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 너 무슨 일 있냐? 일주일 전부터 표정이 왜 그래?"


나의 절친 이동수가 내 집 근처의 식당에서 게임이 시작되기 3일 전에 내게 건넨 말이다. 나는 애써 부정하려 했지만 동수는 계속해서 나를 몰아붙였다.


"아니긴 뭐가 아니야. 너 방금 나랑 얘기할 때도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면서 주변을 살폈었잖아. 마치 무언가를 찾으려는 것처럼."


"진짜 별 일 아니라니까? 진짜야."


말을 절었다. 병신같이.


"지- 진짜 벼- 별 일 아니라니까? 너 지금 계속 떨고 있는데 그 말을 나 보고 믿으라고? 솔직하게 말해."


말하는 것이 곤란하다거나 한 상황은 아니었다. 오히려 누가 제발 내 말을 좀 들어줬으면 좋겠다 싶은 마음이 있었다. 다만 사실대로 말했다가는 미친 놈이라고 손절 당할지도 모른다. 경찰에 신고할 때에는 적당히 해킹이나 몰카 사건인 것 같다고 둘러댔지만, 솔직하게 말해야 한다면 그 경찰들의 기억조차 뒤흔드는 무언가가 계속해서 그 신고 기록을 지운다는 말까지 해야하는 입장에선 이런 추궁이 여간 고통스러운 것이 아니었다.


"진짜 말 안 할 거야?"


"응."


"응? 잡았다 이 자식. 숨기는 거, 있구나?"


말려들었다. 아까보다 더 병신같이.


"대체 숨기는 게 뭐길래 그렇게까지 입을 다무려는 거야? 사람이라도 쳤어?"


"아니. 그런 쪽은 아니..."


동수가 하는 말에 적당히 대응을 하며 식당에 놓인 TV를 빤히 바라보았다. 이유는 별 거 없었다. 그저 나와 같은 일을 겪은 사람이 그 사실을 언론에 제보하지 않았을까 하는 같잖은 희망에서였다. 다만, 재수없게도 뉴스에서 성범죄에 관한 내용이 나오고 있었기에...


"어어, 그거라면 아무리 나라도 쉴드로 널 치는 수 밖에 없다."


하는 동수의 장난 섞인 까임을 받아야만 했다. 하지만 뉴스의 내용이 워낙 기묘했기에 까임을 받으면서도 반격할 생각조차 못 했다. 뉴스의 내용은 분명 강간범의 정액까지 채취하는데 성공했음에도 강간범의 DNA를 분석하지 못했으며 검출기의 고장은 없었다는 내용이었다.


요즘 아무래도 세상이 미쳐돌아가는 것 같다. 긴장감 때문에 기껏 돌아온 현실감이 몸을 빠져나가자 생각이란 걸 하는 것 조차도 힘겨워진 나는 작은 한탄을 뱉고 말았다.


"그 빌어먹을 광고 때문에 무슨 일이 벌어지는 건지..."


"방금 광고라고 했냐?"


그리고 불행히도 동수는 그걸 듣고 말았다.


"뭔 광곤데. H 사이트의 광고를 실수로 눌렀다가 랜섬웨어라도 걸렸냐?"


"아니라니까. 그냥- 그냥 좀 묻지 좀 마, 묻지 말라면."


평소라면 웃어넘기는 걸 넘어 합을 맞추어가며 다음 농담을 뱉었을 나였건만, 이젠 슬슬 저 웃음이 짜증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짜증은 이윽고 허무감으로 변해갔다.

진심으로 분노한 나의 반응에 동수는 미안하다는 듯


"야, 야 화 풀어. 아줌마~ 여기 이거랑 이거 하나씩 더 포장해서 주세요! 내가 안주랑 술 살 테니깐, 내 집에서 부어라 마셔라 놀자. 무슨 일 있었는지 묻진 않을 테니까 기분이라도 풀라고. 정신줄 놓고 날뛰어 보는 거야!"


어색하게 웃으며 내 기분에 맞춰주었다.

그래. 답이 없어보이는데 미치기라도 하자. 그런 심정으로 가볍게 그 제안을 수락하고 헤픈 용서를 한 나는


"고작 이거 하나 때문에 쫄았던 거냐? 1 티어 쫄보답다 진짜."


다음 날 아침, 아수라장이 된 거실에서 자신의 이메일을 보여주는 동수를 보면서 깨달았다.

나, 술 먹고 사고 쳤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