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아


전쟁을 숭상하고 용맹한 전사를 우대하는 발할라 동맹에서

얌전하고 연약한 실반의 대공 레이아는 영락없는 낙오자였음.


실반 공국은 풍부한 자원을 가진 나라였지만 군사력은 6대 공국 중에서 약체에 속했음.

게다가 하필 인접한 국가는 강대한 군사력을 갖췄고 야심이 강한 티르빙 공국.

실반은 언제 티르빙에 삼켜질지 모르는 위태로운 상황에 놓여있었음.


실반의 국민들은 강한 지도자가 나라를 이끌어주길 바랐고,

당시 실반 대공이었던 레이아의 아버지는 그에 걸맞는 용장이었음.

하지만 딸이었던 레이아는 국민들에게 깊은 실망을 안김.


레이아가 태어난 날, 대공은 허약한 딸 아이에게 실망했고

레이아가 성장하면서 이 실망은 점점 더 커졌음.


레이아는 선천적으로 병약해서 군사훈련에 전혀 적응하질 못했음.

게다가 성격은 발할라 동맹의 전통과 정반대로 아주 상냥하고 착했음.

어릴 적 사냥을 나갔을 때는 심지어 몰래 사냥감을 풀어주기도 했음.


오랫동안 병석에 누웠던 탓에 도검이나 BM에 흥미가 없었고 대신 독서와 작문을 좋아했음.

한가할 때면 성안의 도서관에 틀어박혀서 그곳에 있는 모든 문헌을 읽었음.

시종에게 전국에서 책을 수집시켰고, 성을 지나가는 상인에게서 외국의 서적을 사달라고 부탁하기까지 했음.


태어난 곳이 발할라 동맹이 아니었다면, 총명하고 학구적인 연약한 왕녀로 사랑받았을 것임.

하지만 실반 공국은 전쟁과 무력을 숭상하는 발할라 문화권이었음.

온 나라가 이 연약한 왕녀에게 실망했고, 특히 실반 대공의 실망이 가장 컸음.


그는 레이아를 전사로 키우고 싶어했지만 신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레이아는 그의 기대에 미치지 못했음.

그를 더욱 절망시켰던 것은, 레이아가 선천적인 피공포증이라서,

피를 보면 구토를 일으켰기 때문에 전투에 나서기는 커녕 관전도 어려웠다는 거임.


그는 레이아에게 큰 통에 담긴 피를 쏟아부어서 억지로 선혈의 냄새에 적응시키는 것을 포함해서

온갖 방법으로 그녀를 단련시켰음. 하지만 이런 훈련들은 그녀를 병석에 눕혔을 뿐이지 실질적인 효과가 없었음.


그렇게 몇 년을 몰아치다가 결국 레이아의 동생이 태어났을 때,

대공은 결국 딸을 포기했고 왕위 계승권을 동생에게 넘기기 위해서 그녀를 국외로 추방시켰음.


다만, 레이아에게 이 추방은 오히려 해방에 가까웠음.

그녀는 해외의 대학에 가서 공부에 빠져들었고, 그녀가 좋아하는 지식을 구속받지 않고 추구할 수 있었음.


레이아가 추방되고 얼마 안 지나서, 티르빙 공국이 실반 공국에 갑작스러운 공격을 걸었음.

이 기습으로 레이아를 제외한 실반의 왕족은 모두 포로로 잡혔고,

실반 공국의 주력 부대는 전멸했음. 나라의 멸망은 거의 확정적이었음.


실반의 국민들이 망국의 노예가 되었다는 사실을 절망하면서 받아들이는 사이에

모두에게 잊혀졌던 추방왕녀는 발할라 동맹의 다른 네 공국을 단독으로 방문했음.

그리고 기적이 일어났음.


레이아는 6대 공국 중에서도 특히 군사력이 강력한 그란 공국의 대군을 이끌고 돌아와서 티르빙의 병력을 물리쳤고,

전후에는 그란의 대군도 완전히 철수시키면서 모든 국토를 지켜냄.


그것이 가능했던 것은 그녀가 각국을 돌아다니면서 교묘한 언변으로 각 대공들에게

티르빙이 실반의 풍부한 자원을 독점하면 6대 공국 중 가장 강력한 국가가 될 것이라고 믿게 만들었기 때문임.


레이아는 이 세력 균형의 논리로 그란 공국의 군대를 움직여서 티르빙의 군대를 격파했고,

승리한 그란 공국에는 다른 공국들이 압력을 넣도록 유도해서 그란의 군대도 조국에서 철수하게 만든 것임.


혼자 힘으로 두 강대국이 물러나게 만드는 것은 어떤 강자도 할 수 없는 일이었음.

이 건으로 레이아의 명성은 동맹에 울려퍼졌고, 석방된 실반 대공은 민중의 환호 속에서 직접 레이아의 머리에 왕관을 씌워줌.


레이아가 대공의 자리를 계승한 것을 들었을 때,

이 전쟁으로 인연을 맺은 그란의 왕녀 트리스타는 경멸하듯 웃었음.


"꼼수를 부려서 얻어낸 평화가 어찌 오래 갈 수 있겠는가.

오직 강력한 힘만이 오랜 평화를 가져올 수 있다.

하지만 조금은 총명한 편이니 나중에 황제가 되면 '집사'로 쓰는 것도 생각해 볼 수 있겠지."


비록 무력을 최고로 치고, 외교 수단을 경멸하는 트리스타라도

레이아가 발할라 동맹에서 드문 내정과 외교의 인재이며,

왕이 나라를 맡기고 안심하고 출정할 수 있는 재상감이라는 것을 인정했음.


그리고 레이아를 비웃은 그녀의 안목은 틀리지 않아서,

세력 균형의 논리로 침입자들을 물리쳤지만, 티르빙과의 전쟁에서 주력을 전부 잃은 실반은 여전히 위태로운 상태였음.

레이아는 어쩔 수 없이 그녀의 지혜를 총동원하며 각국을 전전했음.


그러는 동안, 레이아는 궁니르의 대공 아르셀과 우애를 쌓았음.

그녀는 무력을 가진 자를 우대하는 선제전에서 아르셀이 황제가 되기를 간절히 바랐음.


그리고 아르셀은 자신을 지지해주는 친구를 이렇게 평했음.


"레이아는 겉으로는 연약해 보이지만,

여전히 뼛속 가득히 용기로 채워진 발할라인의 한 명입니다."


레이아는 발할라인들이 떠받드는 강력한 무력은 타고나지 못했지만,

결코 책임으로부터 달아나지 않았고, 상대가 아무리 강해도 홀로서라도 맞서며,

끝내는 조국에 희망이 무엇인지를 알려줬음.


그녀의 내면은 누구도 의심할 수 없을만큼 강인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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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섭에선 레이아의 나라를 이르빙 공국이라고 번역했었는데

중섭명이 希尔文라서 실반으로 번역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