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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시미어로 가 줘.”


 “카시미어요?”


 “그래.”


 그 말을 끝으로 박사는 제이가 가져온 아침을 주섬주섬 꺼내 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제이는 박사가 책상을 대충 치우고 식기를 꺼내들며 오오, 맛있겠다-라고 하는 걸 멀뚱멀뚱 바라보다가,


 “…….”


 …그렇게 박사가 젓가락을 들어 올릴 때까지 참을성 있게 기다리다가,


 “…두목? 설마 그게 하실 말씀 끝임까?”


 “끝이야.”


 “아니 좀 설명을 더 해주셔야죠?!”


 터졌다. 그제야 박사는 자기가 정확한 행선지를 말하지 않았다는 걸 깨달은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아, 갈 곳은 그랜드 나이트 영지야. 카봐렐리에키라고도 하지. 그 왜, 이번에 기사 토너먼트 열리잖아. 기사 스포츠 말이야.”


 “저도 압니다! 아니 그걸 누가 몰라요, 테라에 발붙이고 있으면 상식이지! 아무리 용문 슬럼가가 개판이래도 카시미어가 기사 스포츠로 유명하단 것 정돈 알아요! 이맘때쯤 해서 토너먼트가 열린다는 것도 알고요!”


 “알면 문제없는 거 아냐?”


 “왜 문제가 없슴까! 왜!”


 익숙해졌다고 생각하면서도 화가 날 수밖에 없다니 이 얼마나 어이없는 일일까. 제이는 그야말로 뒷목을 부여잡고 쓰러지고 싶은 마음을 간신히 참아가며 자리에 앉아 있었다. 지금 그를 버티게 해주는 건 박사의 앞이라 그래도 예의를 차려야 한다는 사실, 오직 그거 하나뿐이었다.


 “흐음, 네가 카시미어로 간다면 그쪽에서 찾아갈 것 같아서 말 안 했는데. 좋아, 출발하기 전에 니어를 찾아가 봐. 오퍼레이터 니어 알지? 마가렛 말이야, 카시미어에서 온.”


 “왜요, 그 아가씨가 카시미어에 편지라도 전달해 달랍니까?”


 “아니? 그런 건 아니지. 그럴 거면 전달자한테 시키지 뭐하러 널 불렀겠어?”


 “…….”


 제이는 생각했다. 아, 빈정거리는 것도 상대를 봐 가며 빈정거리자. 박사는 그가 빈정거리기엔 레벨이 턱없이도 높은 상대였다. 


 그래, 이런 사람이지.


 박사는 속이 깊은 사람이었다. 아무리 가벼워 보여도 절대 헛말은 하지 않는.


 작전을 지휘할 때야 그런 박사의 태도가 더할 나위 없이 믿음직스럽지만, 정말 이럴 때는 조금만 더 상대방을 배려해줬음 좋겠는데 말이지.


 제이의 표정은 좀 전에 소리 질렀던 태도는 어디 갔냐는 듯 다시 예의 그 맹한 얼굴로 돌아가 있었다.


 “하아, 두목……. 그렇게 머리 꼬리 다 떼고 얘기하는 거 하지 좀 마세요. 그게 작전 중엔 간단하고 듣는 사람 편해서 좋은데, 굳이 일상 생활 중에 그러실 것까진 없잖슴까. 오해 부른다고요, 그거. 성격 나쁘다고.


 “오해고 말고 할 게 있나? 나 성격 나쁘잖아.”


 “하이고.”


 제이는 난감한 듯 박사를 바라봤지만, 깊이 눌러 쓴 후드 속에선 엷게 웃는 입가만 보일 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는 웃고 있었다. 이 상황이, 제이와의 대화가 재밌다는 듯, 그것도 아니라면 그가 가져온 아침이 맛있다는 듯 웃고 있었다.


 비웃음은 아니다.


 박사는 단 한 번도 남을 비웃은 적이 없다. 적어도 제이가 알기론 그렇다.


 지금 박사가 웃는 건 정말로 즐거워서이며, 불러서 말을 꺼낸 건 제이 자신이 그 일을 맡기에 적합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리라. 그런 점에서라면 제이도 박사의 선택에 의문을 가지지 않았다. 박사는 뛰어난 지휘관이었고, 또 그는 박사를 신뢰했으니까.


 다만.


 “…두목, 말하기 껄끄러운 거 말씀하실 땐 꼭 핵심만 말씀하는 습관 있단 거 아십니까?”


 “말하기 껄끄러운 거면 보통 빙빙 돌려 말하지 않던가?”


 “그건 보통 사람들이나 그런 거고요. 두목은 다르잖슴까.”


 “내가 그런 버릇이 있었나?”


 “모른 척하셔도 소용 없슴다. 저도 비서 당번은 몇 번 해봤다고요. 두목이 그러시는 것 정돈 몇 번이나 옆에서 봤단 말임다.”


