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때리는 정치사) 6.2. 쇠퇴하는 학생운동 - 5.3 동의대 사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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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과 라면

1963년 일본 묘조식품(현 닛신식품 홀딩스 산하)의 기술원조와 2만 7천달러의 라면 생산 설비로 탄생한 한국 최초의 라면 삼양라면은 처음에는 일본 라멘의 영향을 받아 약간 느끼한 짠맛이었으나 이후 소고기 기름, 즉 우지로 튀긴 면과 박정희의 조언에 따라 고춧가루를 넣어 우리가 아는 맛으로 변화했다. 


김치찌개 백반이 30원, 짜장면이 20원이던 시절에 10원을 받은 삼양라면은 빈곤층이 대다수이던 시절에는 상당한 고가의 먹거리였지만 점차 수요가 커지면서 여러 라면 업체가 등장하고, 70년대에는 롯데(농심)과 삼양만이 살아남았다. 특히 후발업체인 농심은 안성탕면과 신라면 등의 신제품이 연이어 히트를 치며 원조인 삼양을 추월, 1980년대 후반에는 이미 한참 추월해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갑자기 사건이 터진다.


-우지 파동

1989년 11울 3일, 서울지방검찰청에 '공업용 우지로 면을 튀겼다'는 익명의 투서가 날아들었다. 이에따라 미국에서 비식용 우지를 수입한 삼양식품, 오뚜기식품, 서울하인즈, 삼립유지(현 롯데푸드), 부산유지 등 5개 업체를 적발하고 대표 및 실무 책임자 등 10명을 식품위생법 위반 혐의로 구속, 입건했다.


당시 검찰이 밝힌 위법 사항은 이들이 라면을 튀기거나 쇼트닝, 마가린을 만드는 데 쓰이는 정제 쇠기름의 원료로 미국에서 수입해온 2등급(Top White Tallow) 및 3등급(Extra Fancy Tallow) 등 '비식용 유지를 정제하여 식용유로 사용한 것이 안전한가?' 였다. 그러나 미국은 2등급은 정제할 경우 개별 식품용으로 판매가 가능하고 3등급은 정제했을 때 일부 식품에 허용하는 등 원래 정제해서 식품용으로 쓸 수는 있었다. 미국 맥도날드에서는 90년대 중반까지 EFT 등급의 3등급 우지를 정제해서 감자와 너겟을 튀겼는데 단 한번도 문제 된 적이 없었다.

