다고, 죽이고 싶다고, 부수고 싶다고, 친해지고 싶다고, 포기하고 싶다고, 자유로워지고 싶다고. 


언제나 머릿속에 울려퍼지던 목소리들이 입을 닫자, 마음 속 저 깊숙히 묻어두고 미루었던 그녀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어째서, 어째서, 어째서, 어째서...!" 


문명의 수호자니까,라는 이유로 무시하고 있던 그녀의 감정들이 무섭게 차오르기 시작한다. 찬란한 인류문명의 수호자라는 자부심으로 상쇄하고 있던 부(否)의 감정들이 고개를 들기 시작한다. 


그 감정들은 너무나 무거워서, 질척해서, 끈적해서, 어두워서. 


세계에서 들리는 문명의 목소리들로 겨우 눌러 놓았던 감정들이, 이제껏 억눌린 것에 화를 내듯, 감정의 폭류가 가슴을 불태우듯 뜨겁게 쏟아져 나온다. 


입으로 내뱉는 숨이 뜨겁고, 머리는 바늘로 찌르는 듯 아프다.


어지럽다. 시야가 붉다. 


어째서, 이렇게까지 싸워야 하는 거지? 

어째서, 다툼은 끝나지 않지? 

어째서, 저들은 배우는 것이 없지? 

내가, 더 참아야 하나?


다시 고개를 든 수호자의 눈에 보이는 것은 그녀의 몇 안되는 즐거움을 방해한 자들. 


그와 동시에 세계를 위협하는 자들. 


아, 그러면 되나. 


문명의 수호자가 가장 잘하는 것을 하면 되는 것이었다. 


공기가 바뀐다. 


"어, 루이...? 우리 상대를 잘못 건드린거 같은데...?" 


"그,그럴리가. 분명 코요의 기계는 제대로 작동 했는데?!"


"카,카자마는 아무것도 안건드린 것이오!" 


문명의 수호자라는 것은, 그 문명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문명이 쌓아올인 문화에는 회화와 문학과 같은 예술 뿐 아니라, 무술과 같은 마셜아츠(Martial Arts)도 포함된다. 


"걱정마, 뭔가 바뀌었다고 해도 분명 밖에 있을 때 보다는 확실히 약해!" 


"확실히 약하다고 해도 더 위험해진 것 같은 기분이 드는건 착각이오?!" 


"으으, 분명 간단한 일이라고 들었는데...!" 


클로에가 서둘러 권총을 양손에 들고 그녀를 조준한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도 수호자의 눈은 차갑게 가라앉아 있다. 


무술이란, 힘에만 의존하지 않는 기술. 


오히려 힘이 제한된 지금의 수호자이기에, 그녀가 오랜 세월 체득한 수많은 무예가 드러난다. 


자신을 향해 겨눠진 총을 보고도 아무일 없다는 듯, 평온하게 자세를 낮추고. 스읍, 숨을 들이마쉰다. 


1보. 


갑자기 거리를 좁혀 불과 2m 앞에 나타난 그녀의 모습에 루이의 눈이 커진다.


2보. 


타-앙!!! 


순간 수호자가 세계에서 사라진다. 그와 동시에 총알이 그녀가 사라진 허공을 아무 방해없이 통과한다. 


"무슨?!?!" 


3보. 


루이의 코 앞에 나타난 수호자. 


내질러지는 것은, 그녀가 애용하는 무기인 단검. 

단검이 노리는 것은, 심장. 


까앙-!!! 


"크윽, 정신차리시오!" 


발도술로 단검을 쳐낸 카자마가 소리쳤다. 


자세를 낮춘 그녀가 찌르기를 시도할 것을 카자마가 예측하지 못했다면 죽지는 않더라도 치명상을 입었을 것이다. 


"...가까스로 읽어낼 수 있었소이다! 카자마가 상대할테니, 둘은 거리를 벌리시오!" 


동료들에게 경고하면서도 그녀의 손은 멈추지 않는다. 


