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결난 거 재업로드는 수요일 저녁, 연재 중인 거는 토요일 저녁에 업로드하기로 했음. 참조 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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폰에서 튀어나오는 진동음과도 같은 소음이 내 뱃속에서 들려왔다. 아침에 영양 보충용 곤약 젤리 한 개 먹은 것 이후로 쭉 공복 상태여서인지 허기라는 이름의 맹수는 내 위장을 평소보다도 강렬하게 물어뜯었다.
사람으로서 기본적인 욕구는 채워야 하는 법. 식당에 가면 컵라면 같은 간단한 먹거리라도 있을 것이다. 그거라도 먹고 남은 일을 마저 해야겠다는 생각에, 찌뿌둥한 몸을 일으켜 사무실을 나왔다. 비상 전등만이 켜져 있는 복도의 저편의 어둠만이 이곳에 홀로 서있는 나를 반겼다.
“조용하네...”
현재 시간 오후 10시. 모든 업무가 종료되고 다들 잘 준비를 할 시간. 하지만 그런 시간에 난 아직도 남아 있는 서류들을 처리해야 되는 상황이다. 다른 사람에게 부탁이라도 해보고 싶은 심정이지만, 켈시랑 아미야는 용문의 웨이옌우 장관과 담판 지으러 외출 중이지, 다른 수뇌부 녀석들은 자러 갔지. 비서 오퍼레이터도 당직 시간이 오후 9시에 끝이니 이미 쉬러 가버렸지. 그렇다고 야간 당직인 얘들을 귀찮게 할 수도 없고... 파고 팔수록 한숨밖에 안 나오는 현 상황에 어이없는 웃음만이 내 얼굴을 간지럽혔다.
노예처럼 대부분의 시간을 업무에 시달리는 내 처지에 중얼거리길 5분쯤 되었을까. 문을 열고 깜깜한 식당 안에 들어왔다. 벽을 더듬으며 조명을 키자, 테이블들이 오와 열을 맞춘 채 반짝반짝 빛나며 나를 반겼다. 낮에는 그렇게 시끌벅적하던 장소가 지금은 이렇게 적막하다니. 뒤에서 문이 닫히면서 살짝 스쳐 지나가는 미풍이 마치 내 지금 처지를 보며 한숨을 쉬는 것만 같아서 왜인지 모를 우울함이 스멀스멀 기어 올라왔다. 배가 고파서 그런지 마인드가 점점 부정적으로 변하는 거 같다. 빨리 뭐라도 먹어야지.
“어머? 박사님이 이 시간에 여긴 왜...”
주방쪽에서 들려오는 작은 발소리. 고개를 돌아보니 그곳엔 10대 중후반으로 추정되는 ‘푸른’ 소녀가 날 향해 걸어왔다. 푸른색 후드 재킷과 그 안의 남색의 유니폼과 스타킹, 그리고 그 아래로 보이는 파란색 운동화. 청색으로 통일된 코디에 상반되는 두 갈래로 짧게 묶은 분홍색 머리카락은 시선을 끌게 하는 매력을 뽐냈고, 머리카락 너머로 보이는 터키석을 연상시키는 신비로운 눈동자는 무심코 아름답다고 말할 정도로 반짝이고 있었다.
로도스의 스나이퍼 오퍼레이터이자, 의료팀에 독물학 관련 연구에 협조 중인 아누라 종족의 대원, 블루포이즌이다. 본디 본인이 요청한 코드명은 아즈리우스였지만, 의료진들이 블루포이즌이라는 별명을 붙이는 걸 시점으로 로도스의 대원들은 두 코드명을 번갈아가면서 쓰고 있는 모양이다.
“배고파서 간식이라도 먹으려고. 너는?”
“디저트를 만들고 있었답니다. 언제나 고생이 많으신 대원 분들에게 드리고 싶어서...”
다만,이라는 말과 함께 블루포이즌은 고개를 숙이며 시선을 돌렸다. 그녀의 시선을 따라가보니 손에 쥐어져 있는 작은 파란색 종이 가방이 흔들리면서 내용물이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무슨 일 있어?”
