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착했다. 예정했던 시간보다도 더 빠르게.

비행이 가능한 대원들이 부대를 가리지 않고 교대하며 목시로 주변을 정찰했고, 하루 한 번씩은 대공포 사격음이 바다를 울렸다.

위대한 자연을 억지로 가라앉히는 요정여왕은 후유증이 끔찍한 전투자극제를 맞아가며 물길을 열었고, 인력으로 움직이는 추가 스크류를 돌려가며 달린 끝에.

가고시마를 목전에 둔 다네가 섬에 정박했다.

고생한 대원들에게 휴식을 부여하는 동안. 지휘관들이 모인 회의실은 정신이 없었다.


가고시마로 선행할 분함대 구성의 재검토와 파견할 지휘관 결정 문제

제주도로 선행할 분함대의 규모

포세이돈 함대와 조우하지 않고 1, 2 분함대를 회수할 방법..


" 포세이돈 함대의 움직임이 멈춘 것은 확실합니다. 저희의 공작이 잘 먹혀들었는지, 궤도 오비탈와쳐의 상황도 많이 혼란스러운 상태인 것 같습니다. "


합류한지 얼마되지 않았건만. 시라유리는 손쉽게 두번째 인간을 이용한 공작을 몇 단계나 업그레이드 시켰다.


죽었다. 

아니, 죽긴 죽었는데 시체는 잘 매장했다.

아니, 바다에 버렸다.

아니, 죽을 뻔했지만 탈출했다.

아니, 죽은 것 같지만 확인은 못했다.

아니, 아니, 아니....


소문이 넓게 퍼져나가면서 조금씩 변질되는 것 마냥. 비슷하지만 뭔가 다른 내용의 통신들이 방수되었다. 

거기에 '내통자'를 통해 접촉한 '내부 조력자'의 도움?을 받아 정보를 더더욱 혼란스럽게 만들었고, 이는 미묘한 동맹이던 레모네이드 사이에 불협화음을 만들어낸 듯 하다.

인간을 확보하는데 필사적이였던자, 그걸 막고 싶었던자, 방해까진 안하지만 끼어들기 싫었던자, 아무래도 상관없던자. 

이미 알고있었지만 수면 아래로 억지로 눌러담아두었던 간극이 명백하게 대두되었다는 내부 조력자의 목소리가 ... 즐거워 보였다. 매우.


" 아직 에이다와 직접 통신을 연결하기는 어렵지만, '아테네'의 묵인하에 2대의 지구궤도 위성을 확보하였음과 함께 알려온 정보입니다. "


" 그게 확실하다면 ... "


A, B, C, D ... 수많은 변수를 고려하여 준비해둔 작전 계획들. 

그 중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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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시무시한 속도로 수면 위를 스치듯 날고 있는 2개의 검은 동체.


HQ1 알바트로스, RF87 로크. 블랙리버사의 걸작 중의 걸작 두 기가 공기를 찢어발기며 날아간다.


선두는 로크. 품에는 오르카호의 탈출정 하나가 안겨있다. 양날개에서 미세하게 발해지고 있는 전기가 공기를 '부수며' 나아간다.

후위는 알바트로스. 로크의 뒤에서 에너지를 아끼면서 주변을 광범위하게 탐지 중.

'최속'을 자랑하는 슬레이프니르의 이러면 좋을텐데...로부터 다듬어진 작전. 

1, 2 분함대를 최대한 빠르게 회수하기 위한 그 작전은, 초장거리 비행이 가능한 알바트로스에 올라탄 최소한의 인원으로 먼저 접촉한 뒤.

1, 2 분함대를 움직여 회수함대와 중간지점에서 만나게 하는 것 이였다.


속도면에서만 보자면 훌륭한 작전이였지만, '접촉'에 나서야 하는 인원에 사령관이 필히 포함되어야 한다는 점. 

그에따라 최소한의 호위병력까지 단독으로 이송하자면 비행거리와 위험부담이 크다는 점에서 알바트로스로부터 거부되었던 작전 안 이였지만...

무슨 바람인지 동결을 해제하고도 침묵만 지키고있던 로크가 나서면서 작전의 성공률과 안전성이 급격히 높아졌고, 알바트로스의 AI 특유의 냉정한 계산이 사령관을 납득시켰다.

사실 사령관은 표현한 적이 없다고 생각하겠지만, 그가 가장 신뢰하고 있는 지휘관이 차가운 강철의 이성이란 것은 입에 올리지만 않을 뿐. 

회의에 참석하는 바이오로이드라면 이미 모두가 알고 있는 씁쓸한 현실이였다.


" 그래도,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각하. 또다시 직접 움직이시게하여...그저 송구할 따름입니다."


" ...어. 그래. 음. 아니, 듣고보니 내가보기에도. 음. 함선으로 이동하느라 오래 노출되느니 이 방법이.....음.. 그렇지. "


1인용 비상탈출포트에 바짝 안겨 붙어있는 두 남녀.