단검과 일본도가 부딪히는 것이라곤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검격이 오간다. 


쇠와 쇠가 부딪히며 불꽃이 튀고, 공기를 가르는 소리가 공간을 가득 채운다. 


이곳에서 손을 멈춘다는 것은, 차갑게 식은 시체가 되어 땅바닥에 눕겠다는 것과 다를 바 없다. 


"큭, 이 무슨 수라와 같은 공격...!"


잘 익은 보리밭의 황금빛을 띄는 눈과 다르게, 그녀의 단검은 서슬퍼렇게 빛나며 카자마의 빈틈을 찾아 노려들어온다. 


때로는 뱀과 같이 휘어지며, 때로는 정면으로 우직하게. 


단검보다 긴 일본도의 리치라는 장점을 쓸 틈을 주지 않겠다는 듯, 쉬지않고 몰아붙인다. 


후우, 일순 숨을 내쉬며 생긴 아주 작은 틈. 


그것을 읽은 카자마가 강하게 힘을 줘서 단검을 튕겨내자, 수호자는 예상했다는 듯 그 힘에 몸을 맡긴채 뒤로 물러나 숨을 고른다. 


겨우 1분. 


아니 그정도나 되었을까. 


더 짧았을 수도 있는 시간에, 카자마는 수호자의 강함을 너무나도 명확하게 알게 되었다. 


"루이...출력만 제한한다고 이길 수 있던게 아닌 것 같소..." 


"아무래도...그런듯 하네." 


"잘못하면 사카마타, 범고래회가 되버리겠는데요...?" 


식은땀을 흘리며, 루이와 클로에도 합류하여 대열을 이룬다. 


카자마가 앞, 루이와 클로에가 좌우. 


그런 그들을 보며 수호자도 다시 자세를 잡는다.


"생각보단 잘 버티네 너희들. 그럼 어디까지 할 수 있을지, 보자고." 


상황은 이미 뒤집혔다. 


궁지에 몰린건, 수호자가 아닌 비밀결사였다.


"하아,하아...검격은 소인이 맡겠소. 두 분은, 공격을." 


"좋아, 한 번 해보자고. 가자, 사카마타." 


스읍, 다시 숨을 들이마쉬는 수호자. 


"...옵니다!" 


1보. 


카앙!! 


"이번에는, 놓치지 않소...!"


이미 예측했다는 듯, 카자마가 뛰어들어 찌르기를 막아낸다. 


"그럴거라 생각했어." 


그러나 수호자는 당황하지 않고 힘을 주어 카자마를 밀어내며 몸을 빙글 돌린다. 


그녀의 손이 향하는 것은, 언덕에 박힌 낡은 창. 


수호자가 가속하며 황금빛 궤적이 남는다. 


슈욱!! 


끼기-기긱!! 


"크윽, 방심하지마 카자마!" 


번개처럼 내질러지는 창의 찌르기를 어느샌가 꺼내 손에 쥔 체인으로 막아낸 클로에가 소리쳤다. 


카앙!! 


후웅!! 


일순 멈춘 틈을 타 내질러지는 루이의 관수(貫手). 


고개를 젖혀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피해낸 수호자는 단검으로 카운터를 내지른다. 


"흐읍!!" 


놀라울 정도의 허벅지 힘으로 관성을 견딘 루이가 뒤로 몸을 빼며 물러난다. 


촤르륵! 


창을 비틀어 빼낸 수호자가 자세를 고쳐 잡는다. 


오른손으로 창을, 왼손으로 단검을. 


일반적인 창술과는 다른 특이한 자세. 


"상대는 '죽이기 위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수호자야! 건실한 대결을 생각하면 안돼!"


"...!기억하겠소, 사카마타 공!" 


"도저히 빈틈이 안보여!"


"일단 계속 부딪히는 수 밖에 없어!"


 "...! 온다!"


 콰-앙! 


섬광과 같이 달려들며 시전한 찌르기로, 검으로 방어한 이로하를 띄워 진형을 무너트린다. 


