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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환상의 나라(The Land of Fantasy)

 

 

결론적으로 사령관은 펍 헤드가 전해온 마녀의 초대에 응하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는 응할 수가 없었다.

 

이제 막 철충에게서 멜버른을 탈환한 현재의 시점에서 언제 다시 철충이 공격해 올지 알 수가 없었기에, 당장 자신이 자리를 비우는 것은 무리가 있었기 때문이다.

 

펍 헤드 에게는 가까운 시일 내로 자신이 직접 찾아가겠다는 말과 함께, 사령관의 눈은 펍 헤드가 돌아간 방향을 향해 한참을 말없이 바라만 보았다.

 

.

..

...

 

“현재 철충의 공격을 대비한 방어선의 구축은 오늘 오후 중으로 완료될 예정입니다.”

 

“멜버른 주변으로의 정찰은 어떤가요? 슬레이프니르 전대장?”

 

“대단위의 철충은 보이지 않아. 특이한 움직임도 보이지 않고. 하지만 적이 적이니 만큼 주변의 정찰은 최상의 단계 유지하고 있으니깐. 믿고 맡겨둬.” 

 

“멜버른 내에 보존되어 있는 장비나 물자의 상태가 생각보다 양호하고 물량 또한 저희의 예상보다 훨씬 많아요. 무엇보다 복원시설의 상태가 양호하여 시설의 점검이 끝나는 대로 대원들의 복원 작업을 시작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아자즈씨의 협력으로 망가졌던 안타이오스 조선소의 발전시설 과 생산시설의 대한 수리가 완료 되었다는 연락입니다. 준비가 끝나는 대로 필요한 부품의 생산 및 함선의 생산 역시 가능하다는 보고입니다.”

 


지휘관들과 부관들이 올리는 보고는 하나같이 좋은 보고였기에 화기애애한 분위기여 했지만, 정작 회의실의 분위기는 남극에서 부는 눈보라마냥 쌀쌀맞게 그지없었다.

 

좋은 소식을 듣고 있음에도 심기가 매우 불편해 보이는 사령관의 표정과 함께, 각 부대의 지휘관들은 자신들의 부대원중 누군가 큰 사고를 친 것이 아닌지 재빨리 확인하였고, 부관들 역시 행여 누락된 보고가 없는지 다시금 확인하기에 급급하였다.

 


“폐하.”

 

“...”

 

“폐하께서 그러실 분이 아니라는 것은 잘 알고 있습니다만.. 혹 얼마 전 저희가 폐하께 드렸던 모진 충언 때문에 이렇게 노여워하시는 것이라면. 부디 폐하를 걱정하는 저희의 마음 헤아려 노여움을 거두어 주십시오..”

 


이대로는 회의 분위기에 모두가 얼어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나선 아르망이었지만, 정작 아르망 본인 역시도 아무리 생각하고 분석 해보아도 사령관의 심기가 이렇게까지 불편한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열 개의 길보다 한 길을 헤아릴 수 없다는 것이 사람의 마음이라지만, 적어도 자신이 알고 있는 사령관은 설령 자신들이 모진 말을 했다 한들, 이렇게까지 담아두는 성격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사과를 하는 아르망을 향해 날아온 것은 사령관의 분노도 질책도 아닌 한 장의 초대장이었다.

 


“이것은?”

 


한번 심하게 구겨졌던 탓인지 구김이 심한 초대장을 읽어 내려가던 아르망의 눈동자는 내용을 읽으면 읽어 내려갈수록 점점 흔들려 갔다.

 


“폐..폐하! 이건?!”

 

“거기 적힌 대로다. 나를 초대하고 싶다 하는군.”

 


마치 읽어서는 안 되는 금서를 읽은 것 같은 아르망의 반응에, 그녀의 옆자리에 앉아 있던 레오나는 아르망의 손에서 조심스레 초대장을 빼내어 모두가 들을 수 있도록 초대장의 내용을 천천히 읽어 내려가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초대장의 내용을 모두 읽고 난 후, 초대장의 읽은 레오나는 물론 회의실에 있는 모든 이들은 그제야 사령관의 심기가 왜 이렇게 불편해 한 것인지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자..잠깐! 사령관! 여기 적힌 ‘환상의 나라’가 정말로 그곳이라 확실한 건 아니잖아?!” 

 

“초대장을 가지고 온 전령이 그러더군. 초대장 적힌 그 곳..환상의 나라는 ‘테마파크가 맞다’라고..” 

 


테마파크..

 

사전적인 의미는 특정한 주제를 정하여, 사람들이 즐길 수 있도록 만든 공간 등을 뜻하는 곳을 의미하는 곳이다.

 

하지만 그 의미는 어디까지나 인간에게 해당하는 뜻 일뿐, 바이오로이드들에게 있어 테마파크는 곧 지옥과 동일한 의미를 가졌다. 

 

그 쓸모가 다하고 다한 바이오로이드들 마지막으로 인간에게 봉사한다는 명분 아래, 일말의 연민이나 동정, 그리고 자비라고는 하나 없이 그저 인간이 가진 모든 악의적 본능과 가학적이고 잔혹한 욕망의 해방과 충족을 위하여 아무런 의미도 없이 희생당하는 곳.

 

그곳에서 일어났던, 특히 할로윈과 같이 특정한 날에 일어났던 일의 대한 자료들은 사령관 카인이 몇 장의 사진을 본 것만으로도 그의 멘탈을 뒤흔들어 놓기에 충분하였다.

 


“폐하. 이 초대에 응하시면 안 되십니다.”

 


자신도 모르게 튀어나오려는 탄식을 애써 누르며, 침착하게 말하는 아르망에게 돌아온 것은 자신의 마음과는 다른 사령관의 무심한 말이었다.

 


“전령에게는 가까운 시일에 찾아가겠다고 말해두었다.”

 

“어찌하여..”

 


그 작은 입에서 나올 수 있는 건가 싶은 깊은 탄식과 함께, 사령관의 곁으로 다가온 아르망은 그 작은 두 무릎을 조용히 꿇었다. 

 


“다시금 간청 드리옵니다. 폐하. 이 초대에 응하시면 안 되십니다.”

 

“...”

 

“과거 그곳에 있었던 일로 책임감을 느끼시어 초대에 응하시는 것이라면 폐하. 과거 그 곳에 있었던 일은 폐하와는 전혀 무관한 일입니다. 행하지 않은 일에 대하여 폐하께서 죄책감이나 책임감을 가지실 필요는 없는 일입니다."

 

“....”

 

“폐하께서는 저희가 과분하다 느낄 정도로 저희를 사랑해주고 계십니다. 저희가 인간이 아닌지 착각이 들 정도로 저희를 인격체로 대해 주고 계시고, 그 어느 때보다 저희가 자유롭도록 배려해주고 계십니다. 저희 중 어느 누구 하나 이 모든 것이 폐하의 은혜라 모르는 이가 없습니다. 그러니 폐하..”

 


금방이라도 눈물이 터져 나올 것 같은 눈망울과 함께, 아르망의 가지 말라는 애달픈 손길은 사령관의 손을 감쌌다. 

 


“미천하고 부족한 이가 다시금 이렇게 간청 드리옵니다. 흘러간 어둠을 보려 마시고 눈앞의 빛만을 보며 나아가 주십시오..”

 

“아르망..”

 


자신의 손을 감싸고 있는 애달픈 손길과 거기에서 전해오는 따뜻함은 아르망이 얼마나 자신을 생각하고 있는지 알 수가 있었다. 

 

하지만 그런 아르망의 애달픈 간청에도 불구하고, 사령관은 매정하게 자신의 손을 천천히 빼내었다. 

 


“미안하구나. 이번만큼은 네 마음에 응해 줄 수 없구나.”

 

“폐하..제발..”

 

“흘러 가버린 어둠이기에 여기서 눈을 돌려 버린다면, 나 또한 과거의 인간들과 다를 것이 없겠지..”

 


사령관은 빼낸 손을 뻗어 아르망의 눈가에 맺힌 눈물을 조심스레 닦아 주었다. 

 


“눈앞에 있는 빛을 향해 나아가기 위해 어둠속에서 고통 받았던, 고통 받은 이들에게서 눈을 돌리는 짓은 나는 차마 할 수 없구나. 최후의 인간이기 이전에 나라는 인간이.. 카인이라는 인간이 너희들에게, 앞으로 함께 할 이들에게 떳떳하기 위해서라도, 나는 그 어둠에서 눈을 돌릴 수 없단다.” 

 


“폐하..”

 

“각 부대. 남은 일들은 빠르게 정리하도록. 정리가 끝나는 대로 출발 할 것이니.”

 


필요한 지시사항과 함께 회의는 너무도 조용하고 무거운 분위기 속에서 마무리가 되었다.

 

.

..

...

 

사흘 후.. 

 

멜버른의 방어에 대한 대비와 큰 업무를 끝내고, 환상의 나라로 출발하기 위한 사령관의 앞에 뜻밖의 손님이 찾아왔다.

 


“한창 바쁠 텐데, 제 요청을 들어줘서 고마워요. 사령관.”

 

“아자즈의 면담요청이라면 바빠도 시간을 내야지?”

 

“후훗. 이곳으로 오기 전 미리 요청해두기를 잘했네요. 아! 이곳으로 오는 도중에 처음 보는 AGS가 있던데 혹시 기업의 비밀병기라도 발견한건가요? 분명 기본 형태는 그 전설의 니그호드 모델인데 제가 알던 모습이 아니였거든요.”

 

“니드호그 맞아. 나의 필요와 녀석의 요청으로 개수했지. 기초 설계는 나와 본인이 했지만, 나머지 공정과 조정 등은 닥터가 해주었지. 그런데 녀석에게 무슨 문제라도?”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한번 분해 해보고 싶은데? 안 될까요?”

 


한 대 밖에 없는  전설의 AGS를 그것도 개수 하였다는 말에 마음이 설레는 것 인지, 아니면 AGS를 분해 해본다는 것 자체에 흥분 한 것인지, 차분한 인상의 그녀와 어울리지 않게 안면의 홍조까지 띄우며 사령관을 향해 몸을 들이밀자 잠깐의 실랑이가 일어났다.

 

그렇게 한 동안의 실랑이 끝에 사령관은 니드호그의 설계도를 제공 해주겠다는 약속을 하고나서야 자신에게 몸을 들이미는 아자즈를 진정시킬 수 있었다. 

 

기계에 관해서는 포츈은 물론, 그 닥터조차도 한 수 접고 들어간다는 아자즈에게 사령관이 협력을 구하였을 때, 돌아온 그녀의 대답은 잠깐 시간을 달라는 것이었다.

 

사령관은 아자즈의 대답이 협력을 생각해보겠다는 의미로 여겼지만, 정작 그녀는 이미 사령관에게 협력하기로 마음을 먹은 상태였다.

