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책은 사실 2달전부터 읽고 있었는데 천성이 게을러서 이제야 다읽게 되었다. 여하튼 이 책에 대해 소개하자면 현재 뉴트로라 불리는
현대 레트로 열풍에 대해 쓴 책으로 누구나 한번쯤은 레트로 열풍에 대한 회의감, 반발감을 가져본적 있을것이다.
당장 우리 주변만 해도 끊임없이 쏟아지는 고전 게임 리마스터, SG워너비의 차트 역주행, 80년대 시티팝과 애니메이션 등등을 보자면
우리가 현재가 아니라 과거에 살고 있는지 착각을 하게 만든다. 이러한 착각은 발전없는 사회, 미래가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기우를 낳았고
난 그 기우 속에서 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
이 책은 오늘, 어제, 내일 크게 세단원으로 나눠어져 있으며 각각 레트로의 현재, 과거, 미래를 다룬다.
여기서 레트로에 대한 명확한 정의가 필요한데 이 책의 프롤로그에서 화자는 이에 대해 정의하며 레트로가 과거의 복고운동과 다른점을 설명했다.
1.레트로는 비교적 최근의 과거 살아있는 기억을 가리킨다.
2.정확한 자료가 쓰인다.
3.레트로에는 대중문화가 연루한다. 대중문화는 누구나 참여했던 문화로 예전에 있던 과거부흥운동과 다르다.
과거부흥운동은 상류층을 중심으로 하였다면 레트로는 벼룩시장, 고물상등에서 서성인다.
4.레트로는 과거를 미화하지 않고 재미와 매혹을 찾는데 중점이라는 것이다. 즉 복고가 아니라 현재의 유행을 위해
과거를 이용한다.
이 네가지의 특징을 들어 화자는 레트로가 단순 복고운동이 아님을 밝혔다. 이제 본론으로 넘어가서 오늘, 어제, 내일에 대해 말해보자.
사실 오늘 단원은 솔직히 별거 없다. 그냥 레트로의 실태에 대해 쓴 단원이다. "이거 알아?", "이거 정말 ~했는데" 같은 의미 없는 농담부터
재발매, 재결합 같은 레트로 비즈니스, 유튜브와 블로그, 아이팟(요즘은 스마트폰) 등에서 끊임없이 쏟아지는 자료들, 이로 인한 혼란스러움 등은 현재 내 심정을 대변하기 충분했다.
어제 단원은 레트로의 과거를 다룬다. 이 단원에서 40년대 인물들은 30년대 대중음악이 시작되던 초창기 시절을 50년대 인물들은 대중음악이
기틀을 잡은 40년대를 70년대에선 펑크씬은 역설적이게도 60년대에 대한 존경심으로 시작되었단 사실과 대중은 50년대 향수에 빠져있었고
80년대엔 70년대 펑크를 공경하는 포스트펑크, 90년대엔 지금까지의 행보를 전부 취합하여 만들어진 얼터너티브 락과 힙합 등등을 말하며
이런 레트로는 비단 최근의 일이 아니라고 말해준다.
본격적으로 내일 단원에서 화자의 생각이 잘드러나는데 이 단원을 시작하면서 hauntology라는 개념이 등장한다.
hauntology란 귀신들린의 haunt와 존재론의 ontology를 합성한 단어로 90년대 공산주의의 패배 이후에도 사라지지 않는 공산주의의 영향을
설명하기 위해 쓰인 개념이었지만 기억과 폐허를 설명하기 위한 단어로 음악과 패션같은 문화예술까지 의미가 확장되었다.
문화예술에서 hauntology가 발생하는 이유에는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기억이다. 자료는 나의 밖에 있지만 기억은 내 안에 있다.
기억은 특정 세대와 한 나라에서 비슷하게 공유되고 이런 기억은 의식을 구성하고 의식에 따라 자료를 재구성한다.
쉽게 이야기하면 향수인 것이다. 그런데 이것만으로 레트로 현상을 설명하기 어렵다.
hauntology는 기성세대뿐만 아니라 기억을 공유하지 못한 요즘세대에서도 호응을 이끌어내고 있다. 이를 자료 왜곡이라 하는 이들도 있다.
hauntology의 시선으로 만들어진 음악과 패션을 렌즈삼아 바라본 20세기는 요즘세대에겐 충분히 매력적이라는 이야기다.
또 시대가 점점 역동성을 잃어간다는 주장을 하는 사람도 있다. 모든게 부서진 2차 세계대전 이후로 세계는 전쟁으로부터 스스로를 재건하였고
60년대엔 모든게 폭팔하던 시기였다. 음악적으로는 비틀즈, 밥딜런 등의 전설적 뮤지션이 등장하였고 미래의 소리라 칭해진 원시 전위 전자음악, 컬러 텔레비전의 보급, 인류 최초로 달에 가는등 끊임없는 혁신이 밀려오던 시기였다.
혁신의 물결 속에서 당시 사람들은 낙관적인 미래를 상상했지만 그 미래는 우리가 살고 있는 것처럼 녹록치 않다. 어디서부터 잘못된걸까?
이에 대한 설명으로 화자는 미래 피로감이란 개념을 인용했다. 즉 미래를 상상하는 것도 지친다는 것이다. 미래는 실체가 없다.
실체가 없으니 붙잡을 수 없다. 이를 잡으려는 행위는 애시당초 불가능인 것이다. 이는 점점 피로감을 불러와 현재와 같이 되었고
피로감이 찌든 상태에서 본 과거 정확히 엇나간 미래는 환상적이고 매력적으로 보일수 있다고 하는것이다.
또다른 관점으로는 서구사상의 한계를 이야기하는 이들도 있다. 서양은 끊임없는 확장을 추구하여 18세기에서 2차 세계대전까지는
영토의 확장을 현대 시대엔 사상, 과학과 같은 학문의 확장이 이루어졌다. 이러한 확장이 결국 한계점을 맞았다는 것이다.
확장을 하기 위해선 많은 것들이 집약되어야한다. 그간 20세기가 이뤄낸 성과는 집약적인 시간, 돈, 노동력 등이 집약된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성취는 오히려 세상을 해체하는데 공헌했고 결정적으로 소련의 붕괴로 마지막 사상의 집약마저 해체되어 버렸다.
다시 초론으로 돌아가보자 이 책을 펼친 이유가 무엇인가? 발전 없는 사회, 미래가 없는 사회라는 기우아닌가?
이제 더이상 미래에 관심이 있는 이들은 점차 사라질것이다. 과거에 남았던 자료들은 이제 디지털이라는 이름하에 시간이 사라졌다.
시간이 사라진 자료들은 새로운 시점에서 평가되고 재조합되며 새생명을 얻고있다. 결국 우리는 우리도 모르게 결국 미래를 향해 가고있다.
이제 니코마코스 윤리학 읽어야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