탈출정 좌석에 앉아 있는 무적의 용. 평소와 다름없어 보이는 단단한 표정이지만, 조금만 가까이에서보면 발갛게 뺨이 달아올라 있다.

그리고 그 앞에 등부터 파묻히듯 안겨있는 사령관은 등에서부터 느껴지는 감촉과 좁은공간의 밀착감에 손끝이 가늘게 떨릴 지경이였다.


20 세기말 인간의 감각에 여자 앞에 앉은 위치가 영 X팔린다는 생각은 진즉에 날아갔다.

뒤에 앉았다면 여러모로 대참사였을거라는 안도감과 함께 한계까지 치솟은 아들을 진정시키는 것은 옛적에 포기. 

실제로 어느정도 인지 체감은 쥐뿔도 못하고 있지만, 아무튼 '느껴진다'는 머리 속 생각을 막아보려는 노력도 이미 1시간 전부터는 놓아버렸다.

그 머리속에서 등의 감각으로 상상 중인 나신, 성욕에 대한 일말의 자괴감, 이어지는 온갖 음란한 상상들.

그리고 그 뇌파를 다이렉트로 느끼고 있는 용까지.

...축축했다. 둘. 모두.


< 목표 포착. 접촉까지 - 3분. 감지범위내 적대 개체 - 없음. >


묘하고, 어색하고, 아슬아슬하던 분위기를 환기한 것은 알바트로스의 고저가 적은 통신음이였다.


" 아.. 보입니다. "


" ? ... 보인다고? 아! 보이네. ...아니 대체 얼마나 빠른거야? "


바이오로이드인 용의 시야에나 보이던 점이 저게 보여? 하는 순간 사령관에게도 어렴풋이 보였다.

에이다가 확보한 최신 위성사진의 모습과는 다르게 부산스럽고, 포탑을 돌리고 있는 모습이...?


웨에에엥 ~ 웨에에에에엥 ~~


< 조준 감지. 역장 전개 >


알바트로스와 로크의 선후가 뒤바뀜과 동시에 육안으로도 확인되는 녹색빛 입자의 구가 둘을 감싸 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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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적중 ! 적중 !... 미식별 대형 개체 지속 접근 ! 근거리 방어태세 서둘 - 어? 사격 중지! 사격 중지이이 !! "


정말 어지간해서는 듣기 힘든 부함대장 - 세이렌의 샤우팅에 헐레벌떡 방위태세를 갖추던 대원들의 움직임이 어정쩡하게 멈춰섰다.

뭐 어떻게해? 라고 혼란스러워하는 잠깐사이에 속도를 줄이기 시작한 미식별 기체들이 육안으로 확인되었고, 함상에 올라섰던 대원들의 긴장이 일시에 풀렸다.


함포 사격이 직격했음에도 상처하나 없이 다가온 검은 두 거체. 한쪽이야 '다른' 개체일지도 모르지만, 날개가 달린 쪽은 그들이 아는한 지금은 둘 일 수 없는 존재였으니.


< HQ1 알바트로스, RF87 로크. 착함 허가를 요청. >


<< 환영합니다 ! 알바트로스님 ! 로크님 ! .. 용 대장님!! >>


와아 -!! ...어 -?


로크의 품에서 내린 탈출 포트로부터 용의 식별신호가 느껴짐에 환호하던 대원들은 그에 겹쳐 느껴지는 낯선데 익숙한 느낌에 달려들던 다리를 멈췄다.


" 반갑소. 제군들. 무사해줘서 정말 다행이오... 여기 이분은 우리의 새로운 사령관님 이시자, 현 시점의 마지막 인간분이시오. 모두 예를 갖출 수 있도록. "


" 거한 환영인사 고맙다. 새로 취임한 사령관이다. 거두절미하고 짐부터 싸라. 오르카호로 복귀를 명령한다. 지금 즉시. "


다시 이어진 용의 라인으로부터 업데이트 된 새로운 사령관의 명령은 단순하고, 명료했다.

어이없을 정도로 간단하게 풀려버린 두번째의 족쇄.

이 인간은 또 뭔가를 생각해보기도 전에 대원들은 몸은 반사적으로 새로운 명령을 따라 움직이기 시작했다.


" 자세한 이야기는 가면서 하도록 하오. 식량은 X일분만 - 움직이지 못하는 함선은 -- "


용 역시 어버버한 대원들을 이끌며 서둘러 철수 준비를 독려했다.

아무래도 대원들의 대다수가 원래 용이 이끌던 호라이즌이여서일까?

새로운 인간 사령관의 등장에 혼란 혹은 의구심이 있음에도 당장 내려진 철수 명령에 일사천리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정비를 한다고 해왔지만 당장 움직이기 힘든 함선들은 자원을 비우고, 시스템에 락을 건다.

작은 보트들을 일시에 동원하여 섬에 남아있는 인원들을 승선시켰고, 운디네와 테티스들이 날아올라 식수와 식량을 옴겨담았다.