"칫, 각개격파 할 생각인가!" 


칼보다 창이 긴 것은 당연한 이치. 리치의 이점이 뒤집힌 상황. 


이대로 놔두면 전위가 무너지는 상황. 


이를 악문 사카마타가 급한대로 겉옷을 벗어던진다. 


"쯧" 


시야를 가리듯 날아오는 옷을 창으로 가볍게 반으로 자른 수호자가 다시 달려든다. 


갈라진 옷 사이로 들어오는 루이의 관수. 


완전히 피하진 못했기에 수호자의 어깨가 피를 터트렸다. 


그러나 고통은 신경쓰지 않는 듯, 무릎으로 루이의 복부를 강하게 찬다. 


가까스로 막아낸 루이였지만 힘의 차이 때문에 뒤로 밀리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러나 그렇게 생긴 잠깐의 틈은 카자마가 다시 자세를 잡고 클로에가 조준하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탕탕탕탕탕!! 


양손에 든 권총을 난사하며 이로하를 엄호하는 클로에지만, 수호자는 창을 한바퀴 돌리는 것 만으로 모두 방어해낸다. 


"제길, 진짜 괴물인가...!" 


그렇게 몇 번의 치열한 공방이 오가고, 클로에가 분하다는 듯 소리쳤다. 


총이 통하지 않는다. 분명히 총격은 유효하다. 그러나 이것엔 한 가지 전제가 따른다. 


'맞춘다면'. 


맞추면 충분히 위협적이겠지만, 상대가 맞아줄 생각을 안한다. 강하면서도 빠르다. 원거리에서 하는 공격은 견제밖에 되지 않는다. 오히려 근접해서 날리는 주먹이나 발차기가 더 효과적일 지경이다. 


차라리 스치기라도 하니까. 


"젠장, 이번 일 끝나면 보너스 줘야 돼, 루이!" 


"아아, 얼마든지." 


총알이 다 떨어진 권총을 뒤로 던지고, 너클을 손에 낀 사카마타가 이를 갈며 앞으로 나섰다. 


"방어하기만 해선 말라 죽어. 우리가 공격해서 틈을 만들어야 해! 잠깐이라도 좋으니까!" 


"일단 창부터 못쓰게 하든지! 아니, 무기 자체를 못쓰게 해야 해!" 


저벅저벅. 


땀 한방울 나지 않은 모습의 수호자가 걸어온다. 


언제 주웠는지, 손에는 방패가 들려있다. 


"기세에서 밀리면 아니되오. 그 순간 끝이오..." 


이로하가 다시 검을 고쳐 잡는다. 


얼굴 높이로 든 칼. 

칼등이 아래로 가고, 배가 하늘을 보는 자세. 


"소인이 틈을 만들겠소." 


떠올리는 것은 수호자의 기술. 

축지와 찌르기의 조합.


 "한번의 기회일 것이오. 가능하겠소?" 


이기지 못한다면, 이기는 자신을 떠올린다. 

상상하는 것은 최속(最速)의 자신.


 "가능하고 말고를 떠나서, 성공해야지. 여기서 죽기엔 벌어둔 돈이 아깝다고 사카마타는!!" 


"아아, 가능하고 말고. 일단 살아야 세계정복이든 뭐든 하지." 


한계까지 확장된 루이의 동공이 십자로 찢어진다.


 "이번에 전부를 쏟아붓는다."


 "후후, 그렇다면 믿겠소." 


스으읍, 이번엔 이로하가 눈을 감고 숨을 들이쉰다. 


그리고,


1보. 


"...!" 


눈 앞에 나타난 이로하를 보고 수호자가 놀란 듯 흠칫한다. 


'설마, 따라할 줄은 생각도 못했겠지.' 


다리가 불타는 듯 하다. 발이 터질듯이 아프다. 수준에 맞지 않는 기술을 억지로, 강제로 재현한 탓에 한계를 넘은 몸이 비명을 지른다. 


