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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사. 여기는 모스티마. 들려?]
“들려. 계속해.”
[화장실 안에 묶여 있던 기관사를 풀어줬어. 네가 말한대로 지금 기관실과 제 1 승객실의 연결을 끊고 있는 중이야.]
“어느 정도 걸릴 거 같아?”
[얼마 안 걸린다고 했으니 조금 후에 끝나지 않을까? 연결이 끊어지는 대로 곧바로 갈게.] 
“알았어. 고마워.” 

기어를 당겨 열차의 속도를 조금 높였다. 지반을 달리는 바퀴들의 움직임이 점차 거세지는 것이 들려오며, 양옆의 창문 너머로 지나가는 풍경들이 더 빠른 잔상이 되어 뒤로 사라져갔다. 

몇 번 되풀이하며 계산한 바로는, 젬머링 협곡의 끝자락까지 남은 시간, 그리고 폭탄의 카운트다운이 끝나는 시간은 앞으로 10분. 열차의 연결이 끊어지면 하중이 줄어들어 더 빨라질 것이다. 수동 조작으로 전환한 탓에 자리를 뜰 수가 없어 어쩔 수 없이 모스티마에게 맡겼다마는, 잘 되어 갈지 살짝 걱정되기 시작했다.

“아직 멀었나... 어?” 

되도록 빨리 끝냈으면 좋으련만, 이라고 생각했던 순간이었다.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고 하던가. 굉음과 함께 열차 뒤쪽이 살짝 상하로 흔들리는 것이 느껴졌다.  이윽고 치솟기 시작하는 계기판의 바늘. 덜컹거리는 기관실. 보아하니 기관사가 연결을 끊는 데 성공한 거 같군. 10초 정도 지나고 부서진 문 너머에서 모스티마가 천천히 걸어오는 것을 확인하고, 다시 고개를 돌려 열차의 수동 조작을 계속했다. 

“박사. 끊어진 거 확인하고 왔어.”
“고생했어. 기관사는 무사히 보냈지?”
“걱정 마. 제 1 승객실 너머에서 경례하는 거까지 봤어.”
“누가 보면 죽으러 가는 줄 알겠네...”

젬머링 열차의 구조는 기관실, 제 1에서 제 2 승객실, 휴게실, 제 3 승객실에서 제 4 승객실로 나뉜다. 즉, 연결을 끊은 지금, 승객들은 이제 이 기관실 안에서 깨어날 준비를 하고 있는 폭탄의 마수에서 완전히 벗어났다는 뜻이 된다.

“한시름은 놨구만.”

모스티마가 제압을 시도하면서 테러리스트 몇 명이 빈사상태에 빠지고 승객들 몇 명도 휘말려서 찰과상을 입었다고는 하지만, 결과적으로 사상자는 최대한 막았다. 남은 건 지금 우리 근처에서 삐삐거리며 성가시게 울고 있는 폭탄을 처리하는 것뿐이다.

기어를 최대한 끝까지 잡아당겼다. 선로와 지반의 비명이 격해지면서 엔진의 단말마가 내 귀를 괴롭혀 왔다. 지금 당장이라도 선로를 이탈하지 않을까 걱정될 정도로, 열차는 고삐가 풀린 야생마와도 같이 폭주를 시작했다. 수동 조작인 데다가 설비가 좀 오래 된 탓에 기어가 느슨해질 우려가 있어, 급하게나마 코트를 벗어 수동 기어 앞에 있는 문고리와 기어를 묶었다. 

“박사의 맨얼굴을 대놓고 보는 건 이번이 처음 같네.”

고개를 돌리니 옆에서 모스티마가 흥미롭다는 듯이 고개를 숙이며 날 보고 있었다. 평소라면 이런저런 실없는 소리를 했겠지만, 상황이 상황이다 보니 그럴 여유 따윈 없었다. 남은 시간은 길어야 6분. 슬슬 움직여야 한다.

“그나저나 몇 번을 생각해도 참 기상천외한 방법이야. 설마 열차를 탈선시켜서 공중에서 폭발시킬 생각을 하다니.”

기관실 밖으로 나가려는 내 옆을 따라가며 모스티마는 갑자기 내가 생각해둔 작전을 평가했다. 산맥에 진입할 때 배치된 곡선형 선로를 이용해 열차를 최고속으로 전진시켜서 선로를 이탈, 절벽을 향해 날아오르는 순간이랑 폭탄의 카운트다운을 맞춰서 폭발의 영향이 주변 지형에 최소한의 수준만 미치도록 한다. 그 경과를 확인하기 위해 나랑 모스티마만 기관실에 남는다. 솔직히 나 자신이 보기에도 미치광이나 할 짓이라는 건 인정한다. 하지만...

