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I. 사실관계
2020년 2월 6일 다수의 피해자에게 상해, 명예훼손, 폭행 등의 범죄를 저지른 피고를 징역 6개월에 처하는 원심판결에 대해 피고인이 항고하자, 당해 4월 28일 법원은 이를 파기하고 일부 피해자에 대한 피고인의 폭행사실에 대한 공소를 기각한다. 이에 피고를 징역 4개월의 형량에 처했으나, 피고는 상고하여 명예훼손죄의 적용에 대한 억울함을 호소한다. 이후 대법관들이 심의하여 2020. 11. 19 전원합의체 판결을 내렸다.
II. 쟁점
명예훼손죄의 공연성에 관하여 판례상 확립된 법리인 이른바 ‘전파가능성 이론’의 유지 여부
III. 다수의견과 소수의견
1. 다수의견
명예훼손죄 관련 규정은 침해가 공공연하게 이루어질 것을 요구한다. 이는 사회적으로 유해한 명예훼손 행위만을 처벌함으로써 표현의 자유가 지나치게 제한되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다. 대법원 판례는 공연성에 관해 ‘불특정 또는 다수인이 인식할 수 있는 상태’를 의미한다고 밝혀 왔고, 이는 학계의 일반적인 견해이기도 하다. 허나 대법원은 소수에게 개별적으로 사실을 적시하더라도, 상대가 적시된 사실을 전파할가능성이 있는 때엔 공연성이 인정된다고 본다. 이를 전파가능성 이론이라고 한다. 전파가능성 이론은 공연성에 관한 확립된 법리이지만, 전파가능성 이론이 제한 없이 적용될 경우 표현의 자유가 위축될 우려가 있다.
이에 법원은 전파가능성을 판단하는 기준을 사례별로 엄격히 지정해 적용함으로써 공연성을 인정해왔다. 다만 대법원은 특정 소수에 대한 사실적시의 경우 전파될 가능성에 대한 증명의 정도로 단순히 ‘가능성’이 아닌 ‘개연성’(이때 개연성은 증명의 정도가 ‘가능성’보다 좀 더 강한 것을 말한다)을 요구한다. 이때, 발언 후 실제 전파됐는지는 공연성에 있어 소극적 사정으로만 고려하는데, 이는 결과를 가지고 책임을 묻지 않으려는 것이다.
본 사건에서 피고인은 남편과 갑의 친척인 병이 듣는 가운데 갑에게 ‘저것이 징역 살다온 전과자다’라고 크게 말함으로써 공연히 사실을 적시하여 갑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내용으로 기소됐다. 이때 피고인과 갑은 갈등관계에 있었다. 사건 당일, 피고가 ‘갑은 전과자’라고 크게 소리쳤고, 이를 마을 사람들이 들었다고 진술한 점, 피고가 경찰관 앞에서도 ‘갑은 전과자’라고 수회 소리치기도 한 점, 또 병이 ‘피고로부터 갑이 전과자라는 사실을 처음 들었다’고 진술해 갑과 가까운 사이가 아닌 것으로 보이는 점을 종합하면, 갑과 병의 친분 정도와 적시된 사실이 공개하기 꺼려지는 개인사에 관한 것으로, 주변에 회자될 가능성이 크므로 전파가능성이 있고, 피고가 갑을 비방하기 위해 공개된 장소에서 큰 소리로 말해, 이를 다른 마을 사람들이 들을 수 있었으므로 다수인이 인식할 수 있는 상태였다. 고로 피고인의 발언은 공연성이 인정되므로 공소사실을 유죄로 하는 것은 정당하다.
2. 소수의견
명예훼손죄에서 말하는 공연성은 전파가능성을 포섭할 수 없다. 형법 제307조 제1항 , 제2항 에 규정된 공연성은 불특정 다수인이 직접 인식할 수 있는 상태를 말하는 것이다. 특정 개인이나 소수에게 사실 적시를 하는 것은 이로부터 불특정 다수인에게 전파될 가능성이 있다 하더라도 공연성을 충족한다 볼 수 없다. 다수의견은 범죄구성요건을 확장적용하는 것이므로 형법이 예정한 범주를 벗어나 형사처벌을 하는 것이다. 이는 죄형법정주의와 형법해석의 원칙에 반하므로 찬성할 수 없다.
