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계 랑그 알파편의 에필로그와 관련 있는 설정 그리고 비슷한 시간대, 그 이후를 곁들인…)

 

“리아나가… 꼴초였다니…”

 

터덜터덜 막사로 돌아온 엘윈은 믿고 싶지 않았다. 자신과 함께 제국과 보젤을 무너뜨리는 데 일조한 성녀였다. 올곧은 신념, 순수한 마음을 가진 그런 리아나였다. 비록 자신은 마주했던 많은 루트로 자신의 일행들을 통수를 쳐서 통수왕이라는 별명을 가지게 되었지만, 그건 자신의 대의로 인해 불가피한 일이었다. 또한 자신의 일행에게 당당하게 공표했고, 경고까지 해줬기에 사람을 속이진 않은 터였다. 


허나 리아나는 달랐다. 언제부터 자신을 속인 것인지 도통 알 수가 없는 것이었다. 우연히 만날 때마다 은은하게 풍기는 담배 냄새에 지휘관이 전략 회의 중 담배를 펴서 냄새가 벤 거 같다고 말했을 때부터 의문을 가졌어야 했다. 아니, 애당초 지휘관 녀석과 단 둘이 전략 회의를 했다는 것부터 말이 안됐다. 둘이서만 나눌 긴히 할 회의가 있을 리 만무했다.

 

그리고 그녀가 담배를 싫어했다면 지휘관 녀석에게 정중하게 자제해달라고 말했을 것이고 지휘관 녀석이 제아무리 막 나가는 놈일지라도 그런 리아나의 말을 무시할 리가 만무했다.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어버리니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가 전혀 종잡을 수 없었다.


 하나는 확실했다. 순진하게 믿고 있던 과거의 자신을 돌이켜보니 화가 치밀어 올라왔다는 점이다. 왜 이리 멍청했던 것일까. 그렇지만 이렇게 스스로 화나는 이유 중 하나는 그럼에도 아직도 리아나에게 마음이 있다는 것임을 느끼곤 좌절했다. 

 

“일단 지휘관 녀석과 얘기 좀 나눠봐야겠어.”

 

자초지종 그 녀석과 애기를 해야 어느정도 실마리가 풀릴 듯했던 엘윈. 

허나, 그 녀석은 도통 보이질 않았고, 그렇게 찾던 도중 부숴진 알하자드를 들고 숲으로 걸어가는 매튜를 만났다. 엘윈의 목소리에 죄 지은 마냥 화들짝 놀라며 뒤돌아선 매튜는 얼굴에서 식은 땀을 흘리기 시작했다. 

다행히 엘윈의 정신이 리아나에 쏠린 탓에 매튜의 이상함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는 그저 지휘관의 행방에 대해 물었고 매튜는 안심하듯 차분한 목소리로 아까 점심에 급히 나가는 걸 본 이후로 보지 못했다고 한다. 

 

“대체 어디로 간 거지… 설마… 리아나와…?”

 

심장박동이 빨라진다. 설마… 하며 엘윈은 리아나가 지금쯤 있어야할 막사에 가본다. 지휘관도, 리아나도 보이지가 않는다. 어디일지 예측이 안되었다. 그 순간 뇌리를 스치는 한 장소가 있었다.

 

“거긴가…!”

 

아까 리아나가 담배폈을 때 자신이 목격한 그 장소로 엘윈은 달려갔다. 아니나 다를까, 그 곳에 리아나가 있었다. 그는 자신의 모습이 혹여나 보일세라 몸을 숨기며 리아나를 바라본다.

 

“아 tlqkf 담배 불 드럽게 안붙네. 엘윈한테 담배나 들키고… 아 생각할 때마다 빡치네.”

 

자신이 지금까지 한 온갖 고뇌를 시원하게 날려버리는 듯이 박력 넘치며 귀에 때려 박히는 그녀의 혼잣말. 짝다리를 하며 담배를 물고 금발을 흩날리는 모습은 그녀가 자신에게 여태 보였던 모습과는 180도 다르지만, 이미 콩깍지로 인해 저 모습도 매력넘친다고 생각하는 엘윈이었다. 

혼잣말로 짐작컨데, 아직 리아나도 자신에게 마음이 있을 수 있는 것 같아 그 마음을 확인하기 위해 그녀에게 천천히 다가가려는 엘윈. 

 

“리ㅇ…”

 

“여ㅡ어, 리아나.”

