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점은 호시미 편 직후 그 어딘가





사회는 지옥이다.


하루하루 피폐해져가는 일상 속에서, 입사 5년차가 되어서야 이 빌어먹을 직장을 때려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경기도 어려운 지금, 직장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감지덕지해야 한다고 대다수의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그래, 객관적으로 보자면 그렇다. 이 치열한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 중에서도, 퍼센트로 계산하자면 상위 1퍼센트에 속하는 좋은 직장을 다니고 있을 터였다. 내로라하는 일류 대학을 나온 사람들도 들어가기 어려워한다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전략 컨설팅 기업. 어쩌다 보니 운이 좋게 면접을 통과했고, 주변 사람들의 부러운 시선과 축하를 받으며 당당히 입사했다. 


하지만 입사 후에 펼쳐진 세상은 사회 초년생에게는 버겁기 그지 없는 야생 그 자체였다.


철저한 성과주의가 자리잡은 직장의 신입사원이란 존재는 애물단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사수가 존재하기는 했지만 자기 할 일이 우선이었기에 제대로 배우기도 어려웠으며, 업무에 대해 무언가 질문이라도 하려고 하면 세상 귀찮다는 표정을 지으며 대충 알려주기 일쑤였다.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도 이전에, 신입사원은 우선 살아남기 위해 필사적으로 발버둥쳐야 했다. 새벽같이 출근해 회사의 각종 자료를 살피고 시스템 숙지를 해야만 했고, 당연하게도 신입사원의 업무 능력은 선배와 비교해 아무짝에서 쓸모없을 정도였기에 남들이 다 퇴근해도 막차 시간까지 남아 못다한 일을 끝마치고 다음 날의 준비를 해야만 했다.


겨우 업무의 흐름이라도 파악할 때가 되니, 어느덧 입사 후 1년이 훌쩍 지나버렸다.


매일같이 들어오는 클라이언트의 의뢰 내용과 메일 파악, 각종 회의, 시장 데이터 분석...


워크 라이프 밸런스?


웃기는 소리다. 그런 건 배부른 자들의 헛된 망상에 불과했다. 반드시 써야만 하는 5일간의 유급 휴가를 제외하면, 제대로 된 휴식을 취한 적도 없었다. 하물며 그나마 있는 주말과 유급 휴가 기간 중에도 불안감에 못 이겨 회사 자료를 뒤적이곤 했다.


그렇게 5년을 버텼다.






하지만 퇴사를 결정하는 것은 단 하루면 충분했다.






[아이돌 프로덕션에 무경력직으로 입사했다. (1)]






“야마다 군, 오늘은 나보다 일찍 온 건가? 처음인데 그래.”


사직서를 내고 홀가분하기도 하고 허탈하기도 한 어정쩡한 심정으로 자주 가는 단골 바에서 혼자 술을 홀짝이고 있자니, 같은 단골 고객으로 어느새 제법 친해진 사에구사가 옆자리에 앉으며 말을 걸어왔다.


“아, 사에구사 씨. 오늘 사직서를 냈거든요. 덕분에 오늘 시간이 남아돌아서 말입니다. 할 것도 없고요.”


“직장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건가?“


“항상 때려칠까 말까 고민하다가 그게 오늘이 되었을 뿐입니다. 외자계라고 다 좋은 건 아니더군요. 사람이 할 짓이 못 됩니다.”


“높은 연봉에는 그만큼 댓가가 따르는 법이지.”


“그마저도 아니었으면 아마 입사하자마자 때려쳤을 겁니다.”


“뭐, 자네는 우수한 인재니까. 자세한 사정은 모르지만 금방 좋은 직장으로 이직할 수 있겠지.”


“대학을 다닐 때만 하더라도, 막연한 환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술잔을 비우며 야마다가 말했다.


“월스트리트까지는 아니지만, 외자계 기업에 다니는 엘리트 샐러리맨에 대한 동경심 같은 거 말입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현실은 시궁창이었지만...”


“나도 그 업계는 잘은 모른다만, 빡세다고는 들었다. 하지만 대단한걸. 특히나 외자계라면 5년동안 근무하는 것도 상당히 힘든 일일 텐데. 게다가 컨설턴트 회사 아니었나?”


“용케 기억하고 계셨군요. 제 앞가림도 제대로 못하는 주제에 고객을 상대로 컨설턴트 의뢰라...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말도 안 되는 일이었지만 말입니다.”