“다만, 아무도 드시려 하질 않네요. 맛에는 분명 자신 있는데...”
가벼운 신음소리가 내 앞에서 들려왔다. 다만 그 옅은 한숨 속에는 복합적인 감정이 섞여있음을 확연히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녀가 말하고 싶은 것이 무엇임도 눈치챌 수 있었다.
블루포이즌은 거대한 적도 단숨에 녹여버릴 수 있을 정도 매우 강력한 독극물 능력자다. 심지어 스카이파이어와는 달리 그 강력한 능력을 자유자재로 조절할 수 있을 정도로 정밀성도 뛰어나다.
“역시, ‘독극물’이 만든 음식은 환영받지 못하는 거려나요.”
허나, 본디 강대한 힘은 누구에게나 공포의 대상으로 각인될 수 있고, 그것에 대한 소문은 쓸데없는 군살이 붙는 법이다. 아미야에게 들은 바로는 어느 순간부터 로도스 내에 블루포이즌의 신체에 접촉하면 안 된다는 낭설이 퍼지기 시작했다고 한다. 켈시를 비롯한 수뇌부로부터 헛소문을 퍼뜨리는 걸 금지하도록 했다지만, 이미 널리 퍼져버린지라 처리가 곤란하다고 들었다. 아마 그녀가 만든 디저트를 먹지 않으려 하는 건 그런 이유 때문이겠지.
“만든 요리는 어떡할 거야?”
“몇 개는 제가 먹고, 기한이 지나버리면 버려야겠죠. 아쉽지만...”
후드 너머로 블루포이즌의 눈가에 짙은 명암이 들어섰다. 빛을 잃어가는 것 같은 그녀의 푸른 눈은, 무심코 가슴을 저릿하게 만들었다.
“그... 혹시 가능하면 몇 개는 내가 먹어도 될까?”
“네?”
뺨을 긁적이며 던진 질문에 블루포이즌은 깜짝 놀란 듯 흠칫, 하며 날 바라보았다. 상황이 이해가 안 간 것처럼 눈을 두세 번 깜빡이더니, 그녀는 의심하듯이 질문을 던져왔다.
“설마... 박사님께서 드셔 주시려고요?”
“응. 안 될까?”
“괜찮습니다마는... 혹시 절 가엾이 여겨서 그러시는 거라면...”
“아니아니, 그런 게 아니야. 아침부터 아무것도 못 먹어서 배고파서 그래. 거기에 그 뭐냐. 야근하려면 역시 당분 섭취가 최고잖아? 거기에 마침 식당이니 여기서 먹고 가는 게 더 좋을 거 같기도 하고... 그리고 그러니까... 그...”
당황한 나머지 갈수록 횡설수설 말을 늘어놓는 나 자신이 한심해 보였다. 영양분이 부족해서 뇌가 시스템을 강제 종료라도 한 것처럼 혀가 생각대로 움직이질 않았다. 나 자신이 봐도 우스운데 다른 사람은 오죽할까. 블루포이즌은 한손으로 하관을 가린 채 쿡쿡 웃으며 날 바라보았다.
“박사님은 언제나 봐도 재밌는 분이시네요.”
그거 나 돌려 까는 거 아니지?라는 딴죽을 걸고 싶지만 괜한 말은 화를 일으킬 뿐이다. 자중하자.
나와 블루포이즌은 가까운 테이블로 가서 의자에 앉았다. 그녀는 곧바로 종이 가방을 내려놓고, 그 안에 있던 쟁반을 놓아 그 위로 디저트를 하나둘 꺼내기 시작했다. 머핀 1개. 쇼트케이크 1개. 쿠키 2개. 마카롱 2개. 여러 가지 디저트들이 상 위를 알록달록 장식했다. 다만...
“색깔이 전부... 파랑색이네?”
“네. 나름대로 디저트도 코디를 하는 게 좋을 거 같아서...”
