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왈칵!
"크흡!"

인기척 하나 없는 외딴 행성.
그곳의 유일한 주인은 속에서 끓어오르는 각혈을 눈앞의 양동이에 토해냈다.

{신진대사의 이상을 확인. 마스터, 자리에 누워계시는 것을 권해드립니다.}

무기질적인 목소리로 말해오는 가사 도우미 인형.
벌써 함께 지낸지도 20년이다.
같은 모델을 찾으려면 박물관에 가야할 정도로 낡아버린 녀석.

저가형 보급모델조차 인간과 구별되지 않을 정도의 완벽한 감정표현이 가능한 현대에는 그야말로 구닥다리 그 자체.
하지만 수도없이 겪었던  악의로 가득찬 인간군상보다는 훨씬 인간적이고 믿음직하다.

"괜찮아. 어차피 시간도 얼마 안남았는데."

부축해오는 인형의 손길을 거부한다.
망가질대로 망가진 컨디션 정도야 누구보다 잘 파악하고 있다.
빠르면 오늘저녁? 운이 좋아야 내일 아침일까.
어느쪽이 되어도 내일 아침에 바다 위로 떠오를 해는 보지 못하겠지.
어릴적부터  강제된 무리한 신체의 혹사, 그리고 침식병기에 의한 치명상은 이미 인간의 의술 따위로 어떻게 할 수 있는 범주를 넘어섰다.

"가면  에이브한테 사과해야겠네. 적어도 대화할 시간 정도는 넉넉히 있겠지."

은둔한지 수십년, 신체나이는 이미 중년에 접어들었다. 50대에 접어드니 감상적으로 변해버린 것일까.
그들의 이름과 모습이 머릿속을 스쳐지나간다.
에이브, 잭, 뉴웰, 바이세트, 노라트, 카슈미어.

그리고 엘리시아나 노트렐처럼 악연과 인연으로 얽힌 사람들.
엘리시아 파르네제는 아직 살아있으니 무리겠지만, 노트렐 피에트는 만날 수 있을 것이다.

노트렐의 동생, 캐슈빌은......일단 만나면 한대 쥐어박고야 말리라.
그녀 덕분에 당한게 많으니까.

"웃차."

떨리는 손으로 바닥을 짚고 비틀거리며 일어선다.
흔들의자에 몸을 맡기니 삐걱이는 소리가 작게 들려온다.
많이 가벼워진 소리다.
몸무게가 줄어들었기 때문일까?

"이젠 근육도 거의 사라졌네."

원래부터 군살은 없다시피 하던 육체다.
그래도 기사 시절에는 싸워야 하니 영양 하나는 끝내주게 제공되었고, 운동량이 많으니 건강은 유지되었지만, 이제는 아니다.
단분자대검은 무슨, 쌀포대 하나조차 들기 힘들 정도로 앙상해진 팔다리를 보면 절로 한숨이 나왔다.
달리려 해도 네발자국 정도를 내딛으면 몸이 한계를 외치며 땀이 비오듯 흐른다.

"레니 씨가 이 모습을 봤다면 한심하다고 비웃었으려나?"

문득 떠오른 마이페이스의 극한을 보여주던 성격파탄자. 고개를 흔들어 산들바람을 따라 흘려보낸다.
2차 알트라 성계 공방전에서 동생을 잃고 미쳐 날뛰다가 치안당국에 체포된 사람한테 남을 판별할 정도의 정신이 있을리가.

이전에 엘리시아에게 부탁해서 몰래 면회를 간적이 있었다.
그때도 광기를 감당못한 교도관들이 전신을 A레벨 구속구로 전신을 묶어놨었는데, 지금이라고 다를 것 같지는 않았다.

"알트리아."
[예 마스터.]

이름을 부르자 바닥을 정리하던 인형이 달려와 무릎을 끓고 부복한다.
유언을 남기려면 아직 말할 기력이라도 있을 때 해야한다.
뼈밖에 남지않은 손가락으로 인형의 실리콘 피부를 잠시 쓰다듬은 주인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내가 죽는다면, 트라바르티아는 파괴해주렴. 자폭용 코드는 메인 DB에 전송해두었으니까, 사용하고 바로 파기해."

이미 내부의 블랙홀 엔진은 해체해 성계연합 정부에 넘겼다. 로스트 테크놀로지인 귀중한 블랙홀 엔진을 그냥 날려버릴 수는 없으니까.
남아있는 폭약이 발화한다 해도 한 반경 3~4km정도 초토화되고 쓰나미가 생기는 데 그치겠지. 