 

그 순간, 자기도 모르게 막사 뒤로 몸을 숨긴 엘윈은 숨을 죽이며 저 멀리 나타나는 실루엣이 누구인가 바라봤다. 애타게 찾던 지휘관이었다. 평소의 폐인 같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머리를 하고 옷도 멋지게 빼 입고 왔다. 마치 여자와 데이트를 하러 가기 위해 준비한 듯했다. 

 

“뭐냐 지휘관. 아, 너 실실 쪼개는 거 보니 더 짜증난다 진짜.”

 

다른 사람에게 담배 피는 모습을 걸렸음에도 대수롭지 않게 대화를 이어가는 리아나였다. 이미 지휘관과는 자신의 진짜 모습과 속을 터놓고 털털하게 있는 듯한 그녀를 보고는 그는 희망의 끈을 놓는다.

 

‘이미 사귀는 사이었나. 하기사 사귀지도 않는 데 단둘이 저렇게 어울릴 이유도 없지…’

 

엘윈은 리아나의 혼잣말의 의미도 지신이 꼴초라는 사실이 자신에게 걸려 다른 사람들에게도 소문이 퍼질까 걱정하는 것으로 단정 지었다. 

또한 나름 잘나가는 인싸 축에 속한 자신이 저런 아싸 지휘관과 리아나를 보며 뒤로 숨어 지켜보는 것이 더욱 초라해 보였기에 씁쓸한 웃음을 지으며 자리를 떠났다. 고뇌 끝에 떠난 이후 운명의 장난처럼 지휘관이 다른 여자와 사귀는 썰을 듣지 못한 채 말이다.

 

 

“나니나니? 진짜야?”

 

엘윈은 어제 있었던 충격적인 썰을 자신의 편이라 믿는 쉐리에게 풀었다. 솔직히 굳게 믿있던 리아나마저 표리부동한 모습을 보였는데 쉐리라고 안그럴까 의심이 들었지만 여태 보여온 저 단순한 생각머리를 고려하면 이게 본모습일 거라 엘윈은 단정지었다.

 

‘이게 왠 떡이야? 이건 기회야… 엘윈에게 잘 보일 수 있는 기회…’ 

 

쉐리는 축 늘어진 엘윈의 손을 꽉 잡았다. 이야기를 하며 어제 기억이 나니 고개까지 푹 숙였던 엘윈은 화들짝 놀라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리아나가 나빴어! 결국 다른 사람이랑 사귈 거면서 엘윈의 마음을 갖고 놀다니.”

 

“쉐리…”

 

슬퍼하는 듯한 쉐리의 표정. 금방이라도 눈물을 떨어뜨릴 것 같은 눈망울을 보곤 자신을 깊이 생각해주는구나 하는 엘윈이었다.

 

“내가… 많이 부족하지만! 그래도 엘윈을 향한 내 마음은 누구보다 뒤쳐지지 않아! 헤헤헤.”

 

‘고맙다, 리아나. 결국 이런 훈남 인싸를 두고 지휘관이랑 사귄다고? ㄱㅇㄷ.’

 

쉐리의 속마음을 모른 채 배시시 웃으며 토라진 자신의 기분을 풀어주려는 모습만 본 엘윈은 감동한다. 그 순간, 엘윈의 옆 의자로 가 쪼르르 앉은 쉐리는 그를 꽉 끌어안아주며 머리를 쓰다듬어준다. 그렇게 엘윈의 심장은 다시 한번 뛰기 시작했다.

 

“흐흐흥~ 너무 일이 순조롭게 풀리네? 이제 내가 해야 할 일은… 완벽하네.”

 

엘윈과 헤어지고 쇼핑 겸 시내로 간 쉐리는 벌써 엘윈을 차지한 승자가 되었을 자신을 생각하니 콧노래가 절로 나왔다. 저 멀리 거리를 배회하는 한 쌍의 커플이 보였는데, 남자는 딱 봐도 지휘관이었고 여자는 자세히 보이지 않았다. 안봐도 리아나겠거니 해서 그 커플을 축하해줄 겸 떨어져 나가준 리아나를 골릴 생각으로 총총 걸어간 쉐리는 흠칫했다. 

지휘관 옆에 있던 여자는 리아나가 아닌 보라색 머리를 한 이름 모를 누군가였다. 분명 지난 회식 때 봤던 거 같지만 쉐리 머리로는 기억해내기 벅찼다.

 

“어 쉐리, 안녕. 쇼핑하러 온 거?”