'이정도의 기술이라니. 얼마나 많은 경험을, 전장을, 수라장을 건너왔기에...!' 


그럼에도 멈추지 않는다. 

멈추면, 그녀뿐 아니라 동료들도 죽으니까. 


그렇기에 더욱 강하게 눈을 뜨고 강대한 적을 마주한다. 


2보. 


세상에서 이로하가 잠시 사라진다. 


3보. 


뒤로 물러나듯 뛴 수호자의 앞에 이로하가 나타난다. 


내질러지는 찌르기. 


푸-슉! 


"크윽,이게...!" 


방패를 앞으로 내세웠지만 구멍이 뚫리듯 사라져 버린다. 방패뿐 아니라, 미쳐 범위에서 벗어나지 못한 왼쪽 팔목이 깊게 베인다. 


힘줄이 끊어진 것인지 단검을 손에서 놓치는 수호자. 


하지만 거기까지이다. 


옆으로 쓰러지며 이로하가 피를 토한다. 


"커억...!"


 분수에 맞지 않는 기술을 쓴 탓에, 근육은 끊어져 힘이 들어가지 않고 심장은 터질 듯 아파온다. 


그 틈을 노리고 클로에와 루이가 달려든다. 


자세가 무너졌기에 창은 쓰지 못한다. 


그렇게 판단한 수호자는 창을 하늘 높이 던졌다. 그리고 오히려 한걸음 내디뎌, 둘에게 접근했다. 


공기를 찢어 발기며 내려오는 루이의 할퀴기. 하단을 정확히 노리며 다가오는 클로에의 하단쓸기. 


극한의 인식속에서, 수호자는 생각한다.


 '길이 없을 때에는, 언제나 앞으로.' 


다가오는 루이의 손에 오히려 근접한다. 피해 없이 막을 수 없을 정도로 원심력이 더해지기 전에, 몸으로 받아낸다. 


우드득! 


어차피 검을 쥘 수 없는 왼팔을 희생해 최소한의 데미지로 막아낸다. 그리고 막아내며 받은 힘에 몸을 맏기고 둥글게 말아, 빙글, 한바퀴 회전하며 카운터를 날린다. 


빠-악!! 


이대로 착지하면 무방비로 클로에의 하단 공격에 맞을 수 밖에 없다. 


당분간 왼팔은 못쓰겠지만, 양쪽을 못 쓰는 것 보단 낫다. 


너덜너덜한 왼팔을 방패로 내세워 충격을 줄인다. 


뿌득!!! 


고통에 이를 악물게 되지만, 멈추지 않는다.


 "크,으윽!!!" 


후우웅! 


몸을 거의 한바퀴 돌려 올려차, 클로에를 공중에 띄운다. 


그리고 멀쩡한 오른 손을 뻗어, 아까 공중에 던졌다 떨어진 창을 잡는다. 


시간이 느려진 듯, 둘의 시선과 수호자의 시선이 마주친다. 


상처입었지만, 전혀 쇠하지 않은 눈빛에 둘은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느꼈다. 


뒤로 당겨진 창 끝이 일렁인다. 


한계까지 확장된 루이의 눈이 무언가를 포착한다. 


그것은 가능성의 분류(分流). 


현실에 있을 수 없는 현상. 


얼핏, 빨갛고 하얀 머리의 소녀가 웃고 있는 모습이 보인듯 했다. 


특별한 재능을 갖고 있거나, 무예의 극에 달한 자들만이 도달하는 경지. 


수호자는 그곳에 닿았다.


 "젠,장!!!" 


"■■, 지르기" 


다음 순간, 바닥에 널부러진 것은 그 둘이었다.


 "무슨...!"


 "동시에...찔렸다고...?" 


쿨럭이며 피를 토하는 그 둘을 마무리 하려는 순간, 하늘에서 거대한 무언가가 떨어졌다. 


츠-캉!! 


어렵지 않게 강철도 베어내던 수호자이지만, 어째선지 지금 떨어진 것만은 쉽게 자를 수 없었다. 


