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슬 챈 활성화 방안을 고민해봐야 하지 않을까? 주딱 댓글에 따른 텍스트게임 채널 고찰용 글.

애프터서비스 생각하고 들어온 챌럼들은 뒤로가기 누르면 된다.



 EraAS(이하 AS)는 내가 처음으로 경험한 시각적인 텍스트게임(이하 텍겜)이었다. 캐릭터의 외모와 상태, 커맨드 입력상태에 따라 출력되는 간단한 움짤들은 뇌래픽카드를 통해서만 영상을 출력하던 다른 텍겜들과 비교했을 때 꽤 신선한 충격이었다. 텍챈에서 다루는 텍겜의 본질을 고려했을 때  상대적으로 간결한 주력시스템에 더해진 이러한 시각화는 뇌래픽카드의 변환을 거치지 않은 상태에서도 하반신에 큰 자극을 줄 수 있으므로 텍겜에 익숙하지 않은 늅들의 진입장벽을 크게 낮춰줄 수 있는 훌륭한 무기라 생각했고, 지금도 그리 여긴다. 이 부분만 보았을 때는 텍챈에서 충분히 주력 컨텐츠로 밀만한 가치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내용면에서는 솔직히 실망스러웠다. 재미의 문제가 아니다. AS는 아직 한창 개발중인 게임이며, 그 점을 고려했을 때 충분히 재미있게 잘 만든 텍겜이라 생각한다. 내가 실망한 이유는 AS의 배경설정과 실제 게임플레이가 가지는 괴리감 때문이었다.

 미지의 존재들에게 철저히 파괴된 인류 문명, 알 수 없는 광기로 미쳐가는 인간들, 악몽에서나 볼 법한 괴물들, 우주에서 온 색채에 나왔을법한 비정상적인 풍경의 결합이 AS 개발자가 택한 세계이며, 그 와중에 마지막으로 살아남은 도시의 관리자가 AS의 주인공, 즉 플레이어다. 이러한 배경을 보며 나는 러브크래프트적인 초월적 공포 속에서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치는 사람들의 처절한 생존분투기를 상상했다. 밖으로는 미지의 공포를, 안으로는 내분과 갈등을 견뎌가며 아슬아슬하게 버텨나가는 인간군상들의 상호작용을 바랬다. 물론 이를 수준높게 구현하길 바라는 건 너무 큰 기대라고 인지하고 있었으나, 아직 개발중인 텍겜이니 적어도 그런 방향으로 개발이 진행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텍겜은 다른 일반적인 게임에 비해 그래픽요소를 상당부분 생략할 수 있으니 어쩌면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있었다.


 하지만 게임은 너무나 평온하게 진행된다. 간헐적으로 공격해오는 괴수들로부터 도시를 지키기 위한 병력이 필수적인데, 강제징집에서 나타나는 강압적이고 싸늘한 분위기가 존재하지 않는다. 찻집에서 차한잔 하면서 병사를 뽑다니, 전혀 필사적이지 않다. 도시 밖으로 조금만 나가도 광인들과 괴물들이 판을 치는데 도시 내에서는 카지노와 유흥시설을 운용한다. 학생들은 평범하게 학교를 다니고, 직장인들은 평범한 사무를 보고 회식을 가지며, 아이돌 가수가 콘서트를 여는 도시는 21세기의 그것과 별 다를 바가 없다. 자칫하면 멸망할 위기인 인류 최후의 도시임을 느낄 수 있는 분위기는 찾아볼 수 없기에 설정과 실제 플레이의 괴리감이 너무 크다. 연구소와 강화병, 유전시스템에서만 암울한 설정의 편린이 남아있을 뿐, 위대한 옛 존재들의 도시공습 시스템을 제외하면 그냥 평범한 21세기 배경 텍겜이라 속여도 될 정도다.


 AS같은 극한상황을 배경으로 하는 텍겜이라면 설정에서 뽑아낼 수 있는 요소가 참 많다. 자식을 강제징집에서 빼내고자 뭐든 하겠다면서 매달리는 부모들, 부족한 물자를 확보하고자 온갖 수단을 다 쓰는 사람들, 공포에 사로잡힌 병사들의 멘탈케어, 희망을 잃고 짐승의 삶을 택한 무법자들, 애정을 무기로 고기방패를 찾는 사람들, 공포와 광기에 휩싸인 폭도들에게서 살아남기 위해 납작 업드리는 사람들, 굶고있는 가족들을 보다못해 범죄를 저지르다 붙잡히는 사람들, 절망을 잊고자 육체적 쾌락에 매달리는 사람들, 조금이라도 생존에 유리한 곳으로 배정되고자 플레이어에게 온갖 종류의 로비를 하는 사람들, 도시의 존속을 위해 가혹한 철권통치를 하는 플레이어 등등 우주적인 공포로 인한 패닉과 절망 아래에서 발버둥치는 인간군상들의 이야기를 19금 요소를 가미하여  풀어내면 참 풍부한 컨텐츠를 가진 게임이 될 것 같지 않은가? 이러한 플레이어와 NPC간의 상호작용의 결과로서 세상의 끝에서 멸망에 저항하는 인간찬가를 연주하든, 결국 모든 것은 헛된 발버둥이었다는 에리히 잔의 선율을 연주하든, 어느쪽이든 몰입감 넘치는 훌륭한 게임이 될 것이라 확신한다. 나는 AS에게 이러한 코즈믹 호러틱 포스트 아포칼립스 군상극을 기대했고, 배경에 맞는 묵직한 게임성을 보여줄 것을 기대했으나, 플레이 후 너무 큰 기대를 했음을 깨달았다. 상대적으로 이야기를 확장하기 쉬운 텍겜의 영역에서도 이는 버거운 기대였던 것 같다.


 하지만 여전히 AS는 개발중인 게임이다. 개발인원이 손을 놓치 않는 한 기능은 계속 확장될테고, 구상깎는 노인들이 있는 한 이야기는 계속해서 확장될 것이다. 때문에 나는 아직 희망을 버리지 않고 있다. 앞서 설명한 것처럼 AS는 상대적으로 진입장벽이 낮고 초심자의 흥미를 끌기 쉬운 텍겜이다. 그런 낮은 진입장벽 덕에 유입된 나같은 뉴비들이 이 매력적인 배경설정에서 느낀 흥미를 잃지 않고 계속 플레이하여 언젠가는 새로운 구상깎는 노인이 될 수 있도록, 개발자들이 앞서 이야기한 극한상황에서의 군상극에 초점을 맞춰 개발을 진행해줬으면 하는 이기적인 바램을 가져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