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은 조선.

임진왜란이 끝나고 얼마 되지 않아, 조선에 정체를 알지 못할 시귀(시체 귀신, 식인을 하는 귀신)들이 출몰하기 시작했다.

시간이 지나 시귀가 한양에까지 출몰, 사태의 심각성을 느낀 조정은 항왜들에게서 귀살대의 존재와 호흡법, 오니에 관한 내용을 접하고, 정부 직속 시귀 퇴치 부대인 멸귀대를 창설하여 조선 팔도를 보호한다.


그로부터 50년 가량의 시간이 흐른다...


여기는 개경의 만수산. 나는 멸귀대의 금주,  강신철.


분명히 만수산에 시귀가 출몰하고 산지의 민간 마을이 여럿 궤멸했다 하여 찾아왔거늘, 어째서인지 사람을 많이 잡아먹은 듯한 시귀는 없다. 약한 잡귀들은 여럿 베었지만, 피해규모를 생각한다면 이런 잡귀가 아닌 뭔가 더 강한 시귀가 있어야 한다. 어딘가에 반드시 숨어있을 테다.


"기이하도다... 여태 시귀가 숨는다는 기록은 없었거늘..."


"검사이시로군요...? 대감...?"


이 귀기. 이 산의 시귀 중 가장 강한 녀석임에 틀림없다. 마을 하나를 통째로,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모두 학살한 놈이다. 분노가 차오른다.


"죽어다오. 네놈의 죄악을 차마 용서할 수 없다."


"대감이야말로 죽어주시지요...? 저는 양반을 보면 참고 있을 수가 없답니다...?"


강철의 호흡. 제 1형.


《단조.》


금주의 환도가 날뛰고 세 번의 참격이 시귀에게 날아가 팔을 날려버렸다. 하지만 목에는 날이 닿지조차 못했다.


"칼솜씨가 좋군요...?"


혈귀술.


《목공.》


생전에 나무꾼이나 목수였나. 연장 솜씨가 뛰어나다. 심지어 공중에서 휘두른 도끼인데도 참격이 날아든다.


"이거 까다롭겠구려."


강철의 호흡. 제 2형.


《주조.》


순식간에 일륜도가 시귀를 꿰뚫고, 찢어버렸다.


강철의 호흡. 제 3형.


《접쇠.》


이내 시귀는 허리가 접히듯 베이며 이등분되고, 목으로 칼이 날아들었다.


캉.


목에 칼이 들어갔는데 베이지 않았다. 목이 단단해.


"이런 이런... 저를 두 동강 내셔버렸군요?


혈귀술.


《조각상.》


순식간에 두 동강난 시귀 조각에서 나무 몸이 돋아나더니 각각 하나의 시귀처럼 움직이기 시작했다. 팔을 베어 가까스로 막았지만, 그 팔이 또다시 자라나 시귀가 세 마리로 불어났다.


그렇다면,


강철의 호흡. 제 4형.


《풀무질.》


시귀들의 몸이 멀리 날아갔다.


"커억.?.!"


그렇지만, 주의 등에는 도끼가 박혀 있었다.


입에서 피가 섞인 기침이 튀어나왔다.


"나무 인형에 급급하시다니, 주도 별 것 아니군요. 하긴 여태 여기에서 얼쩡거린 검사들은 모조리 끝장났지요. 제 작품이나 좀 보시지요..?"


목공으로 만든 조각상들. 검사들이 죽어가는 모습을 재현한 것이다.


몸이 뚫리고, 검에 찔리고, 머리가 터졌다.


"조만간... 조각상을 하나 더 만들겠군요..."


"아니."


"여기서 끝난다."


떠올리자. 검술을 배우던 때의 모든 기억을.


기억해라, 떠올려라, 느껴라.


강철의 차갑고도 뜨거운 기운을.


"나는 죽는다. 분명히 오래 못 버틴다! 하지만..."


"나는 내 사명을 다하겠다!"


강철의 호흡, 제 8형.


《용광로의 불길!》


모든 시귀와 조각상들이 잘리고 불탄다.


검사는 피를 흘린다.


"결국 이렇게 끝나는 것이로구나..."


"참으로 덧없다. 덧없어."


"하지만, 사내 대장부로 태어나 이리 살다 갈 수 있다는 것이 영광이구나."


"모두들..... 잘...... 있게............"


검사는 마침내 눈을 감는다.


당당하게 하늘을 보고 서서, 미소 지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