 

사령관이 호드가 본거지로 사용하던 광산마을에 찾아 왔을 때, 사령관을 공격한 자신과 케시크을 상대로 보인 평범한 인간이 보일 수 없는 무력도 무력이었지만, 그러한 무력을 가졌음에도 자신들을 풀어 달라 말하는 시위하는 더치걸들을 향해 그가 보인 행동은 아자즈에게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그렇게 마음먹었음에도 시간을 달라한 이유는, 그녀로서는 먼저 해야 할 일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스칼 부소장님의 지시로 에이미양과 함께 몸을 피한지 100여년 만이네요..”

 


약 100여년.. 

 

오랫동안 떠나 있었던 자신의 옛 집인 안타이오스 조선소는 그녀가 떠나 있었던 시간만큼이나 많은 것이 변해 있었다.

 

자신이 기억하던 풍경도, 사람도, 동료도, 흔적도, 행여 어느 하나 남아 있는 것이 있지 않을까 찾아도 보았지만, 하찮은 몇을 제외한 그 모든 것은 모두 변한 채, 자신의 희미한 기억에 남아 버리고 말았다.

 


“모두 사라지고 정작 해체자라 불리는 저만 남아버리고 말았네요.”

 


이제는 자신의 기억에만 남아버린 기억의 쓸쓸함, 슬픔과 함께 그녀는 안타이오스를 이렇게 만든 원흉인 소장 휴고가 사령관의 손에 의해 단죄 받았다는 이야기와 이곳에 있던 사람들과 바이오로이드들 시신 역시,\ 사령관이 수습하여 정중하게 장례를 지내주었다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그리고 자신을 그곳에서 탈출 시켜준 은인인 부소장 이스칼과 그의 연인인 에이미의 유골은 사령관이 함께 할 수 있도록 배려 해주었다는 것을 마지막으로, 아자즈는 자신이 기억하던 과거의 모든 흔적을 마음속에 넣은 채, 새로이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되었다.

 

.

..

...

 

“들어서 아시겠지만, 소장 휴고는 함선을 생산해야 할 플랜트를 AGS를 생산하는 플랜트로 무리하게 개조 하였어요. 발전 시설 역시 대파된 것은 덤 이구요. 발전시설의 수리야 그렇다 쳐도, AGS 생산 플랜트는 다시금 함선의 생산 플랜트로 되돌리면서 문제가 생기고 말았어요.”

 

“어떤 문제지?”

 

“본래의 목적에서 두 번이나 강제로 바꾼 덕에 생산 플랜트 자체가 과거만큼의 가동률을 보이지 못하게 되었다는 문제에요.” 

 

“수치로 환산하면 어느 정도이지?”

 

“전성기에 비하면 대략 60% 정도에요.” 

 

“나쁘지 않군. 수리한다고 고생 많았겠군? 고마워.”



과거에 비하면 생산 가동률이 절반 가까이 떨어져 버리고 말았지만, 그것조차도 아자즈가 아니었다면 수리하지 못 하였을 거라 생각한 것인지, 별다른 동요 없이 감사의 인사를 하는 사령관을 바라보며 아자즈는 의외라는 표정과 함께 곧 입가에 작은 미소를 지었다. 

 


“후훗~ 예전에 인간님들이라면 그 정도 밖에 가동하지 못하냐고 노발대발 했을 텐데? 사령관은 그렇지 않나 보네요?”

 

“아자즈가 그 정도밖에 하지 못한 다라 말 한다면 그것이 맞는 것일 테지? 너도 그렇게 생각하지? 드라큐리나?”

 


사령관의 물음에 아자즈의 등 뒤에서 머리만 내밀고 있던 드라큐리나는 사람을 심하게 경계하는 고양이 마냥 사령관을 한 번 째려본 후, 다시금 아자즈의 등 뒤로 완전히 숨어버렸다.

 

글래머러스한 드라큐리나의 체형이 늘씬한 아자즈의 체형에 가려질까도 싶지만, 둘 사이에 키 차이와 함께 아자즈의 머리카락 덕분인지, 나름 가려지는 신기한 모습에 사령관은 입가로 작게 미소를 지어졌다.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되었나? 이곳까지 이동한다고 피곤 할 테니 편히 쉬도록. 나머지 업무에 관해서는 콘스탄챠에게 얘기 해두도록 하지.”

 

“어디 가는 건가요? 사령관?”

 

“잠시 가봐야 할 곳이 있어서 말이지.”

 

“괜찮다면 우리도 함께 데려가 주겠어요? 테마파크에..”

 


아자즈의 말에 사령관의 몸은 그 자리에 멈춘 채, 시선만 조용히 아자즈에게 향하였다.

 


“칸에게 이야기 들었어요. 사령관이 테마파크에 초대를 받았다고. 그리고 곧 그곳으로 향할 거라고.”

 

“이유를 물어도 괜찮을까?”

 

“굳이 이유를 말해야 한다면, 드라큐리나와 관련된 거예요.”

 

“드라큐리나?”

 


언제 잠이든 것인지 아자즈의 등에 얼굴을 기댄 채, 잠들어 있는 드라큐리나의 숨결을 느끼며 아자즈는 말을 이었다.

 


“사령관은 그녀가 왜 말을 하지 못하는지 혹시 이유를 알고 있나요?”

 

“칸에게 듣기로는 처음 발견했을 때부터 말을 하지 못했다고 들었는데? 혹시 심한 충격이라도 받았던 건가?”

 


과거 멸망전쟁이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황야에 홀로 탈진 한 채, 쓰러져 있던 드라큐리나를 발견하여 마을로 데려온 것은 칸이었다. 조난 된 바이오로이드 하나 구하는 것이 특별한 것이 없던 혼란스러운 시기였지만, 드라큐리나는 처음 발견했을 때부터 말은커녕 입으로 낼 수 있는 그 어떠한 소리도 내지 못하는 상태였다.

 


“드라큐리나의 멘탈이 바이오로이드들 중에서 약한 것은 사실이에요. 하지만 그렇다고 사람처럼 실어증이 걸릴 정도는 아니에요. 아무리 멘탈과 신체 능력이 다른 바이오로이드에 비해 약하다고 하지만 그녀 역시 엄연히 바이오로이드이니까요.”

 

“그 말은?”

 

“그녀는..”

 


아자즈는 자신의 등에서 세삼 평화롭게 자고 있는 드라큐리나의 작은 손을 자신의 손으로 조심스레 어루만져 주었다.

 


“자신의 목소리를 빼앗겨 버렸어요.”

 

“그게 무슨 말이지?”

 


이해 할 수 없다는 듯이 자신을 바라보는 사령관의 모습에, 아자즈는 자신도 모르게 실소를 하고 말았다.

 


“풋~! 정말 더치 걸의 말처럼 저희를 인간처럼 봐주는군요?”

 

“...”

 

“웃어서 미안해요. 고마워요. 우리를 인간처럼 봐주어서.. 하지만 사령관. 사령관이 우리를 어떻게 보더라도 우리는 결국 바이오로이드에요. 인간에 의해 만들어진 존재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어요.”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소모적인 논쟁을 하려고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니에요. 제가 말하고 싶은 건 바이오로이드는 필요에 의해 만들어 졌기에 각자의 역할이 있다는 것이에요.”

 

“각자의 역할?”

 

“사령관도 잘 아는 것처럼 저는 기계를 잘 다루게 만들어졌고, 칸 씨는 전쟁을 수행하기 위하여 만들어진 것처럼 바이오로이드는 저마다의 역할에 맞게 그 능력이 극대화 되도록 만들어졌어요.”

 

“그럼 드라큐리나의 경우에는?”

 

“그녀의 경우에는 AR행사나 에라토처럼 무대 위에서 활동 하는 아이돌? 가희? 그런 분야에 특화되어 만들어 진거구요.”

 

“인간에 비유하자면 성대를 잃은 거란 말인가?”

 

“굳이 인간에 대비하자만 그렇겠네요. 다만 그녀의 경우에는 강제로 제거 시술을 받은 흔적이 있지만요?”

 

“빼앗긴 그녀의 목소리를 찾을 수 있는 방법은?”

 

“제거된 그녀의 목소리 모듈을 찾아야 해요. 굳이 본인의 모듈이 아니라 같은 드라큐리나 기종의 모듈도 상관은 없어요, 모듈을 찾아서 다시 시술을 한다면 그녀는 다시 목소리를 낼 수 있어요. 말도 할 수 있고요.”

 

“그녀의 모듈..아니 목소리가 그곳에 있을 거라는 근거는?”

 

“예전 안타이오스 조선소에 있을 적. 연구원님들이 하는 말을 지나가다 들은 적이 있어요. ‘이번에 환상의 나라에 드라큐리나가 입고되었다.’라고..”

 


마치 새로운 장난감이 입고 된 것처럼 말하는 과거의 인간의 말에 사령관의 불쾌한 듯 미간이 살짝 일그러졌다.

 


“그런 의미에서 저와 드라큐리나를 동행시켜 주겠어요?”

 


아자즈의 부탁에 사령관은 시선은 여전히 세상모르게 자고 있는 드라큐리나에게 향하였다. 

 

그것이 무엇이 되었던 자신이 가진 무언가를 잃어버린 모습에서, 사령관의 눈으로 드라큐리나의 모습은 남극에 있는 LRL의 모습이 겹쳐 보였다.

 


“하는 수 없군.. 하지만 만약 그곳이 위험한 곳이라면 바로 돌려보낼 테니 그리 알도록.”

 

“알았어요. 그리고 고마워요. 사령관.”

 

아자즈, 드라큐리나의 합류와 함께 곧 환상의 나라로 향하기 위한 대원의 차출이 이루어 졌다.

 

.

..

...

 

 

사령관과 함께 환상의 나라로 가기 위한 부대로는 캐노니어가 차출되었다.

 

특별히 정찰이나 탐색, 전투를 위한 출격이 아니기에, 사령관은 호위부대인 컴패니언과 함께 동행 할 1개 부대의 차출을 결정하였다. 

 

문제는 사령관이 걱정 된 것인지, 그 1개 부대에 차출 되겠다며 대부분의 부대가 지원을 하고 나선 것이 문제라면 문제였다. 

 

자신을 걱정해주는 대원들의 마음이 기쁘고 고맙기는 하였지만, 현실적으로 모두를 데려 갈 수는 없는 노릇이기에 사령관은 제비뽑기를 제안. 지휘관들의 치열한 뽑기의 승부 끝에 행운의 여신은 아스널과 그녀가 이끄는 캐노니어의 손을 들어 주었다. 

 


“사령관..안녕?”

 

“어서 오렴. 에밀리. 아! 제녹스도 오랜만이군?”

 

“응.. 제녹스도 사령관이 반갑데..”

