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여인이 염라전에 서 있었다.

염라대왕이 여인에게 물었다.

"망자여, 이름을 말하라."

분홍빛 머리카락의 여인이 답했다.

"로젠실.. 로젠실 레겐부르그 입니다."

염라대왕은 장부를 잠시 살펴보다 다시 여인에게 물었다.

"170년. 인간의 수명으로 허락되지 않은 시간을 누린 소감이 어떠한가?"

"인간에게 허락되지 않은 시간을 인간이 아닌 것으로 보냈습니다. 산 것이 아니니, 누렸다고도 할 수 없습니다."

고개를 끄덕인 염라대왕이 말했다.

"공과의 결과를 알려주랴?"

"대왕의 처분에 따를 뿐입니다."

곧 판결이 울려퍼졌다.

"이른다.
망자는 인간으로서는 선량했으나, 장수로서는 냉혹했다.
망자는 왕으로서는 자비로웠으나, 여인으로서는 박복했다.
냉혹함과 박복함이 죄는 아니나, 책임은 피할 수 없느니.
다스리는 백성들을 보듬어 쌓은 공덕은, 그들을 전쟁터로 내몬 업보로 상쇄한다.

이른다.
망자는 공과 과를 따지면 과가 무거우나, 천품이 아름답고 선하니, 다시 한 번 인간의 삶을 살고 오라.
그 삶이 끝났을 때, 공이 과를 넘어섰기를 바라노라."

판결을 끝낸 염라대왕이 덧붙였다.

"인간으로서의 선함은 왕의 자질이 아니니라. 알고 있을 터."

여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인간으로서의 박복함과 기구함, 이제 올 삶에서는 모질게 도려내 보기를 바란다. 도려냄이 있어야 새 살이 돋는 법, 독함을 품는다면 번영이 기다릴 것이니라."

여인은 뒤돌아섰다.

눈을 감았다 떴을 때, 그녀의 새로운 모친이 보였다.























그녀는 온 힘을 다해 한 마디를 외치고, 갓난아기가 되었다.

"씨발!"

아, 얼마나 우렁찬 울음소리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