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한가로운 일요일.

느지막이 일어나 한참을 게으름피우다 보니 식사가 늦었다. 전에는 차림이 귀찮을 때 뚝딱 해먹는게 볶음밥이었는데, 이제는 볶음주걱을 휘두르는 것도 간혹 지칠 때가 있다. 이게 다 운동을 멀리 한 탓이다.


 자, 밥을 먹었으니 산책을 해야지. 운동복을 주섬주섬 주워입고 문을 나선다.


산책길은 특별할 것이 없다. 그저 동네를 발길 닿는대로 헤메는 것. 그렇게 헤메다 보니 오른쪽에 놀이터가 보인다. 부부와 아이 둘이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모양이다. 정확히는 아빠가 아이들과 놀고 있고 엄마는 벤치에 앉아 쉬고 있다. 아빠가 벤치로 다가오자 엄마가 아쉬운 듯이 일어난다. 교대시간이구나. 현명하다. 아이들의 체력은 어른이 감당할게 못된다. 그래, 저렇게 교대로 놀아주며 체력을 보전해도 될까말까지. 조카들 덕에 아주 잘 알고 있다. 벤치에 앉으며 아빠는 휴대폰을 꺼내든다.


산책을 계속한다. 엄청 좋은 날씨도 아니고 살짝 덥긴 하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주위를 돌아보며 걷기엔 충분하다. 


지나가는 

차와, 아이들과, 자전거와, 건물들과, 강아지와.

사람들과, 바람과, 고양이와, 구름과.



집으로 발길을 돌린다.


아까 지나온 놀이터가 가까워온다. 

"자기야~"

아이들 엄마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아마도 교대시간이 된거겠지.

"어- 잠깐만- 금방 끝나"

남자의 목소리는 밝았다. 휴대폰에 뭔가 흡족한 거라도 있었나 보다.


엄마가 벤치쪽으로 다가오는 그 순간,

"으아악!!"

무슨 일인지 남자가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주변의 모두가 깜짝 놀라 그 쪽으로 눈길을 향하고, 아이들이 아빠에게로 향한다.

혹시 도울 일이 있을까 그 쪽으로 향하려던 나의 발걸음은 남자의 다음 외침에 멈추고 말았다.


"이!! 린발!! 시계가!! 다 끝났는데 으아아!!!"


놀라 다가가던 부인도 사태를 깨달았는지 오른 손을 높이 들었다.


나는 다시 집을 향해 걸음을 재촉했다. 등 뒤로 '철썩!' 하는 소리와 여자의 앙칼진 목소리가 들려왔고, 나는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하늘을 보았다.


너무도 푸르른 하늘이었다.






-실화와 픽션 50: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