“어쩔 수 없잖아. 지금 상황에 피해를 최소화할 방법이 그것뿐이니까.”
“그건 그렇지.”
“거기에 네가 가지고 있는 아츠의 정체도 확실치 않으니 말이지.”
“호오...?” 

같이 걸어가고 있던 와중 모스티마는 갑자기 우뚝 서며 날 바라보았다. 비록 표정에 변화가 없었지만, 그녀에게서 느껴지는 아우라는 우호적이라고 보기엔 미묘한, 꽤나 이질적인 느낌이 들었다. 

“그 말은, 내 능력을 어느 정도 알아차렸다는 뜻이려나?”
“반쯤 억측이지만.”

기관실 끝자락에서 발걸음을 멈췄다. 끝없이 지평선 너머로 뻗어 있는 선로가 덜컹덜컹 흔들리는 시야에 고스란히 새겨졌다.

“너의 아츠, 시간 조작이지? 그것도 꽤나 특수한.”

미리 타이머를 맞춘 손목시계의 시간을 보며, 아직 열차가 탈선하기까지 시간이 남아있음을 확인했다. 말 나온 김에 지금 이야기해두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용문에서의 그 일, 기억하지? 너한테는 몰라도 난 눈 감고 떴더니 위치가 이동되어 있고 몇 초 전까지 있던 건물이 무너져 내려있던 거로 보였어.”

다시금 생각해봐도 어안이 벙벙해지는 그 장면. 아무 감각도 느껴지지 않았는데 이미 상황이 정리되어 있는 기묘한 상황. 몇 번이고 돌이켜 봐도 내 조잡한 지식으로는 이해하기에 한계가 있었다.

“첫 번째 가설은 공간 이동 아츠와 불꽃 아츠의 동시 사용이라 생각했었어. 당시 폐건물은 쇳가루랑 석회 가루가 흩날리고 있었으니, 네가 불꽃 아츠로 분진폭발을 일으킨 다음 공간을 이동시킨 거라 생각했지.”

그래서 그날부터 로도스의 온갖 자료들을 뒤져보기 시작했다. 특히 아츠 사용자에 대한 옛 문헌에서부터 현대 논문까지 종류를 가리지 않고 전부. 

“하지만 그러기엔 건물 잔해에선 불길이 보이지가 않았어. 폐건물이더라도 그 안에 있는 파이프 같은 곳을 통해 화재가 발생할 수 있었을 텐데 말이야. 거기에 그 당시 나에겐 아무 감각도 느껴지지 않았어. 불꽃의 열기와 연기의 냄새. 폭발하는 소리. 그 아무것도. 마치 내가 그 장소에 없었다는 것처럼.”

모스티마는 팔짱을 낀 채 아무 대답 없이 내 가설을 들어주고 있었다. 흥미롭다는 듯이 고개를 몇 번 끄덕이는 것 빼곤, 평소와 다름없는 그녀의 모습이었다. 

“그래서 다시 한 번 생각해봤어. 내가 무작정 아츠를 두 개 사용한다는 편견을 가지고 접근을 시도한 게 아닐지. 그러다가 한 가지 결론에 다다른 거야.”
“그게 바로 시간 조작이라는 거야?”
“맞아.”
“그게 용문에 있었던 일을 어떻게 설명하는데?”
“확실히 네가 말한 대로 시간을 조작한다는 것만으로 공간이 이동되거나 건물이 무너져 내리는 걸 만들 수는 없지.”

다시금 고개를 숙여 시계의 타이머를 확인했다. 남은 시간은 대략 3분. 

“하지만 물체의 ‘상태만을’ 대상으로 시공간 좌표에서의 시간 축을 조작한다면 어떨까? 가령 a시간에 있는 물체 A의 상태를 b시간에 있는 물체 A의 상태로 치환하는 거지. 이러면 내가 아까 제시했던 의문점이 해결돼.”

건물이 무너져 내렸는데 화재가 발생한 것은, 한참 후에 있을 ‘무너져 내린 미래’의 상태를 가져온 것이고, 내 위치가 이동된 것도 비슷한 이치. 여러 시간축에서 내가 그 도로에 있을 ‘미래’의 시간을 끌어온 것일 것이다. 다만... 

“아까도 말했지만 이건 억측이야. 샘플 하나만을 보고 여러 오퍼레이터들의 능력을 대조해보면서 도출해낼 수 있는 가설일 뿐이니까.”

뭔가 만족스러운 듯 옅게 쉰 한숨과 함께, 모스티마는 휘파람을 불면서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 직후 작은 박수 소리가 거세게 흔들리고 있는 열차 안에서도 선명하게 들려왔다.