 

지휘관이 해맑게 쉐리에게 인사를 건넨다. 쉐리는 뇌정지가 온 것이 표정에 드러났고, 이에 지휘관은 평소 쉐리 머리가 안좋았다는 게 생각나서 옆에 있던 여자를 소개해준다,

 

“아, 여기는 내 여친 알파. 되게 이쁘지?”

 

그새를 못 참고 알파를 보며 헬렐레 하는 지휘관. 알파는 그런 지휘관의 표정을 보며 귀여워하는 표정을 지으며 지휘관의 손을 꼬옥 잡는다.

 

“안녕 알파! 근데 지휘관, 너… 리아나랑 사귀는 거 아녔어?” 

 

쉐리의 말에 당황한 지휘관과 표정이 바뀌어 싸늘하게 식어버린 알파의 눈빛. 그리고 지휘관의 손을 으스러뜨릴 정도로 꽉 잡는 그녀의 손.

 

“지휘관… 다른 여자가 있었어?”

 

아픔을 참고 반대쪽 손을 절레절레 지으며 아니라고는 하지만 이미 자신을 향한 알파의 차가운 수정 같은 표정과 쏘아붙는 말투에 뭔가 잘못 돌아가는 듯한 느낌을 받은 지휘관은 쉐리에게 눈빛으로 뭐라도 말해달라고 했다. 쉐리는 이를 보곤,

 

“아하하하하, 하기사 리아나가 저런 아싸 같은 지휘관이랑 사귈 리 없잖아? 걱정마!”

 

당연히 뇌를 거친 필터링 없이 척수까지만 갔다 온 쉐리의 말은 지휘관에게 비수를 꽂은 것과 동시에 자신의 남친을 비하한 알파의 프로토콜을 자극하기에 충분한 매콤함이었다.

 

“아! 난 잠시 어디 갈 데가 있어서 실례~”

 

“야 쉐리! 해명은 하고… 아, 아야, 알파 내 말 좀 들어봐아아아아아악”

 

리아나와 사귀는 게 아닌 것이 잠시 당황했지만 이내 큰 수확을 거뒀다는 사실에 씨익 웃고는 자신의 한마디로 인해 고통받는 지휘관을 두고 유유히 사라지는 쉐리. 

 

‘이거 이거… 계획을 앞당겨야겠는걸?’

 

 

한편, 엘윈은 오늘 낮에 보였던 쉐리의 모습에 아직도 심장이 쿵쾅쿵쾅 뛴다. 머리는 어느덧 리아나는 희미해졌고 쉐리의 말이 맴돌았고 눈앞에 쉐리가 자신을 안아준 모습이 선했다. 마침 쉐리가 엘윈의 막사에 들어왔다

 

“헤헤, 엘윈 기분도 꿀꿀한데 술이나 마시러 갈까?”

 

쉐리의 제안에 바로 갈까 했으나 순간 아른거리는 리아나의 모습에 마음에 걸려 머뭇거렸다. 눈치 챈 쉐리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리아나에 대한 고민도 풀 겸 속내 털어놓을 겸 가자! 내가 더 들어줄 수 있어! 헤헤.”

 

라며 해맑게 재촉하자 엘윈은 마지못해 발걸음을 뗐다. 

 

“…그러니까… 리아나… 네가 나아한테에 그으럴 수 있니… 미치도록 사라앙… 해따아…”

 

리아나 얘기할 때마다 술 한 모금씩 들이켠 엘윈은 취기가 올랐고 눈물에 젖은 술잔을 기울인다. 그 때마다 쉐리는 토닥토닥해주며 그런 엘윈을 위로해준다. 

 

“맞아… 그러니까 엘윈! 이제 이거 마시고 잊어버려!”

 

그렇게 하염없이 더 들이켠 엘윈. 몇 분 후 쉐리의 부축을 받으며 천천히 술집에서 나온다. 

 

“술도 많이 마셔서 알딸딸한데, 어디서 쉬었다 가자 엘윈. 잠깐 여기 있어봐!”

 

잠시 엘윈을 술집 앞 벤치에 내려두고 사라진 쉐리. 엘윈은 벤치에 기대 검은 하늘을 바라본다. 달은 검은 구름 뒤에서 슬쩍 모습을 보이는데 그 모습이 어제 막사 뒤에 숨은 자신 같이 초라해보였고, 이내 슬픔에 잠기려 했다.

 

“헤헤, 엘윈 나 왔엉! 다행히 여관 하나가 방이 남아서 거기 예약했으니까 거기로 가자!”