검찰은 이들 정제 쇠기름의 산가(부패 정도)가 기준인 0.3을 넘어선 0.4가 나온 것도 문제지만 이들이 쓴 우지가 1989년부터 개정(1988년까지 완제품 단계에서만 규제하던 것을 1989년부터는 원료단계부터 규제하는 조항이 추가되었다.)된 식품공전(식품규격기준) 중 원료 조항에 위배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개정 식품공전 중 문제의 원료규제 조항은 우지의 경우 '소의 지방조직은 품질이 양호하고 신선한 것이어야 한다. 원료는 흙, 모래, 짚 등과 같은 불순물이 충분히 제거된 것이어야 한다. 원료는 품질 변화를 방지할 수 있는 적절한 방법으로 보관/관리되어야 한다'라고 추상적으로 명시되어 있었으며 또 당시 완제품(정제 쇠기름)의 성분규격은 '산가 0.3 이하, 비중 0.893~1.640, 수분 0.3% 이하, 요트가 32~50등급' 등 9개 항목에 걸쳐 구체적으로 규정되었는데, 검찰은 문제의 완제품에 대한 유무해 여부는 알 수 없지만 유해의 소지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검찰의 사법처리에 대해 업체는 즉각 반발했다. 특히 삼양식품 측은 "우지를 써서 라면으로 제조해 온 건 20년 전부터다. 국민에게 동물성 지방분을 보급한다는 취지에서 우지를 수입하고 정제하여 식용 우지로 사용할 것을 정부에서 권장하고 추천했기에 사용한 것이다. 이 사건이 일어나기 전까지는 우지의 수입 과정이나 정제하여 식용 유지로 쓰였다는 점에 있어서 식품위생법상 제반 검사에서 적격한 것으로 인정되어 왔다"며 "1989년 우지 수입 단가가 팜유 수입가보다 톤당 100달러가 비싼데도 불구하고 우지를 썼던 것이 이를 증망한다"며 "우지나 팜유를 비롯한 식물성 유지들은 원유 상태에선 비식용"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소비자 문제를 연구하는 시민의 모임'(현 소비자시민모임)등 소비자 단체들은 해당 업계의 사과와 제품의 전량 수거, 유통업자들의 해당 제품에 대한 진열 판매 중지, 사태 재발 방지를 위한 보건사회부의 항구적 대책 마련 등을 촉구했고 언론 역시 검찰 발표 후 '원유 상태의 비식용 우지'를 '공업용 우지'로 표현해 '심층취재'나 '분석' 식의 융단폭격을 가해 소비자들에게 마치 사람이 못 먹는 공업용 기름으로 라면 등 유지식품을 제조하는 것처럼 보도했으며 해외 언론들도 같이 한국산 라면의 문제점을 대서특필했다. 끝내 노태우 대통령까지 당월 8일 문제식품의 유무해 여부를 조속히 판정하고 인체에 유해한 식품 및 의약품의 제조 및 판매와 해당과정에서 위법행위를 철저히 수사해 의법조치하라고 내각에 특별 지시를 내렸다.


이로 인해 라면은 물론, 쇼트닝이나 마가린을 쓰는 과자, 튀김류, 통닭까지 관련 상품들의 매출이 줄어들었으며 소비자 단체들 역시 성명 발표와 불매운동으로 인해 라면의 반품과 생산 중단 사태가 이어졌다. 당시 대다수 국민들과 전문가들 역시 이에 낚여 '공업용 우지'을 썼다고 분노했다. 이는 한국라면이 강세였던 미국에까지 영향을 미쳐 한국산 라면의 매상이 줄어들어 한국라면, 나아가 한국 식품 자체에 대한 불신이 피어 올랐다. 당시 수출고가 줄어드는 판에 한국 식품은 물론 한국 제품에 대한 기피현상이 커질 우려가 생겼고 '국익 논쟁'으로까지 번졌다. 


-보사부의 무해론

그러나 보건사회부(현 보건복지부)는 같은 해 8월 말까지 라면 341건을 수거했으나 식품공전 규격에 어긋나는 제품은 단 한 건도 없다고 밝히고 마가린과 쇼트닝 113건 역시 유해 제품이 없었고 쇠기름을 포함한 정제 식용유 286건 중에 8건만이 부적합 판정을 받았는데, 이마저도 가짜 참기름이 적발된 것이라고 밝혔다.
이로 인해 당시 국민들은 검찰이 단속하니 유해한 제품이라 믿다가 갑자기 보사부가 이들에게 무해 판정을 내림으로써 혼란을 겪게 되었다. 또 검찰은 당초 식품위생법 위반이라는 범법사실만을 문제삼았으나 보사부가 무해를 주장하고 나서자 국민들의 눈초리를 의식하여 "비식용 우지를 원료로 한 완제품이 무해하다는 것은 마치 하수도물을 정수한 물을 먹어도 되는 것"이라고 하여 정부 부처 간의 싸움 양상을 보였다.