“훌륭한 가설이야. 박사. 그런데 네 말대로라면 차라리 저기 있는 폭탄을 카운트다운이 가동되기 전의 시간으로 옮기면 되는 거 아니야? 굳이 이런 번거로운 수단을 써야 할까?”
“말했잖아. 억측이라고. 내 가설이 틀렸다면 사용할 수가 없는 방법이니까. 설령 맞다고 하더라도...”
“하더라도?”
“그 시간 조작 능력, 발동 코스트가 심하거나 범위가 굉장히 좁을 거야. 그렇지? 그러지 않고서야 그런 생고생을 할 리가 없으니까.”

시간 조작을 이용한 위치 변동 능력이 있었다면, 조직폭력배랑 마주쳤을 당시 곧바로 사용해서 도망쳤으면 될 것을, 굳이 용문 빈민가까지 추격전을 펼치면서까지 사용하지 않았다. 더불어 폐건물에서 탈출할 때도 능력에 제약이 없었으면 용문 시내나 로도스로 이동이 가능했을 터. 일부러 얼마 안 떨어진 거리로 이동했다는 것은, 조작할 수 있는 시간의 정도가 한정되어 있다거나, 아니면 이 아츠를 사용할 때마다 몸에 부담이 심하게 온다던가, 이 두 가지 가설이 제시될 수밖에 없다.

“이거 한 방 먹었는...”

모스티마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손목시계에서 시간이 다 됐다는 알림이 들려왔다. 정확히는 폭탄의 카운트다운으로부터 20초 전. 더는 이곳에 있을 수는 없다는 뜻이다.

“모스티마! 뛰어내려야 해!”
“오케이~”

내 명령 한 마디에 모스티마는 즉시 내 손을 잡아 저 지평선 너머로 단숨에 뛰어들었다. 허공을 걸어 다니는 것 같은 기묘한 감각. 느려지는 것 같은 시간. 하늘과 땅이 역전된 풍경. 이윽고 전신을 강타하는 매서운 기류.

그리고, 고막을 갈기갈기 찢을 것 같은 굉음과 등지고 있는데도 눈을 멀게 할 것 같은 섬광과 등이 탈 것 같은 열기.

1초. 2초. 3초. 질끈 감고 있던 눈을 서서히 뜨자, 우리보다 더 빠른 속도로 추락하고 있는 열차의 잔해들이 희미한 시야 너머로 보였다. 그 모습을 보아하니, 진짜로 끝났다는 안도감이 내 몸속 깊이 흘러 들어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모스티마. 슬슬 부탁할게.” 

여전히 뒤에서 느껴지는 맹렬한 열기와 함께, 코와 입을 틀어막는 산골짜기의 억센 기류가 내 얼굴을 강타했다. 숨이 턱 막히고 전신이 삐걱거리지만, 이전에 블레이즈랑 같이 상공 400m에서 스카이다이빙을 한 경험 때문인지, 오히려 기분 좋은 바람이라 느껴질 정도였다. 이번에 돌아가면 블레이즈랑 같이 스카이다이빙이나 배워볼까.

이제 남은 건 모스티마의 아츠를 통해서 협곡 아래에 착지하는 것뿐. 그 후 로도스에 구조요청을 보내면 이번 사건은 끝이다. 약 3초 정도 그리 생각했을 것이다.

“모스티마...? 슬슬 아츠를...”

시간이 지나도 시각이나 촉각에서 아무런 변화가 없다. 하물며 땅 위를 밟고 있지도 않다. 계획이랑 달리 계속 상공에서 떨어지고 있는 것에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박사. 미안.”

웬만해선 들어볼 수 없는 모스티마의 사과에, 냉수가 척추 속에서 흐르는 것만 같은 서늘함이 느껴졌다. 혹시나 최악의 상황이 발생한 건가? 불안해지는 마음을 안고 고개를 돌려보니, 적잖이 당황한 듯이 미묘하게 웃고 있는 그녀가 보였다. 제발. 제발 내가 생각하는 게 아니기를. 머릿속으로 ‘제발'이라는 단어를 몇 번이나 되뇌는지 모를 정도로, 간절한 마음으로 그녀를 응시했다. 

“아츠가 발현이 안 돼.”

그 말 한 마디와 함께, 한 가지 결론이 도출되면서 내 시야는 새하얗게 물들어갔다.

이런 젠장. 좆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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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MI) 작중 독타가 추정하고 있는 모스티마 능력의 디메리트는 실제 모스티마 겜 성능 고증.


모스티마 패러독스 시뮬레이터 나왔더라. 다행히 생각해두고 있는 플롯에 영향은 안 갈 거 같음.


한 2~3화 후쯤 완결날듯. 봐주는 사람들 언제나 감사하고 있음.


피드백 언제나 환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