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면접자가 있다.
국가, 기업, 동아리, 어느 것이라도 상관 없다. 이 사람은 어느 집단에 선망을 안고 동류가 되고 싶어서 자신을 동료로 받아달라고 신청했다.
어느 면접관이 있다.
동료로 받아달라는 사람을 심사하거나, 받아들이거나, 자신들의 동료에 어울리게 교정하거나, 혹은 쳐내는 역할을 가지고 있다.
그는 아주 높으신 분일 수도 있고, 높으신 분의 수족일 수도 있고, 혹은 일개 일반인일 수도 있다.
면접자에게 면접관은 유일하다.
면접관이 복수 있어도 상관 없다. 면접자에게 그들은 자신이 받아들여질지 결정하는 유일한 집단으로써, 유사적으로 단일개체로 취급받는다.
면접관에게 면접자는 유일하지 않다.
이미 동료로 합류한 사람들까지도 포함해서, 그가 만나는 사람은 한둘이 아니다.
유일성은 곧 특별함과 연결되기 마련이다. 반대로, 유일성이 없으면 특별하게 여겨지지 않는 것이 보통이다.
꼭 유일성=특별함은 아니고, 유일성에 의해 생기는 특별함이 꼭 기대대로의 것이라는 법도 없지만, 하여튼 대부분 그렇다.
그리고 면접자나 면접관이나 상대에게 특별함을 요구하곤 한다. 그런데 그것이 곧 비극이 되기도 한다.
뜬구름 잡는 소리만 하니 무슨 소리인지 싶을 수 있다.
그러니 피부에 와닿을 예시를 들어보겠다.
게임 커뮤니티의 고질적인 문제가 하나 있다. 바로 뉴비의 질문이다.
뉴비들은 게임 커뮤니티에 와서 질문글을 남긴다. 그들은 재밌어보이는 게임에 성공적으로 정착하고 싶어서 도와달라고 한다.
고인물들도 대답을 잘 해준다. 그야 그런 질문은 어려울 것도 없는 내용들이고, 새로 뉴비가 정착하면 뉴비를 샌드백으로 쓰든 동료로 삼든 이득이 많으니까.
오히려 부루퉁하게 대하는 고인물은 다 같이 합심해서 두들기기도 한다.
그런데, 뉴비 수십 수백 명이 같은 질문을 반복하면?
그건 어쩌면 1시간 내의 짧은 시간 동안에 벌어진 일일 수도 있고, 어쩌면 고인물이 커뮤니티에 지낸 몇 개월 가량의 세월 동안에 일어난 일일 수도 있다.
어쨌거나, 익숙해지다 못해 지겨워져버린 질문글에 무심코, 혹은 고의로 퉁명스럽게 반응하는 사람들이 생겨나게 된다.
잘 대답해주던 사람들도 공지글 좀 읽고 나서 모르면 질문글 쓰라는 경우가 왕왕 있다.
뉴비는 지금 처음 질문글을 쓴 것이고, 고인물은 비슷한 질문글을 한두 번 본 것이 아니다.
뉴비는 게임 커뮤니티에서 유일성을 느끼고 있다. 고인물은 파릇파릇한 뉴비의 질문글에서 유일성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
양측이 다 유일성을 느끼는 시기엔 문제 없다. 서로를 특별하고 소중하게 대하니까.
그렇지만 고인물들이 지겨움을 느끼는 순간은 오고, 그것은 즉 유일성을 더 이상 느끼지 못하게 되었음을 뜻한다.
면접자는 유일성을 요구하고, 실제로 느끼고 있다.
면접관은 유일성을 요구하지만, 유일성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
특별함을 느끼지 못했다면서 면접관에게 문전박대를 당하면, 면접자가 느낄 비극은 얼마나 클까.
이와는 또 별개의 문제지만, 그렇게 자신을 문전박대 시킨 집단이 사실 자신이 기대하던 특별함을 가지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면접자가 느낄 감정은 어떨까.
과거 나는 세미나 챈에서 글을 썼다.
정의를 추구하는 자세에서 발생하는 내적 딜레마에 대해서 썼다가 이런건 고찰이 되지 못한다고 후드려 맞았다.
그렇게 후드려 깐 뒤에 격려글도 추가로 오긴 하던데, 솔직히 그쪽은 머릿속에 넣지도 않았다.
후드려 맞은 쪽이 서러워서 탈주한다는 명목으로 채널 비판글 쓰러 갔거든.
그렇게 쓴 탈주글에도 격려글 달리긴 하던데, 솔직히 진짜로 그 챈에 다시 닉 달고 활동할 생각은 없었음. 통피 달고 하면 했지.
니들이 뭐 그리 특별하길래 나를 아프게 만드냐는 서러움이 그리 컸었다.
내 눈에 비친 그들의 특별함에 나도 섞이고 싶어서 어수룩하게 갔다가 뺨 맞은 꼴이라 아이러니도 좀 있긴 했지만.
근데 이제 와서 보니 그들은 내가 요구한 특별함이 아니라 다른 특별함을 가졌다는 걸로 보인다.
기분이 참 싱숭생숭하다. 지금으로선 뭐라 표현해야할지 모르겠다는 말 말고 표현할 길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