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 작품과의 크로스 오버물이며 실제 인물과는 하등의 관계가 없음을 알립니다.





저마다의 하루가 끝나고 사람들이 돌아갈 길을 재촉할 무렵, 그 식당의 하루는 시작된다.


톤지루 정식 600엔

맥주(대) 600엔

청주(2홉) 500엔

소주(1잔) 400엔


주류는 인당 석잔까지


메뉴는 이것 뿐.

그 외엔 원하는 것을 주문할 때 만들 수 있는 한 만드는 것이 가게 주인의 방침이다.

영업시간은 밤 12시부터 아침 7시까지.

사람들은 심야식당이라고 부른다.


손님이 오는가 묻는다면


"꽤 많이 오는 편이지."



심야식당은 전문적인 요리를 하는 식당은 아니다.

먹고 싶은 걸 주문하면 만들 수 있는 한 만드는 것이 영업 방침이긴 하지만, 몇가지 요리만큼은 인스턴트를 쓰기도 했다.


"라멘 되나요?"


처음 가게 안으로 발을 들인, 옅은 회색빛이 감도는 은발의 머리카락을 양갈래로 묶은 사자 같은 인상의 보이시한 소녀의 주문인 라멘이 그 대표격이다.


"우리집 라멘은 인스턴트인데."

"상관없어요. 돈코츠 되죠?"


아주 쿨하게 마스터의 말을 받으면서 소녀는 굳이 인스턴트 라멘을 주문했다.

가게에 상시 구비해두는 메이커는 삿포로 이치방과 닛신의 치킨라멘, 그리고 챠루메라였기에 선호하는 메이커를 물은 뒤 끓인 돈코츠 라멘을 내놓자, 소녀는 냄새를 음미하듯 맡고는 맛있게 먹기 시작했다.

인스턴트라고는 해도 밥집인만큼 고명만큼은 기본적으로 구비해두는데, 그것이 또 소녀의 마음에 썩 든듯 했다.

후루룩 면 넘기는 소리가 꽤나 시원스러웠는데, 마스터는 웬지 모르게 그 소리가 꽤나 듣기가 좋다고 생각했다.


"잘 먹었습니다."


국물까지 쭉 들이켠 소녀는 들어올 때처럼 꽤나 쿨한 페이스를 유지하고 있었다.

소녀가 막 나가고 조금 지나서, 가끔 오는 오타쿠 손님이 다급하게 들어와 호들갑을 떨었다.


"마, 마스터! 방금 나간 그 애, 시시로 보탄 아니에요!?"

"누구?"


자주 오는 단골인 소라나 스이세이가 속한 그룹의 후기 기수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은 바로 이때부터였다.



보탄은 그 때 이후 어쩌다가 한번씩은 라멘을 먹으러 왔다.

보탄이 누구인지에 대해 알았으면서도 마스터는 굳이 아는 척은 하지 않았다.

단지 이렇게 묻기는 했었다.


"인스턴트 라멘이라면 집에서도 해먹을 수 있을텐데."

"남이 만든 걸 먹고 싶은 때도 있잖아요."


그 대답도 썩 마음에 들었다.

심야식당에 찾아와 라멘을 시키는 손님들도 곧잘 하는 대답이었기 때문이다.

마스터에게 보탄이 누구인지 알려줬던 오타쿠 손님이 보탄과 마주친 것은, 보탄이 대강 일곱번인가 여덟번째로 가게에 왔을 때였다.


"시, 시시로 보탄 씨죠?"

"………."


그렇게 묻는 오타쿠 손님을, 보탄은 한 번 힐끗 보고는 표정 하나 흔들리지 않고 라멘을 먹었다.

오타쿠 손님은 아는 체하면서 꽤 설레는 듯한 반응이었는데, 아마 팬심이라는 녀석이겠지.


"저기, 사진 한 장만 같이 찍어주지 않을래요?"

"……회사 방침 때문에 행사 외에는 그러면 안 돼요."

"아, 그렇죠. 아이돌이니까……."


라멘을 다 먹은 보탄의 말에 그는 축 늘어졌다.

보탄이 계산을 하고 나가자 오타쿠 손님은 한숨을 쉬었다.

마스터는 축 늘어진 그에게 물었다.


"팬인가봐?"

"그야 그렇죠. 4기생들 데뷔때부터 본격적으로 봤었어요. 시시로 보탄은 5기수인데 FPS 같은 게임을 특히 잘 하죠. 쿨한 인상이라 당연히 팬도 많구요."

"호오."

"물론 콕 찝어서 그녀만 좋아하는 건 아니지만……, 팬이라면 가끔 생각하잖아요. 최애의 특별한 무언가가 되고 싶다고……."



"가끔씩 누가 알아보면 그런 요구를 받아요."


