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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이리 된 거지.”
“저런...”

차갑고 화끈한, 상반된 감각이 내 뺨에서 느껴졌다. 한 대 맞은 듯이 부어오른 뺨이랑 입맞춤하고 있는 얼음주머니에서 느껴지는 냉혹한 온도를 견디지 못해 식탁 위에 조심히 내려놓았다. 

“주문하신 어묵 세트 a입니다. 두목.”

그릇 하나가 내 눈앞에 놓였다. 연한 갈색 국물 위로 둥실둥실 떠올라 있는 가지각색의 피쉬볼과 어묵꼬치. 술 한 잔을 가져와야 할 것 같은 연한 생선 비린내가 내 코를 간지럽혔다. 내 생각을 읽기라도 한 건지, 곧바로 그릇 옆에 맥주 한 캔이 준비되었다. 눈치 좋은 요리사 덕에 기분이 저절로 좋아진다.  

“많이 있으니까 원하신다면 더 말씀해주세요.”
“고마워.”

우선 따뜻한 어묵 육수 한 모금을 들이켰다. 국물 요리는 무엇이든지 국물의 맛에서 우러나는 법. 한 모금 마시기만 하는 것으로 그 요리의 맛을 판가름 짓는다. 그런 의미에서 이 어묵 요리는 틀림없는 일품이다. 자극적이지 않으면서도, 혀의 세포 하나하나를 애타게 만드는 이 감칠맛. 그 후에 미련 없이 목 속으로 떠나는 깔끔한 뒷맛. 저녁 겸 야식으로 부족함이 없는 요리다. 

“아, 요리사씨. 저도 어묵세트a 주세요.”
“예이.”

내 옆의 사람에게서 주문하는 소리가 들려온다. 심야인데 나 외에도 얼추 손님이 10명. 하긴, 이 맛에 손님이 오지 않는 게 더 이상할 노릇이다. 

수저가 들어 있는 통에서 숟가락을 꺼내 피쉬볼을 담았다. 구슬같이 예쁘게 말아진 녀석들을 보니 저절로 기분이 좋아진다. 한입에 삼키며 그 안에서 느껴지는 진한 생선과 야채의 풍미와 함께, 맥주 한 모금도 곁들였다. 

그런 와중에 내 눈앞의 요리사는 동작을 멈추지 않았다. 앞에서 그가 들고 있는 식칼이 도마 위를 화려하게 춤추고 있었다.

“역시, 야식은 네가 만든 어묵이 최고인데?”
“과찬이에요.”

흰색의 반팔 티셔츠 너머로 흉터투성이인 팔뚝. 창백한 피부. 멍한 회색 눈. 정돈되지 않은 회색 머리. 회색으로 덧칠된 거 같은 우르수스 남성. 로도스에서 스페셜리스트 오퍼레이터로 근무하고 있는 제이다. 덤으로 이 심야에 운영하는 어묵 식당의 요리사이기도 하다.

“그래서 뺨은 좀 어떠십니까? 박사님.”
“아까보단 나아요.”

옆에서 나랑 같은 어묵 세트를 받는 한 남성이 걱정스러운 듯 질문을 던져 왔다. 스와이어의 방에서 쫓겨나 바닥에 널브러져 있던 나를 데리고 식당까지 데려온 류 샤오청이었다. 제대로 차려입은 휴게실에서랑은 달리 체육복이다.

“이거 저희 누ㄴ... 아니, 스와이어 고급경사가 큰 결례를 범한 것에 대해, 다시 한번 사과를...”
“됐어요. 제 잘못도 있고.”

내가 그러고 그런 짓을 해버린 것도 있겠다. 오히려 내가 나중에 쥐도 새도 모르게 *용문 앞바다*에 담가져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스와이어가 그럴 인물이 아니라는 건 알지만, 사람 일은 모르는 거다. 안 그래도 내일 비서 오퍼레이터로 올 예정이니 그때 제대로 사과해야지.

“한잔 받으시죠. 박사님.”

아무 말 없이 식사하고 있던 와중이었다. 옆에서 청이 작은 유리잔을 건네더니, 이윽고 염국산 고량주를 조심스럽게 따랐다. 언제 준비해 온 건지 모르겠지만은, 모처럼의 호의를 거절할 수 없는 노릇이다.

“입에 맞으신가요?”
“네... 뭐...”

원래부터 술이 강한 편이 아니었다. 많이 마셔봤자 보드카 1/4병 정도. 비슷한 도수인 고량주라면 오죽할까. 목 넘김이 깔끔하다 하더라도 그 후에 식도랑 위를 화끈하게 태우는 것 같은 이 열기는 익숙해지지를 않는다.

“크... 이 맛이지.”

그런 나랑 달리 청은 벌컥벌컥 들이키면서 잔을 비웠다. 조금 전까지 그럭저럭 지켜왔던 용문 경찰의 품격은 내다 버린 것일까? 목소리며 행동이며 평범한 서민 같은 모습이라 왜인지 모를 친근감이 느껴졌다.