이 사건으로 국민들의 혼란을 해소하기 위해 KBS와 MBC 양대 방송사가 TV 토론을 통해 해당 제품의 유무해를 가려내기 위해 관련 학자, 당국자, 소비자 대표 등을 불러다 토론을 벌였지만 이렇다 할 결론이 나오지 못했다. 보사부는 무해론을, 학자들은 유무해가 엇갈리고, 검찰은 유해의 개연성을 각각 주장하고 나서자 정부는 보사부, 검찰, 학계, 소비자단체 대표들로 구성된 8인 식품위생검사 소위원회를 구성해 조사에 나섰다. 8인 소위는 문제 업체들로부터 라면, 마가린, 쇼트닝을 직접 수거해 국립보건원에서 철야 조사에 들어갔다.
결국 사건발생 13일만에 국립보건원에 의뢰된 8인 소위의 검사결과는 3개 제품 6개 품목 전부 이상이 없는 것으로 나왔다. 그러나 8인 소위의 의뢰에 앞서 검찰이 독자적으로 국립보건원 및 서울시 보건환경연구원에 의뢰한 검사에서 삼양식품 및 부산유지의 정제 쇠기름, 서울하인즈의 샛별슈마가린 및 맥도날드쇼트닝, 삼립유지의 삼립마가린이 식품공전 규격기준에 위반된 것을 감안하여 보사부는 맥도날드쇼트닝에 품목정지 1개월 및 동 제품 수거/폐기 지시를, 삼양식품과 부산유지의 정제 쇠기름은 품목 제조정지 1개월을, 샛별슈마가린과 삼립마가린에 대해서는 경고 조치를 각각 실시했다.
보사부가 당시 8인 소위 검사결과를 국민들에게 밝히겠다고 한 것은 이 결과에 따라 행정 조치도 취하겠다는 의미였는데, 8인 소위 검사의뢰 이전인 검찰의 독자적인 검사의뢰 결과를 묶어 행정처분한 것을 두고 언론에서는 검찰의 체면을 고려한 정치적 절충이라고 비꼬았다. 


한편 법원은 구속된 5개 업체의 대표 등 10명에 대해 보사부의 무해 발표를 근거로 보석 결정을 내렸다. 그러나 검찰은 형평성에 어긋난다며 항고 의사를 밝혔으나 대기업관련 소송이 늘 그렇듯이 여론이 관심을 다른데 돌린 후에는 항고를 하지 않았다. 결국 검찰은 무성의한 대응으로 시간만 끌면서 전혀 소송에 적극적인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다. 반면 삼양식품 등은 1994년 서울형사지방법원에서 일부 유죄가 인정되어 징역 1년 6개월~3년 및 집행유예 2~5년 등을 선고받았고, 벌금 2,339억원은 선고를 유예했다. 이들이 항소하여 1995년 서울고등법원에서 무죄로 뒤집혔고 1997년에는 대법원에서도 무죄로 결론나 사건은 완전 종결되었다.


당시 언론의 논조는 검찰이 무죄인 사람을 구속했다는 식이 아니라 '허가되지 않은 재료를 이용해서 식품을 제조한 식품회사를 보사부가 무해판정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혹이 중심이었다. 엄밀히 따지자면, 무죄가 맞다고 보는것이 옳다. 원산지인 미국의 맥도날드에서도 3급 우지를 정제한 기름을 사용하며 이후 쇠기름이 의사나 영양사의 항의로 맥도날드에서 퇴출된 것도 "쇠기름이 인체에 좋지 않다." 가 주 논지였지 "쇠기름의 품질이 좋지 않다."가 아니었다. 담배의 유해성 판정불가 운운과 함께 완제품의 품질은 중요하지 않고 당시 보사부가 불법인 삼양의 편의를 봐줬다는 주장이 있는데, 이는 악의적인 억지논리에 가깝다. 정제하여 식용할수 있음을 전제로 하는 물질을 "원재료는 식용 불가니까 정제하든 아니든 상관 없이 문제가 있다."라고 하는데, 같은 논리면 "복어는 손질하지 않으면 먹을수 없으니 복어를 손질하든 하지않든 문제가 있다."라고 주장하는 것과 비슷하다.


