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리스타


전투를 신앙으로 하는 발할라 동맹은 5년마다 한 번씩 선제전(選帝戰)이라는 결투대회를 열어서

동맹 내 6대 공국을 통솔하는 동맹황제를 결정함.


결투에 나서는 6명의 대공 중 그란 공국의 대공대리,

'광희(狂姬)'라는 별명을 가진 트리스타는 우승후보 필두였음.


많은 자들이 그녀가 황제의 자리에 오르면

동맹이 위대한 여로에 올라서 전례 없는 영광을 얻을 것이라 믿으며,

또한 많은 자들이 그녀가 황제가 되면 동맹은 돌이킬 수 없는 길에 들어서고

서대륙 전체가 끝없는 전화에 휩싸여서 초토화 될 것이라 믿고 있음.


그리고 어느 쪽의 생각도 틀리지 않았음.

무상의 영광을 얻는 것도 수많은 파멸을 초래하는 것도 전쟁이 부르는 결과이며,

트리스타는 전쟁의 여신에게 사랑받는 자였음.


트리스타가 14살이 되던 해, 발할라 동맹은 서대륙 굴지의 강대국인 라인 연방과 대규모 충돌이 발생했음.

발할라 동맹의 전사들은 용맹했지만, 장비도 숙련도도 세계 유수의 수준을 자랑하는 라인 연방을 상대로 수세에 몰렸음.


"새벽을 보고 있는 우리 중 몇 명이나 밤까지 살아남을 수 있을까?"


발할라 동맹의 병사들이 그렇게 생각했을 때 트리스타가 전장에 나타났음.

한낱 어린애였던 그녀가 발할라의 전사들에게 연설했음.


"내가 그대들에게 고하마. 발할라의 자식들은 황혼을 볼 것이며, 승리할 것이다!"


말을 마친 그녀는 전사들을 이끌고,

라인 연방의 최정예 기갑부대인 130 기갑교도사단에 기습을 감행함.


130 기갑교도사단이 우위에 있다고 방심했다고는 해도,

숫자와 질 모두 발키리 부대를 거느리고 기습한 트리스타보다 훨씬 뛰어났으니 질 리가 만무했음.


하지만 전장에서는 논리도 도리도 책략도 초월하는 존재가 있음.


트리스타가 신들린 사격으로 적 지휘관의 콕피트를 명중시킨 것을 시작으로,

그녀를 따르는 전사들은 북유럽 전설의 광전사로 화해서, 공포도 고통도 모른 채 돌격했음.


악귀 같은 기세가 적군의 사기를 꺾었고,

트리스타는 130 기갑교도사단을 기적적으로 물리쳤으며, 나아가 전쟁의 양상에 영향을 끼쳤음.

그때부터 그녀는 '광희'라고 불리게 되었음.


그녀는 하얀 머리카락과 하얀 피부를 가진 백설공주 같은 미녀였지만

행동거지는 굳세고 광포하며 명예를 중시하는 북유럽 전사의 것이었음.


군영에서 부하들과 같이 먹고 마셨으며, 함께 전장에 나가면서 열광적인 숭배를 받았고,

그란 공국만이 아닌 다른 다섯 공국에서도 많은 지지자가 있었음.


그녀는 전투처녀 발키리의 화신이며, 발할라 동맹 전투신앙의 상징으로 여겨졌음.


하지만 서민과 전사 계층은 그녀를 사랑하면서도 깊은 두려움을 느꼈음.

그들은 광전사에게는 용맹함과 함께 광기가 공존하는 것을 알고 있었음.


그란 왕실에는 이런 말이 나돌고 있음.


"그란 왕실에서 새 아기가 태어날 때마다, 오딘은 동전 하나를 던진다.

동전의 한 면은 현명함이며 다른 한 면은 광기이다."


그란 공국은 건국 때부터 혈통에 대한 편집증에 가까운 집착이 있었으며,

혈통의 순결성을 유지하기 위해서 근친혼을 일삼았음.

때문에 그란 왕실에서는 뛰어난 재능을 가진 자가 배출되었지만 미치광이가 될 확률도 높았음.


트리스타는 어릴 때부터 전쟁과 정치에 소질을 보여줬지만, 혈통에서 물려받은 광기를 드러냈음.

어릴 때부터 사냥이라는 명목으로 동물을 도살하는 것을 좋아했고, 자라면서는 고문에 빠져서

고문실로 가는 것을 종종 볼 수 있었음.


전장에서 그녀는 "문명인의 방식"을 천시했으며, 북방의 방식을 따르는 것을 좋아했음.

그녀는 전통적인 전사의 방식에 따라서 철저히 유린하고 약탈했음.


그리고 그 광기의 최대 피해자가 친동생인 그루미였음.


그란 왕실의 전통에 따라서, 그녀는 그루미를 자신의 약혼자로 여겼고,

자신의 남편이 될 동생을 깊이 사랑했음.

하지만 그녀의 사랑은 북유럽의 혹독한 자연환경만큼 광포하고 치열했음.


그녀는 그루미를 자신이 섬길 위대한 왕으로 키우기 위해서 비인간적인 훈련을 시켰고,

그루미의 상냥함과 다툼을 싫어하는 본성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음.

동생이 조금이라도 반항하면 고문실로 끌고가서 그를 "교육"시켰음.


자신을 제외한 어떤 여성도 접근을 허락하지 않았고,

감히 이걸 어기는 자에게는 무서운 분노가 내려졌음.


크리스타에 대한 공포 탓으로 그루미에게는 아무도 다가오지 않았고,

고독과 슬픔 속에서 그루미는 음침하고 차가운 성격으로 성장함.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그루미가 실종되었음.


트리스타는 사랑하는 동생의 실종에 고통스러워하며 발광했음.

보이는 모든 것을 부수고, 고문실에 자신을 가두었음.


음식을 보내는 하인들 말고는 공국의 가신들 중 아무도 트리스타를 끌어낼 배짱이 없었음.

몇 개월 후 고문실에서 나온 트리스타의 머리카락은 마치 나찰 같았다고 함.


남동생이 떠난 것이 그녀의 광기를 약하게 만들었음.

이미 부모님은 세상을 떠났기 때문에 트리스타는 공국의 통치와 외교에 손을 대었고,

거들떠보지도 않던 가신들의 의견을 듣기 시작했음.


이는 자신이 공국의 유일한 왕족 계승자가 되었으므로 그 의무를 다하기 위해서였음.

그리고 바쁜 공무에 몰두하면서 동생이 떠난 고통을 잊기 위해서였기도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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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그란의 지배자로 인정하는데도, 트리스타가 대공 대리를 고집하는 이유는

그루미를 왕으로 섬기고 자긴 보좌하길 원해서 그럼

황제가 되더라도 그루미가 황제 자리를 원하면 냉큼 옥좌를 넘겨주려 들 것 같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