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은시대 초기.

당시, 신대륙(아메리카)에서는 소규모 전투가 끊이지 않았지만 

큰 전쟁은 일어나지 않았고, 전체적으로 비교적 평화로운 상태였음.

그레이트브리튼 제국이 제1차 신대륙 전쟁을 시작할 때까지는.


세계 전체가 불붙은 화약통처럼 극소수 지역을 제외한 나라들에서 전쟁이 일어났음.


아프리카 통일전쟁으로부터 유럽 대륙전쟁에 이르기까지 

제1차 신대륙전쟁을 기점으로 연쇄적으로 터져나온 분쟁들이 꼬박 10년 동안 이어졌음.

유럽 대륙전쟁이 끝났는데도 세계평화는 선언되지 않았고, 4년 뒤에 바바랄 내전이 발발하자, 

곳곳에서 포성이 울려퍼지면서 다시 전 세계는 전쟁의 소용돌이에 휩싸였음.


여기서는 백은시대에 일어났던 대규모 전투 중 가장 최근에 일어난 사건이며,

기계교단이 처음으로 자신의 이빨을 드러냈던 정화전쟁에 대해 설명하겠음.


신력 18년(AD 2492년) 바바랄 연맹 최대가맹국인 이븐 왕국의 친왕이 공개적인 장소에서 교단을 공공연히 풍자했고,

교단 측의 분노를 사면서 수십만의 기계군단이 일주일만에 집결해 바바랄 연맹을 향해 진군하는,

세계가 주목하는 정화전쟁의 서막을 열었음.


이븐 친왕이 왜 이렇게 국익에 맞지 않은 말을 했는지는 아무도 알 수 없음.

친왕은 그 발언을 한 다음 날, 교단의 기체 데몬 블레이드에 의해 자신의 침궁(寝宫)에서 참살당했고, 

진실은 역사 속에 감춰졌음


교단 기계군단의 대군이 국경까지 밀어닥치자, 바바랄 연맹의 회원국들이 너도나도 움직일 수 있는 군대를 총동원해서 대응했음.

국경지대에서 강철의 대해와 같은 수십만 기갑대군이 대치했고, 전 세계 모든 이의 신경이 곤두섰음.


기계교단은 대치를 계속하는 대신 이튿날 정오에 직접 공격을 개시했고,

빨강 일색의 기체들이 마치 날뛰는 붉은 홍수와 같이 

모든 이의 예상을 뒤엎고 며칠 만에 연맹군의 임시사령부를 간단히 분쇄했음.



당시의 장면은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작전지역 사방 수십 리의 하늘을 포탄과 총탄이 뒤덮었다.


지면에 온통 구덩이와 도랑이 패였고, 기계의 잔해가 가득했다.

양산기는 화력집중구역에선 3초도 버티지 못하고 강철로 된 종기마냥 구겨졌고,

특장기는 더 오래 버텼지만 에너지 실드를 다 소모하면, 사방에서 날아오는 포화와 미사일에 순식간에 잿더미로 변했다.

전장 전체가 고기분쇄기 같았다.


- 문서실의 편년사 일부



양자의 전력은 수적으로는 큰 차이가 없었지만, 병력의 질적 차이가 너무 컸음.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교단의 병사들에 비하면, 연맹의 병사들은 비교선상에 오르지조차 못했음.


며칠도 지나지 않아, 연맹의 연합부대는 뿔뿔이 흩어져 도망쳤음.

지휘부도 교단의 대군에 짓밟혔음.


바바랄 연맹이 전후에 일방적으로 내놓은 공식상의 데이터에 따르면,

양산기의 손실만으로도 30만 대에 달하며, 

특제나 실험기 및 용병의 숫자는 예상도 안 가는데다가, 탄약의 손실도 엄청났음.


세계가 주목한 대전은 시작부터 극적으로 추세가 정해졌고,

남은 3개월 동안 기계교단은 파죽지세로 진격하여, 이븐 왕국의 수도를 함락시켰음.