“불미스러운 일이었지만은, 다 지난 일이잖습니까. 며칠 지나면 괜찮아지겠죠.”
“그 며칠간은요?”
“하하. 그건 저도 모르죠!”

그게 문제잖아. 한숨과 함께 속으로 내 작은 불만을 내뱉었다. 만약 내가 아니라 여성 부하들이나 호시구마, 하다못해 첸을 불렀으면 적어도 아까 그 낯부끄러운 상황이 있었더라도 별 탈 없이 흘러갔겠지. 어묵 국물을 들이키며 목 밖으로 흘러나오는 울분을 도로 집어삼켰다.

“뭐... 이번 일은 누님도 곧바로 풀리겠죠. 언제나 그랬으니까요.”

이젠 압존법도 잊어버리고, 누님인가. 설마 술에 취한 건가. 호쾌하게 들이킬 때부터 불안하더니. 제발 돌아갈 땐 부축할 일이 없으면 좋겠다. 

그나저나 겨우 한 잔 다 마셨는데 또다시 내 잔에 따르다니. 날 죽일 생각인가.

“그리고 이 정도로 누님이 미워지거나 할 거 아니잖아요? 박사님도.”
“그야 뭐...”

곰곰이 생각해보면 애초에 사고로 발생한 일이고, 스와이어 입장에서 보면 충분히 이해할 만한 상황이었다. 앞날이 창창한 아가씨가 웬 칙칙한 폐인 아저씨에게 몸이 닿아버렸으니 오죽하겠는가. 기분이 결코 좋다 볼 수는 없다. 

“박사님. 우리 누님말입니다. 가끔 말하는 게 *용문 음란 언어*같지만, 사람도 좋고 얼굴도 예쁜 편이고, 능력도 있는 분입니다.”

탁, 하고 술잔을 강하게 탁자에 내리치며 청은 말했다. 이거 말끝이 꼬이기 시작한 거 보니 오늘 혼자 돌아가기 글렀구만.

“박사님도 인정하는 부분 아닙니까?”

그런 청의 질문에 난 별다른 대답 없이 고개를 약하게 끄덕였다. 취기가 오른 그가 던진 가벼운 질문이었을 테지만, 왜인지 모르게 내 가슴에 팍하고 꽂혀왔다. 용문에서의 리유니온 침공 당시가 아닌, 로도스에서 스와이어랑 처음 만났을 때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용문 강급 경사, 스와이어야. 신인 훈련 고문으로서 로도스에 착임했어. 닥터, 용문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우리 사이좋게 지내자.]

자신만만하고 화려한 아가씨. 그게 내가 스와이어에게 가진 첫인상이었다. 그런 그녀랑 몇 개월이 넘도록 같이 일하면서, 그 인상 뒤편엔 주변 사람들을 잘 챙겨주는 상냥함이 녹아들어 있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밥을 잘 사준다던가 그런 건 사소한 거다. 행동 하나하나가. 말투 하나하나가. 사람들을 진심으로 배려하고 걱정해준다는 것이 느껴진다. 만인에게 사랑받는 아가씨라고 대원 기록에 쓰여 있는 것처럼, 이 이상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여성을 싫어하는 사람이 있겠는가? 

“그러니, 우리 누님... 잘 좀 부탁드립니다. 박사님.”

그렇게 생각하고 있던 와중에 청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내 등을 두 번 툭툭 치고 식당 출구 쪽으로 발걸음을 옮기더니, 비틀거리면서도 용케 복도의 저편으로 서서히 사라져갔다. 

고개를 다시 돌려보니, 그가 있던 식탁은 이미 제이가 치운 뒤였다. 그릇은 그러려니 하는데 고량주 병도 안 보인다. 내가 아까 다 먹은 1잔, 그리고 지금 마실 1잔을 제외하고 50도짜리 술을 혼자서 다 마셨단 말인가. 무시무시한 주량이다.

“두목, 어묵 더 필요하세요?”
“미안하네. 조금만 더 줄래?”

추가로 나올 어묵을 기다리며 고량주가 들어간 잔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조금 전에 청이 던지고 간 말 때문일까. 투명한 수면 위로 누군가의 실루엣이 계속 보여서 선뜻 삼키기가 꺼려졌다.

아무래도 야식 시간이 생각보다 길어질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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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기도 시작하고 백신도 맞고 자격증 시험도 보고... 거참 바쁜 일주일이었음.


이번화부터 매주 토요일 밤에 올릴거임. 참조할 사람은 참조.


피드백이나 감상은 언제나 감사히 받고 있음.


p.s. 지난화 댓글에 물어본 대로 프라마닉스~청독이편까지도 여기 올릴게. 다만 표지도 만들어야 되서 당장은 아니고 천천히 올리겠음. 읽어준 사람들 모두 압도적 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