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페코라는 늙지도 않는구나 부럽네.


언젠가 내가 했던 말이었다.


단순히 늙지 않는 게 아니라 마치 세상의 흐름이 그녀를 비껴 나가기라도 하는 것처럼 변하지 않는 미모에 질투가 나 했던 말일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페코라를 보다 한가지 의문을 가지게 되었다.


- 저 당근은 왜 썩질 않는거지?


평소에 주기적으로 당근을 교체하냐 하면 그것이 아니었다. 항상 같은 당근.


새로 사 오는 것을 본 적도 없고 페코라의 냉장고에도 당근 같은 건 없다. 그야 페코라는 당근을 안좋아하니까.


페코라를 오래 관찰한 끝에 한 가지를 알아낼 수 있었다.


시간이란 개념은 페코라에게 어떤 영향도 미치지 못한다는것을.


어째서일까.


크로니와 사나에게 물어 보았다.


- 그건 페코라 선배가 시간보다 상위 차원의 존재이기 때문이에요. 초끈이론을 전제로 설명 드리자면 0차원은 점. 1차원은 점이 모인 끈, 2차원은 끈이 모인 면, 3차원은 면이 모인 입체, 4차원은 시간이에요. 예를 들어 페코라 선배랑 쇼핑 약속을 잡았다고 생각해 보자고요. 어디서 모일지에 대한 약속은 3차원의 제한이고, 몇 시에 만날지에 대한 약속은 4차원의 제한이죠, 만약 오후 4시에 만나기로 한 약속에 선배가 오후 3시에 쇼핑몰에 갔다면 오후 3시의 선배와 오후 4시의 페코라 선배는 같은 3차원 좌표에 서 있지만 4차원 좌표, 즉 시간선이 달라 서로 만날 수 없는 거에요. 그리고 페코라 선배가 시간의 영향을 받지 않는 이유는 4차원 그 이상. 5차원 혹은 그 이상의 N차원 세상에서 세계를 내려다 볼 수 있기 때문일거에요. 자기보다 하위 개념인 시간에 휘둘릴 이유가 없는거죠.


솔직히 무슨 말인지 전혀 못 알아들었다. 옆에 앉아있던 크로니도 마찬가지인듯 이미 머릿속엔 코스모스가 피어나고 있었다.


- 1차원을 x축, 2차원을 y축, 3차원을 z축 라고 생각하자구요, 그렇게 세 축이 얽혀 우리가 사는 공간이 만들어 졌고, 4차원 시간축을 따라 무수히 많은 세계가 이어져 있는거죠. 그만큼 무수히 많은 우리가 있구요. 페코라 선배는 그 사이를 마음대로 이동하며 원하는 세계를 골라 잡을 수 있는 그 위의 존재란 거에요.


- 그럼 5차원 존재라던지 그런건가? 그 위에는 뭐가 있는데?


-그건 저도 잘 모르겠네요. 아직 정설이란게 없으니까요 전자기력이랑 중력의 통일로...


어쨌든 한 가지 확실한 건 그 4차원이란 걸 넘어서면 나도 늙지 않는 몸이 될 수 있다는 것. 그럼 도전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그렇게 나는 연구에 몰두했다. 영원한 젊음을 얻기 위해. 


그렇게 난 내 머릿속에 초중력이론을 기반으로한 또 하나의 우주를 만들어 냈다.


그리고 지금, 나는 그 너머를 바라보는 새로운 세계에 들어서려 한다.


- 우우우우웅


낮은 진동을 내는 새까만 구체. 주변의 빛을 빨아들이는 모습이 블랙홀의 그것과도 닮아 있었지만 본질은 전혀 달랐다.


나는 중력을 통제했다. 질량을 통제했다.


내가 이 세상에 현현시킨 새로운 물질. 블랙홀보다 다섯 차원은 상위의 개념. 무한한 개수의 면을 가진 11차원 중력입방체.


무언가 이름을 붙여 볼까. 그냥 중력입방체라 부르기에는 뭔가 폼이 안 나는페코.


"페코?"


어라? 뭐였지 페코?


잠깐 기다려 페코. 내가 원한 건 이게 아닌 페코!


"아아... 이름을 정했페코..."


제발 그만두는페코!


어느새 갇혀 있었다.


창문 너머로 바깥 세상이 간신히 보이고 있을 뿐이었다. 창문을 힘껏 두들겨 보았지만 미동도 하지 않는다.


꺼내주는 페코! 이대로 사라지긴 싫은페코! 구해ㅈ


"페코랜드 페코."


내게 새로운 세상을 열어줄 11차원 중력 입방체. 나는 오늘부터 이것을 페코랜드라 부르기로 한 페코.


내 손 끝이 페코랜드에 닿자 순식간에 암흑이 찾아왔다.


그리고 곧 11차원 너머의 새로운 세상을 볼 수 있게되었다.


가장 큰 세계의 너머에선 가장 작은 세계가 보인다.


초끈이론은 정신병자나 지껄이는 소리인 페코. 


세상을 구성하는 가장 작은 물질은 끈 모양이 아닌 페코.


세상을 구성하는 가장 작은 물질은...


토끼모양인 페코...




어라... 내가 뭘 하고 있었더라?


"그래서 말야. 페코라쨩은 어디 출신이야?"


주변을 슬며시 둘러보니 야외 테이블에 나를 포함한 여러 사람이 빙 둘러 앉아 있었다.


시로가네 노엘, 우루하 루시아, 시라누이 후레아, 호쇼 마린.


그래 오늘부터 함께 하게 된 내 소중한 동료들이었지.


"아니, 그 말해주기 곤란하면 안 해도 괜찮고..."


질문을 건냈던 마린이 조금 침울한 표정으로 말을 흘렸다.


이럼 안되지. 지금부터, 그리고 앞으로도 사이좋게 지내지 않으면.


내가 어디서 왔냐고?


"난 페코랜드에서 왔페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