또한, "어떤 물질이 인체에 해롭다."와 "어떤 물질의 품질이 떨어진다."는 전혀 다른 명제다. 담배의 유해성 판단은 단번에 판결하기 힘들지만, 담배의 품질은 당연히 성분분석등을 통해 객관적으로 알아낼수 있다. 즉, 악의적인 주장에서 "3등급 우지가 인체에 해로운지 아닌지 밝혀내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우지가 인체에 해로운지 아닌지를 밝혀내는 것이 불가능하다."와 "우지에는 등급이 있다."를 교묘하게 섞은 선동이다. 밝혀내기 불가능한것은 우지가 인체에 해로운지 아닌지 단번에 판단하는 것이고, 정제된 우지가 식용가능 기준을 어기지는 않았는지 판단하는것은 당연히 객관적인 조사를 통해 밝혀질수 있기 때문이다. 식용가능 기준을 넘겼어도 위험할수 있지 않느냐 할수 있지만 그건 애초에 법률적 문제라 회사의 잘잘못을 따지기 이전에 입법부나 행정부 차원의 미흡함을 따져야 하는 문제이다. 


-왜 이렇게 사건이 커졌나?

지금도 '공업용'이라 하면 사람들이 께름칙하게 여기는 것이 일반적이다. 게다가 당시는 2차산업이 나라의 주요 산업인데다 환경적인 대비가 거의 없어 국민 대다수가 각종 유해물질에 시달렸다. 특히 이때는 온산병 사태나 수원 미나마타병 사태 등 온 국민이 유해물질 중독을 두려워하던 찰나에 "라면에 공업용 기름을 썼다"는 소문은 기폭제가 되었다. 지금도 그렇고 그때도 공업용 기름 하면 윤활유를 떠올리는 사람이 많아 파장은 더욱 더 컸다.


당시 삼양은 이 사건으로 농심이 가장 큰 이득을 보았다며 선전했다. 혼자 싼 팜유 쓰던 농심이 완벽한 완좌를 노려 다른 라면을 못 먹게 되었다거나 정계외 손을 잡은 농심의 공작이라는 설도 제기되었다.

그러나 2004년 만두 파동이나 2017년 맥도날드 햄버거병 고소 사건 등 어떤 회사의 식품에 대해 문제가 제기되거나 소문이 퍼지면 그 회사 제품만 팔리지 않는 것이 아니라 관련 업종 전체의 판매가 곤두박질 친다는 것이 상식이다.


게다가 우지 파동이 터진 1989년 당시 농심은 이미 라면 시장의 압도적인 1인자였는데 1위 자리를 굳히기 위해 라면 시장 자체를 박살낼지도 모르는 모험을 하는 것은 무리수에 가깝다. 실제로 이 루머가 워낙 많이 퍼져서 농심 임원들이 신입사원 교육때 '우리도 그 해 매출 30%가 줄었다'는 등의 이야기를 한다고 한다.

또한 삼양은 우지를 쓰고 나머지 회사는 팜유를 썼다는 것은 지금처럼 식품표기법과 인터넷으로 인해 접근성이 높아졌기에 잘 알려진 사실일 뿐이다. 당시는 전혀 상황이 달라 우리 국민들은 라면에 쓰는 기름으로는 우지와 팜유가 있다는 것 자체를 모르던 상황에서 검찰의 발표를 들은 것이다. 검찰도 삼양이 쓰던 기름은 공업용 우지였다고 발표했을 뿐 농심, 팔도, 오뚜기 등은 우지가 아닌 팜유를 쓴다고 따로 해명해 주지도 않았다. 결국 나머지 라면회사들은 자기들이 쓰는 기름은 삼양과 관계없다고 스스로 해명해야 하는, 삼양 못지 않게 심각한 상황이었던 것이다.


