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바탕 여름장마가 지나간 후, 그날은 유독 하늘이 참 맑았어요 그런 기분좋은 날씨 속에 제국은 들뜬 분위기 였어요 랜드솔 황궁에서는 거대한 궁중연회가 열리고 제국 곳곳에서는 축제들이 열리고 있었죠


그런 들뜬 기분과는 별개로 도시성벽의 바깥은 오늘도 조용했어요 그곳은 캬루만이 모여사는 이른바 '특별구역' 이었지요 집들은 판잣집에 길은 캬루 두 마리가 지나갈까 말까 할 정도로 좁은데다 하수도가 없어 오물이 새어나와 질척하고 냄새도 나요 그리고 상수도가 없어서 캬루는 우물을 사용하는데 그 물들은 대체로 오물로 인해 오염이 되어있어서 심심찮게 전염병도 돌고 그때마다 캬루는 죽어나기도 했지요


그래도 황제가 대사면을 해줘서 도시감옥에 갇혀있던 수많은 캬루들이 돌아와 랜드솔의 특별구역은 오랜만에 작게나마 활기를 되찾았어요 축제기간에는 경비병들도 즐기느라 캬루에 대한 경계가 소홀해져요 그래서 캬루는 오랜만에 고향마을을 찾아가기로 했어요 하지만 아무리 경계가 소홀해져도 안심할 수 없어요 많은 수의 캬루가 한번에 이동하다가 병사들에게 걸리는 순간 감옥에 가거나 무슨 험한 짓을 당할지 모르니까요 그래서 우선 캬루 한무리만 밤에 좁은 산길로 조심히 이동했어요


그렇게 마을이 가까워질 무렵 캬루들은 이상함을 느끼기 시작했어요 아무리 산속에 깊게 숨겨진 마을이라지만 너무나 조용하고 생명체의 움직임이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이에요 그리고 마을에 다가갈수록 이상하고 비릿한 냄새들이 심해지기 시작했어요 드디어 캬루무리가 마을초입에 도착했을때 캬루무리는 그 광경을 보고 말았어요


마을은 더 이상 작지만 따뜻한 느낌이 있던 그 마을이 아니었어요 조그만 집들은 모두 불타 있었고 마을입구에는 캬루의 목들이 줄줄이 나무말뚝에 박힌채로 서있었어요 수 천개의 머리가 그렇게 말뚝에 박혀 서있는 모습은 너무나 비현실적이라 마치 축제용 소품으로 보일 정도였어요 캬루의 머리들은 피와 뇌수가 모두 빠져나가 하얗게 쪼그라들었고 눈알은 까마귀들이 물어가 큰 구멍 2개만 덩그러니 남아있었어요 얼굴을 만지니 찐득찐득한 느낌이 들면서 살점이 진흙마냥 벗겨졌고 그 속에는 파리와 구더기들이 가득 했어요 


캬루들은 정신을 간신히 가다듬고 마을입구를 지나 마을광장에 모였어요 거기에는 정말 산더미라는 말이 어울리는 수십미터는 쌓인 캬루의 목없는 시체들이 캬루를 반겨주었어요 그리고 쥐떼가 내는 우글우글한 발소리와 함께 그 시체더미가 살아있는 것 마냥 들썩이고 있었어요 그래서 캬루는 차마 그 산을 뒤적여보지는 못했어요 더구나 몸 곳곳에 작은 구멍이 숭숭 뚫린채로 너무나 고약한, 수천개의 시체가 내는 시취는 정말 말로 표현할 수 없어서 비위가 약한 캬루들은 구토를 하며 실신할 지경이었어요 

파리떼가 바람소리마냥 웅웅 소리를 내며 어마어마한 크기로 머리 위를 날아다니고 있고 시체썩는 냄새와 혈향이 코를 가득 찌르는 이곳이 자신들이 살던 장소였다는데에 캬루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어요


한 캬루는 생각했어요 

왜 우리가 이런 취급을 받아야 하는지..

왜 아무것도 안한 우리가 이런 잔인한 취급을 받아야 하는지..

도대체 선대의 행동으로 인한 저주를 우리가 이리도 끔찍하게 감내해야 하는지..


이런 생각에 갇혀 있을 때 한 캬루의 비명소리가 들렸어요 캬루가 뒤돌아 봤을 때 그 캬루는 불화살에 눈이 뚫린 채로 그 자리에 털썩 쓰러졌어요 캬루무리가 놀라 둘러보니 어느새 사방에 랜드솔에서 몰래 카루를 따라온 제국병사들이 캬루들 앞에 나타났고 대장으로 보이는 한눈에 봐도 묵직한 갑옷을 두른 군인이 나타나 이렇게 소리쳤어요


"나는 랜드솔 황궁 경비대장 겸 랜드솔 특별구역 총 책임자이다! 저항하지 않는다면 너희들은 목숨을 부지할 것이다! 어떻게 하겠느냐?"


캬루들은 압도적인 병사들의 수에 두려움을 느끼기 시작하며 웅맹거리기 시작했어요 도망치면 반드시 죽을 것이고 순순히 따라가면 목숨은 건질 수 있으나 아마 죽는거에 버금가는 끔찍한 일들을 당할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에요 그러다 한 캬루가 소리쳤어요


"웅냥냥 여러분! 지금 이대로 따라가서 죽음보다 더한 삶을 사느니 잡혀서 죽더라도 차라리 도망갑시다!"


무슨 힘이 작용한 것인지 몰라도 캬루들은 이 말에 용기를 얻어 미친듯이 먕먕먕먕 거리며 도망가기 시작했어요 캬루들이 도망가기 시작하자 대장은 웃음지으며 병사들에게 명령했어요 


"저기 도망가는 캬루들을 깨끗이 죽여라"


<다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