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드


경박한 성격의 젊은 귀족.

아름다운 처녀를 보면 떨어지질 못하고, 스스로 우아하고 매혹적이라고

생각하는 방식으로 말을 거는데 열중하는, 자칭 "장미의 사랑꾼".


브리튼에서 제일 가는 사냥꾼이라 허풍을 떨지만,

그의 과장된 표현은 실제로는 여성들에게 외면당할 뿐이었음.


불쌍하게도 본인은 그것에 대한 자각이 전혀 없음.

그래서 아직도 솔로임.


성격은 제쳐두고 필드 본인은 보기 드문 만능 파일럿임.

아무리 복잡한 조작이나 무기 시스템도 그에게는 식은 죽 먹기였고,

심지어 각종 기체의 개조나 정비도 더할 나위 없었음.


안타깝지만 이런 천부적인 재능도 대부분 그가 이성에게 폼을 잡을 때 사용되었음.


"경박한 호색한"으로 유명하지만 이상하게도

일반적으로 필드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은 여기서 그치곤 함.

그리고 인간은 언제나 복잡한 동물임.



"나는 말이야.

나는 옛날에 한 여성을 만난 적이 있어.

그녀의 두 눈동자는 마치 창공에 떠 있는 비취별 같았고,

미소는 봄의 첫 햇살보다도 빛났지.

지금도 그 오후를 기억하고 있어.

그녀는 긴 치마를 입고 향기가 만발한 정원을 가볍게 걷고 있었어.

푸른 참새처럼 내 시선을 스쳐갔지.

그녀를 처음 만난 순간 나는 알았어.

내가 분명히 그녀에게 사랑에 빠졌다는 것을.

…….

내가 사랑한 몇 번째 사람이냐고?

어엉?

모르겠어?

나는 그녀만을 위해서 건반을 쳤던 적이 있어.

그리고 그 다음은 존재하지 않아.

…….

여어, 귀여운 하야 동생. 여기 봐줘. 리필 부탁해."



그는 주점 바빌론의 구석에서 술에 취해야만 해방될 수 있었음.


제국에서 "친왕(親王)"이란 칭호는 군주 다음으로 큰 영광을 상징했음.

세습을 통해 물려받았으며, 고대로부터 계승된 브리튼 왕가의 존귀하고 고아한 핏줄이 흐르는,

인세에서 지고의 신분이라는 증명임.


필드는 그런 열망 속에서 태어났음.

하지만 그의 어머니는 친왕이라는 칭호를 이어갈 수 있는 핏줄을

가족에게 남겨주기 위해서 자신의 목숨을 바쳤음.


어린 시절의 필드는 커다란 아버지와 하인의 바지통 사이를 통해서만 바깥 세상을 엿봤음.


아버지는 온종일 공무에 몰두했고,

집의 하인들은 나무처럼 차가웠음.


비록 부유하고 높은 신분이었지만,

필드의 얼굴에는 웃음이 잘 떠오르지 않았음.


하지만 하늘은 이런 그를 굽어살폈고,

9살 때, 필드는 아버지에게 자신이 조립한 기계 애완새를 보여주었음.


아들의 놀라운 재능을 발견한 아버지는 즉시 필드를 제국 최고의 BM 학교에 보냈고,

돈을 아끼지 않고 제국 톱클래스의 BM 엔지니어를 초빙해서 그의 개인교사를 맡겼음.


목적은 단 하나, 필드를 제국 일류의 BM파일럿으로 키워서,

몰락한 자신의 가문을 부흥시키는 것이었음.


필드는 이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고, 학교에서 가장 나이가 어린 학생인데도

다른 사람의 3분의 1도 안 되는 기간에 모든 수업을 마쳤음.


13살 때 아버지에게 인생 첫 BM으로 스콰이어 커스텀 한 대를 받았고,

같은 해에 이 개조된 스콰이어를 몰아서, 강자들이 구름처럼 몰려드는 브리튼의 전국 BM리그의 우승을 차지했음.


10여 가지에 달하는 무기 파츠를 동시에 조종하며 공격하는 모습에,

수많은 명승부를 지켜봤던 해설가들은 넋을 잃었고,

아무도 그의 다음 공세와 계략을 꿰뚫어보지 못했으며,

모든 추측을 결국 "천재"라는 두 글자로 얼버무릴 수 밖에 없었음.


하지만 환호와 찬사에 휩싸였는데도 그의 얼굴은 여전히 밝지 않았음.


언론의 취재가 맹렬히 몰려들었고,

필드는 왕실로부터 제국 최고의 BM 파일럿을 상징하는 훈성(勳星) 메달을 수여받았음.

득의만면한 표정의 아버지를 보고서, 필드는 묵묵히 받아들였음.


시합에 참가해서, 이기고, 시합에 참가해서, 이기며, 끊임없이 이것을 반복했음.

필드는 "훈성의 아이"라 불리기 시작했고, 그가 모는 스콰이어는 "백금의 매"라고도 불렸음.


모든 것이 이렇게 빛났지만, 그에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었음.

사람들의 경모에는 온기가 없었기 때문에, 마음 속의 결핍이라는 단단한 얼음을 녹일 수 없었음.


필드의 15번째 생일에는 아버지가 그를 위해 성대한 생일잔치를 열어줬음.

수많은 사회적 명사들을 모셔왔고, 물론 그를 뒤따르는 수많은 언론사 기자들이 있었음.


사람들의 시끄러운 목소리와 플래시 때문에 어지러웠던 필드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그에게 맞지 않는 파티를 빠져나와, 나무가 무성한 정원 속으로 도망쳤음.


봄날의 정원은 생기발랄했고, 셀 수 없이 많은 꽃들이 앞다투어 피어있었음.