이제 결말이 난 것만 같았음.


하지만 이븐 왕국의 수도를 함락시킨 교단의 대군은 예상대로 개선하지 않고,

하루 만에 바바랄 동부에 있는 나라 츄젤의 수도로 진군했음.

신도들의 신앙이 폭주했고 이미 그들의 적은 기계신을 모욕한 모독자에서 이교도 전체로 바뀌어 있었음.


타국들의 관점에서 교단이 이븐 왕국을 공격한 것은 존엄을 세우기 위해서였지만,

츄젤을 함락시키려 하는 것은 교단 고위층의 적나라한 야심이 드러난 것이었음.

이 때문에 각국 정상들은 발칵 뒤집혔음.


츄젤의 이웃나라 극동공화국의 군대가 빠른 속도로 전투 전부터 서부 국경지대에 집합했음.

공화국의 이러한 움직임은 곧 각국 지도자들에게 보고되었음.


교단도 예외가 아니었는데도 붉은 군단의 진군속도가 느려지지 않은 것은,

교단 고위층의 선택을 대변하는 것이기도 했음.


방금 전 대전의 여파가 아직 가시지 않았음에도, 다음 전쟁의 포연이 자욱해지기 시작했음.


교단군은 바바랄 때처럼 츄젤을 압도적으로 유린했음.

츄젤 최강의 전사들인 팔부중이 온 힘과 지혜를 짜내어 결사적으로 대항했지만,

선봉에 선 교단기사 뷔노라는 혼자서 그들 전부를 하나하나 참살하며 마침내 츄젤의 수도에 당도했음.


그때, 마침내 극동공화국이 전쟁에 개입했음.

여기서 교단은 창립 후 수 백년만에 생소한 경험을 하게 됨.


극동무제 홍우가 후속부대가 따라잡기도 전에 단신으로 교단의 대군에 돌진했고,

교단군을 뚫고 뷔노라와 전투를 벌였음.


홍우는 정화전쟁 내내 누구도 당해내지 못했던 교단기사를 격파했고 이어서 적군을 혼자서 휘저었음.

뒤따라온 극동군은 지휘관을 잃은 교단군에게 맹공을 퍼부었음.


교단군은 막강한 화력을 보유했지만, 극동군의 장갑돌격전술을 상대하면서 

처음으로 자신들의 전차부대가 백병전에 특화된 BM에 취약했다는 것을 깨달았음.


열세에 처한 교단군은 츄젤에서 바바랄 연맹으로까지 후퇴했고, 바바랄 서부에서 괴멸했음.

고작 며칠로 100명이 넘는 상위사제가 전사했고, 50개 남짓의 대대가 전멸했음.

이것은 창립 이래 무적이었던 기계교단이 처음으로 겪은 참패였음.


하지만 교단을 밀어내기 위해서는 극동측도 큰 피해를 입을 수 밖에 없었고,

자존심에 상처를 입은 교단은 즉시 백병전용 BM을 상대하기 위해, 신병기를 개발해서 전선에 투입하기 시작했음.

바바랄 영내에서 시산혈해를 쌓으며 치열한 격전이 이어졌음.


이후, 자신들의 땅이 강대국들의 싸움판이 되길 바라지 않았던 

바바랄 연맹이 양국에 정전합의를 제안했고 그제서야 정화전쟁은 막을 내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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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화전쟁은 작중에서 언급된 대규모 전쟁 중 제일 상세가 많이 밝혀진 사건임.

중섭 구 버전에서 검열되기 전에 공개되었던 자료들과

작중에서 밝혀진 설정들을 정리해봤음.


참고로 교단이 갑자기 츄젤에 쳐들어간 것은 

대외적으로는 교단 광신도들의 폭주가 원인이지만

실상은 테크노아이즈가 츄젤의 땅밑에 있는 유적을 노리고 일부러 그렇게 유도한 것임.

황금시대보다 이전에 만들어진 고대기체들이 잠든 곳이라서 그게 탐났던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