반쯤 자르고 튕겨내는 것에 그치고, 그 반동으로 자세가 흐트러진다. 


"이건..." 


그와 동시에 뜨거운 열기와 함께 보랏빛 광선이 쇄도한다. 


급히 몸을 날려 피해낸 수호자였지만, 이번 공격은 위협적이었는지 혀를 찼다. 


"여기까지 하는게 어때? 문명의 수호자. 우리가 졌다. 패배를 인정하도록 하지." 


후웅!


 먼지를 걷어내며 나타난 것은 소녀였다.


 가늘어 보이는 몸에서 느껴지는 거대한 힘과 그를 증명하듯 하늘로 치솟은 보랏빛의 뿔. 황량한 대지와 대비되는 황금빛의 눈. 


두개의 황금빛이 마주쳤다. 


하나는 악마와 같이 심연을 들여다 보는 황금. 하나는 올빼미와 같이 어둠을 꿰뚫어보는 황금.


"오늘 일은 사과 드려요...사죄의 의미로 세계정복은 당분간...안할테니까, 물러나는게 어떨까 싶네요!" 


그 옆에는 백색 가운을 입은 분홍 머리의 동물귀 소녀가 있었다. 


"세계의 위협을 앞에 두고 물러 나라고?" 


"지금 네 상태도 만전은 아닐텐데. 네가 가장 잘 알거고. 그리고 무엇보다, 너는 우리 '비밀결사 HoloX에게' 화난 것이 아니잖냐?" 


"---___." 


그 말을 들은 수호자는 멈칫했다.


 "얕보지 말거라, 올빼미야. 이몸이 아무리 힘의 대부분을 잃고 봉인되어 있다 하더라도 '눈'만큼은 건재하니까." 


"너..."


 "이몸이 무엇이라 생각하느냐? 단순히 봉인된 악마? 그런 존재였으면 진작 성유물이 심장에 꽂혀 사라졌을 것이야." 


한 걸음 다가가며 악마는, 악마와 같은 소녀는 나지막히 속삭였다.


 "이몸은 '라플러스 다크니스'." 


사지와 목에 장착된 구속구 중 하나가 풀렸을 뿐인데도, 막대한 힘이 흘러나온다. 


소녀가 자신의 이름을 입에 담자 세상이 요동친다.


 코요리가 만든 기계에 의해 유지되는 아공간에 금이 간다.


 "어둠에서 태어나 세상의 부정(否正)을 먹으며, 심연을 제 집으로 삼는 자." 


"크윽...!" 


"올빼미야, 네 마음속의 심연조차 나의 손바닥 안이거늘 어찌 속이려 하느냐." 


퉤,하고 울컥 올라오는 핏물을 뱉은채 수호자가 씹어삼키듯 말했다.


 "그 이름...제대로 된 진명조차 아닌 주제에...!" 


아공간이 불안정해진 탓인지, 세계의 백업이 서서히 돌아온다. 


그를 확인한 수호자는 아까까지의 싸움에선 쓰지 않은 룬을 발동시켰다. 


"그렇게 잘났으면 덤비던지, 꼬맹아." 


푸른 빛이 맴돌며, 상처가 빠른 속도로 아물기 시작한다. 


"큭큭, 그렇기에 봉인 되어준 것이 아니겠느냐. 불완전한 세상이 나은 불량품인 '이몸'이기에. 내가 봉인을 받아들인 이유가 무엇이라 생각하느냐?" 


"자아자아, 둘다 기싸움 하지 말고! 여기선 조금 냉정하게, 서로 건설적인 이야기를 해봅시다? 우리 총수님도 좀만 진정하시고!"


 다시 뜨거워지는 분위기를 진정시키려고 핑크빛 코요테가 식은땀을 흘리며 끼어들었다. 


그와 동시에 금이 가던 공간이 완전히 깨지며, 다시 모두가 현실로 돌아왔다.


타다닥! 


"무메이!"

자신을 향해 달려오는 푸른 머리의 미인. 