그러한 탓에 당시 국민들은 "라면에 공업용 우지를 써서 삼양이 걸렸어?그럼 농심은? 오뚜기는?" 이었다. 지금처럼 인터넷이 있는 시기도 아니고 얻을 수 있는 정보가 제한된 상황에서 라면 전체에 대한 불신이 퍼져 확실한 결과가 나오기 전까진 국민들이 라면 자체를 피해버렸다. 정부 역시 상황의 심각성을 알고 제품에 대해 급히 성분조사를 벌여 김종인 보사부장관이 직접 나서 기자회견을 열어 "라면에 대해 정밀 검사한 결과 어떤 제품도 인체에 유해한 성분이 없었다"고 발표한 것이다.


-라면에 미친 영향

이미 농심은 1985년 삼양을 꺾고 1989년 시점에선 압도적인 1위를 달리고 있었다. 당시 사람들의 머릿속에는 아직 삼양 = 라면의 왕이라는 이미지가 있었는데 농심은 1985년부터 '올림픽/아시안게임 공식 라면' 스폰서 계약을 체결하고 이를 활용해 적극적인 마케팅과 공격적인 신제품 개발을 함으로써 시장점유율을 확대했다. 삼양은 올림픽 공식 라면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농심에게 86, 88년 특수, 제품의 고급화, 다양화에서 뒤처진 것이다. 

게다가 1983년부터 한국야쿠르트의 팔도라면, 1984년 청보식품(현 오뚜기), 1985년 빙그레가 라면 업계에 뛰어들며 점유율을 빼앗긴 것도 있다.


그리고, 이들 기업 모두가 당시 정치권력, 그러니까 군부와 무관하지 않았다. 라면의 원재료 밀은 한국에서 전량 수입하기 때문이다. 수입품을 가지고 공장에서 만들어내는 식품공업의 정수인 라면 산업은 당시 혼분식 장려 운동의 일환으로 밀가루를 이용해 간편한 한끼 식사를 만들라는 박정희,전두환 대통령의 지시를 따른 군 출신 인사들이 관여했고, 이들의 인적자원은 당연히 삼양과 농심이 했던 것 처럼 일본 업체들의 기술을 받아다 삼양과 농심의 인력을 끌어들여서 채웠으며 그들의 가장 중요한 매출원은 바로 군납라면의 납품이었다. 삼양과 박근혜의 관계나 롯데와 박정희의 유착관계는 여기서 설명하기엔 너무 기니 따로 찾아보길 바란다. 또한 한국야쿠르트의 창업주 윤덕병은 박정희의 경호실장 출신이고, 청보식품 장기하 사장은 하나회출신 예비역 장성이며 한화그룹도 이후락, 서정화 등 군사정권의 실세들과 혼맥으로 이어져 있었다.


이 시기 라면 업계는 대한민국의 경제, 산업구조 변화에 맞게 성장하는 과정에서 후발주자들의 참여로 양적으로는 성장했지만, 전문성보다는 권력과의 유착으로 사업권을 따내서 기존 라면의 복제판을 만들어내고 그만큼 맛없고 품질나쁜 라면 브랜드들이 난립해 소비자들은 쏟아지는 광고공세와 그 홍보에 걸맞지 않은 저질 라면들을 접하면서 라면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쌓이고 있었다. 그 와중에 1987년 민주화로 인해 이들의 뒷배였던 군부가 실권을 잃고 보호를 받을 수 없는 상황에서 우지 파동이라는 트리거로 인해 저질 라면들이 시장에서 한꺼번에 퇴출되었던 것. 그 과정에서 결코 정치논리에 자유롭지 못했던 것이 남아있을 뿐 대규모 공산품업계에서는 어느정도 통과의례처럼 생길 수 있는 일이다.


