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캬루'

캬루라는 단어는 제국의 모든 캬루를 총괄하는 단어에요 랜드솔의 길거리에서 행인들에게 구걸하는 캬루도, 농촌에서 지주에게 곡물을 바치는 캬루도, 신분증없이 살다가 발각되어 도시의 감옥에서 아마도 생을 마감할 캬루도 모두 캬루라고 불려요 


제국내에서 우선 모든 캬루는 이름을 가질 수 없어요 그냥 어떤 캬루든 그저 캬루이지요  제국의 모든 백성들은 태어나자마자 출생신고와 함께 이름을 신고하여 신분증을 만들어야 해요 출생신고는 모든 제국민들에게 세금을 걷을 의무를, 신분증은 그 덕에 제국내에서의 삶을 영위하게 해주는 권리를 상징해요 캬루도 제국내에서 태어나니 출생신고를 해요

하지만


'캬루는 이름이 없으니 신분증을 만들 수 없어요'


신분증이 없으면 제국내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정말 적어요 우선 신분증이 없으면 관료들과 군인, 상인과 기술자가 될 수 없어요 또한 학교에도 다닐 수 없고 제국내의 병원과 공공시설을 일체 이용할 수 없고 약도 구매하지 못해요 국경을 벗어나는 것은 물론 도시와 도시를 넘나드는 이동도 불가능해요 토지와 건물을 소유할 수도 없고 그저 담벼락으로 둘러싼 '특별구역'에서만 지내야 해요 이외의 지역에서 신분증 없이 있다가 잡히면 얄짤없이 감옥행이에요 신분증이 없으면 장례도 치를 수 없고 시신을 묻을 수도 없어서 몰래 길바닥에 묻거나 강같은 데에 버리는 수밖에 없어요 마지막으로 제국에서 개최하는 모든 연회에 참석불가하고 폐하가 백성들에게 하사하는 선물들도 일체 받을 수 없어요 


제국의 법은 교묘해서 이렇게 모든 캬루에게서 합법적으로 세금은 걷고 권리는 주지 않게 해주었지요 제국 내에서 신분증이 없는 계층은 폐하를 위협했던 반역자와 살인등을 저지른 중범죄자 그리고 캬루밖에 없어요 이렇게되니 캬루는 도시에서는 구걸과 잡일 그리고 뒷골목에서 일어나는 매춘등의 일밖에, 시골에서는 지주들에게 빌붙어 농노의 생활을 영위할 수밖에 없어요


결국 제국내에서 캬루는 그런 존재인 것 뿐이지요


몇몇 캬루는 이런 제국의 상황들이 부당하다며 제국밖으로 탈출을 시도하기도 했어요


하지만 제국과 랜드솔에 있는 황궁은 그리 만만한 곳이 아니었지요 제국의 근위부대와 사냥개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제국민병대는 도망치는 캬루들을 도망치는 족족 잡을 수 있었어요


그 뒤에 잡힌 캬루가 어디로 갔는지는 아무도 몰라요 

정말 아무도 몰라요


다만 도망가던 캬루가 잡혔다는 신문이 나올 때 쯤이면

산속에서 부서지다 만 뼈다귀가 나온다거나 마을의 쥐떼들이 갑자기 배가 뚱뚱해 진다거나 제국 곳곳의 도시감옥 최하층에서 고양이 울음소리가 들리다가 그 소리가 멈추면 무언가가 들것에 실려 대장간 용광로 혹은 하수도 쪽으로 간다거나 병영으로 왠 두껍게 싸인 흰 천덩어리들이 들어갔다가 씨뻘개져서 수레에 실려 나왔다던가 랜드솔의 한 병원으로 안대를 쓴 고양이수인들이 잔뜩 들어갔다가 나오지 않았다거나 또는 고양이 수인들이 황궁 뒷문으로 들어갔다거나 하는 소문만이 무성할 뿐이에요


하지만 언제나 변수는 있는법 

먼 옛날 선대 캬루가 했던 경고를 들었던 몇몇 캬루가 과거 제국 곳곳에 캬루들만 사는 마을들을 만들어 놓았어요 그 마을들은 산 속 깊은 곳들에 숨겨져 있었기에 눈에 띄지 않았고 캬루 무리는 다른 백성들 눈에 띄지 말라는 어른캬루의 말을 들으며 살았기에 지금까지 걸리지 않았죠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그 규칙은 희미해져 점점 캬루는 마을로 내려가게 되었고 그 수는 점점 증가하였지요

결국 랜드솔 황궁에서는 이를 의심하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어전회의끝에 이런 결론을 내렸어요 


'캬루가 제국 어딘가에 숨어사는구나...'

하고 말이에요



<다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