자신을 걱정하는 투명한 벽안. 

자신을 사랑하는 투명한 벽안.


'문명의 수호자'가 아니라 '나나시 무메이'를 생각하는 아름다운 보석. 


뜨겁게 달아오르던 수호자의, 무메이의 머릿속이 찬물을 맞은 듯 순식간에 식었다.


주변을 둘러보니, 아름다운 해질녘의 도시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빨갛게 타들어가는 노을이 부서지며, 서서히 보랏빛으로 물드는 황혼의 시간.


그리고 길을 지나다니는 사람들. 하나둘 불이 켜지는 고층 건물들. 


저 멀리 보이는 산. 그리고 강.


그녀는, 무메이는 그동안 잊고 있던 것을 떠올릴 수 있었다.


무엇을 위해, 그토록 끝없는 싸움에도 버텨왔는지.


때로 너무 중요한 것은, 우리 가까이에 있어서 그 중요성을 기억하지 못하는 법이니까.


"크로니..."


"무메이, 너 괜찮아?! 갑작기 사라져서 얼마나 걱정 했는데..!"


걸레짝이 되버린 왼팔이지만, 더이상 아프지 않았다. 더이상 고통이 느껴지지 않았다.


"걱정시켜서 미안..."


"크흠, 그 감동의 재회중에 미안한데. 일단 일부터 끝내고 하자?"


어딘가 피곤해 보이는 공간의 화신이 말을 꺼냈다.


"이렇게 크게 치고박을 줄은 몰랐는데..."


한숨을 내쉬며 자연의 화신이.


"뒷처리가 고민이구만..."


머리를 긁적이며 혼돈의 화신이.


"그렇다고 저녀석과 마저 싸우기엔 뒷감당이..."


골치 아프다는 듯, 인상을 찌푸린 시간의 감시자가.


"아, 그렇지."


좋은 생각이 났다는 듯, 크로니가 주머니에서 회중시계를 꺼냈다.


"흠흠, 시간의 관리자가 시간여행자에게 알림. 근처에 있는 거 아니까 당장 오도록."


말이 끝나자마자 금빛 문양이 바닥에 드리워짐과 동시에 금발벽안의 탐정이 나타났다.


"부탁할 일이 있는거지?"


찡긋, 눈 웃음 지으며 탐정이 말하자 시간의 감시자는 한숨을 쉬며 대답했다.


"그래, 하나 빚진 걸로 할테니까 시간 좀 돌려줘."


"후훗. 좋아, 사건은 접수 되었다구? 곧 있으면 없던 일로 처리 될테니까, 너무 신경쓰지말고 다들 잘지내!"


등장할때와 마찬가지로 갑자기 탐정이 사라지자 적막만이 공간을 채우고 있었다.


침묵을 가장 먼저 깬건 붉은 머리의 생쥐였다.


"...이렇게 해결한다고?"


"어쩔 수 없잖아. 이게 제일 깔끔한 방식인걸?"


"그렇긴 한데...하아, 모르겠다. 일단 증가한 엔트로피는 내가 처리할 테니까, 크로니랑 무메이는 보고서 써서 올릴 준비 해."


그렇게 말하며 혼돈의 화신이 자신의 보금자리로 돌아갔다.


"음...다 해결 된거 같으니까, 나도 돌아갈게? 나중에 차나 한잔 하자?"


"크로니니랑 왓슨이 해결했으면 뭐...나도 할 일 다 한거니까 돌아가 볼게. 에구, 허리야..."


공간의 화신이 어딘가 지친듯한 표정으로 돌아가고, 자연의 화신도 다시 숲속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나 참, 이렇게 해결할 거면 이몸은 왜 봉인한거야?"


"너는 예외지, 이녀석아."


아직도 벙쪄있던 비밀결사들 중 라플러스가 가장 먼저 입을 열었다.


"세상이 이렇게 대충대충 굴러간다니...납득할 수 없어!!"


어째선지 코요리는 머리를 붙잡고 좌절하고 있었다.


