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로대 관련글 주로쓰는 빌트군님의 블로그글인데 원글은 삭제되서 다른데서 퍼온글임 내용 길지만 흥미로운 내용임 안볼사람은 마지막에 3줄 요약도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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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오타쿠계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참고가 될 것 같아서 벽람항로를 일본에서 운영하고 있는 Yostar의 대표 이형달의 인터뷰를 일부만 번역해봤습니다.
- 이번엔 이 씨의 인생... 특히 오타쿠 경력을 파헤쳐가면서 이야기를 들어보려고 합니다.
어쩌다가 오타쿠가 되셨습니까?
이 : ....갑작스럽습니다만 현시연이란 만화를 아십니까?
그 작품의 등장인물 마다라메의 명언 중에서
"오타쿠가 되려고해서 된 게 아니니까 그만둘 수 없다." 라는 말이 있어요.
그런 겁니다.
저희들은 원래 이게 오타쿠문화인지도 전혀 의식하지도 몰랐고 어느샌가 오타쿠가 되어버린 겁니다.
저는 기동전사 Z건담의 방송이 끝난 뒤 (1986년)에 태어났습니다만 오타쿠와의 만남은
초등학교때 저녁에 방송하던 애니들 재방송이었어요.
90년대 중국 TV에서는 리얼 타임보다 조금 늦게 일본 애니메이션을 방송해줬거든요.
또 일본에 대한 애니메이션에 대해서 규제를 강하게 하지도 않았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명작만 방송해줬어요. 지금 생각나는 것만 뽑아도
도라에몽 육신합체 갓마즈 마신영웅전 와타루 신세기GPX 사이버 포뮬러 등.
사무라이 트루퍼도 해줬군요. 아마 그것 때문에 중국에 동인녀가 많이 생겼을 겁니다.(웃음)
- 미소년만 나오니까요 사무라이 트루퍼. 그건 그렇고 일본하고 별 차이가 없네요.
이 : 그리고 로도스도 전기나 슬레이어즈 같은 라이트 노벨도, 캡틴 츠바사나 슬램덩크, 터치 같은 청춘 스포츠 만화도 인기였어요.
터치는 분명 10번 이상 재방송 됐을 겁니다. 그래서 주제가를 아는 사람도 많아요.
- 그게 일본 애니라는 인식이 있었습니까?
이 : OP와 ED을 일본어 그대로 방송했기 때문에 아 외국거구나라는 건 초등학생도 알았을 겁니다.
역시 오타쿠 문화에서 애니송은 영향이 커요.
특히 저는 사무라이 트루퍼의 후기 OP로 모리구치 히로코 씨가 부른 사무라이 하트나 사이버 포뮬러의 ED WInners가 좋았어요. (웃음)
- 그렇다면 당시 중국에서는 일본의 오타쿠문화는 애니메이션이란 인식이 강했나요
이 : 만화나 소설은 입수 루트가 적었으니까요.
만화가 유행한다고 해도 애니메이션이나 게임이 유행하고 그에 뒤따르는 경우가 많았죠.
예를들면 당시의 만화 중에서 가장 유행했던 게 세인트 세이야인데 이것도 애니메이션의 영향이 크죠.
그리고 유유백서도 인기였는데 그건 메가 드라이브 게임 유유백서 마강통일전이 인기가 있어서 그래요.
그것도 당시 동인녀 분들이 참 좋아했는데... 커플링할 게 넘쳐나지 않습니까
- 메가 드라이브 게임으로 입문한다는 건 신기하군요. 일본에선 메가 드라이브가 망했는데.
이 : 중국에선 슈퍼 패미콤이 별로 히트하지 못했거든요. 대신 메가드라이브가 잘나갔어요.
예를들면 올해 8월에 중국에서 랑그릿사의 스마트폰 게임이 나와서 히트했잖아요.
그것도 당시에 메가드라이브용 랑그릿사 2가 잘나갔기 때문이에요.
- 어쨌든 게임이나 애니메이션의 영향이 큰 건 알았습니다. 그럼 이 씨가 오타쿠가 되어버린 타이밍이 어디였는지 알려주세요.
이 : 중학생 때 건담을 본 게 계기였지요. 중국인이 농담삼아서 자주 얘기하는데
"중국에서 가장 인기있는 게임은 파이널 판타지 같은 게 아니다.
위닝 일레븐과 슈퍼로봇대전 2개다."
라고 할 정도로 실은 중국에선 슈퍼로봇대전의 영향력이 크거든요.
어려운 일본어도 별로 없고, 시나리오 안 읽어도 정신 커맨드 쓰는 법만 알면 클리어가 되거든요. 저도 당연스럽게 슈퍼로봇대전을 통해서 건담같은 로봇 애니를 알기 시작했어요.