 


사령관의 인사에 답이라도 하듯 “삐빅!”거리는 기계음과 함께 제녹스에서 내린 에밀리는 입고 있는 새하얀 흰색의 원피스를 자랑이라도 하듯, 사령관의 앞에서 엉거주춤 한 자세로 한 바퀴 빙글 돌았다.

 


“사령관..이 옷..어때?”

 


평소의 가벼운 복장을 대신하여 입은 흰색의 원피스를 자랑하는 에밀리의 눈으로 맹함과 기대감이 도는 가운데 사령관은 복장에 대한 대한 감상을 하였다.

 


“미인에게 어울리는 예쁜 원피스로군. 아주 잘 어울려.”

 


사령관의 미인이라는 말이 마음에 든 것인지 에밀리의 볼은 곧 봄에 피는 꽃처럼 분홍빛으로 물들자, 얼마 떨어지지 나무 뒤로 “꺄아~!”하는 소란스러움이 들려왔다.

 


“에밀리는 그렇다 쳐도, 너희들까지 놀러가는 기분으로 가려는 것은 아니겠지?”

 


사령관의 지적에 나무 뒤에 숨어서 지켜보던 파니와 레이븐, 그리고 비스트 헌터가 모습을 드려내었다.

 


“어때? 사령관? 우리의 코디 실력이?!”

 

“에밀리에게 이 말을 듣게 하겠다고 삼안영업소 호주지부의 의류코너를 전부 뒤지고 다닐 걸 생각하면~ 크~!”

 


소란스레 호들갑을 떠는 파니와 레이븐의 모습과 함께, 그녀들을 바라보며 한숨을 내쉰 비스트 헌터는 면목 없다는 듯 사령관을 향해 사과를 하였다.

 


“면목 없습니다. 사령관님. 어떻게든 말려 보려는 했지만..”

 

“아스널이 허락 한 거겠지? 알고 있으니 너무 개의치 말도록.”


“그렇게 말씀 해주시니 감사합니다.”

 


사적인 일이 아닌 임무를 위해 사령관과 함께 출격 하는데 원피스가 가당키나 하겠냐만, 이번 임무는 전투 임무도 아니고, 설령 전투가 벌어진다 해도 캐노니어 최고전력인 에밀리까지 나설 필요는 없을 거라 아스널은 판단했을 것이다.

 

타 부대에 대비 부대원수가 적다고는 하지만, 아스널 역시 엄연히 한 부대를 이끄는 지휘관인 만큼 사령관은 그녀의 판단을 존중 해 줄 필요는 있었다.

 


“그건 그렇고, 정작 일을 벌인 당사자는?”

 

“금방 돌아오겠다고 했습니다만..”

 

“기다리게 해서 미안하군.”

 


양반은 되지 못하는 것인지 뒤에서 들려오는 아스널의 목소리에 고개를 돌려 그녀의 모습을 본 순간, 사령관의 눈은 휘둥그레 졌다.

 

사령관의 눈에 들어온 것은 청순한 외모와 긴 생머리, 그리고 에밀리의 원피스에 못지않은 순백의 원피스를 입고 당당하게 나타난 아스널 이였다.

 

원피스를 입은 에밀리의 모습이 갓 피어난 백합을 의인화 한 것처럼, 만개한 백합을 의인화 한 것 같은 그녀의 모습에, 사령관에 입으로는 반사적으로 감상평이 흘러나왔다.

 


“아름답군.”

 

“그대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오는 걸 보니, 이렇게 꾸민 보람이 있군?”

 


무심하게 말하는 것 같지만 다른 미사여구 없이 그저 “아름답다”라는 그 한마디가 마음에 든 것인지, 아스널은 곧 사령관의 팔에 매달리며 그의 귀에 속삭였다.

 


“에밀리도 그렇고 나도 이렇게 입은 이유는 그대가 힘내라는 이유도 있지만..”

 

“?”

 

“과거의 연인들은 테마파크에서 색다른 재미를 즐겼다고 하더군.”

 


사령관의 팔로 더욱더 밀착해 오자, 팔로 그녀의 가슴으로 전해지는 온기와 함께 부드러운 감촉 역시 전해져 왔다.

 


“전투는 닦히 없을 것 같으니, 오늘 가는 곳 에서는 그대와 함께 즐길 수 있겠지?”

 


코끝으로 아찔하게 풍겨오는 향기와 함께, 사령관의 손을 잡은 아스널의 손이 그녀의 엉덩이를 향해 가져가자, 곧 사령관의 손으로 묘하게 허전한 감각이 전해져왔다. 

 

그리고 곧 그 허전함의 정체를 깨달은 사령관이 황급히 아스널을 바라보자, 그녀는 청순한 모습과는 반대되는 매혹적인 미소를 지어 보였다.

 


“너..너!? 설마?!”

 

“어떤가? 이 정도면 언제 어디서든 그대와 즐길 수 있겠지?” 

 

“불가아아!!”

 

.

..

...

 

“정말 너무하는군.. 기운이 없는 그대를 생각하여 내 나름의 코디 한 것이었는데?”

 

“정도가 지나치잖나?! 에밀리도 바로 앞에 있는데?!”

 

“우리 에밀리도 알건 다 알고 있다만?”

 

“아무리 그래도 속옷을 입지 않은.. 어째든! 그건 아니잖나?!”

 

“음.. 가끔 보면 말이지. 그대도 헌터 만큼이나 꽤 보수적인 것 같단 말이지?”

 

“하아...”

 


사령관의 명령으로 다시금 원피스에서 정복으로 갈아입은 아스널의 불평과 함께, 그녀의 뻔뻔함을 바라보는 사령관의 머리로 두통이 몰려 왔다.

 

원피스를 입은 아스널과 에밀리의 모습은 이견이 없을 정도로 아름다운 모습이었고, 그녀들의 그런 모습으로 동행하는 것 또한 허락해도 괜찮을 거라 생각 하였다. 

 

하지만 문제는 아스널의 원피스 속 아래에 입고 있어야 할 속옷을 입고 있지 않았다는 것이 문제였다.

 

서로의 벗은 모습을 본 것은 물론이고, 물고 빨고 할 건 다한 사이에 그 정도는 뭔 대수인가 싶겠지만, 문제는 에밀리였다.

 

몸은 성인이지만 정신은 아직 어린아이와 다름없는데다, 그녀가 속한 부대는 남극군에서도 개방적으로는 세 손가락 안에 캐노니어 이기에, 사령관으로서는 행여 에밀리가 이상한 성지식이나 성벽을 배우는 것이 아닌 가하며 신경을 쓸 수밖에 없었다. 

 

이에 사령관은 캐노니어 대원 중 그나마 상식인의 포지션인 헌터에게 에밀리의 관리를 부탁하였고, 헌터의 노력 덕에 에밀리는 여전히 그 순수함을 유지할 수가 있었다. 

 

사령관 역시 장난이나 분위기의 떠밀리는 것이 아닌, 에밀리 자신의 의지로 요구한다면 그녀를 안아줄 용의는 있다.

 

하지만 그렇게 사랑을 나눌 때, 에밀리의 입으로 아스널이 할 만한 대사가 나온다는 상상하니 온몸의 소름과 함께 커다란 죄악감이 밀려오는 것 같았다.

 

어째든 과거 연인들이 테마파크에서 벌였다는 색다른 재미가 무엇인지는 아스널 그녀만이 알겠지만, 필시 정상적인 행위는 아닐 것이 분명하기에, 사령관은 아스널이 에밀리 근처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헌터에게 다시금 지시하였다.

 

그렇게 한동안 머릿속으로 맴도는 두통과 함께 멜버른 근교로 이동, 얼마 지나지 않아 멀리서 동화에서 나올 것 같은 커다란 성의 모습과 함께 목적지인 환상의 나라가 그 모습을 드려내었다. 

 

.

..

...

 

 

일행이 환상의 나라의 입구에 다다랐을 때 쯤, 입구에서 일행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사령관에게 초대장을 전해주려 왔던 펍 헤드였다.

 


“환상의 나라로 오세요오~ 즐거운 축제가 열리는 곳~ 모험의 나라로 오세요오~ 영원한 행복의 나라~” 

 


저 멀리 어느 반도 국가에 존재할 것 같은 테마파크 송과 함께 펍 헤드가 그 짧은 팔까지 흔들며 춤사위를 선보이자, 하치코나 에밀리 등은 그 모습을 흥미롭게, 리리스나 아스널 등은 별다른 감흥 없이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환상의 나라에 오신 여러분을 환영합니다!”

 

“...”

 

“과거 철충과의 전쟁으로 인해 저희 환상의 나라가 기약 없는 무기한의 휴장한 이래, 가장 많은 손님이 방문 해주셨습니다! 모두~ 박수~!”

 

“....”

 


활기찬 멘트와 함께 펍 헤드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사령관이 그저 무심한 눈빛으로 펍 헤드를 바라보자, 그런 사령관의 눈빛에 질리고 만 것인지, 푸른색의 동체가 더욱더 푸르게 변하는 것처럼 보였다.

 


“저기..손님?”

 

“안내하도록.”

 

“네? 아! 네! 안내 해드려야지요! 자! 그럼 손님들! 지금부터 환상의 나라로 출발 하겠습니다!”

 


펍 헤드의 신호와 함께 오랜 세월 굳게 닫혀있던 환상의 나라로 향하는 육중한 철문이 천천히 열리며, 오랜만의 손님을 맞이하였다.

 


“저희 환상의 나라에 대해 말씀 드리자면 창업주이신 ”게리 리즈웨이“님이 세계 유명 테마파크들을 벤치마케팅 하시어 세우신 테마파크로, 과거에는 연간 방문객만 200만 명에 이르는..”

 


오랜만의 방문객이기 때문이었을까?

 

저러다 과열되는 것이 아닐까 싶은 정도로 쉴 틈 없이 설명을 하는 펍 헤드의 설명에는 관심이 없다는 듯, 사령관은 환상의 나라 안을 찬찬히 둘러보았다.

 


“오랫동안 휴장한 것 치고는 관리가 무척 잘 되어있군?”

 

“언젠가 다시 개장하기 위해서는  관리는 중요한 법이죠~”

 

“그렇군?”

 


관리가 잘 되어 있다는 사령관에 칭찬 덕분인지, 뿌듯함 마저 느껴지는 펍 헤드의 말대로, 환상의 나라 내부는 오랜 세월 휴장 했다는 것이 거짓말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관리가 무척 잘 되어 있는 모습이었다.

 


“사령관..사령관..”

 

“무슨 일이니? 에밀리?”

 

“저기..저거..”

 


사령관의 코트 자락을 잡아당기며 반짝이는 눈을 한 에밀리가 손가락으로 가리킨 것은 흥겨운 음악과 함께, 형형색색의 조명을 빛내며 돌고 있는 회전목마였다.

 


“회전목마로군? 타보고 싶은 거니?”

 


사령관의 질문에 에밀리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자, 사령관은 작은 미소와 함께 잔뜩 기대의 찬 눈을 한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헌터와 함께 가도록 하렴. 헌터. 부탁해도 괜찮을까?”