나머지 인원들은 코요리가 만든 대사촉진제로 급한 위기는 넘겼지만 아직 상처가 심하기에, 그저 누워서 집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생각할 뿐이었다.


"뭐, 시간이 돌아가면 대부분의 기억은 없어질테니까. 막 나가도 된다는 거지. 자주 쓸 수 없다는게 흠이지만."


"그럼, 지금 기억이 완전 없어지는 거야...?"


"아, 지금 사용한 방법은 모두의 시간을 되돌린게 아니야. 그렇게 하면 우리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엔트로피가 증가하지."


"그러면...?"


"어차피 돌릴 시간, 즉 잉여의 시간이 남는 것이니까 그 분량 만큼을 사고뭉치 시간여행자에게 떠넘긴 거야."


"...?"


이해가 안간다는 듯, 머리 위에서 도돌이표를 그리고 있는 문명의 수호자를 보며 크로니는 피식 웃었다.

머리를 쓰다듬으며 그녀가 말했다.


"그래, 너는 그렇게 지내면 되는거야. 느끼는 감정을 표출하고, 하기 싫으면 하기 싫다 말하고. 뭐...그렇다 하더라도 아예 안 할수는 없지만."


"..."


"그래도 괜찮아."


"괜찮아...?"


"그래, 그게 인간이니까."


"---___."


"인간이 만든 문명, 그리고 문명의 수호자인 너는 그래도 괜찮아. 오히려 그러는 편이 더 어울려."


그녀의 말을 들으니, 무언가 차오르는 느낌이 들었다. 


"그렇,구나...괜찮은 거였구나..."


무메이는, 그녀의 품에 안겨 오랜만에 펑펑 울었다. 오열하듯, 화내듯, 절망하듯. 


"크응!"


"아니, 그래도 코를 여기다 풀면!?!?"


"몰라. 크로니가 나빴어."


"하???"


그녀의 품에서 나온 무메이가 석양을 등지고 말했다.


"그래도, 덕분에 시원해졌어. 앞으로 어떻게 해야할지도 알거 같고. 항상 고마워, 크로니."


그렇게 말하며 웃는 문명의 수호자의 모습은, 비록 눈물자국이 남고 눈이 조금 부어있었지만 정말 아름다웠다.


"---___. 그래, 너는 그렇게 웃는게 어울려."


무메이에게 다가간 그녀는, 문명의 수호자의 손을 잡았다. 그리고 아까 했던 데이트를 이어나가겠다는 듯, 다시 거리의 인파속으로 사라졌다.

 

문명의 수호자가 지키려 했던, 아프고 힘들지만 그만큼 찬란하고 아름다운 문명 속으로.



○○○


"...저기, 우리들 너무 무시 당한거 아니야...? 이몸, 나름 엄청난 존재인데...?"


"사람을 앞에 두고 염장질이라니...그것도 세계의 화신들이...인정할 수 없어...이런게...이런게..."


"뭐든 다 좋으니까, 일단 돌아갑시다 총수..."


"세계정복은...나중에...나중에 하자..."


"일단 쉬고 싶은 것이오, 카자마는..."


"저녁은 뭐 먹을애, 라프?"


"저녁? 흠...이몸은 햄버그가 좋다! 아, 구속구 돌아왔네."


"뭐, 별 차이 없잖아요 당신? 어차피 청소는 루이랑 사카마타가 하는데."


"하아? 이몸의 아름다운 성장폼을 보고도 그런말이 나와?"


"으웩, 총수의 성장폼이래봤자 지금보다 조금 더 큰 모습 아니에요? 로리는 조금..."


"머리 울리니까 조금만 조용히 해주는 고자루...그리고 사카마타는 가서 씻어요. 나중으로 미루지 말고..."


"엑, 완전 피곤한데...내일..."


"안씻으면 같이 안자줄 거니까."


"너무해~~~"


"뽀에뽀에 거리지 말고 씻으라고 제발!"


The 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