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뭐 먹는거야? 그거"

아직도 귓가에 맴도는 소리가 있다

"다른 직원들 앞에서 집무실 소파에 누워있지마"

"내가 아껴두던건데"

"너는 한 입이 한 봉지야?"

소중한줄 모르던 한마디들
그런 것들이 이제와서는 쓸데없이 애뜻하다
그때 조금 더 웃어줬더라면
웃게 해줬더라면
되돌릴 수 없게되면
만회할 수 없게 된다면
나는 얼마나 후회하게 되는걸까
젖어있는 머리와 외투,
부츠에 달라붙은 진흙의 무거움은
초조함의 무거움에 비하면 가볍기 그지 없다

"어디있는거야"

너무 움직여서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고
상황을 정리해봤다
그 사람이 갑작스래 사라지고
모두들 놀라 소스라치며 상황을 파악할 때
머리 속이 새하얘져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었다
멍하니 앉아 가슴 속의 심장소리만 듣고 있을 수 밖에 없었다
사라진 사도 둘
여동생과 있어 아무것도 모른다는 빛의 기사
믿기지 않는다
평소에는 피하던 빛의 기사의 멱살을 붙잡았던 자신조차도

그 말을 듣자마다 도망치듯 뛰쳐나와 평생 벗 삼던 천직으로 답을 찾기 시작했다
빈 손으로 나와 계속해서 달려와
발바닥에 진물이 나도 멈추지 않고 여기까지 왔다

"굼이 과자 줬는데 플래티넘도 먹을래?"

"싸구려 과자 안 먹어"

사실 먹여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이제와서 이런 생각이 드는건 무슨 비겁함일까
지금같은 상황에서는 씁쓸하기 그지없는 기억이다
눈꺼풀은 무겁고 활을 든 팔과 다리의 후들거림을 느낄 수 있었다
조금만 긴장을 풀면 잠들어버릴 것 같다

"내가 구해줄게"

계속 그 생각만 하고 있었다
이제와서 시간낭비를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조금만 더 쫓으면 된다
스스로 격차를 벌릴 수는 없다
그렇게 배워왔고 살아왔다

갈라진 나무 구멍 사이에 앉아 부츠를 벗자
어릴적 이후로 처음 보는 붉게 부어오른 다리가 보였다
육감으로만 느껴지던 아려오는 아픔이 시각으로까지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꽤 멀리까지 와버렸다
국경 2개 정도는 넘었을까?
로도스의 세상물정 모르는 그 멍청한 꼬맹이는 이것보다 더 달려왔다는데
한심하게도 나는 이 꼴이다

"배고프다..."

근처에는 열매가 열린 나무도 없다
애초에 장마철의 나무숲에는 기대할 것이 없다
추격도 느려지고 재정비도 어렵다
계절이 너무 불리하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근처를 돌아다녀보자
어쩌면 외딴 사람 하나 정도는 찾을지도 모른다

"아...앗 읏"

"?"

어디선가 신음소리 같은게 들려왔다
의심할 것 없이 신음소리다
아픔의 종류가 아닌, 그리고... 여자 소리다
살과 살이 부딪히는 소리도 들린다
이런 곳에서 할 정도면
대체 얼마나 어처구니 없이 발정난 놈들일까
접촉하고 싶지 않지만
공복감은 버틸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대충 먹을게 있는지만 물어보자
조심해서 들키지 않게
보폭은 좁고 천천히

"박사님 이 체위 좋아하시죠? 저 알고 있어요"

"?!"

아는 목소리다
분명하게 아는 그리고 내가 쫓던
그리고... 내가 찾던 이름도

심장의 두근거림이 멈추지 않는다
지금 당장 달려가고 싶다
달려가야 하나? 로도스에 알려야 하나?
하지만 뭔가 이상한 감정이 그런 충동을 막아세우고 있었다
조용히 발걸음을 옮기며 다가간다
보이는 거리까지, 나무를 올라타서,
잘 보일 수 있는 곳으로

그리고 나는 봐버렸다
찾아헤메던 아름다움, 내가 염원하던 만남이 박살나는 것을
가증스러운 존재가 내가 간직하던 보물을 게걸스럽게 핥으며 더럽히는 모습을

박동이 멈추지 않는다
핏기는 심장을 통해 머리를 뜨겁게 달아오르게 했다
왜 이런 상황인거지?
내가 구하러 왔는데
나는 감사받아야 하는데

"이게... 뭐야...?"

섞일대로 섞여 한 몸처럼 두 남녀가 짐승처럼 서로의 몸을 탐하고 있었다
더러움을 모르듯 풀바닥에 누워 더럽다고 부를만한 곳을 사정없이 애무하고 자극하고 있었다

"모르겠어... 이거"

뜨거운 수분이 눈에서 나와 입술을 적셔왔다
공허함과 분함이 섞여서 뱃 속이 뒤틀어지는 느낌이 선명하게 느껴졌다

행위가 다 끝날 때까지 나는 그저 지켜보고 있었다
헐떡이며 액들이 섞이는 소리와 그 사이를 비집고 서로를 원하는 남녀의 모습을
분하고 슬픈데도 지켜보는 것 밖에 할 수 없었다
대체 왜 이런식으로 되어버린걸까
왜 여기까지 온 걸까
나는 괜한 짓을 한걸까
이대로 진짜 놓쳐버리는걸까


"아니야"

말이 머리를 통하지 않고 곧바로 입으로 뱉어졌다
그 한마디에 머리 전체가 차가워짐을 느꼈다
그리고 숨을 들이키자
이제는 여기까지 온 이상 뭘 해야할지 알 것 같다
그건 내 것이고 내가 있을 자리였다
도둑질 당한 것이다
내가 원하던걸
그 여자가 훔쳐간거다
할 일이 명확해졌다

"내가 되찾을게"

등에 달린 통에 손을 넣어 화살을 세어봤다
여기까지 오면서 화살은 얼마 사용되지도 않았다
거리만 유지된다면 충분한 양이다
나는 할 수 있다
그 목소리도 그 추잡해 보일 정도의 솔직함도
내가 가질 수 있다
나도 할 수 있다
그건 내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