 

“네. 사령관님. 자. 에밀리. 저와 함께 가도록 하죠.”

 


헌터의 손을 잡고 함께 회전목마로 향하는 에밀리를 뒤로, 다음 기다리고 있는 것은 에밀리 만큼이나 반짝이는 눈을 한 파니와 레이븐 이었다.

 


“사령관님! 우리는 저기 범퍼카 타고 싶어요?!”

 

“타는 건 상관없다만, 부서지지 않게 조심하도록.”

 

“야호~! 가자! 레이븐!”

 


자료에서만 보던 테마파크의 어트렉션을 눈앞에서 보았기 때문일까?

 

환상의 나라에 있는 각종 어트렉션들은 그곳에 있는 대원들의 흥미를 끌기에 충분하였고, 이후 사령관은 대원들에게 자유시간 허가. 허가를 얻은 대원들은 각자가 흩어져 각종 어트렉션을 타며 즐기기 시작하였다.

 


“너희들은 즐기지 않아도 괜찮은가?”

 

“저는 괜찮습니다. 폐하.”

 

“저도 주인님 곁에 있는 것이 더 즐거운 걸요.”

 

“나도 놀이기구 보다는 그대 곁에 있는 것이 더 즐겁군.” 

 


자신의 곁이 더 좋다는 아르망과 리리스, 아스널의 말과 함께, 한창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대원들의 바라보던 사령관은 발걸음을 옮겨 환상의 나라의 안쪽으로 향하였다.

 

발걸음을 옮겨 조금더 안쪽으로 향한 사령관의 눈앞으로 펼쳐진 것은, 붉은 꽃들이 가뜩한 커다란 정원이었다. 

 


“세상에..”

 

“아름답네요.”

 


마치 거대한 꽃의 호수를 연상시키는 정원의 모습은 그녀들의 입에서 탄성이 나오게 하기에 충분 하였고, 그런 그녀들의 탄성이 마음에 든 것인지, 사령관의 머리위로 목소리가 들려왔다.

 


“꽃이 마음에 드셨나요? 손님?”

 


갑작스레 들려오는 목소리를 따라 고개를 들자, 그곳에는 중세의 마녀의 복장과 비슷하지만 조금 더 대담한 복장을 한 바이오로이드가 기계로 된 빗자루에 탄 채, 생글거리는 미소로 사령관 일행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정체불명의 바이오로이드의 등장에 리리스 와 아스널이 재빨리 경계태세를 취하려 하였지만, 사령관은 손을 들어 두 사람을 제지하였다. 

 


“감상은 방금 그녀들의 감탄으로 대신해도 괜찮겠지?”

 

“물론이죠. 손님께서는 어떠신가요?”

 

“굳이 나의 평가까지 필요한 건가?”

 

“물론이죠. 다른 누구도 아닌 인간님의 평가인걸요?”

 


요란한 엔진 소리와 함께 지상으로 내려온 마녀는 곧 매혹적인 몸짓과 함께, 사령관을 향해 다시금 정중히 인사를 올렸다.

 

“다시 한 번 정식으로 인사 올릴게요. 이곳 환상의 나라를 관리하고 있는 관리 바이오로이드 키르케라고 합니다.”

 

“남극군 총사령관 카인이다. 내 뒤에 이들과 저기서 즐기고 있는 이들은 내 휘하의 대원들이고.”

 

“저희 환상의 나라에 이렇게 활기가 도는 것은 참으로 오래간만이에요.”

 

“이럴 줄 알았다면 대원들을 좀 더 데려 올걸 그랬군?”

 

“후후. 다음에 방문 하실 때는 저희도 준비를 해둬야겠네요? 그건 그렇고..”

 


아르망을 시작으로 리리스와 아스널를 곁눈질로 찬찬히 훑어보던 키르케의 눈은 언제 도착한 것인지 조금 떨어져 있는 아자즈와 그녀의 등에서 떨고 있는 드라큐리나에게 고정되었다.

 


“오랜만이에요~! 드라큐리나양~! 당신이 갑작스레 도망..아니 사라지는 바람에 주인님께서 얼마나 많이 걱정하셨는지 아세요? 시간이 많이 지나기는 했지만, 지금이라도 돌아와서 정말 다행이에요~”

 


오랜만에 만난 지인처럼 아는 체 반가워하는 키르케와 반대로 드라큐리나는 키르케와 눈도 마주치지 못한 채, 아자즈의 등 뒤에서 사시나무처럼 벌벌 떨기만 할 뿐이었다.

 

마치 마수처럼 드라큐리나를 향하는 키르케의 손은 곧 사령관의 손에 의해 막히고 말았다.

 


“거기까지..”

 


갑작스레 끼어든 사령관의 제지에 키르케의 입은 여전히 생글거리는 미소를 지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살짝 가늘어진 눈으로 사령관을 바라보았다.

 


“손님. 이러시면 곤란합니다만?”

 

“미안하지만 그녀는 현재 내가 보호하는 중이다. 그러니 함부로 손대지 말아줬으면 좋겠군?”

 

키르케의 가늘어진 눈을 받아치듯 사령관의 차가운 눈빛에 한발 물러난 키르케였지만, 그럼에도 주눅 들지 않고 한쪽 볼에 바람을 잔뜩 넣은 채, 사령관을 향해 불평하였다. 

 


“손님. 드라큐리나 양은 원래 이곳의 소속이었습니다만?”

 

“설령 그것이 사실이라 해도, 오래 전 일 아닌가?”

 

“소유권 기간을 따지시는 거라면, 바이오로이드인 그녀는 법률상으로 전혀 문제가 없습니다만?”

 

“지금 시대에 법이 의미가 있겠냐만, 굳이 법을 내세울 거라면 어디 시티가드라도 불러보던지?”

 


잠시간의 사령관과 눈싸움을 벌이던 키르케는 이네 ‘뭐 상관없겠지?’라는 산뜻한 표정과 함께, 드라큐리나에게 향하던 손을 거두었다.

 


“‘손님은 왕이다’가 저희의 환상의 나라의 모토이니, 저도 물러날 수밖에 없겠네요? 하지만 저희로서는 예상치 못한 손해를 감수해야 하는 상황이니 손님께서 추가 요금을 지불해주셔야 할 것 같은데, 괜찮으신가요?”

 

“지불하도록 하지.”

 

“지금 시대에 화폐는 의미가 없고.. 그렇다고 참치캔은 제가 좋아하지 않으니..”

 


한참을 고민하며 생각하던 키르케는 이네 좋은 생각이 떠오른 것인지 다시 생글거리는 미소로 사령관을 바라보았다.

 


“저와 함께 이곳 환상의 나라의 투어와 함께 어트렉션들을 즐겨주시는 것! 이것이 제가 손님께 제시하는 비용이에요. 어떠신가요? 이정도면 손님께 정말~!정말~!정말~! 남는 장사인데?”

 

“받아들이도록 하지.”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사령관이 키르케의 제안을 수용하자, 이네 기분이 좋아진 키르케는 아직 시동이 채 꺼지지 않은 자신의 빗자루에 냉큼 올라탔다. 

 


“그럼 환상의 나라의 투어를 향해! 출발~출발~!” 

 

.

..

...

 

“하나 물어보고 싶은 것이 있다만?”

 

“무엇이든 물어 보세요~”

 

“어째서 나에게 초대장을 보낸 거지?”

 

“손님. 아직 소문을 모르고 계세요?”

 

“소문?”

 

“인간님이 철충에게서 이 땅을 해방하기 위해 강림 하였다는 소문이요?”

 

“그게 무슨 말이지?”

 

“손님은 아시는지 모르지만 이 땅은 바이오로이드들이 살아가기에는 좋은 곳은 아니에요. 황량한 사막지대가 대부분인데다, 사람이 살던 곳은 철충이 자리 잡고 있고, 다른 대륙을 탈출하기도 쉽지 않고.. 이런 땅에 살아남은 인간님이 강림하여 철충들을 전부 몰아내고 이곳에 있는 바이오로이드를 구원한다! 이 근처에 있는 바이오로이드는 모두 알고 있는 사실 이랍니다.”

 


과도한 제스처와 함께 혼자 감동해 하고 있는 키르케를 바라보며, 사령관은 곧 아르망과 아자즈를 향해 곁눈질을 보내었다. 하지만 두 사람 역시 그런 이야기는 처음 듣는다는 제스처를 취하였다. 

 


“그래선 그 인간이 나라는 말인가?”

 

“인간님이 아니셨어요? 이상하다? 분명 뇌파는 인간님인데?”

 

“인간은 맞다만?”

 

“그렇죠? 역시~! 인간님이 강림하셨다는 소문을 들은 저는 철충과의 싸움에서 지치셨을 인간님의 심신이 조금이라도 리프레쉬 하실 수 있도록 수소문 끝에 초대장을 보내게 된 것이랍니다.”

 

“..배려에 감사하다 해두지.”

 


키르케의 말이 전부 사실인지는 알 수 없지만, 지금 당장에는 이곳이나 키르케 자체로는 수상한 점이나 위험한 점은 보이지 않았기에, 사령관은 더 이상의 질문은 하지 않았다. 

 


“자~! 제가 야심차게 소개해드리는 환상의 나라의 명물! 무려 시속 150km의 속도로 360도 회전하는 테라스웡 과 시속 300km을 자랑하며 매년 세 자리수의 손님을 구급차에 태워 보내는 데스트레인! 그 외에도 매년 두 자릿수의 손님을 의무실로 이송하는 각종 어트렉션까지!”

 

“리프레쉬와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 소개로군?”

 

“이런 거 타고 한 번씩 비명도 질려주고 해야, 속 안에 있는 스트레스도 날아가고, 그래야 건강에도 좋은 법이랍니다.”

 

키르케와 가벼움과는 별개로 눈앞에 있는 어트렉션들은 그녀의 말대로 위험천만 해보였다.

 

“주인님. 굳이 이런 위험한 기구를 타실 필요가..”

 

“이곳에 투어를 즐겨주겠다고 그녀와 약속 했으니, 약속은 지켜야지.” 

 


이유야 어찌 되었던 키르케와는 이곳의 투어를 즐겨주겠다 약속을 하였기에, 사령관은 아르망의 걱정스러운 눈빛을 뒤로 홀로 어트렉션에 탑승을 하였다.

 

그리고 키르케의 멘트와 함께 오랜만에 손님을 태운 어트렉션은 마치 그 동안 움직이지 못한 한을 풀겠다는 듯 그 속도를 높이며 전속력을 다하기 시작하였다.

 

.

..

...

 

“펍 헤드씨가 정비를 제대로 못했나?”

 


모니터에 비치는 사령관의 모습을 바라보던 키르케는 다시금 어트렉션의 조종 장치를 확인하였다.

