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날 아침, 나는 학교에 가기엔 매우 늦었다. 그래서 꾸중을 들을까 봐 몹시 겁이 났다. 란디우스 선생님께서 원거리 반격에 대해 물어보시겠다고 말씀하셨으니 그럴 만도 했다. 더욱이 나는 원거리 적과의 교전에 대해선 깜깜절벽이었던 것이다. 수업 시간을 빼먹고 헬스장이나 어정거릴까 하는 생각도 문득 들었다. 


날씨는 얼마나 따뜻하고 맑았던가!


페가수스들이 투레질하는 소리가 숲속에서 들려왔고, 훈련장에서는 전생한 영웅들이 기운차게 훈련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 모든 것이 원거리 반격보다는 훨씬 나를 유혹했다. 하지만 나는 그 꼬드김을 억지로 물리치고 학교를 향해 줄달음쳤다.


나는 비경 관리사무소 앞을 지나다가 조그만 게시판 앞에 사람들이 걸음을 멈추고 서 있는 것을 보았다. 몇 달 전부터 여성 장군이며, 병종 전환이며, 고유 부활 등의 신기한 소식을 접한 곳도 바로 이 앞이었다. 나는 발걸음을 멈추지도 않을 채 생각해 보았다.


"또 무슨 일이 벌어졌나?"


그리하여 사무소 담장 곁을 달음박질하며 지나가자, 자기 제자와 함께 거기서 활 시위를 매만지고 있던 오메가 아저씨가 나에게 소리치는 것이었다. 


"얘야, 그렇게 서두를 건 없단다. 학교엔 언제 가더라도 늦지 않을 테니까!"


나는 오메가 아저씨가 나를 놀리는 줄만 알았다. 그래서 란디우스 선생님의 조그마한 학교 안마당으로 숨을 헐떡이며 들어갔다.


여느 때 같으면 수업이 시작될 무렵에는 길에서도 들릴 만큼 왁자지껄한 소리가 일어나는 법이었다. 무기와 무기가 부딪히는 소리, 말과 사람이 부딪히는 소리, 멀리 있는 과녁에 창을 집어던지는 소리 따위가. 


이런 북새통을 틈타서 나는 내 자리로 들키지 않게 가서 앉을 셈이었다. 그러나 바로 그날은 모든 것이 조용하기만 했다. 흡사 일요일 아침처럼, 열린 창문 너머로 벌써 제 자리에 앉아 있는 학생들과 교탁 앞을 서성거리는 란디우스 선생님의 모습이 보였다. 별 수 없이 문을 열고 이 고요의 한가운데로 들어가지 않으면 안 되었다. 얼마나 얼굴이 화끈거렸으며 얼마나 겁이 났던지!

그런데 뜻밖이었다. 란디우스 선생님은 화도 내지 않고 나를 바라보셨다. 그리고는 무척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씀하시는 것이었다. 


"할버드야, 얼른 네 자리에 가 앉으렴. 하마터면 너 없이 시작할 뻔 했구나."


나는 걸상을 뛰어넘어 곧 내 책상 앞에 앉았다. 공포가 약간 가신 뒤에야 나는 비로소 우리 선생님이 평소와 달리 가슴에 패자의 휘장을 달았으며, 모자걸이에는 아이니아스의 투구가 걸려 있는 것을 알았다. 이것들은 선생님께서 전투가 없을 때, 가끔 나타나는 마족들을 토벌하실 때만 착용하시는 것들이었다. 그뿐 아니라 교실은 오통 이상하리만치 엄숙한 분위기로 꽉 차 있었다. 무엇보다 놀라웠던 것은 교실 뒤쪽, 항상 비어 있던 걸상 위에 마을 사람들이 우리와 마찬가지로 조용히 앉아 있는 사실이었다. 안대를 한 에밀리 아주머니, 오늘따라 귀걸이가 보이지 않는 레이첼 이모, 윌러 아저씨, 리스틸 아줌마, 다른 사람들도 와 있었다. 모두들 슬픈 표정이었다. 클라렛 누나는 항상 입고 다니던 붉은색 코트 대신에 약간 허름한 푸른색 점퍼를 걸치고 교실 천장을 쳐다보고 있었다. 


내가 이런 광경에 어리둥절해 있는 동안 란디우스 선생님은 교단으로 올라가셨다. 그리고는 아까와 같은 그 부드럽지만 엄숙한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얘들아, 이 시간은 내가 너희들을 가르치는 마지막 수업 시간이다. 이제 타국과의 분쟁에는 이제 전생의 영웅들만 출전한다는 명령이 내려왔구나. 새로운 선생님이 내일부터 가르치실 거야. 오늘 이 시간이 마지막 전설 수업이란다. 열심히 들어 주기를 바란다."


이 몇 마디 말이 내 마음을 깡그리 흔들어 놓았다. 아아! 못된 놈들, 비경 사무소에 붙여 둔 방문이 바로 그거였구나. 나의 마지막 전설 수업..! 


그런데 나는 제대로 막을 줄도 모르는 것이다! 그러니 이제 영영 못 배우고 못 싸우게 되고 말았구나! 로보캅 형들 뒤에 숨어서 졸고, 발키리 누나들 손만 잡고 도망다니던 훈련들, 막상 힘든 일이 생기면 황가기병 형들에게 떠넘기고 달아나 버렸던 시간들을 얼마나 뉘우쳤던가! 말을 타고 달리시던 란디우스 선생님을 쫓아가느라 불평했던 일들, 냉큼 일어나지 못하겠냐고 야단맞던 일들을 까맣게 잊어버리고 말았다. 