애석하게도 아름다운 경치도 그에게는 유명무실했음.


풀이 죽은 그가 막 앉아서 쉬려고 했을 때,

문득 조금씩 다가오는 발소리가 들렸음.


아버지가 쫓아온 줄 알았던 그는 급히 옆의 관목으로 된 울타리 뒤에 숨어서,

살그머니 너머를 살펴봤음.


자갈로 된 오솔길을 사뿐히 걸어 온 그 사람이 바로 필드의 두 눈동자에 비쳤음.


엘라히스 유닐, 프레스 공작의 막내딸은 이번에 두 오빠를 따라 연회에 참석했음.

그녀도 역시 인사치레로 가득한 사교 파티에 관심이 없어서,

핑계를 대고 슬그머니 걸어와서 정원에서 바람을 쐬었음.


천사 같은 소녀의 가녀린 몸짓이 필드의 가슴에 각인되었고,

그는 자신도 모르게 자리에서 일어났음.


"와앗?"


갑자기 나온 소년이 엘라를 깜짝 놀라게 했음.


"죄, 죄송합니다, 레이디. 고의는 아니었습니다!"


소녀는 그를 자세히 살펴보았음.


"당신은, 필드?

그 필드 친왕이신가요?"


엘라는 TV에서 본 모습을 한번에 알아맞췄고,

눈을 반짝반짝 빛냈음.


"아, 뭐, 예"

"푸훗, 당신도 뛰쳐나왔나요?"


소녀의 웃는 얼굴은 환해서, 필드의 어두운 마음을 비춰주었음.

필드는 처음으로 빛을 느꼈고, 이 따스한 느낌에 마음이 기울었음.


15살의 필드와 18살의 엘라는 낮은 관목 울타리를 사이에 두고

서로를 수줍게 웃으며 바라보았음.







죽은 듯이 고여있던 필드의 내면에 조용히 잔물결이 일어났고,

천재의 칭호가 제국에서 더욱 크게 울려퍼졌음.


그의 애기는 끊임없이 바뀌었고,

그가 받은 메달과 트로피가 점점 집에 있는 전시벽 가득히 걸렸음.

그의 젊은 얼굴에도 희미한 미소가 자주 떠올랐음.


아마도 그것이 필드에게 가장 즐거웠던 나날이었을 거임.

아무도 그가 그녀에게서 무엇을 얻었는지 알지 못했고,

비록 그가 그것이 결국 허황된 것이라는 것을 어렴풋이는 눈치챘더라도.


사람들은 모두 무언가에 속박되어 있었고, 허황된 바람은 용납될 수 없었음.

신분이 높을 수록 속박은 더욱 견고해졌지만, 그것을 깨닫는 게 너무 늦어버렸음.


그가 아버지에게 장악된 삶에서 벗어날 수 없었던 것처럼,

그녀도 혼약자로서 가문의 사명을 다 할 운명이었음.

두 소년소녀가 삶의 악의에 찬 굴레를 벗기에는 너무 일렀음.


그의 18번째 생일 3달 전에, 그는 아버지에게서 정식으로 친왕의 칭호를 물려받았음.

그리고 황실근위기사단의 부단장으로 영전했음.


수여식에서 그에게 은독수리의 문장을 달아준 것은

왕자의 젊은 약혼녀 엘라히스 유닐이었음.


그는 왕자의 결혼식에 초대받았음.


3달 뒤에 그녀가 순백의 마차에 태워져서 왕자의 저택으로 향하는 동안,

필드는 자신의 방을 잠그고, 초대장을 찢었고, 3달 전에 맞춘 피아노를 박살냈음.


이야기는 여기서 끝내야했겠지만,

회한으로 가득하긴 해도, 아직 실낱같은 미련이 남아있었음.


비록 그렇더라도 상관없었음.


제국은 평온 속에서 나날히 강성해졌고,

필드의 가문도 이 추세에 따라서 크게 번성했음.


하지만 필드는 더 큰 권력이 주는 윤택함을 누리면서 성격이 크게 변했고,

온종일 술과 여색에 빠져들었음.


나중에는 그의 19번째 생일파티 후에 수많은 매체의 카메라 앞에서

모든 이들을 크게 실망시킨 발언을 했음.


"향후의 계획?

거야 당연히 이 세상의 모든 좋은 여자들을 얻는 여행을 떠나는 거지!

아름답고 성숙한 여자보다 끌리는게 어디 있어?"


얼마 후, 그는 정말로 친왕의 칭호를 버렸고,

작별인사도 없이 자신의 "미(美)를 찾는" 여정을 시작했음.


당시에 아무도 이 천재를 안타까워하지 않았고,

오히려 황당무계한 그를 제국의 웃음거리로 만드는 데 열을 올렸었음.


인간은 복잡한 동물이라서,

자신을 위장하지 않을 때가 없었고, 변하지 않을 때가 없었음.


어쩌면 스스로 가식과 타락을 즐기는 걸로 보이는 사람들이야말로,

순결과 준수를 가장 잘 체득할 수 있을지도 모름.


필드의 과거사는 여기서 완결되었고,

그가 거신의 마스터가 되는 것은, 그로부터 한참 뒤의 일이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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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드는 12거신 실버랜서의 제1 마스터 자격자임.

미래에는 현재 씩씩대며 거신의 제1 마스터를 찾고 있는 세라스티아와 만날 예정.


배경설정에서 두리뭉실하게 표현하긴 했지만, 피아노 언급도 그렇고,

필드가 방탕한 생활을 시작한 이유는 자기 나름대로

엘라히스 말고는 아무도 진심으로 사랑하지 않겠다는 뜻으로 보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