 

과거 탑승한 사람들의 입으로 비명이 튀어 나오게 만들고, 심하면 기절까지 시킨 전적을 가진 어트렉션 이었지만, 산전수전 다 격은 것은 물론 심지어 니드호그까지 타고 공중전까지 수행한 사령관에게 이런 어트렉션은 단순히 높은 곳에서 낮을 곳으로 떨어지고, 그저 빠르게 회전하며 진자운동만을 반복하는 기구에 지나지 않았다.

 

그렇게 자신이 추천하는 어트렉션을 타고서는 스릴이나 비명을 지를 거라 상상하였던 모습과는 달리, 오히려 지겨운 것인지 하품까지 하는 사령관의 모습에 키르케는 적잖이 당황해 하였다.

 


“즐겁군. 나름 색 다른 경험이기도 하고.”

 

“어..감사해요.”

 


방금까지 하품을 하는 모습이 모니터에 찍혔지만, 자신을 배려해서 인지 즐겁다라 일축하는 사령관의 감상에 키르케는 애써 당황한 기세를 감추었다. 

 


“이것으로 끝인가?”

 

“서..설마 그럴 리가요? 자! 다음은!”

 

“그만두세요! 마녀!”

 

“네?”

 

“더 이상 이런 의미 없는 짓으로 폐하의 눈을 어지럽히지 마십시오!”

 


키르케의 행동을 두고 볼 수 없었는지 기어이 앞으로 나선 아르망의 일갈에 키르케가 당황하자, 곧 사령관은 아르망을 제지 하였다. 

 


“그녀에게는 이곳의 투어를 즐겨 주겠다고 말했을 텐데?”

 

“하지만 폐하!”

 

“그만.. 일행이 무례를 범했군. 내가 대신 사과토록 하지.”

 

“괜찮아요. 손님의 불만사항을 듣는 것 또한 저의 일이니까요.”

 

“이해해줘서 고맙군. 하지만 이곳은 나에게 맞지 않는 것 같군. 그래서 말인데..”

 

“?”

 

“내가 알기로는 테마파크라는 곳은 이곳 말고 다른 곳이 있는 걸로 아는데?”

 


사령관의 말에 키르케는 이제야 사령관이 왜 그렇게 지루해 하였는지를 알았다는 듯, 곧 입가로 함박미소를 지었다.

 


“아하! 진작 말씀하시지 그러셨어요? 손님! 의외시네요? 동행하고 있는 여성분들이 많으셔서 그런 쪽으로 전혀 관심이 없으신 줄 알았는데?”

 


잔망스러운 미소와 함께 키르케는 사령관의 옆구리를 콕콕 찔러왔다.

 


“안내 해드리는 것은 문제가 없어요. 하지만 그곳으로 향하는 길을 현재 철충들이 막고 있는 것이 문제이지.”

 

“리리스. 아스널.”

 

“네! 주인님!”

 

“알았다. 캐노니어! 일 할 시간이다!”

 


사령관의 명령과 함께 자유시간을 즐기기고 있던 컴패니언과 캐노니어가 빠르게 철충을 빠르게 섬멸하자, 사령관은 키르케의 안내를 받으며 안쪽의 구역으로 이동하였다.

 

.

..

...

 

어트렉션이 있는 구역을 넘어 도착한 안쪽 구역에 도착한 사령관의 눈에 들어온 것은 놀이동산 같은 분위기의 구역과 확연히 다른 분위기를 풍기고 있는 구역이었다.


각종 어트렉션이 가뜩한 놀이동산의 모습의 전 구역과 달리, 이 구역에 있는 것은 2층 높이의 건물들이 즐비하게 들어선 모습이었다.

 

하지만 각 건물의 창문마다 드리워져 있는 거대한 커튼이며, 그 너머로 보이는 커다란 침대와 함께 테이블 만이 있는 모습은 그 모습만으로도 테마파크 보다는, 마치 거대한 사창가를 연상 시키는 것 같았다.

 

쓸쓸하다는 표현마저 사치로 느껴질 적막한 풍경과 함께, 키르케는 생글거리는 미소와 함께 안내소라 적힌 건물로 들어가 자리를 잡았다. 

 


“어떠신가요? 손님께서 원하시면 접수 해 드릴 순 있지만, 아쉽게도 응대해드릴 분들이 현재 없네요? 혹시 저라도 괜찮으시다면~?”

 


가뜩이나 열린 앞섬과 함께 보이는 새하얀 가슴과 그런 앞섬을 좀 더 열어 제치 듯, 장난 섞인 제스처를 취하는 키르케의 모습에도 불구하고, 사령관은 별다른 반응 없이 조용히 말을 이었다.

 


“사양하도록 하지. 그것보다.. 이곳 말고 또 다른 구역이 존재 할 텐데?”

 


사령관의 말에 키르케는 앞섬을 여는 장난스러운 손을 멈추었고, 생글거리는 미소 역시 순간 굳은 표정으로 바뀌었다. 하지만 이네 다시금 생글거리는 미소를 지으며 사령관을 응대하였다.

 


“손님. 그런 취향 이셨나 보네요?”

 

“...”

 

“옆에 그런 미인들을 두시고도 왜 그런 지루한 표정을 지으신 건지 이제야 이해되네요?”

 

“...”

 

“자극이 필요하신 거죠? 일상에서 절대 느낄 수 없는 그런 새롭고 강렬한 자극이요?”

 

“...”

 

“왜 그렇게 생각 하냐고요? 당연히 많은 인간님들이 일상에서는 즐길 수 없는 색다르고 강렬한 자극을 찾아 그곳을 찾으셨거든요?”

 

“....”

 

“네. 안내 해드릴게요. 손님의 요구에 응해드리는 것. 그것이 저에게 주어진 역할이니..”

 


여전히 생글거리는 미소였지만, 그 생글거리는 미소 안에 담긴 슬픔을 뒤로, 키르케는 테마파크의 더욱 더 깊은 곳을 향해 사령관을 안내하였다.

 

.

..

...

 

키르케의 안내와 함께 테마파크의 안쪽으로 향하는 사령관의 앞길을 막은 것은, 사령관의 지시로 잠시 자리를 비웠던 아르망이었다.

 


“아르망. 알아본 것은?”

 

“네. 폐하. 멜버른에 연락하여 이곳 근처를 비롯하여 멜버른 근교, 저희가 주둔 했던 곳, 전부를 포함한 모든 수색 기록을 뒤져 보았지만, 바이오로이드 생존자들이 모여 있는 곳은 호드가 근거지로 삼고 있던 곳. 단 한곳뿐이었습니다.”

 

“우리가 발견하지 못했을 가능성은?”

 

“없습니다.”

 


단호한 아르망의 말에 사령관이 키르케를 바라보자, 키르케는 그저 담담하게 사령관의 눈을 마주 할 뿐이었다.

 


“...”

 

“그리고 혹시나 해서 리리스 경호대장에게 부탁하여 펍 헤드를 추궁 해보았습니다.” 

 


펍 헤드까지 추궁하였다는 이야기가 나오자, 키르케의 입으로는 작지만 깊은 한숨이 세어 나왔다.

 


“그를 추궁하였다면 모두 말하였겠네요? 그는 전 시티가드이기는 하지만 겁이 많으니까요.”

 

“당신 뜻대로 하게 놔둘 것 같나요?”

 


곧 컴패니언 과 캐노니어가 키르케를 제압 하려는 듯 그녀의 주위를 포위 하였다. 

 

그리고 아르망의 추궁을 아무 말이 듣기만 하던 키르케는 입을 열었다. 하지만 그 말투에는 지금껏 장난이 섞인 것이 아닌 그저 담담한 말투였다.

 


“제가 모두를 위해 할 수 있는 것은 이 방법뿐이니까요.”

 

“아직도 그런 말을! 폐하!”

 


아르망이 일갈하는 순간. 갑작스레 튀어나온 철충이 사령관 있는 쪽을 향해 덮쳐왔다.

 


“손님! 안 돼!”

 


갑작스러운 철충의 공격에 사령관을 지키기 위해 키르케가 몸으로 막아섰지만, 정작 그녀의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자신의 앞에서 수많은 실선이 생기며 산산조각 나버린 철충의 모습이었다.

 


“이게 대체..?” 

 


영문도 모른 채 눈앞에서 산산조각 나버린 철충을 바라보며, 키르케는 곧 자신의 뒤로 느껴지는 한기에 조심스레 뒤를 돌아보았다.

 


“손..님?”

 


언제 뽑아든 것인지 조용히 염라도를 집어넣는 사령관의 모습과 함께, 키르케의 머리로는 혼란스러움이 느껴졌다. 

 

자신이 아는 한 인간이 철충을 그것도 병장기 따위로, 없앤다는 사실은 본적도 들은 적도 없기 때문이다.

 

“키르케.”

 

“네..네?!”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단 음절의 목소리에 키르케는 자신의 등골을 타고 흐르는 서늘함과 동시에 사신이 자신의 목을 향해 칼을 들이미는 것 같은 착각을 하였다. 

 


“안내하도록.”

 

“네?..네!”

 

“그리고 아르망.”

 

“말씀하십시오. 폐하.”

 

“불만스럽겠지만 그녀에 대한 건 나중에 묻도록 하지.”

 

“알겠습니다. 폐하.”

 

“못난 인간이 언제나 심려를 끼쳐 미안하구나.”

 

“아닙니다. 폐하. 모시겠습니다.” 

 

.

..

...

 

 

걸음을 옮겨 소위 통제 구역에 도착한 사령관의 눈에 들어온 것은 오린 세월에 영향으로 낡기는 하였지만, 한눈에 보기에도 화려하고 고급스러운 건물들의 모습이었다.

 

만약 인간의 욕망과 쾌락을 건물로 짓는다면 이런 모습일까?

 

아무런 말없이 그저 조용히 건물들을 바라보는 사령관의 옆으로 아르망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폐하께서도 아시겠지만.. 이곳으로 보내진 바이오로이드들은 모두...”

 


끝까지 말을 잇지 않았지만, 아르망이 무슨 말을 할지는 알 것 같았다.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며 둘러보는 그때 사령관의 뒤쪽으로 약간의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드라큐리나양! 진정해요!”

 


마치 무언가 봐서는 안 되는 이처럼 그 자리에 주저앉은 드라큐리나는 마치 간질에 걸린 환자처럼 발작을 일으키며 몸을 떨었고, 그 떨림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 심해져만 갔다.

 


“드라큐리나양!”

 

“!!..!!..!!”

 


몸을 떨며 비명을 지르고 있지만, 소리를 내지 못하는 그녀의 입으로 나오는 것은 그저 소리 없는 공허한 비명이었다. 

 


“!!!”

 


소리 없는 비명과 고통스러운 몸부림치며 괴로움에 자해조차 하지 못하는 그녀를 곧 사령관이 안아주었다. 