가엾은 분!


이 마지막 수업을 위해서 선생님은 그토록 아끼시던 장비들 대신에 친근한 차림을 하신 거다. 그때서야 나는 마을 사람들이 왜 교실 뒤쪽에 앉아있는지 알게 되었다. 이 학교에 보다 자주 오지 못한 것을 후회하고 있는 것 같았다. 또 그것은 우리 선생님의 2년 넘는 봉사와, 사라지려는 전설 진영에 대해 그들의 경의를 표하는 방법인 것 같았다. 


여기까지 골똘히 생각하고 있을 때,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내가 적의 검을 막는 방법을 설명할 차례였다. 그러나 한 번도 적의 보병과 싸워 본 적이 없는 나는 대답할 수 없었다. 감히 고개도 들지 못한 채 우두커니 서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란디우스 선생님께서 나에게 말을 거시는 소리가 들렸다. 


"얘, 할버드야, 난 너를 나무라지 않겠다. 넌 마땅히 벌을 받아야 하는 거야. 그래서 이렇게 되고 만 거란다. 아! 언제나 훈련과 실전을 내일로 미뤄 왔던 것이 우리의 커다란 불행이었다. 새로운 아이들을 가르치고 경험을 쌓게 하는 데에 이토록 게으르다니. 이제 그들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하겠지. '뭐라고! 기병을 만나면 달아나는 주제에 스스로 창병이라고 주장하다니!' 하지만 할버드야, 네가 가장 나쁜 건 아니란다. 우리 모두에게 책임이 있지. 나 자신인들 다르겠니? 너와 함께 전장에 나가는 대신에 걸핏하면 황가기병을 데려가고 너희들은 놀려 두지 않았더냐?"


그리고 곧 호위와 반격에 대해 설명하시기 시작했다.

설령 본인이 스러질지언정, 내 호위범위 밖에 있는 인물은 반드시 지켜내야 하며, 이것은 탱커라는 책임을 진 자의 소명이라 말씀하셨다. 그리고 적의 전술을 미리 예상하여 무장과 승마 여부를 결정하는 승부수를 던져야 한다는 것, 이러한 예측과 가위바위보 싸움이 얼마나 중요한지 설명하셨다. 더하여 급속 기동을 통한 고지 선점의 중요성까지도. 나는 얼마나 이해가 잘 되는지 깜짝 놀랐다.


선생님의 말씀은 모두에게 쉽게 느껴졌다. 아니 정말 쉬웠다. 여태껏 이렇게도 열심히 귀기울여 들은 적이 없었다고 생각했으며, 선생님 역시 이렇게도 꼼꼼하게 설명하신 적이 없었다고 느꼈다.

가엾은 선생님께서는 떠나시기 전에 당신의 모든 지식과 경험을 우리에게 전해 주시려는 모양이었다. 한꺼번에 우리 머리 속에 들어가게 하실 모양이었다. 선생님꼐서 가장 두려워하시던 투석기마저 오늘이라면 두렵지 않을 것 같았다.


불현듯 창에서 손을 놓고 눈을 돌려보니 란디우스 선생님께서는 교탁에서 꼼짝도 않으시며 주위의 물건들을 눈여겨 보고 계셨다. 이 조그만 교실의 모습들을 당신의 눈 속에 넣어 가져가시고 싶은 듯이. 


생각해 보라! 언제나 선생님은 바로 저 자리에 계셨던 것이다.

달라진 것은 오직 하나, 더 이상 지휘관이 선생님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사실 뿐이었다.

모두와 헤어져야 하다니 가엾은 선생님으로서는 얼마나 가슴이 미어지는 일이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생님께서는 끝까지 수업을 끌고 나가실 용기를 가지셨던 것이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의 목소리는 울음으로 떨리고 있었다. 울먹이는 그가 호위를 시연할 때마다, 초절 강화를 시전할 때마다 억지로 크게 외치는 소리를 듣고 있자니 너무도 이상해서 우리는 모두가 울고 싶었다.


아! 난 이 마지막 수업 시간을 영원히 가슴 속에 간직하련다.


문득 부유성의 시계가 정오를 알렸다. 이윽고 루시리스 여신께 기도를 올려야 함을 알리는 종소리.

바로 그 순간, 훈련을 마치고 돌아오는 전생 진영 장병들의 다그닥거리는 말발굽소리가 우리들의 교실 밖에서 시끄럽게 들려 왔다.


분홍빛 머리칼을 휘날리며 말을 달리는 장군 뒤에는, 슬프게도 란디우스 선생님과 함께 2년 동안이나 용맹하게 전장을 누빈 황가기병 형들이 따르고 있었다.


란디우스 선생님은 얼굴이 새하얗게 질려서 교단에서 일어나셨다. 선생님이 그렇게 커 보인 적은 여태 없었다. 


"얘들아."


선생님꼐서 말씀하셨다.


"나는.. 나는..."


무엇인가가 선생님의 목을 메이게 했다. 말을 끝맺지 못하게 했다.


그러나 선생님께서는 마침내 칠판을 향하여 돌아서시더니, 분필 한 조각을 집어 드시고 온 힘을 다하여 되도록 크게 쓰시는 것이었다.











"전설의 저편 만세!"




그리고는 벽에 머리를 기대고 한참 계시다가 말없이 우리에게 손짓으로 알렸다.


"끝났다.. 다들 돌아가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