 슬쩍 하고 딴청 부리려는 박사를, 제이는 용서 없이 뒷덜미를 낚아채는 듯 툴툴거렸다.


 “…흐응.” 


 박사의 눈빛이 한순간 잘 벼려낸 칼날처럼 번득였다. 순간 얼어붙을 듯한 차가운 바다 깊숙한 곳에 풍덩 빠졌다고 착각이 들 정도로.


 그러나 그것도 정말 잠깐일 뿐, 제이가 그 기묘한 눈빛에 움찔 몸을 떨기도 전에 박사의 태도며 말투엔 다시 특유의 약 올리는 듯한 능글맞음이 깃들어 있었다.


 “하하, 예전부터 느꼈던 거지만 넌 정말 기억력이 엄청 좋다니까. 그거 대단하다고 생각해본 적 없어?”


 “없슴다. 그리고 말 돌리지 마십쇼.”


 제이는 얼굴을 찌푸렸다. 가뜩이나 험악한 인상을 찌푸리니 거의 뭐 세 배는 더 흉악해졌지만, 화가 나서 그런 건 아니었다. 오히려 염려나 걱정에 더 가까웠다.


 “두목께서 딱 그것만 알려주셨다면 제가 알아야 할 건 딱 그거면 된다는 거겠죠. 많이 아는 건 때로는 독이 될 때도 있으니까요. 아님까?”


 “맞아.”


 박사는 그의 말을 긍정했다. 그를 무시해서도 얕잡아봐서도 아니었다. 그게 사실이었기 때문이었다.


 “니어가 뭔가를 줄 거야. 그걸 가지고 기사 경기가 열리는 그랜드 나이트 영지로 가면 돼. 출발은 언제든 상관없지만, 가능하면 빨리 가줬으면 하고 말이지.”


 그리고 박사는 뭔가 어렵게 입을 여는 듯한 말투로 다시 입을 열었다. 그건 박사치곤 매우, 정말 매우 드문 일이었다.


 “물론 거부권은 있어.”


 “안 할 생각 없슴다. 해야죠. 두목께서 제게 시키셨단 건 제가 적임자란 뜻일 테니까요.”


 제이는 박사가 어렵게 꺼낸 말을 단칼에 잘랐다. 애초에 거부할 생각 따윈 없었으니 말이다.


 박사는 그를 포함한 모든 오퍼레이터들에 대해 전부 꿰고 있었다. 그리고 그 전부를 조율하고 관리했다. 고작 사람들을 모으는 게 뭐 대단하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제이가 보기엔 아니었다.


 박사는 그야말로 괴물이었다. 그가 조금만 나쁜 마음을 먹었더라면 한낱 이런 제약회사-물론 로도스 아일랜드도 충분히 크긴 하지만-가 아닌 어딘가의 큰손 정도는 될 수 있을 터였다.


 그런데 그런 사람이, 그럴 능력이 충분히 있는 사람이.


 자신의 모든 능력과 재능을 쏟아부어 광석병이란 괴물과 싸우고 있었다. 끝이 보이지 않는 싸움을 계속하고 있었다. 이길 수 없는 싸움을 계속하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그는 웃었다.


 경박해 보이면서도, 약하면서도, 실제로도 가장 약한 오퍼레이터보다도 약한 주제에도 불구하고 박사는 늘 최전선에 서 있었다. 작전에서 성공할 때 마지막까지 서 있는 사람도 박사였고, 작전에서 실패할 때 마지막으로 빠져나오는 오퍼레이터가 들쳐 매고 나오는 이도 역시 박사였다.


 그런데 그런 사람의 부탁을 거절하겠다고?


 아니, 절대 아니지.


 거부권이 있단 말은 그만큼 위험하단 뜻이었다. 그러면서도 맡긴 건 그를 믿는단 뜻일 테고 말이다. 남자로서 이보다 더 가슴 뛰는 상황이 있을까? 적어도 제이에겐, 지금 이 순간이야말로 그동안 박사에게 가져왔던 마음의 짐을 덜 최적의 순간이나 마찬가지였다.


 다만.


 “두목께서 저 카시미어로 보내시는 거, 혹시 명줄도 좀 간당간당해질 수 있습니까?”


 “…이거 참, 확실히 부정을 못 해주는 게 이렇게 서글픈 적은 처음이네.”


 “음, 그러니까 차라리 아는 게 적을수록 덜 위험하다, 뭐 이런 뜻으로 말씀하신 거군요.”


 “이제 말이 좀 통하네. 바로 그거야.”


 “…하아, 두목. 제가 감히 한 말씀 올리면요.”


 다만, 때로는 남을 위해주는 배려도 경우에 따라선 상처가 되는 법이었다.


 “그거 말임다, 이 이상 알 필요 없다는 거. 그게 아무리 좋은 의도로 그러셔도 듣는 쪽에선 꽤 기분 나쁜 법이거든요.”