푸르다. 정말로 푸르뎅뎅하다. 하나도 빼지 않고 온갖 디저트가 파란색으로 도배가 되어있다. 순간적으로 내 눈이 청색만 인식할 수밖에 없는 병에 걸린 건가 싶어 눈을 비벼봤지만, 다시 봐도 역시 내 앞에 있는 건 말 그대로 ‘BLUE’의 향연이었다. 이거 혹시 대원들이 블루포이즌의 요리를 먹지 않는 거... 색깔 때문 아닌지...?
하지만 내가 누군가. 로도스의 최고 지도자 아닌가. 음식의 색 정도로 당황하면 리더라고 말할 수가 없지. 음식을 판가름할 때 외형만으로 판단하는 건 어리석은 짓이다. 이러니저러니해도 결국 제일 중요한 건 맛 그 자체인 법이다.
“잘 먹을게.”
뭐부터 먼저 고민했지만, 역시 제일 무난한 건 마카롱인 것 같다. 블루포이즌을 의심하는 건 아니지만, 면적이 제일 작으니 혹시나 하는 상황에 재빨리 후속 조치를 할 수 있을 테니까.
파란색 껍질 사이에 채워져 있는 하늘색의 크림을 잠시 바라보다가, 천천히 입으로 옮겼다. 과감하게 한 입 베어 물자, 설탕과자 특유의 바삭함에 이어 푹신한 크림의 감촉이 혀 위로 느껴졌다. 우물우물 몇 번 먹으면서, 이윽고 상큼한 과일향이 느껴졌다. 새콤함 3할과 달콤함 7할. 이 맛은... 블루베리? 아니면 포도인가?
“오오... 맛있어!”
조금만 더욱 맛보고 싶었지만, 마카롱들은 이미 전부 내 위장으로 다이빙한지 오래다. 아쉬운 대로 이번엔 머핀을 집어 크게 한 입 베어물었다. 살짝 바삭한 겉표면 아래의 마시멜로와도 같은 푹신함이 내 치아를 상냥하게 감쌌다. 이윽고 고소한 머핀 내부에서 내 입으로 뭔가가 흘러나오는 것이 느껴졌다. 과일 특유의 상큼함 뒤로 느껴지는 농후한 달콤함이 내 혀를 장악하는 것이, 아마도 과일 잼에 누텔라를 섞었거나, 아니면 초콜릿 소스에 과일 향을 첨가한 것으로 보인다. 빵 자체의 고소함과 내부의 달콤한 소스가 조화를 이루면서, 혀가 아리다는 느낌이 1도 없이 내 혀는 만족스럽게 머핀을 즐겼다.
“목 마르실텐데 우유라도 한 잔 하시지요.”
“고마워.”
세 번째는 쿠키. 적당하게 딱딱하고 고소한 식감 속에서 피어나는 초코칩의 달콤함. 그리고 방금 블루포이즌이 건넨 우유 한 잔과의 절묘한 하모니. 그리고 삼키면서 코와 혀에 남는 과일 향. 약간 쌉싸름한 맛이 느껴지는 걸로 보아 자몽인가? 어린아이들보다는 어른들이 좋아할 것 같은 맛이다.
“맛은 괜찮으신지...?”
“진짜 맛있어. 매일 먹고 싶을 정도야.”
이번엔 쇼트케이크. 보라색에 가까운 푸른색 설탕과자 코팅 너머로 보이는 붉은색 표면으로 보아 본디 레드벨벳 케이크 위를 덧씌운 것으로 추정된다. 이번에도 크게 한 입. 각종 베리 종류를 섞은 것 같은 새콤하면서도 달콤한 설탕과자의 맛에 질리지 않게 하려는 것처럼 레드벨벳 케이크 특유의 담백함이 조용히 서포트하고 있었다.
허나 이 디저트들의 진면모는 달콤함이나 고소함 같은 게 아닌, 만든 사람의 진심어린 정성. 한 입 한 입 먹을 때마다 느껴지는 먹는 사람을 향한 순수한 애정이 느껴지는 포근함은, 마치 아이를 위해 음식을 준비하는 어머니의 정을 어렴풋이 느끼는 것만 같았다. 물론 난 가족에 대한 기억은 없지만, 아마도 대충 이런 느낌 아닐까.