- 하지만 깊이 파고들다보면 재방송 애니메이션만 가지곤 안 되지 않습니까
이 : 제가 중학생 때부터 비디오 CD라는 게 유통되었거든요. 거기에 애니메이션 2~3화 분량이 들어있고 가격도 괜찮았어요. 그걸 계기로 볼 수 있는 작품의 폭이 확 넓어졌죠.
제가 처음으로 건담 작품을 접한 건 번역된 토미노 씨의 소설이었습니다만. 저는 비디오 CD로는 기동전사 건담 0080 포켓 속의 전쟁을 봤어요. 그건 화수가 적어서 당시 용돈으로도 다볼 수가 있었거든요. 그걸 보고 건담에 눈을 떠가지고 아 나는 이쪽 세계의 인간이구나 하는 걸 눈뜨게 되어서...
- 뉴타입으로 눈뜨셨구나 (웃음) 그리고 어떻게 퍼져나갔습니까.
이 : 중학교 때부터 오타쿠 친구들이 늘어나서 돈이 없는 만큼 서로 교환해서 보기 시작했어요. 당시엔 신기동전기 건담 W의 인기가 여학생들 사이에서 높았기 때문에 그걸 빌려보기도 했죠.
- 오오 그것은 건담을 통핸 새콤달콤한 남녀의 교류....
이 씨 : 그런 게 있을 리가 없잖아! 언제부터 오타쿠의 세계가 그런 세계였습니까?!
- 죄송합니다. (웃음) 건담말고 보신 건?
이 : 로봇 애니는 쭉 다 봤죠. 무적초인 점보트3, 중전기 엘가임, 성전사 단바인,무적강인 다이탄3, 푸른유성 SPT 레이즈너, 기갑전기 드라구나. 특히 자이언트 로보 지구가 정지한 날이 기억에 남네요. 화질이 좋은 DVD로 봤거든요.
애니를 이렇게까지 만들 수가 있구나하고 감동했습니다. 그거 돈을 굉장히 많이 들였잖아요.
그리고 임팩트가 강했던 게 선라이즈의 카우보이 비밥. 지금까지 본 애니메이션 중 상당수가 어린이를 위한 작품이었습니다만 그건 어른도 즐길 수 있는 내용이었고 그 오프닝도 포함해서 충격을 받았습니다.
- 그 당시엔 인터넷이 별로 없을 땐데 정보는 어디서 손에 넣으셨습니까
이 : 당시 잡지나 정보지도 나왔어요. 거기서 일본의 최신정보를 뒤따라가는거죠. 예를들면 동만시대, 동화기지 같은 잡지가 유명했죠.
- 고등학교 이야기를 듣기전에 그쯤에 중국에서 규제가 시작됐다고 들었습니다만...
이 : 그렇군요. 90년대 후반부터 점점 신작 애니를 틀어주지를 않는 거예요.
하지만 검열의 기준은 저도 잘 모르겠고 (웃음) 예를들면
당시에는 북두의 권, 캣츠아이, 우주의 기사 테카맨 블레이드 같이 야하거나 그로테스크한 작품도
노편집으로 방송을 했거든요.
지금 기준으로 상상하면 있을 수가 없는 일이죠.
90년대 후반의 신세기 에반게리온도 일부 대사가 바뀌었다는 건 나중에 알았습니다.
아스카가 "저기 신지, 키스할래?" 라고 하는 대사가 중국판에서는 "저기 신지, 냉장고에 있는 거 먹을래?"
같은 질문으로 바뀌었죠.
- 의미가 완전히 다른데요? (웃음)
이 : 그런 느낌으로 규제가 강해지면서 90년대 후반부터 신작 애니메이션이 점점 안 들어오는 게 기억에 남아있어요.
마지막으로 임팩트가 있던 작품은 카드캡터 사쿠라였습니다.
뭐 저는 먼저 만화을 읽었습니다만. (웃음)
그 이후부터는 기본적으로 신작은 전혀 수입이 안 되더군요.
- 이 씨가 고등학생이 된 2000년대에는 없어졌나요.
이 : 단지 그때는 이제 인터넷이 나와서 비디오 CD가 아니더라도 수단이 많아졌죠.
그래서 제 새대는, 좀 더 옛날 세대분들은 인터넷을 하기 시작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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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사무라이 트루퍼는 중국동인녀를 양산한 인기있는 애니


중국에서는 랑그릿사2 메가드라이브판이 인기있었다


중국에서 가장 인기있는겜은 위닝일레븐과 슈로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