명예훼손죄의 구성요건으로 공연성을 정한 입법 취지는 다른 사람의 명예를 침해할 수 있는 사실이 사회에 유포되는 경우만을 처벌하고자 하는 것이다. 허나 전파가능성 이론은 전파될 ‘가능성’이란 추측을 처벌 근거로 삼는다. 이는 결과가 발생하지 않은 상황에서 피고인을 처벌할 수 있도록 하므로, 이는 죄형 법정주의에 반하는 부당한 확장해석이다.
또 전파가능성 법리는 명확성 원칙을 훼손하여 법 적용자로 하여금 형벌법규를 자의적으로 운용하는 것을 허용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그리고 공연성을 구성요건으로 한 범죄에서 공연성의 의미는 동일하게 해석해야 하는데, 공연음란죄나 음화 등의 전시·상영죄와 달리 명예훼손죄의 공연성 개념에 전파가능성을 포함하는 건 형법의 통일적 해석을 무너뜨린다. 또 적시한 사실을 상대방이 차후 다른 사람에게 전달할지의 여부에 따라 공연성을 판단하는 것은 행위의 불법평가에서 고려해선 안 되는 우연한 사정을 들어 결과책임을 묻는 것이다. 이는 수범자의 예견가능성을 침해한다.
그 외에도 전파가능성 법리는 명예훼손죄의 가벌성의 범위를 지나치게 확장하여 형법의 보충성 원칙에 반한다. 특정 소수와의 사적 대화에도 전파가능성이 있는 경우, 공연성이 있다고 보는 건 거의 모든 사실적시 행위를 명예훼손죄의 구성요건에 해당한다고 보는 것이기 때문이다. 더불어 전파가능성 유무에 대한 객관적 기준을 설정하는 것이 어려우므로 전파가능성은 구체적 증명 없이 ‘적어도 전파될 가능성은 있다’는 방향으로 포섭될 위험이 크단 점도 우려된다.
위 사안에서, 피고인이 남편과 갑의 친척 병에게 갑에 대한 사실을 적시한 것은 특정소수에게 말한 것으로, 불특정 다수가 적시한 사실을 직접 인식할 수 있는 상태에 있었다고 볼 수 없다. 또 재판 과정에서 병이 갑의 친척이라는 게 밝혀졌는바, 이는 공연성이 부정될 수 있는 유력한 사정이다. 고로 피고인의 발언에 공연성이 있다 보기 어려워 피고인의 행위가 명예훼손죄에 해당하지 않는다.
IV. 검토 및 결론
피고의 상고는 기각됐다. 대법원은 오랫동안 불특정 또는 다수인에 대하여 전파될 가능성이 있는 경우에도 명예훼손죄의 공연성을 인정하는 판결을 내려왔다. 다수의견 측은 이에 명예에 대한 침해가 객관적으로 확인될 수 없고 이를 증명할 수도 없으므로 다수인이 적시된 사실을 인식하지 못했더라도, 그런 상태에 놓인 것만으로도 명예가 훼손된 것으로 보아야 한다고 봤다.
이때, 소수의견 측의 반론이 예사롭지 않다. 그들은 전파 가능성 법리는 예정한 범주를 벗어나 형사처벌을 하는 것이므로 죄형법정주의와 형법해석의 원칙에 반하여 찬성할 수 없다고 말한다. 동시에 전파가능성 법리를 이유로 공연성을 인정한 이전 판결들도 변경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확실히 전파가능성 법리는 명예훼손 행위에 입각한 실제적 피해가 발생했을 시, 제재를 명하는 형법의 해석에 약간 비틀리는 부분이 없다곤 할 수 없다. 해당 이론은 실제로 적시된 사실이 퍼지는 일이 없어 피해자의 명예에 심각한 훼손이 가해지지 않은 상태에서도 피고에게 처벌을 가할 수 있게 하기 때문이다. 이는 자칫 처벌 기준을 지나치게 가혹하게 만들 수 있으며, 또한 전파가능성 판단 기준이 지나치게 모호하여 각 사건의 재판관마다 다른 입지의 소견을 보여 판결이 중구난방이 될 가능성도 있다. 심각하게 본다면 재판의 이해관계에 따라 피고에게 부당하거나, 혹은 공익에 부당한 처사가 내려질 수도 있다. 이에 비춰본다면 소수의견 측의 논지는 어느 정도 수긍할 만한 점이 있다.