실제로 1980년대 라면 업체들의 경쟁은 매우 치열했는데, 유튜브 등지에서 1980년대 농심과 삼양의 CF들을 비교해보면 농심 쪽의 CF 퀄리티가 훨씬 좋다는 걸 알 수 있다. 게다가 농심은 1982년 너구리, 1983년 안성탕면, 1984년 짜파게티, 1986년 신라면 등 신제품을 출시했고 모두 대히트를 쳤으며 지금도 롱런하고 있는 농심의 대표작이다. 반면 삼양은 한박자 늦게 부랴부랴 너구리의 경쟁 제품으로 포장마차 우동, 안성탕면의 경쟁제품으로 서울탕면 & 영남탕면 & 호남탕면 시리즈, 짜파게티의 경쟁제품으로 짜짜로니, 신라면의 경쟁제품으로 이백냥을 내놓았다. 하지만 알다시피 그 결과는 처참했다. 당장 위에 서술한 농심 제품은 지금까지 같은 이름으로 판매 중이지만 당시 나온 삼양의 경쟁제품 중 지금까지 단종되지 않은 제품은 짜짜로니 뿐이다. 그만큼 삼양의 신제품들은 소비자들에게 철저하게 외면 당했고 삼양은 어쩔수 없이 삼양라면 매출에만 의존할 수 밖에 없었다.


그래도 라면의 원조라는 강력한 타이틀을 보유하고 있던 삼양이 제품을 개량, 발전시켜 반격할 여지는 남아 있긴 했다. 하지만 한차례의 대실패로 인한 소극적인 제품 개발과 우지 파동을 연타로 얻어맞아 어마어마한 타격을 입었으며 삼양라면 최후의 보루였던 군대 납품마저 완전히 붕괴되어 이런저런 피해를 합치면 정말 회사가 넘어갈 정도의 치명상을 입었다. 이후 삼양식품은 8년이나 걸린 재판에서 이겨 결백을 입증했으나 회사는 만신창이가 된 후였다. 


-이후

이때의 사건에 워낙 치명타를 입은 탓에 삼양식품 근로자 1백여 명은 퇴직금을 못 받게 될까봐 사표를 서둘러 냈으며, CI에는 안전한 식품이라는 문구가 들어갔다. 이후 라면을 튀기는 데는 동물성 기름이 아닌 팜유같은 식물성유를 사용하는 것이 대세가 되었다. 그러나 맛과 보존성 면에서 동물성 기름이 상대적으로 낫다는 평을 받으며 실제로 삼양라면은 우지 파동 이후 기름을 팜유로 바꾸어 맛의 질이 상당히 떨어져 버렸다. 다만 필자는 이때 안태어나서 우지로 튀긴 삼양라면을 먹어본 적 없기에 이때 우지로 튀긴 라면을 먹어 본 사람이 있다면 알려주길 바람.


또한 안 그래도 이미지가 좋지 못했던 동물성 기름 자체에 대한 인식은 더욱 나빠져 일반 가정이나 식당에서 사용하는 식용유는 콩기름 같은 식물성 지방이 대세가 되었고 동물성 기름은 버터를 제외하면 거의 쓰이지 않게 되었다. 사건 당시 오뚜기는 라면 쪽에서 문제가 없었으나 마가린 원료가 말썽이 되었으며, 삼립유지와 서울하인즈 역시 롯데삼강에게 시장을 양보하고, 당시 건실한 업체로 알려졌던 부산유지도 사건의 여파로 부도를 맞아 끝내 폐업하고 말았다. 

이 사건으로 라면업계에서 동물성 기름은 한동안 자취를 감추고, 팜유가 대세가 되었으나 오늘날에 이르러서는 반대로 팜유에 면을 튀기면 발알물질이 더 많이 발생한다는 것이 밝혀졌다.


사건 이후 1990년에는 식품공전 및 축산물위생처리법이 개정되어 수입 식용우지는 수출국과 수입국 양쪽의 관계법을 모두 충족시켜야 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사건 당시에는 법률의 미비로 인해 삼양 등의 관련회사들이 법망을 빠져나가 무죄판결을 받을 수 있었으나, 현재는 우리나라에서 해당 비식용 우지를 사용해 식품을 제조할 경우 명백한 불법이다. 


참고로 당시 검찰총장이자 우지파동 당시 삼양에 대한 수사를 선두지휘한 김기춘은 훗날 농심 법률고문으로 매달 1천만원을 받았다고 한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