“아니아니, 절대로 그렇지 않아. 자네는 우수한 사람이야. 뭐라도 되는 양 말해서 좀 그렇지만, 내 사람 보는 눈은 정확하다고 자신한다.”


사에구사가 진 토닉을 주문하며 말했다.


“자네, 아이돌 좋아하나?”


“아이돌 말입니까? 뜬금없군요. 뭐, 좋아하긴 합니다. 열정적인 팬까지는 아니지만.”


“그거 다행이군.”


사에구사가 칵테일을 한 모금 들이키며 말했다.


“마침 눈 앞에 우수한 인재가 있는데, 아무래도 욕심이 난단 말이지.”


“사에구사 씨는 그러고 보니 연예계 쪽에서 일한다고 했었군요.”


“그래. 영세 프로덕션의 사장 겸 프로듀서를 하고 있다.”


“사장이었습니까? 그건 몰랐네요.”


“뭐, 내가 말을 한 적이 없으니까. 아무튼 본론으로 들어가자면... 최근에 우리 사무소가 도쿄로 확장 이전을 하게 되었는데 아무래도 사람이 많이 부족해서 말이야. 우수한 매니저가 한 명 있긴 한데, 그는 이제 겨우 22살이거든. 어린 친구에게 큰 부담감을 지우고 싶진 않아서 새로 사원을 모집하려고 했는데 마침 눈 앞에 오늘 막 사직서를 낸 엘리트 샐러리맨이 있지 뭔가.”


“좋게 봐주셔서 감사하긴 합니다만, 아무래도 다른 사람을 찾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저는 그 쪽 업계를 전혀 모르는데요.”


“바로 그거야. 이 쪽 업계는 아무래도 사회의 어두운 면이 여러모로 보이거든. 시궁창이지. 업계에 익숙한 사람보다는 신선한 자극, 그러니까 초짜가 더욱 필요한 법이지. 새로운 시선으로 업계를 봐 줄 친구가 필요한 걸세.”


“시궁창인건 제가 있던 회사도 마찬가지였으니 바로 적응은 되겠군요. 하지만 그거랑은 별개로, 저는 오늘 막 그만둔 참이라... 애초에 무슨 회사입니까?”


“이런, 실례했군. 아직 제대로 된 소개도 하지 않았었지.”


사에구사가 안주머니에서 명함 지갑을 꺼내면서 말했다.


“호시미 프로덕션의 사에구사 신지일세. 사장 겸 프로듀서를 맡고 있지.”


“호시미 프로덕션이라... 최근 주목받는 곳이군요. 넥스트 비너스 그랑프리에서 공동우승한 서니 피스와 달의 템페스트의 소속사였던가요?”


“잘 알고 있군. 아이돌에 흥미가 있다는 것은 역시 거짓말이 아니었던 건가?”


“아무래도 제가 맡고 있던 업무 특성 상, 세상 돌아가는 일은 잘 알아야 할 필요가 있으니 신문이나 뉴스 정도는 빠짐없이 읽고 있었습니다.”


야마다가 건네받은 명함의 회사 이름을 살피며 말했다.


“하지만 아이돌이라... 감이 잘 안 오는군요. 어떤 일을 해야할지도 전혀 모르겠습니다만.”


“우리가 당장 필요한 인재는 사장 보조 겸 프로듀서 보조 겸 매니저 겸... 올라운더다.”


“뭡니까 그 적당한 인재 모집관은.”


“사실을 말했을 뿐이네. 업계 특성 상, 사장이라고 해서 사무실에 족치고 앉아있는 경우가 별로 없거든. 대부분이 영업 활동이지. 게다가 재무 쪽에 빠삭한 인재가 필요하기도 하고. 마침 자네의 담당 부서도 금융 재무 쪽 아니었나?”


“굳이 말하자면 그렇죠. 하지만 매니저? 프로듀서? 전 그런 건 전혀 모릅니다.”


“그런 건 배우면 된다. 유능한 매니저가 있으니까 큰 도움이 될 거야. 나도 시간이 나는 대로 자네를 서포트할 거니까.”


“금방 결정할 만한 일은 아니군요.”


“시간은 일주일 줌세. 어떤가? 생각 있으면 꼭 연락하게. 물론 자네의 의사를 존중하지만, 나는 자네가 꼭 들어와줬으면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