본 판례는 최근의 미투 운동, 온라인 명예훼손 문제와 민감하게 엮여 있다. 다음은 다수의견측의 본문 의견 부분을 발췌한 것이다.
다수의견
인터넷의 발달과 보편화로 정보통신망을 통해 다량의 의사표현이 이루어지고 있고, 그에 따라 정보통신망을 이용한 명예훼손도 증가하고 있다. 이런 정보통신망과 정보유통과정은 비대면성, 접근성, 익명성, 연결성 등을 본질적 속성으로 하고 있어서 정보의 저장, 재생산 및 전달이 용이하기 때문에, 정보통신망을 이용한 명예훼손은 ‘행위 상대방’ 범위와 경계가 불분명해지고, 명예훼손 내용을 소수에게만 보냈음에도 행위 자체로 불특정 다수인이 인식할 수 있게 하는 경우가 다수 발생한다. 특히 정보통신망에 의한 명예훼손의 경우 행위자가 정보에 대한 통제를 쉽게 상실하게 되고, 빠른 전파성으로 인해 피해자의 명예훼손의 침해 정도와 범위가 광범위하게 되어 표현에 대한 반론, 토론을 통한 자정작용이 사실상 무의미한 경우도 적지 아니하다. 정보통신망을 이용한 명예훼손 행위에 대해, 상대방이 직접 인식하여야 한다거나, 특정된 소수의 상대방으로는 공연성을 충족하지 못한다는 법리를 내세운다면 해결 기준으로 기능하기 어렵게 된다. 오히려 특정 소수에게 전달한 경우에도 그로부터 불특정 또는 다수인에 대한 전파가능성 여부를 가려 개인의 사회적 평가가 침해될 위험성이 발생하였는지를 검토하는 것이 실질적인 공연성 판단에 부합되고, 공연성의 범위를 제한하는 구체적인 기준이 될 수 있다. ----(중략)-----반대의견은 전파가능성 법리가 최근의 미투(Me Too) 운동을 가로막는 것처럼 주장하나, 이는 공연성의 해석과 무관하다. 미투 운동에 대한 규율은 피해자가 다수인에게 피해 사실을 알리는 행위를 명예훼손죄로 처벌할 수 있는지의 문제일 뿐, 전파가능성 법리 때문에 미투 운동이 처벌받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는 형법 등에서 사실적시 명예훼손죄를 처벌함으로써 파생하는 문제이다.
이에 소수의견 측은 ‘표현의 자유’에 대한 억압과 억제의 측면에서 명예훼손죄의 전파가능성 법리, 나아가 명예훼손죄 조항 자체에 대한 재고를 요구한다. 실제 유엔인권위원회는 표현의 자유를 위해 명예훼손죄의 비범죄화를 고려하라는 권고를 회원국에 전달한 바 있다.[UN Human Rights Committee (HRC), General comment no. 34, Article 19, Freedoms of opinion and expression, 12 September 2011, CCPR/C/GC/34, para. 47]
이처럼 본 판결은 과거 대법원 판례의 근간에 깔려있던 ‘전파가능성’ 법리와 명예훼손죄의 실효에 시사하는 바가 크므로, 신중한 접근을 요한다. 소수의견의 말마따나 서구 사회의 기조는 명예훼손에 대한 법적 조치를 최소화하는 경향이 있으므로, 이러한 문제제기에 있어 사법 차원의 충분한 고찰과 논의가 있어야 할 것이다.

ㅈㄴ 재미 없는 과제지만 현 시국에 어느정도 의미가 있는 판례같아 올려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