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 글은 작성자 개인의 의견으로, 법원과 수사기관은 견해를 달리할 수 있음.
* 항상 하는 말이지만 법학도 법학자가 읽을만한 글 아니니 가볍게 볼 것.
* 그렇다고 비판과 첨삭을 받지 않겠단 뜻이 아니니 오해하지 말 것. 오히려 환영함.
약 두달 전, 챈에는 신뢰사회의 붕괴는 사실 되게 큰 문제인데 라는 글이 올라왔다. 첨부된 각종 데이터의 내용으로 봤을 때 해당 글 작성자는 2030 남녀갈등을 말하고 싶었던 것일테지만 댓글들은 어쩌다보니 위급한 상황에 있는 사람을 보고도 선뜻 도와주지 않는 현 사회의 신뢰 붕괴에 대한 내용으로 흘러갔다. 나는 댓글에서 "비록 고발당하더라도 사람을 살리는게 먼저라고 생각하게 만드는것보다 사람 돕는걸로는 절대 고발당하지 않는다고 확신할 수 있게 제도를 정비하는게 더 빠르고 확실해 보(인다)"는 의견을 개진했는데, 이는 느그나라 법률이 호의를 베푼 이나 타인을 위하여 대신 무언가를 한 이들을 충분히 보호해주지 못한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오늘 알아볼 사무관리는 해당 주장에 대한 근거의 확장으로서, 느그나라 민법이 타인을 위해 일한 이에게 어떠한 보호를 제공하고 의무를 부과하고 있는지를 확인하고자 한다.
사무관리는 한쪽 당사자(관리자)가 의무 없이 타인(본인)을 위하여 그의 사무를 관리하는 것을 말한다. 본래 타인의 사무에 간섭하는 것은 위법이나, 민법은 상호부조의 실현이라는 관점에서 일정한 요건을 충족시킨다면 이를 적법행위로 간주해준다. 따라서 사무관리는 발생원인이 없는데도 법에서 특별히 성립을 인정한 채권, 즉 법정채권에 속하게 된다.
사무관리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의무 없이, 타인을 위하여, 사무를 관리하여야 한다.(734조) 당사자가 원하지 않음에도 효과가 발생하므로 법률행위는 아니며, 따라서 의사표시나 법률행위 관련 규정들이 적용되지도 않는다. 때문에 제한능력자도 사무관리자가 될 수 있다. 단, 위 요건 중 사무가 국가의 사무인 경우 사인이 대신하여 처리할 수 있는 성질의 것으로서 처리에 긴급성을 요하는 등 사인의 개입이 정당화되는 경우에만 성립한다.
요건 중 하나인 타인을 위하여 관리한다는 것은 관리행위로 얻는 이익을 타인에게 귀속시키려는 의사를 뜻한다. 해당 의사가 있다면 본인이 이익을 얻을 목적 또한 있다고 해도 사무관리는 성립한다. 타인이 누군지 정확히 알아야 하는 것도 아니고, 오직 타인을 위한다는 의사가 있으면 충분하다.
추가적인 요건으로, 처음부터 본인의 의사에 반하거나 본인에게 불리하다는 것이 명백한 경우에는 해당 관리행위는 사무관리로서 성립하지 않는다.(737조) 단, 본인의 의사가 강행법규나 사회질서에 반하는 경우 존중할 필요가 없으므로 공공의 이익을 위해 사무관리가 성립한다.(734조 3항)
앞서 언급한 요건을 모두 갖추어 사무관리가 성립한다면, 관리자는 사무관리 과정에서 본인의 권리를 침해하는 행위를 하더라도 위법행위가 아닌 적법행위로 취급된다. 이를 위법성이 조각된다고 하며, 민법이 이 행위를 정당한 것으로 인정하였기 때문에 생기는 효과이다. 또한 관리자는 관리과정에서 지출한 비용을 돌려줄 것을 본인에게 청구할 수 있는 권리를 얻는다. 이를 비용상환청구권이라 한다. 같은 맥락에서, 사무관리를 하며 채무를 부담하게 된 경우에는 그 행위가 본인에게 필요하거나 유익한 경우 관리자는 본인에게 자기 대신 해당 채무를 변제할 것을 청구할 수 있다.(739조)
단, 관리자가 위 권리를 온전히 누리려면 민법에서 정한 기준에 부합하도록 사무를 관리해야 한다. 관리자가 본인의 의사를 알거나 알 수 있었을 경우 그 의사에 적합하게 관리해야 하며, 본인의 의사에 반하는 행위를 하였을 경우 나중에 소요된 비용을 본인에게 청구할 때 전체 금액이 아니라 본인의 이익이 현존하는 한도에서 청구할 수밖에 없다.