 

한 손엔 포장된 무언가를 들고 있는 쉐리. 엘윈은 금새 기운을 차렸고, 그게 뭔지 궁금했으나 일단 좀 쉬어야 했기에 쉐리에게 기댄 채 걸어가며 여관의 방에 들어섰다. 쉐리는 의자에 엘윈을 앉히고는 검은 천을 건넸다.

 

“서프라이즈 선물이 있어, 엘윈. 잠시 그 검은 천으로 눈을 가려줄래?”

 

영문을 모르겠으나 일단 쉐리가 시키는 대로 검은 천을 안대삼아 눈을 가렸다. 눈이 안보이니 다른 감각들이 곤두세워진다. 뭔가 종이 찢는 소리, 쉐리가 발을 동동 구르는 소리가 들리더니 쿵하는 소리가 들렸다.

 

“으악!”

 

“쉐리 괜찮아?”

 

“헤헤… 괜찮아. 엘윈! 안대 내가 벗으라고 할 때까지 벗지마!”

 

쉐리가 걱정되어 안대를 벗으려 했으나 그녀의 말에 다시 손을 내려놓는다. 어수선한 소리가 점차 잦아들었다.

 

“헤헤… 이제 벗어도 돼!”

 

쉐리의 말에 뒤통수에 있던 안대 매듭을 풀고 천천히 눈을 뜨는 엘윈. 그는 심봉사가 눈을 뜬 듯이 번쩍 눈을 뜨고 자기가 보고 있는 게 정녕 현실이라면 시간을 멈추게 해달라고 속으로 기도한다. 

 

“헤헤, 힘들어하는 엘윈 어린이를 위해 산타걸 쉐리 일찍 등장! 선물은 2개. 하나는 달달한 케이크, 다른 하나는 바로 산타걸 쉐리! 우리 엘윈 어린이는 뭐 먹고 싶어요? 케이크? 아니면… 산.타.걸. 쉐.리?”

 

“오 마이 루시리스…”

 

자신을 가리키며 유혹하듯 혀를 입술 앞에 내민 쉐리. 그리고 관능적인 몸매가 훤히 드러나는 산타걸 복장을 본 엘윈은 속으로 루시리스에게 감사를 표하며, 쉐리를 향해 다가갔다. 

그렇게 다음 날 여자들과 술을 진탕 먹고 속이 안 좋아 배를 부여잡고 여관에서 나오던 디하르트는 손을 잡고 나오는 엘윈과 쉐리를 목격하게 되고 이 커플의 탄생은 일파만파 성검 군단까지 퍼지게 되었다.

 

-에필로그-

 

“후우… tlqkf… 엘윈, 존나 사랑했다.”

 

오늘따라 보이는 달이 미워 달 쪽을 향해 담배 연기를 뿜는 리아나. 라이벌이라 생각할 가치도 없었던 째리 년이 자신이 있어야 할 엘윈의 옆자리를 뺏은 것에 배가 아프고, 엘윈에게 담배 피는 장면을 걸린 그 순간이 너무 뼈저리게 느껴졌다.

 

“님 어떡함. ㄹㅇ 다른 남자 만나야겠네.”

 

결국 이어지지 못한 리아나를 다독여주지만 손이 다친 듯 불편해보이는 지휘관. 

 

“그냥 더 이상 사람들한테 님 본 모습을 숨기지 말고 당당하게 사셈. 차피 님 이런 모습에 더 푹 빠져 살 남자들 많음. 오히려 털털해 보인다고 좋아할 사람 있다에 한 표.”

 

“tlqkf 진짜 그래야겠다. 어차피 엘윈한테 잘 보이려고 여태 그 행세한 건데 의미 없다 크크. 충고 고맙다.”

 

 다음 날 막사에서 나온 엘윈은 쉐리와 데이트하기 위해 그녀가 있는 막사 쪽으로 걸어가던 중 리아나를 만났다. 머리를 단발로 자르고 폭주족 같은 복장으로 오토바이를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아… 안녕 리아나. 좋은 아침이네…”

 

썸이 끝나 어색해진 사이였기에 머뭇머뭇 인사하는 엘윈을 보곤 리아나는

 

“ㅇㅇ ㅅㄱ.” 

 

라며 미련 없는 듯이 단답으로 답하고 갔다. 그 모습을 누군가 지켜보곤 씨익 웃고 있었다.

 

“크하핫, 완전 내 스타일이군 리아나.”

 

작?자 후기

역시 짤 보고 생각나서 만든 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