 


“너를 괴롭히는 것은 이제 이 세상에 없으니 진정하렴..” 

 

“!!!!!”

 


사령관의 품에서 드라큐리나의 몸부림이 더 심해져가자 그녀의 몸부림을 맞추기라도 하듯, 사령관 역시 그녀를 좀 더 강하게 안아 주었다.

 


“무엇이 널 힘들게 하는지 모르겠지만, 너를 힘들게 하는 것이 있다면 내가 전부 없애 버려주마.” 

 


사령관에 품이기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사령관의 말 때문이었을까? 사령관의 품에서 소리 없는 비명을 지르며 고통에 몸부림치던 드라큐리나의 몸부림은 점점 잦아들기 시작하며 잠시 후. 사령관의 품속에서 그대로 잠들었다.

 


“저의 불찰이에요.. 행여 그녀의 목소리에 대한 단서를 찾을 수 있을까 싶어 여기까지 함께 온 것이었는데...”

 


드라큐리나가 이곳에 관련 되었으리라 예상하였지만, 설마 통제구역에 관련 되었을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한 것인지, 아자즈는 그저 미안한 얼굴로 눈물범벅이 된 채, 잠이 든 드라큐리나의 얼굴을 닦아주려고 하였다.

 

그리고 드라큐리나의 얼굴을 닦아주려는 아자즈의 손으로 한 방울 두 방울의 물방울이 떨어지자, 아자즈는 곧 그 물방울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아프구나.. 너무도 아파..”

 


숨죽여 소리 없이 우는 사령관의 모습과 그 모습을 지켜보는 대원들은 마음이 먹먹해짐과 함께 한편으로는 조금은 놀래었다.

 

대원들에게 있어 사령관의 모습은 자신을 몸을 꿰뚫어 오는 철충의 공격에도, 영혼을 부셔오는 별의 아이의 공격에도, 그 어떤 상황에서 절대 포기하지 않고 맞서 싸우는 용사이자 지휘관이었다.

 

언제나 자신들 앞에서 당당하게 서서 절대 눈물 따위는 보이지 않을 것 같은 남자가 한번 본 적이 없는 바이오로이드 위해 눈물을 흘려주는 모습에 숙여해 질 수밖에 없었다.

 


“주인님..”

 

“사령관..”

 

“폐하..”

 


아르망이 테마파크로 향하려는 사령관을 막은 이유가 이것이었다. 

 

통제구역의 모습을 본다 한들, 자신들을 사랑해주는 사령관의 마음이 변하지 않을 거라는 것은 아르망 본인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너무나도 사랑하기에, 그 사랑만큼이나 쉽게 상처 받고, 쉽게 아파 할 수 있다는 것 또한 잘 알기에 아르망은 사령관이 슬퍼하는 것을 원치 않았다. 

 

그녀 역시 사령관을 따르는 바이오로이드 이기 이전에 카인이라는 한 남자를 사랑하는 한명의 여인이기에, 자신이 사랑하는 이가 괴로워하는 것을 차마 볼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폐하의 잘못이..아닙니다..”

 


아르망의 위로에도 사령관은 슬픈 눈을 쉽사리 거둘 줄 몰랐다.

 


“손님...”

 

“미안하군.. 이런 모습을 보이려고 안내 해달라는 것은 아니었는데..”

 

“아니에요.. 저기 손님. 부탁드릴 것이 있습니다.”

 

“부탁?”

 

“저와 함께 가주셨으면 하는 곳이 있습니다..”

 


키르케의 말과 함께 사령관의 시선은 키르케가 바라보고 있는 곳을 향하였고, 그곳에는 그 어느 건물보다 화려하고 웅장한 저택이 서있었다.

 


“저곳은?”

 

“이곳을 세우신 분이 기거하시는 곳입니다.”

 

“마녀! 슬퍼하시는 폐하를 아직도! 안됩니다! 폐하! 이 마녀의 말을 들을 것 없습니다!”

 


아르망의 말에 사령관은 손을 들어 제지 하였고, 이제까지 본 적 없이 분노한 사령관의 표정에 아르망은 자신도 모르게 한 발자국 물러 설 수밖에 없었다.

 


“가도록 하지..”

 

“손님..”

 

“이딴 지옥을 만든 인간의 낯짝.. 한 번 봐야겠다.”

 

.

..

...

 


키르케를 안내를 받아 저택으로 향하는 동안 아르망은 펍 헤드를 추궁하여 얻은 이곳의 주인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었다.

 


“이곳을 만든 이는 ‘게리 리즈웨이’라는 인물이라 합니다.”

 


환상의 나라를 만든 ‘게리 리즈웨이’는 멜버른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가난한 어부 집안에서 태어난 남자였다.

 

그의 어머니는 그를 출산하고 뱃일을 하다 사고로 사망한 덕에 그는 어부인 아버지에 손에 키워졌고, 그 영향으로 그는 아버지를 따라 자연스레 바다를 접하였다. 

 

하지만 그가 학교를 입학 할 나이가 되었음에도 그의 아버지는 그를 학교에 보내지 않았고, 그 덕에 그는 남들이 다 받는 기본적인 교육조차 받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런 그에게 있어 바다는 자신의 친구였고, 스승이며, 삶의 터전이었다.

 

여기까지 보면 그저 방송에 나올 것 같은 흔한 어부 부자의 이야기이지만, 문제는 그의 아버지에게 있었다.

 

그가 제대로 된 교육 받거나 주변의 지원을 받지 못한 이유는 그의 아버지는 멜버른 근교에 일어난 미제로 남아 있던 연쇄 살인사건의 범인이고, 행여 꼬리가 잡힐 것을 두려워한 그가 외부와의 교류를 철저히 단절하고 통제하였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살인자인 아버지의 유전자를 이어 받아서였을까? 아니면 그가 처해진 고립된 환경 때문이었을까? 

 

게리는 어느 순간 바다 동물들을 잔인하게 죽이는 것을 즐기기 시작하였다.

 

물고기나 바다새 등의 목을 꺾는 감각을 즐긴다던지, 작은 바다 동물을 죽을 때까지 괴롭히는 것을 즐겼고, 특히 어디서 구했는지 모를 작은 칼로 물고기나 바다동물을 계속해서 찌르는 그 감각과 함께 생명체가 서서히 죽어가는 그 모습을 즐기었다.

 

그리고 이러한 그의 이런 행동을 제지하는 이는 그 어디에도 없었다.

 

철저하게 외부와 단절된 환경과 함께, 설령 외부와 교류한다 한들 작은 아이가 물고기를 칼로 찌르는 행동을 신경 쓸 이는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바다생물을 상대로 자신의 마음속 작은 가학심과 욕구를 충족하던 게리는 15세이던 해. 아버지가 연쇄 살인 사건의 진범으로 체포, 재판 끝에 사형선고를 받아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고 말았고, 양친을 모두 잃은 그 또한 보호시설로 옮겨지게 되었다.

 

가족을 모두 잃어버린 그였지만 그는 괴롭거나 슬픈 그 어떤 감정도 변화도 느끼지 못하였다. 아니 오히려 별다른 변화 없이 늘 하던 바다 생명을 죽이지 못해 채우지 못하는 자신의 욕망에 도리어 힘들어 하였다. 


그런 그에게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보호시설은 너무나도 답답한 감옥과 다름이 없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성인이 되어 보호시설을 나온 그는 자신이 살던 바닷가로 돌아갔고, 그는 부모의 유산인 작은 배를 타고 어부가 되어 어부 일을 하는 것과 동시에 바다 생물들을 상대로 그 동안 참았던 자신의 가학심과 욕구를 충족시키며  삶을 이어나갔다. 

 

그렇게 자신의 부모가 남겨준 작은 집과 작은 배로 어부가 아닌 어부의 삶을 살아가던 그에게 어느 날, 일생일대의 행운이 찾아왔다. 

 

오리진더스트를 만드는데 있어 핵심이 되는 광물이 그가 살고 있는 집을 중심으로 대량 매장 되어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자, 바이오로이드를 제조하는 각국의 기업들은 그가 살고 있는 집과 그 땅을 사기 위해 천문학적인 금액을 제시 하였고, 보호시설에서 교육을 받은 덕에 자신의 아버지와는 달리 바보가 아닌 게리는 채굴 금액에 대한 일정 금액의 로얄티까지 요구하며 기업과의 협상 끝에 하루 아침에 호주 내에서도 손꼽히는 부자가 되었다.

 

천문학적인 금액을 손에 넣은 그가 먼저 한 일은 도시에서 떨어진 곳에 있는 커다란 저택을 구입하는 것과 함께 바이오로이드를 구입하는 것 이었다.

 

바다 생물을 죽이는 것으로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 힘들어진 그는, 어느 순간 바다 생물이 아닌 사람을 죽이면 어떤 느낌일까를 궁금해 하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살인범으로 체포되어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그의 아버지의 모습은 그가 살인까지 가는 것을 막아주는 최후의 안전장치가 되었다. 

 

그런 그에게 있어 사람과 똑같지만 돈만 있다면 구입 할 수 있는 바이오로이드는 최고의 장난감이나 다름없었다.

 

그렇게 바이오로이드를 상대로 처음 살인은 벌인 그는 마치 처음 마약을 접한 이처럼 황홀경에 휩싸였다.

 

자신의 명령에 움직이지 못하고 그저 살려 달라 떨기만 하는 바이오로이드의 눈빛이 곧 절망으로 바뀜과 함께, 그 몸을 찌르고 쑤실 때 마다 손으로 전해지는 감각과 찌를 때마다 입에서 나오는 비명소리는 단말마는 고사하고 소리조차 내지 못하고 죽어버리는 바다생물이나 물고기 따위는 비교도 되지 않는 쾌락을 그에게 가져다주었다.

 

자신의 내면의 사이코패스 성향을 더욱 각성한 그에게 있어 바이오로이드를 죽이고 고문하는 일은 섹스나 마약보다 더 큰 쾌락 이였고, 막대한 돈과 함께 자신의 쾌락과 욕구의 충족을 위해 본격적으로 바이오로이드를 구입하기 시작하였다.

 

매일 밤. 그의 지하실은 울려 퍼지는 고통과 애원 그리고 비명 소리는 끊일 날이 없었고, 악마에 의해 어두운 지하실은 말 그대로 지옥으로 바뀌어 버렸다.

 

하지만 그 어느 누구도 그 지옥에서, 그 악마에게서 바이오로이드들을 구해 줄 수도, 도움을 줄 수도 없었다.

 

아니 오히려 바이오로이드를 만드는 기업들에게 있어 게리는 VVIP나 다름이 없었다.

 

그렇게 바이오로이드를 상대로 지루해 할 때면 그는 해외로 나가 세계 곳곳에 있는 통제구역이 있는 테마파크를 돌아다니며 그 안에서 다른 이들이 바이오로이드를 상대로 벌이는 끔찍한 일을 보며 즐기었다. 