본인의 의사를 알 수 없다면 관리자는 본인에게 가장 이익이 되는 방법으로 관리해야 한다.(734조) 관리자가 본인의 의사나 이익에 적합하지 않은 방법으로 사무를 관리했다면, 그로 인해 발생한 손해를 배상할 책임을 진다.(734조 3항) 이는 관리자가 과실이 없을 경우에도 지는 무과실책임으로, 상당히 무거운 책임을 부담한다. 다만 공공의 이익을 위한 관리행위일 경우에는 중과실이 아니면 배상책임이 없으며,(734조 3항) 타인의 생명, 신체, 명예 또는 재산에 대한 급박한 위해를 막기 위해 사무관리를 한 경우라면 고의나 중과실이 없다면 배상책임이 없는 것으로 정하여(735조) 책임을 경감한다. 이를 긴급사무관리라 한다.
또한 관리자는 관리를 시작한 즉시 그 사실을 모르고 있는 본인에게 통지하여야 하며(736조), 그러지 않았다면 이로 인해 발생한 손해에 대해 책임을 진다. 본인은 통지를 받은 후 관리행위를 추인할 수도 있으며, 그 경우 해당 행위는 본인의 의사에 반하지 않게 사무를 관리한 것으로 취급된다.
마지막으로 관리자는 한번 관리를 시작한 이상 관리를 계속하는 것이 본인의 의사에 반하거나 본인에게 불리한 것이 명백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본인이 사무를 다시 관리할 때까지 관리를 계속해야 한다.(737조) 이러한 사무관리는 위임과 유사한 경향을 보이므로 위임에 관한 규정들이 준용된다. 따라서 관리자는 본인에 대해 관리현황과 결과를 보고할 의무가 있으며, 사무관리를 통해 얻은 물건 등이 있다면 본인에게 인도하여야 하고, 이를 자신이 소비하거나 사용하였다면 그 날 이후의 이자를 지급하고 손해를 배상하여야 할 책임을 진다.(683~685조)
사무관리가 종료되었다면, 관리자는 앞서 언급한 비용상환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다. 이때 사무관리가 결과적으로 본인의 의사에 반하여 이루어진 것인지 여부에 따라 어느 정도의 비용을 돌려받을 수 있는지가 달라진다. 본인의 의사에 반하지 않았다면 관리자는 지출한 비용 전부를 본인에게 청구할 수 있고, 채무를 부담하게 된 경우에는 본인에게 자기 대신 변제할 것을 청구할 수 있음은 이미 설명한 바 있다.(739조 1항) 반대로 결과적으로 본인의 의사에 반하여 관리한 경우에는 현재 본인에게 이익이 존재할 경우만 그 이익의 한도 내에서 청구할 수 있다.(현존이익이 한도.) 그리고 민법은 사무관리자에게 보수청구권을 인정하지 않고 있으므로 유실물 습득 등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관리자는 보수를 받을 수 없다.
만일 관리자가 사무관리를 하며 과실 없이 손해를 입었다면, 본인의 이익이 현존하는 한도에서 손해의 보상을 청구할 수 있다.(740조) 여기서 과실은 앞서 언급한 관리자의 의무를 위반하여 관리한 경우를 의미하므로, 과실이 있다면 관리자는 보상을 청구할 수 없다.
이 내용을 앞서 언급한 글의 댓글 내용과 연관시켜보자. 대학교 앞에 의식을 잃고 쓰러져 있는 노인이 있다. 그리고 사무관리에 관해 잘 알고 있는 대학생이 이를 목격했다. 학생은 어떤 생각이 들겠는가? 우선 자신이 노인을 구할 경우 사무관리는 보수청구권이 없으므로 자기에게는 아무런 이득이 없음을 떠올릴 것이다. 하지만 다행히도 학생은 높은 도덕성을 가지고 있어서 보수가 없어도 사람 목숨을 구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생각을 하고는 이내 보수와 관련된 생각을 지운다.