그날 이후로도 보탄은 가끔 라멘을 먹으러 왔다.

그때의 상황도 상당히 익숙한 일이었다는 듯,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면서 면을 호로록거렸다.


"그게 딱히 곤란할 것까진 없어요. 아주 이해를 못하는 건 아니기도 하고. 하지만 누구 하나를 콕 찝어서 편애하면 아이돌이 아니잖아요."

"아이돌도 이것저것 신경을 많이 쓰여서 힘들겠군."

"데뷔 초에는 생각없이 내뱉은 말 한마디도 정말 큰일이 될 수 있구나 하는 걸 처음 배웠었으니까요."


주문한 시오라멘을 말끔히 비운 후 보탄은 평소처럼 일어섰다.

가게 내에는 보탄 외에 손님이 몇몇 더 있었지만, 그때와 다르게 보탄에게 관심을 보이는 이들은 없었다.

대다수가 야근을 마치거나 1차, 2차 회식을 마치고 온 회사원 위주였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다만 유달리 덩치가 큰 수상쩍은 인상의 남자가 있었는데 마스터는 그가 은연 중에 보탄을 힐끔거리는 걸 알아채고 알게 모르게 주의를 기울이고 있었다.

보탄도 막 몸을 일으켰다가 마스터의 시선을 따라가고는, 반쯤 쭈그린 자세의 남자를 보면서 고개를 갸웃거렸다가 이내 다시 자리에 앉았다.


"왜 그래?"

"마스터, 여기 교자도 돼요?"

"교자라면 우리집에서 하는 것보다 더 맛있게 굽는 집이 있어. 배달도 괜찮겠어?"

"네, 아 그리고……."


그렇게 말하면서 보탄은 곧 주머니에서 작은 페이퍼지를 꺼내 뭔가를 적어서 마스터에게 건넸다.

그걸 읽은 마스터는 곧 보탄과 아이 사인을 주고 받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마스터가 안에 들어가 통화를 한 후, 몇 분 정도 지나서 남자가 막 일어나 앞에다 지폐를 놓고 나가려고 했다.

그러다 막 보탄의 옆을 스쳤는데 보탄은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남자의 다리를 걸어 넘어뜨렸다.


"윽!"


큰 덩치의 남자가 넘어졌기 때문에 주변이 살짝 흔들렸다.

그때 뭔가 깨지고 금이 가는 소리가 들렸는데, 넘어진 남자가 헛하고 다급하게 일어났다.

상의를 털듯이 흔들자 액정이 부서진 스마트폰과 작은 렌즈 몇 개가 떨어졌다.


"이, 이거 비싼 건데!"

"그런 걸 감추면 곤란하지. 가게에도 폐가 되니까."


보탄이 시큰둥하게 남자를 바라보며 말했다.

남자가 당황한 듯하면서도 얼굴이 시뻘겋게 물들어졌다.

남자가 보탄에게 뭐라고 항의하려고 했던 그 순간 문이 드르륵 하고 열렸다.


"실례합니다! 오오조라 경찰입니다만!"

"마스터, 무슨 일이야?"


경관모를 쓴 숏컷의 소녀와 함께 가게 단골인 강력반 형사가 들어서는 것을 본 남자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체포된 남자 역시 홀로라이브의 광적인 시청자였다고 한다.

일전에 순순히 물러났던 오타쿠 손님과 비슷하게 어쩌다 보탄이 가게에 있는 것을 봤는데, 기회를 봐서 몰래 촬영을 하려고 했다고 자백하고 처벌되었다.


"몰래 찍은 사진을 자기 사진이랑 합성해서 SNS에 올리려고 했었나봐요. 그때 취조를 담당한 형사님이 악질이라고 치를 떨더라고요."


그런 일이 있었음에도 보탄은 가끔, 언제나처럼 라멘을 먹으러 왔다.

차이점이 있다면 이젠 캡과 선글라스를 써서 얼굴을 어느 정도 가렸다는 정도였다.


"그런 일이 있었는데도 라멘을 먹으러 와도 괜찮겠어?"

"여기서 끓여주는 라멘은 맛있거든요. 회사에서 주의를 듣긴 했지만, 소라 선배네 단골 가게이기도 하니까 폐만 안 끼치도록 하라고 해서."


젓가락을 문 채 보탄은 다 먹은 라멘 그릇을 내밀었다.

그 빈 그릇을 받는 마스터에게 보탄은 잊었던 것이 생각났다는 듯 말했다.


"아참, 마스터. 교자 된댔죠?"


그 말을 들은 마스터가 주의를 훑어봤지만, 지금 손님은 보탄 한 명 뿐이었다.

마스터는 피식 웃었다.


"배달인데, 괜찮겠어?"

"네, 그리고 돈코츠라멘 하나 더요. 난 역시 진한 게 좋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