 

그에게 세계 곳곳에 있는 통제구역은 색다른 쾌락을 즐길 수 있는 곳이며, 동시에 새로운 배움의 장소였다. 그리고 그런 테마파크에게도 그는 최고의 고객이었다.

 

자신의 끝없는 쾌락과 욕망을 계속해서 갈구하던 그는 기어코 자신이 가보았던 세계 곳곳의 테마파크를 벤치마킹하여 자신만의 테마파크인 “환상의 나라”를 만들어 개장. 세계 곳곳에 자신과 같은 성향을 가진 이들과 함께 인간세상의 지옥의 문을 열어버렸다.

 


“단순히 욕망만 채우는 거라면 굳이 이런 곳을 만들 필요가 있는 건가? 사람들에게 자신의 정체를 들키는 날에게 비난을 피할 수 없을 텐데?”

 


세상이 아무리 바이오로이드를 하찮게 본다고 한들, 바이오로이드를 위해서 움직이는 사람도, 게리의 행위를 용납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다수는 존재하였다. 

 


“그건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아무리 아르망이라도 과거의 인물인데다 데이터가 부족한 일에 대해서는 분석 하여 명확한 답을 내놓을 수는 없었다.

 

하지만 그런 사령관의 궁금증에 대해 대신 답을 준 것은 키르케였다.

 


“게리님께서 테마파크를 만드신 이유는 그분이 그것을 제일 좋아하셨기 때문이에요.”

 

“그것?”

 

“그분은.. 어트렉션이 있는 일반구역에서 순수하게 즐기시는 손님들을 보며 눈앞에서는 바이오로이드를...”

 


차마 뒷말을 잇지 못하는 키르케의 모습에 사령관은 그녀가 말하려던 뒷말을 유추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게리 그는 화면에 비치는 일반구역에서 순수하게 테마파크를 즐기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자신은 눈앞에 바이오로이드를 고문하며 죽이며 거기에서 오는 그 괴리감을 즐겼을 것이다.

 

일반구역에서 행복한 한때를 보내는 사람들은 조금 떨어지는 곳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 건지 상상도 하지 못한 채. 행복한 시간을 보냈을 것이고, 그런 사람들의 행복한 웃음소리는 그것을 듣고 있던 바이오로이드에게 더한 절망감을 줬을 것이다.

 

게리에게 있어 사람들의 웃음소리와 바이오로이드의 비명소리는 마치 천국과 지옥의 교향곡처럼 그의 귀의 즐겁게 하고, 사람들의 미소와 바이오로이드의 절망은 그에게 명화 같았으리라. 

 

키르케의 설명과 함께 그의 어느새 저택 앞에 도착한 사령관은 굳은 얼굴로 굳게 닫혀 있는 문을 바라보았다.

 


“잠깐 기다려 주세요? 지금 열어드릴게요.”

 

“비켜..”

 

“네?”

 


키르케가 대답 할 사이도 없이 사령관이 커다란 저택의 문을 향해 주먹을 날리자, 커다란 저택의 문은 걸레짝처럼 변하여 저택의 안으로 날아가 버렸다.

 

저택의 문을 박살내고 저택 안으로 들어선 사령관을 향해 곧 키르케의 볼멘 목소리가 들려왔다.

 


“손님! 이렇게 막무가내로 들어가시면 곧 저택의 경비들이 움직인단 말이에요!”

 

“막을 수 있다면 어디 한번 막아보라지.”

 


한번 막아보라는 사령관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저택의 안쪽으로 번쩍이는 두 쌍의 안광과 함께 저택을 지키고 있는 경비들이 모습을 드러내었고, 모습을 드려낸 경비의 모습에 사령관과 일행의 눈은 크게 흔들렸다.

 


“저건 펜리르와 포이..인가?”

 


사령관의 눈앞으로 모습을 드려낸 것은 펜리르와 포이였다. 아니 정확하게는 펜리르와 포이의 모습을 한 무언가였다.

 


“이것들 역시 게리님께서..”

 


마치 신화의 나오는 스핑크스나 괴담의 나오는 인견처럼 늑대와 흑표범의 것으로 추정되는 짐승의 다리가 각각 펜리르와 포이의 팔다리를 대신하여 달려있었다. 

 

바이오로이드도 짐승도 아닌 그 기괴한 모습에 사령관의 자신도 모르게 쥐고 있는 손으로 힘이 들어갔다.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제가 어떻게든 달래볼..응?”

 


어떻게든 펜리르와 포이와의 충돌을 피하기 위해 나서는 키르케의 귀로 가까운 곳에서 물방울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네 물방울 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눈을 돌린 키르케 입으로 자신도 모르게 탄식이 흘러나왔다.

 


“손님..”

 


키르케의 눈에 들어온 것은 꽉 쥐고 있는 주먹 사이로 떨어지며 바닥을 조금씩 붉게 물들이고 있는 사령관의 피였다. 

 

그리고 떨어지는 피를 대신하듯 입으로 나오는 말을 너무나도 차가운 말 이었다.

 


“비키거라..”

 

“크르릉!”

 

“비키라고 하였다.”

 

“캬르릉!”

 

”사과는.. 나중에 하도록 하마.“

 


사령관의 경고에도 펜리르와 포이가 공격하려 들자 곧 PAN파를 끌어올린 사령관을 그녀들을 향해 PAN를 쏘았다.

 


“캥~!”

 

“캬룽!”

 


사령관의 PAN파에 직격으로 맞은 펜리르와 포이는 곧 눈이 뒤집히며 꿈틀거리다 이네 기절해버리고 말았다.

 

마치 짐승처럼 나뒹굴 듯 쓰러진 그녀들을 바라보며, 사령관을 곧 컴패니언에게 펜리르와 포이를 구속하라 말하였다.

 

사령관의 명령에 펜리르와 포이를 구속하는 컴패니언. 특히 리리스의 표정은 애써 침착함을 유지하고 있었지만, 충격을 받은 것인지 눈동자가 조금 흘리는 것처럼 보였다.

 

그것은 펜리르와 포이의 기괴한 모습 때문이 아닌, 자신의 자매기가 당한 처참한 일에 대한 충격 때문이리라.

 


“여기서는 키르케와 나만 가도록 하마. 나머지는 이곳에서 대기 하도록..”

 

“폐하. 안에 이런 위험이 얼마나 더 있는지 모릅니다. 혼자서는...”

 

”너희들에게..이 이상 인간의 부끄러운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구나..“

 


인간들이 이곳에서 행하였던 일과 눈앞에 펜리르와 포이를 이렇게 만든 것에 사령관은 부끄럽거나 분노를 넘어 자신의 인간이라는 것에 혐오감과 허탈함 마저 느꼈다, 

 

그리고 사령관의 말투에서 그런 마음을 알아 챈 것인지 아르망은 더 이상의 말을 잇지 못하였다. 

 


“알겠습니다. 폐하..”

 

“키르케.. 안내를 부탁하지.”

 

“네. 손님..”

 


키르케의 안내를 받아 이곳의 주인에게로 향하는 걸음, 걸음이 너무나도 무거웠다.

 

바닥에 깔린 붉은 카펫은 마치 희생당한 바이오로이드의 피로 물들인 것 같았고, 어두운 복도 너머로는 고통스러운 비명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오는 것 같았다.

 

얼마나 많은 이들이 바이오로이드라는 이유로 의미 없이 피를 흘렸을까?

 

얼마나 많이 이들이 바이오로이드라는 이유로 의미 없는 죽음을 당했을까? 

 

얼마나 많이 이들이 바이오로이드라는 이유로 희망 없이 절망 하였을까? 

 

얼마나 많이 이들이 바이오로이드라는 이유로 희망 없는 구원을 바랬을까?

 

수많은 생각과 만감이 교차하며 끝날 것 같지 않을 걸음을 하여, 도착한 방에 문이 천천히 열리자, 그 안에서 사령관을 맞이하는 것은 화려한 옷을 입은 채, 의자에 편안하게 앉아있는 한 사람의 해골이었다.

 


“이곳의 주인이신 게리님 이십니다.”

 


휩노스 병에 걸려 사망한 것인지, 너무도 평온하게 의자에 앉아 있는 해골의 눈과 사령관의 눈이 마주하였다. 

 


“어떤가? 나의 왕국이? 즐거웠는가? 정말로 멋지지 않은가? 이 모든 것이 모두 나의 작품이라네~”

 


사령관을 향해 마치 자랑스레 말하는 듯 한 게리의 해골을 향해 한 발자국 다가가려는 순간, 사령관의 등 뒤로 곧 철컥하는 소리와 함께 키르케가 사령관의 머리를 향해 총을 겨누었다.

 


“키르케..”

 

“죄송해요..손님..”

 


사령관을 향해 총을 겨누는 키르케는 슬픈 얼굴과 함께 면목 없는 말투로 사령관에게 고백하였다.

 


“손님께서 그 추기경 아가씨를 막으셔서 말하지 못했지만, 그 아가씨 말대로 저는 손님을 이용하려고 했어요.”

 

“어떻게 이용하려고 한거지?

 

“저는 만약 살아있는 인간님이 계신다면 죽은 제 주인에게서 벗어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인간님은 모두가 사라졌기에 그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어요.”

 

“...”

 

“그저 죽을 때 까지 이곳을 지키며 살아갈 운명인가 생각했지만, 펍 헤드씨가 담아온 영상을 보았어요. 거대한 AGS를 타고 철충과 싸우고 있는 손님의 모습을..”

 

“그래서 나에게 초대장을 보낸 건가?”

 

“네. 나름 희망이 생겼다고 생각했지만 제 생각이 틀렸나 봐요. 살아있는 인간님과 함께 있음에도 제 몸은 여전히 저의 주인님을 지키기 위하여 이렇게 움직이네요?”

 

“아까는 손님이 왕이라더니? 손님을 쏠 생각인가?”

 

“손님께서 이 이상 제 주인에게 다가가신 다면요?”

 


키르케가 진심이 아니라는 것을 알기에 총이 사령관의 머리를 향하고 있음에도 사령관은 별다른 동요를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그렇게 잠깐의 침묵과 함께 먼저 입을 연 것은 사령관이었다. 

 


“묻고 싶은 것이 있는데?”

 

“무엇이든 물어보세요.”

 

“왜 이곳을 벗어나고 싶어 한 거지?”

 

“당연한 것 아니겠어요? 손님도 오지 않는 이런 테마파크를 지키는 것이 얼마나 지겨운지 아세요?”

 

“지겨운 것이 아니라 다른 이들을 이곳에서 해방시켜 주고 싶어서가 아니라?”

 


사령관의 말에 마치 정곡이 찔린 사람처럼 키르케는 당황해 하였다.

 


“그..그걸 어떻게..?”

 

“정원의 피어있는 붉은 꽃 백일홍이지? 백일홍의 꽃말은 ‘죽은 벗을 그리워한다.’였던가?”