그 다음으로 학생이 떠올리는 건 자신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노인이 사망한다면 자신이 손해를 보았어도 어떠한 보상도 받을 수 없다는 사실이다. 예를들어 cpr도중 자세를 잘못 잡아 부상을 입어도 740조에 의해 본인의 현존이익 한도에서만 보상을 청구할 수 있고, 노인이 사망하면 아무 이익도 현존하지 않게 되므로 보상을 청구할 수 없다. 잘못해서 다치기라도 하면 어디에서도 보상받을 수 없다는 점이 학생을 한번 더 망설이게 한다.
물론 학생은 이마저도 극복하고 cpr을 실시하지만 또 하나의 불안이 머리를 스친다. 이 상황은 735조에서 규율하는 긴급사무관리다. 즉, 학생은 고의나 중과실이 없을 경우 설령 노인이 사망하거나 크게 다친다 해도 배상책임이 없다. 문제는 요건이다. 고의야 당연히 해당사항이 없겠지만, 중과실은 어떨까? cpr에서는 심장압박을 최우선으로 치며, 인공호흡은 최악의 경우 구조자의 선택으로 남긴다. 하지만 학생은 사람의 목숨이 달려 있으므로 매우 당황해서 그저 배운대로 무조건 인공호흡을 해야만 한다고 생각했고, 잘 하지도 못하는 이를 실시하느라 심장압박에 상대적으로 소홀해지게 되어 압박주기가 흐트러짐으로서 결국 노인이 사망에 이른다. 이 경우 학생은 다른 가능성이 있었음에도 굳이 그 방법을 선택하여 노인을 사망케 했으므로 중과실에 해당되어 손해배상책임이 인정되는 사태를 맞이한다는 최악의 결말이 학생의 머릿속에 떠오른다. 설령 당시에는 여건상 그럴 수밖에 없었다는 항변을 하여 책임을 면한다 해도 그로 인해 소요되는 시간과 소송비용은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설령 노인이 사망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cpr은 갈비뼈 등에 큰 손상을 줄 수 있는 응급처치이므로 같은 논지로 최대한 완벽하게, 실수없이 하지 않으면 생각지도 않은 손해배상소송에 휘말릴 수 있다는 부담감이 학생을 옥죌 것이다. 그것이 사실이든 아니든간에.
노인을 구조한다는 결정을 내리기까지 학생은 우려의 산을 세 봉우리나 넘어야 했다. 이런 제도하에서 과연 시민의식만으로 위기에 빠진 이를 당연히 구조해야 한다는 풍토가 조성될 수 있을까? 나는 힘들다고 본다. 2008년 12월,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 5조의2, 소위 선한 사마리아인 법이 도입되며 생명이 위급한 응급환자를 도왔을 때는 민/형사책임을 면제하고 사망에 대한 형사책임을 감면받게 되었다. 다만 보수와 손해배상문제는 여전하며, 중과실이 없을 것을 요건으로 한다는 점 또한 여전하다. 제도가 개선되었지만 앞서 언급한 문제점 상당수는 아직 존재한다는 의미이다.
제도적 뒷받침 없이 시민의식의 함양을 통해 사회구성원간의 신뢰를 재구축하겠다는 것은 다른 댓글에서 언급한 것처럼 현실적으로 힘든 일이다. 법으로 대표되는 실체적 요소에 의한 확실한 보증이 있어야 그에 따른 행동을 보다 쉽게 이끌어 낼 수 있고, 그 보증이 판례를 통해 사회적 약속으로 굳어지면 곧 그 사회의 윤리가 되는 것이다. 따라서 선한 사마리아인을 위해 보수와 손해배상책임을 국가가 부담하고, 중과실의 해석을 '사실상 고의라고밖에 볼 수 없는 행위'로 엄격하게 제한하는 등의 사무관리 관련법 개정 및 대법원 판례를 통해 선의로 남을 돕는 일로는 손해를 보지 않는다는 것을 보장해 주는 것이야말로 무너진 사회구성원간의 신뢰를 재구축하는 첫걸음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