 “그, 기분 나빴어?”


 “조금요. 근데 그것보다도, 하아……. 아 진짜 엄청 낯간지러운데, 저도 그, 나름대로는 로도스의 오퍼레이터 아님까. 입사 시험도 통과했고, 도베르만 교관님께도 칭찬받았고, 작전도 지금까지 계속 참가했고요.” 


 그는 배려의 대상이 아니었다. 목숨이 걸려 있는 일이라 해도, 그런 취급을 받긴 싫었다.


 자기가 모든 걸 바쳐 돕고 싶은 사람에게 배려를 받다니, 자존심이 상하는 것에도 정도가 있는 법이었다.


 “그러니까 굳이 절 배려해서 그러실 필욘 없슴다, 두목. 저도 제 한 몸쯤은 지켜낼 수 있습니다. 위험을 무릅쓸 각오도 돼 있고요.”


 그래서 제이는 분명하게 말했다.


 “그러니 말해주십쇼. 제가 뭘 해야 할지, 어떻게 하면 될지. 두목의 기대에 부응하도록 노력하겠슴다.”


 “…….”


 박사는 말없이 그를 봤다. 제이 역시, 박사의 눈을 피하지 않았다. 싸우는 건 아니었다. 아니었지만, 제이는 박사가 고민하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못 당하겠네. 아니다, 이건 네 말을 빌리자면 머리 꼬리 다 떼고 말해버린 내 잘못이려나.”


 짧은 정적 뒤 박사는 그렇게 말하며 푹 하고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선 한쪽에 널브러져 있던 서류 더미에서 뭔가를 끄집어내 그에게 슥 들이밀었다.


 “우선 이것부터 보고 말하자.”


 “에, 이걸요?”


 “그래. 기왕 말하기로 한 거 내가 말하는 게 나을 테니까. 적어도 남한테 대신 듣는 거보다야 낫겠지.”


 박사가 내민 건 인사처에서 온 듯한 서류 봉투였다. 갈색의 그것을 받아들며 제이는 적잖이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 게 설마 이런 걸 받아들 줄도 몰랐거니와, 그는 종이니 펜이니 하는 것과는 연이 없는 사람이었기 때문이었다.


 “꺼내 봐.”


 “예, 예에…….”


 줬단 건 꺼내보란 뜻이겠지. 그걸 알면서도 제이는 박사의 눈치를 슬쩍 보고서야 서류 봉투를 열었다. 그 왜 있지 않던가, 서류니 뭐니 하는 것들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 같은 거…….


 “…에에?”


 하지만 그 서류란 녀석은, 이쪽으로는 문외한인 그도 충분히 당황하게 만들 정도의 내용을 담고 있었다.


 “두, 두목? 이거 그, 니어란 아가씨의……?”


 “그래.”


 박사는 능글맞은 목소리도 아닌, 사무적이고 가라앉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니어의 퇴사 신청서야.”


 제이의 손에 들린 그것에는, 니어의 신상 정보와 함께 선명하게 퇴사 신청서라는 글자가 또렷하게 쓰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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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알아두면 좋은 거


-로도스 아일랜드는 제약회사지 마피아가 아니다

-박사를 두목이라 부르는 건 제이의 입버릇(대사가 그럼)

-박사는 지금 제이에게 니어 암살을 의뢰한 게 아니다

-제이는 마피아가 아니다

-제이는 지금 조직 항쟁하러 떠나는 것이 아니다

-제이는 그냥 평범한 수산물 시장 소상인이다


2. 조금씩 틀이 잡히고 있는데 음......


만약에 계획 짠 대로 된다면


1부가 마리아 니어 시점


2부가 니어 라이트 시점이 될 듯합니다.


아 또 길어져...길어질 조짐이 보인다고....나는 대체 왜 이러는 걸까....


3. 시간대랑 등장인물에 설정도 보고 있는데 쓰읍 이걸 어떻게 재미지게 등장시킬 수 있을지.


4. 아직 제목값을 못하고 있는 실정이긴 한데...유감스럽게도...제이가 그렇게 막 다 썰고 다닐 정도로 쌔진 않습니다...


5. 설정상 강함은 공식설정의 임상기록 따라서 하고 있습니다.


6. 다만 그래도 주인공이니까(?) 나중에 그래도 설정에 어긋나지 않는 한 쪼끄만한 버프 정도는 주려고 합니다.


7. 근데 지금 속도로 봐선 그 쪼끄만한 버프라도 받으려면 20화는 더 써야 할듯ㅋㅋㅋㅋㅋㅋㅋㅋ엌ㅋㅋㅋㅋㅋ


8. 봐주셔서 감사합니다...제이 아껴주세요...근데 저는 쪼렙이라 제이 손도 못 대고 있음 ㅎㅎ 빨리 키우고 싶다


9. 늘어져서 죄송합니다 그냥 이런 놈인갑다 정도로만 생각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