테이블에 올려진 디저트를 다 먹고 나서 잔에 남은 우유도 원샷. 꽤나 만족스러운 포만감이 느껴졌다. 이걸로 몇 시간은 문제없이 일할 수 있겠군.
“정말 잘 먹었어. 고마워.”
매일 쓸쓸하게 컵라면 하나로 때우던 나날을 생각할수록 오늘의 야식은 더더욱 특별하다고 할 수 있겠다. 굼이 만들어주는 것 외로 누군가가 음식을 대접해 준 게 얼마만이던가? 의자에 일어나면서 나는 마음 깊이 우러나온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블루포이즌? 무슨 일 있어?”
“아... 아닙니다. 아무것도...”
고개를 들면서 내 시야에 비친 건, 넋이 나간 것처럼 날 보고 있던 블루포이즌이었다. 내 질문에 흠칫하며 시선을 피하듯, 그녀는 후드를 짓누르며 고개를 돌렸다. 내 얼굴에 뭐가 묻은 건가 싶어 입가를 쓰다듬어봤지만, 만져지는 건 며칠째 면도를 안 한 까칠까칠한 수염뿐이었다. 내일 일어나서 면도 한 번 해야겠네.
“어차피 나가야하는 길인데 같이 나갈까? 방까지 바래다줄게.”
“아, 아뇨. 아직 정리할게 좀 있어서...”
“도와줄까?”
“간단한 일이랍니다. 먼저 들어가서 남은 업무에 힘내주세요.”
조금이라도 쉬려고 생각해낸 내 농땡이 계획은 실패했다. 아쉽지만 돌아가야겠군. 수고하라는 말 한마디와 함께 문을 향해 고개를 돌리려 할 참이었다.
“저기... 박사님.”
뒤에서 쥐어짜낸 듯이 블루포이즌의 작은 외침이 들렸다. 그것에 다시 몸을 돌리자, 그녀는 망설이듯 본인의 손가락을 만지작거리며 시선을 아래로 향하고 있었다.
“방금 그 말, 진짜신가요?”
“방금?”
“그... 제가 만든걸... 매일 드시고 싶으시다고...”
“아, 그거? 응. 진짜 맛있었어.”
그러고 보니 방금 그렇게 말했었지. 좀 과장된 표현인 감이 없잖아 있지만, 디저트들의 맛 자체가 훌륭한 건 엄연히 사실이었다. 솔직히 말해서 매일 간식으로 먹으면 무진장 행복할 거 같다고나 할까. 물론 어림도 없는 소리지만.
실없는 생각을 하고 있는 나를 잠시 멍하니 보더니, 주방의 열기 때문인지 붉게 상기된 뺨을 가리려는 듯 블루포이즌은 ‘그런가요’라는 대답과 함께 푹 고개를 숙였다. 이윽고 들려오는 희미한 한숨과 함께, 그녀는 싱긋 미소를 지으며 말을 꺼냈다.
“내일은 다른 걸 만들어드릴게요. 한밤중이 아니라 오후에, 홍차랑 어울릴 만한 디저트를 준비해두지요.”
“어? 정말?”
“네. 부디 기대해주시길.”
블루포이즌은 그 말과 함께 주방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뜻밖의 답변에 당황해 목구멍에 골프공이 걸린 것 같이 뻣뻣하게 굳어서 그 이상 말을 꺼내기가 어색할 거 같았다. 어쩔 수 없이 목을 긁적이며, 난 천천히 사무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당장 내일 간식을 기대하며, 조촐한 심야의 티파티는 그렇게 심심하게 막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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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명붕이들이 리퀘한대로 지난 작품들도 업로드하기로 했는데... 일러 외주도 있고 개인 일정도 있고 해서 좀 미뤄졌다. 즐감하길 바람.
피드백은 언제나 환영.
일러레 픽시브는 여기: https://www.pixiv.net/users/1584728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