오랜 시간 의욕을 잃고 표류하던 함대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 ... 불쾌하지 않으십니까 >


모두가 바쁘게 움직이는 와중 함상에 덩그러니 남겨진 사령관에게 로크의 뜬금없는 물음이 날아들었다.


" ?? 불쾌 ??? 뭐가 ? "


< 감히 인간 사령관님께 포격을 가한 것. 책임자가 나와 사죄조차 하지 않은 것. 상황을 모두 바이오로이드 지휘관이 통제하고 있는 것. 호위는 커녕 함내의 자리로 안내조차 없는 것.. 그 외 무엇이든. >


알바트로스와 같이 남성의 목소리를 베이스로 한 딱딱한 문체를 구사하는 로크의 머리를 향해 삐딱하게 고개를 올린 사령관이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는 로크와 시선을 맞췄다.


" 급속히 접근하는 언노운에 포격을 가한 건 대응을 잘한 거고, 막지 못했다는 점에서 부족하면 부족했지 잘못한건 아니지. 따라서 책임자는... 원인제공이 이쪽에 있으니 논외로하지. 굳이 파고들자면 속도 판단이 안된 내 탓으로 돌아갈테니까.

용이 통제를 하고 있는 건 출발 전에 이미 지시해둔 일이고, 호위는 너희 둘이 있는데 더 필요한가? 함내로 들어가고 싶었으면 내가 누구라도 하나 붙들었겠지. 

당장 짐싸서 복귀하라는 명령대로 빠릿하게 움직이고 있는데 기분 나쁠게 있나? "


로크를 쳐다보느라 위를 향하고 있던 시야 안에 비행 중인 운디네와 테티스의 엄한 하체가 스쳐 슬그머니 고개를 내린 사령관이 괜시리 함선 위에 널어놓고 말리던 생선 하나를 집어들었다.


" 그 외에는...그래. 너에게는 고마울 따름이야. 딱히 '내 명령권' 따위로는 강제되지 않는 몸으로 알고있는데 말이지. 협조에 감사하지. RF87 로크. "


< ..별말씀을. >


우물우물 - 오 - 맛있네? 이거 전갱인가?


바닥에 앉아 태평하게 말린 생선을 뜯어먹는 사령관을 가만히 내려다보고 있는 두 AGS. 

정적이 내려앉은 듯한. 어찌보면 평온해보이는 광경이였지만.. 갑자기 생긴 여유로 과거의 상념이 기어올라온 사령관의 시야는 어지럽게 일그러지고 있었다.


" 지랄났네.. 쯧... "


본인의 상태. PTSD를 벗어나지는 못하는 주제에 그 자체는 정확하게 인지하고 있는 앞뒤가 안맞는 괴상한 정신력. 

어그러지는 균형감각을 탈출포트에 기대며 감춘 사령관이 가만히 자신을 관조했다. 


간만에 증상이 발현된 이유는? 

한가할 때가 없었다. - 부정. 

여유시간은 충분히 가졌었다. 스트레스 컨트롤도 충분히 잘 하고 있었다.

정말 스트레스가 없었나? - 부정.

다른 건 다 괜찮은데 솔직히 성욕 때문에 꽤 곤란하다. 이렇게까지 욕구에 노출되었던 적이 없기 때문에 판단 불가.

그러면 이동하느라 용과 비비적대면서 쌓인 성욕 때문인가? - 부정.

자극적이기로는 오르카호에 있을때가 더 심했다. 기본 복장들이 장난 아닌 바이오로이드들이 많으니까.

그러면 - 오르카호에 있을 때와 달라진 점은?


" 안녕하십니까 사령관님. 엘리 퀵핸드 인사올립니다. 햇살이 따가운데 안으로 들어가심은 어떠신지요. "


LRL 만큼이나 작은 체구가 다가와 들고있던 양산을 씌워왔다. 가득 찬 물 위에 떨어트린 물감처럼 녹아내리던 시야가 제자리를 찾는다.


낡은 티가 나는 3단 프릴로 이루어진 품이 큰 치마, 안쪽의 반바지. 코가 반질반질한 굽낮은 구두. 높이 묶은 기다른 금빛 트윈테일. 리본이 달린 멋쟁이 모자. 양산.

어린애의 모습을 정확하게 직시하고 있다.

박격포를 맞아 육편덩어리로 흩어지지 않은. 온전한 모습으로.


" 흐.. 흐흐흐. 흐흐흐흐흐 - "


낮게 웃음만 흘리는 사령관의 반응에 양산을 든 작은 손이 덜덜덜 떨리다 양산을 떨어트릴 지경에 이르렀을 때.

사령관의 손이 양산을 잡아 접고 엘리에게 건냈다.


" 들어가지. 그냥 좀 누울 수 있는 공간이면 아무대나 괜찮다. "


" ㄴ..네. 네네...네넵. 앞.. 스-읍. 앞장서겠습니다. "


절뚝이며 걷는 그 뒷모습을. 알바트로스와 로크의 시각 센서가 가만히 응시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