"그리고 금고에 있는 데이터 드라이브를 잘 보관해줘. 바이세트라면 언젠가 여기까지 찾아올테니까."

언제가 될지는 모른다.
하지만 바이세트 프리렐라는 강인한 의지를 가진 여자다.
10년후가 되건 100년 후가 되건, 찾아온 친우를 위한 감사와 작별의 메시지 정도는 필요한 법이다.

[더 하실 말씀은 없습니까?]
"음.....시체는 뒷산에 묻어주겠니? 예전에 봐두었던 그 자리에."
[말하지 않아도 그럴 작정이었으니 걱정 안해도 됩니다.]

감정이 없음에도 왠지 시니컬하게 느껴지는 답에 쓴웃음지었다.
겨울이라 빨리 지는 해를 바라보며, 주인은 지난 생애를 회상했다.

"참으로 후회많은 인생이었어."

그저 잘했다고 칭찬받고 싶었다.
주변의 사람들이 걱정없이 행복하기를 바랬다.
그러나 어리숙한 소녀의 결단은 역효과를 불러왔다.

"에이브의 말대로야. 모두를 위한다고는 했지만, 정작 자기 주위는 불행하게 만들었지."


진심으로 소중히 생각했던 몇 안되는 이들은 모두 자신 때문에 유명을 달리했다.
지켜주지 못해 죽었고, 지켜주려다 죽었다.
악화일로를 치달은 관계에 한명은 결국 스스로의 손으로 죽여야만 했다.
처음으로 사랑이라는 감정을 품었던 상대는 치료에 실패해 스스로의 손으로 땅속에 묻은지 오래다.

"......멍청했지. 멍청하고, 바보같았어."

따지고 보자면 이 모든 사건이 그녀의 잘못은 아니었다.
그저 상황이 너무나 부정적으로 흘러간 것 뿐이다.
태어났을 때부터 빌어먹을 가문에게 억압당하며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조차 보장받지 못하는 삶이었고, 목숨을 바쳐가며 지키려 했던 행성에 침입한 괴수함대가 하필이면 행성침식이 가능한 특수병기를 가지고 있었다. 

그녀가 아니라 다른 기사단원을 동원했어도 결과는 똑같았을 것이다.
그녀는 누구보다 기사다웠고, 누구보다도 고귀한 마음씨를 가진 영웅이었다.

아니....이제와서 평가가 무슨 소용일까.
죽기 직전인 예비 시체인데.
과거는 지나갔다. 그리고 다시는 바꾸지 못한다.

'잘 있으렴, 알트리아.  미안해요, 바이세트. 나중에 다시 만나요 우리.'

마지막으로 인형과 친우에게 작별인사를 하고 눈을 감았다.
몸이 끝단부터 조금씩 차가워지는 게 느껴진다.
이것이 죽음일까? 그렇다면 의외로 괜찮을지도.

한때 검성이라 불렸던 검술의 달인이자, 유리아 행성의 수호자. 켈라 페트렐은 그렇게 생애의 마지막을 맞이했다.


* * * * * *

---철컥!

"--준비해. --와 사--를 개봉하는 선택지도---"

무언가 이상하다.

암흑으로 가득찬 시야 속에서, 켈라 페트렐은 그렇게 생각했다.
사후세계라는 게 이렇게 소란스러운 장소였나. 보통 조금 더 조용하고 엄숙한 느낌 아닌가?
무언가에 둘러쌓여 있는듯한 감각이 어색했다. 자신은 분명 혼자였을 텐데.

"으......."

의문을 느끼며 천천히 감았던 눈을 떴다.
우선 들어온 것은 눈부신 빛. 그리고 분주히 돌아다니는 의사가운을 입은 의료진들.

.......뭐?

'뭐야 이거?!'
"으아앙!!"

기겁해 비명을 지르려 했지만, 튀어나온 것은 우렁찬 아기의 울음소리.
그제서야 켈라 페트렐은 자신이 누군가에게 안겨있다는 것을 자각했다.

'내 몸이.....아니야?'

위화감에 낮설어하며 필사적으로 고개를 움직여 옆의 벽을 바라본다.
그리고 걸려있던 달력에 쓰인 숫자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우주력 981년 11월 19일.

켈라 페트렐이 수백년의 냉동수면에서 깨어났던 바로 그날이었다.




* 회귀소설 프롤로그로 썼음. 대충 쓴건데 으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