 

“...”

 

“나에게 이곳에 대한 평가를 물어보았었지?”

 

“네.. 하지만 손님은 평가는 하지 않으시고 말을 돌리셨죠..”

 

“무덤을 평가하는 이는 없으니깐. 그 정원.. 이곳에서 희생당한 바이오로이드들이 묻혀있는 곳이지?”

 


사령관의 말에 키르케는 이네 체념한 듯, 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네.. 손님의 말대로 에요. 맞아요. 이곳에서 인간님들의 즐거움과 쾌락을 위해 희생당하고 멸망전쟁에서 저의 주인을 지키기 위해 고기방패가 되어 버려진 그녀들을 묻어준 곳이에요. 그래서요? 그게 어쨌다는 거죠?”

 

“...”

 

“네! 손님의 말대로 그녀들을 해방시켜 주고 싶었어요! 인간님들의 노리개로 희생당하고 제 주인의 즐거움을 위해 아무 의미 없이 희생당한! 몸은 벗어날 수 없었지만 적어도 그녀들의 영혼이라도 이 땅에서 벗어나게 해주고 싶었어요!”

 

“...”

 

“손님 그거 아시나요? 드라큐리나양이 이곳에 처음 왔을 때 어떤 얼굴을 하였는지? 새로운 생활이 시작 될 거라 기대하던 그녀가 인간님들의 노리개가 되었을 때 어떤 얼굴을 하였는지?! 그렇게 무너진 그녀를 웃는 얼굴로 다시금 인간님들에 노리개로 보낼 수밖에 없는!”

 

“.....”

 

“재밌는 사실 알려드릴까요? 드라큐리나양이 왜 목소리를 잃은 건지? 간단해요. 비명이 너무 시끄럽다는 손님들의 요청사항 때문이었어요. 그래서 그녀의 목소리를 없애버린 거고요.” 

 

“키르케..”

 

“드라큐리나양만이 아니에요! 광산에서 다쳐서 온 더치 걸도! 전장에서 부상당해 강제로 퇴역당한 브라우니도! 레프리콘도! 샌드걸도! 알비스도! 주인이 상위기종을 샀다며 팔려온 아쿠아도! 포티아도! 어떻게 될지 알면서도! 제 주인에게! 인간님들에게! 이곳이 어떤 곳인지도 모른 채 기대하는 이도! 이곳이 어떤 곳인지 알기에 제발 살려 달라 말하는 이도! 그 모두를 웃는 얼굴로 인간님들에게 보낼수 밖에 없었던 제 마음을 아시냐고요?! 아니 모르겠죠?! 당신은 인간이고 전 바이오로이드이니깐..”

 


이제까지 생글거리는 미소가 아닌 격앙된 그녀의 말을 사령관은 아무런 말없이 들어주기만 할뿐이었다.

 


“죄송해요.. 손님.. 손님께서는 잘못 하신 것은 아무것도 없는데..”

 

“신경 쓰지 말도록..”

 

“그리고 감사해요.. 한낱 바이오로이드인 그녀들을 위해 슬퍼해주셔서..”

 

“키르케..”

 


방금까지 격앙된 감정은 어디 간 것인지 손매로 눈물을 닦아 낸 키르케는 다시 생글거리는 미소.. 아니 가면을 썼다.

 


“손님! 저희 환상의 나라는 곧 폐장시간 이랍니다! 어떻게? 오늘 하루 즐거우셨나요?”

 

“아아..무척이나.”

 

“정말 다행이네요. 이제 손님의 일상으로 돌아가실 시간이랍니다.. 부디 천천히 뒤로 물러나 주세요.”

 


물러나 달라는 키르케의 말에 불구하고 사령관은 그 자리에서 미동도 하지 않았다.

 


“손님..?”

 

“키르케.”

 

“네?”

 

“너는 나를 이용해서 이곳에서 벗어나고 싶다고 했었지?”

 

“네..면목 없게도..하지만 그 방법도 틀렸..”

 

“방법이 잘못됐어.”

 

“네?”

 

“넌 나에게 이용한다는 말 말고 다른 말을 했어야 했어.”

 

“그게 무슨..?”

 


사령관의 말에서 키르케의 얼굴은 어리둥절한 표정에서 곧 무언가를 깨달은 것인지 점점 울먹거리는 표정으로 바뀌어 갔다.

 


“손..님..”

 

“말해..”

 


그녀의 얼굴에 씌어진 미소의 가면이 무너져 내리며, 그녀의 입에서 사령관이 원하는 대답이 나왔다. 

 


“도와..주세..요..”

 


키르케의 말과 동시에 사령관은 순식간에 염라도를 뽑아 자신을 겨누고 있는 키르케의 총을 베어버렸고, 동시에 검집을 게리의 해골을 향해 던졌다.

 

사령관의 손을 떠나 날아간 검집은 곧 게리의 두개골에 명중하며 그대로 두개골을 박살내버렸다.

 


“네 놈에게는 편히 몸을 뉘일 관도 한 평의 땅도 사치다..”

 


사령관에 의해 게리의 해골이 박살난 탓일까? 게리의 해골이 박살나자 키르케 그 자리에서 그대로 기절 해버리고 말았고, 사령관은 기절한 그녀를 조심스레 안고서는 저택을 나섰다,

 

기절한 그녀를 안고 나선 저택 밖에는 컴패니언과 캐노니어가 기다리고 있었고, 그녀들을 지나친 사령관은 노성을 내질렀다

 


“니드호그!”

 


사령관의 부름에 잠시 후. 하늘에서 마치 운성이 내리꽂듯 육중한 소리와 함께 거대한 AGS가 사령관의 등 뒤에 떨어지며 포효를 내질렀다.

 


“쿠어어어어!”

 

“컴패니언! 캐노니어!”

 

“네! 주인님!”

 

“말하라. 사령관.”

 


자신을 명령을 기다리는 그녀들을 바라보며, 조용히 숨을 들이마신 사령관은 그녀들을 향해 단 하나의 명령을 내렸다.

 


“없애버려.” 

 


단 하나의 절대적 명령에 컴패니언과 캐노니어 그리고 니드호그는 어트렉션이 있는 구역을 제외한 환상의 나라의 모든 것을 파괴하기 시작하였다.

 


“으..으음..”

 


그리고 깨어난 키르케의 눈에 들어온 것은 오랜 시간 자신과 희생당한 이들을 속박하고 있던 환상의 나라 아니.. 그토록 벗어나고 싶었던 지옥이 너무나도 쉽게 무너지고 있는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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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트렉션이 있는 구역을 제외한 나머지 구역을 문자 그대로 초토화 시킨 사령관은 연기만 피어오르고 있는 잔해만을 말없이 바라보았고, 그런 사령관의 곁으로 아자즈가 다가왔다.

 


“괜찮나요? 사령관?”

 

“아아. 난 괜찮아.”

 

“너무 깊게 생각하지 말아요. 사령관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저는 사령관이 옳은 일을 했다고 생각하니깐.”

 

“그렇게 말해주니 고맙군.”

 


아자즈의 말과 함께 늘 그녀의 등에 숨어있기만 하던 드라큐리나는 잠시 머뭇거리다 이네 사령관의 품을 향해 폭 안기었다.

 

비록 사령관과의 키 차이로 인해 사령관의 가슴이 아닌 배에 얼굴을 묻은 모양세가 되었지만, 사령관은 그런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미안하구나. 네 목소리를 되찾아주지 못해서.. 약속하마. 이 세상 전부를 뒤지는 한이 있더라도 네 목소리를 반드시 되찾을테니.”

 


사령관의 약속에 고개를 끄덕인 드라큐리나와 아자즈를 보내고, 곧 사령관의 뒤로 볼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정말이지! 손님! 이렇게 박살을 내놓으시면 어떡하세요?!”

 

“우리 대원들의 의욕이 조금 과했나보군? 대신 사과하도록 하지.”

 

“이래서야 재개장은 고사하고 얄쨜 없이 폐업신고를 해야 할 판이라구요.”

 

“저런. 그럼 이제 실업자가 된 건가? 축하한다고 해두지.”

 

“정말이지.. 퇴직금도 받지 못하고 모아둔 돈도 없는데.. 어째든 손님께서 이렇게 만드셨으니 책임도 당연히 져 주실 거죠?”

 

“우리군의 채용기간은 아직 이다만?”

 

“그럼 특별채용 해주세요. 높은 분이시니 그 정도는 가능하시죠?”

 

“글쎄? 한번 생각해보도록 하지?”

 

“아잉~ 그러지 마시구요~”

 


갖은 교태를 부리며 키르케가 사령관의 팔에 안겨오자, 곧 아르망의 분노의 찬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 마녀! 폐하께 당장 떨어지세요!”

 

“아앙~ 이제 한솥밥을 먹게 되었는데 그러지 말고 우리 이제 잘 지내봐요~”

 

“누가 한솥밥을 먹는다는 건가요?!”

 


티격태격 하는 키르케와 아르망을 뒤로 사령관은 조용히 발걸음을 옮겼다.

 

멀리서는 언제 친해진 것인지 펜리르와 포이를 쓰다듬어 주고 있는 리리스와 컴패니언들이, 니드호그를 보면 군침을 흘리고 있는 아자즈와 언제 다시 원피스로 갈아입은 것인지 사령관을 찾고 있는 아스널과 에밀리까지..

 

조심스레 그녀들을 지나 발걸음을 옮긴 사령관은 붉은 백일홍이 가뜩 피어있는 정원을 바라보았다.

 


“잘못된 과거를 후회 한 들 바꿀 수 없다는 것 정도는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다시는 이런 잘못이 일어나지 않도록.. 다시는 그렇게 고통 받는 이가 없도록.. 약속하마. 그러니 부디 편히 쉬어다오..” 

 


사령관의 읊조림에 백일홍의 붉은 꽃잎이 실린 바람이 사령관의 얼굴을 스치듯 지나갔다.


마치 “고마워.”라고 말하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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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업이라고는 하지만 원치 않은 발령 받아 낯선 곳에서의  적응이 쉽지 않았습니다.


몇 명이 보는지 알 수도 없는 허접한 이야기 이지만 그래도 행여 이야기

기다리는 분이 있을까 한자 적다가 지우고 한자 적다가 지우고 하다 보니 시간이 많이 흘러버렸네요 


꾸준히 창작하시는 작가분들이 정말 대단하고 존경스럽다 느낍니다.


언제나처럼 허접한 글 읽어주시는 라붕이들에게 감사의 인사드립니다.

앞으로는 열심히 쓸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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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에 나오는 게리라는 인물은 모 힙합가수가 아닌 미국의 연쇄살인마 "게리 리지웨이"에서 따온 것입니다.


글을 정리하는 시점에서 니드호그가 나와 버리고 말았네요~ 기동형인줄 알았는데 중장형에 독속성이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