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두어번 갈아엎었을 뿐인데 어느새... 혹시나 기다려주시는 분들께 감사하고 송구할 따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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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판인데 ? "


최악이였다.


" 4 분함대.. 최선임으로 지휘권을 잡았던 피닉스 대령은 선진에 서다가 연결체 트릭스터의 암살에 일찌감치 전사. 순간적으로 지휘계통이 마비된 사이에 철충 대군의 급습으로 전력의 40 %를 상실.. "


사망한 선임 지휘권자들로부터 차차 내려와 4 분함대의 최선임자로 자리하게된 하베트롯 중위의 창백한 안색이 새파랗게 질려가기 시작했다.


" 후퇴 과정에서의 손실에 도주과정에서 보급괴멸로 추가로 발생한 비전투 손실을 합쳐 20 % 이상.. 이미 전술적 전멸 상태였음. ..하베트롯 중위? "


하베트롯의 행색은 엉망이였다. 오르카호로 승선하여 오랫만에 충분히 식사도 하고 깨끗하게 씻었지만, 부러진 왼팔. 잔뜩 부은 발목, 곪은 탓에 째낸 뺨의 거즈, 긴 자상의 흔적이 역력한 머리까지.

긴급 수복제를 맞는다 한들 부상이 하루아침에 나아지는 것은 아니다. 

그런 상태에 돌아와버린 오르카호에, 갑자기 나타난 새로운 인간 사령관에, 까마득한 별들이 머리를 처박고있는 자리... 기절하지 않은 것이 용한 상황에의 부름.


" ㄴ..네...네네넵...네-엡 ~ 아흑! "


원래도 대가 약한 편인 하베트롯이 기어코 혀를 깨물어 피를 보였다.


" 문책하려고 부른 자리가 아닌데, 내가 생각이 짧았군. 잘했다고는 못하겠지만, 최선을 다하려고 했던 건 보고서만 봐도 알겠다. 몸도 안좋아보이는데 퇴실해서 쉬도록. 오르카호에서 치료를 받는게 좋겠지만... 정 불편하면 하선해도 좋다. 일단 마음이 편해야지. "


혀에서 죽죽 흐르는 피가 O 자로 벌어진 입 밖으로 줄줄 샜다. 


" 하베트롯 중위. 사령관님께서 퇴실을 허가하셨다. ..정신 차리고 가서 휴식을 취하도록. "


멍- 하니 선 채로 기절한 것 처럼 초점 잃은 눈동자를 사령관 방향으로 향하고 있는 하베트롯을 보다 못한 마리가 나섰다.

익숙한 상관의 목소리에 반사적으로 돌아온 초점. 

그 안에 저 상석에 자리한 사령관의 형상만이 가득찼다.

첫번째 같은 미형도, 두번째 같이 중후하지도 않은. 그저 크고, 각지고, 투박한 인상.

귀에 틀어박힐 정도로 들었던 것과는 달리 평범하게? 느껴지는 뇌파는 적어도 그 걱정이 거짓이 아님을 증명해주고 있었다.

지난 수개월동안 팽팽하게 당겨져있던 뭔가가 탁- 풀리는 느낌과 더불어, 마주친 순간 무섭던 그 커다란 주먹이 ...눈물로 흐려진 시야로 인해 동글동글 해졌다.


" 고생 많았다. 하베트롯 중위. "


사령관의 형상이 동글동글해졌다. 그래서 무섭지 않아졌기에.

하베트롯은 멀쩡한 오른손으로 힘차게 경례를 올리고 회의실을 떠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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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판이다. 

그 표현은 4 분함대의 상황에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였다.

졸전.

그 외에 무슨 표현이 필요할까.

결론적으로는 4 분함대의 구원? 과 제주도의 점령에는 성공했다.

다만, 그 과정은 ... 땅이 꺼져라 머리를 처박고 있는 지휘관들의 머리가 답을 대신하고 있다.


전투가 확실시 되는 쪽으로 알바트로스와 용이 모두 불참하게되는 것에 우려를 표했을때 뭐라고들 했더라 -


그 이상의 걱정은 우릴 너무 무시하는 처사라 항변하던 메이는

선임지휘관인 마리의 허가도 없이 위험폭격(데인저 클로스)를 강행하여 아군에 피해와 더불어 간신히 구축됬던 전열에 구멍을 내버렸다.


메이의 발언에 동의하던 레오나는

무슨 판단을 내린건지 붕괴 직전인 전열을 버려둔 채 우회만을 고집하다가 결국 총 한발 쏴보지 않고 후퇴했다.


자신이 긴 경력을 언급하며 자신감을 드러내던 칸은

뒤를 받쳐줘야할 후속부대의 상황을 어떻게 판단한건지, 무리하게 돌파를 강행하다가 제발로 포위망에 갖힌 꼴이되어 전투가 끝날 때까지 사실상 전장에서 유리되어 있었다.


은근히 포상을 운운하던 아스널은

명령도 없이 먼저 후퇴하다가 마리의 지연포격 명령을 수행하지 못할 거리까지 움직여, 사실상 적전도주의 행위를 저질렀다.


너무 걱정하는 것도 사기에 좋지 않을 거라던 마리는

피닉스 대령의 허망한 죽음에 이성을 잃은것인지 선두에서서 트릭스터를 추격. 

경애하는 지휘관을 따라 돌격을 감행할 수 밖에 없었던 마리 주변의 스틸라인의 피해는 둘째치고, 전열을 구축했어야할 부대의 예정에 없던 움직임으로 엉클어진 전열. 

선임지휘관의 돌발행동으로 각자 독자적인 행동을 시작한 각 부대의 지휘관들로 인하여 붕괴되어버린 명령체계.

이 졸전의 근본적인 원인을 제공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주인님의 기대에 부응하겠다며 다부지게 나섰던 리리스는

안전장치로서 마리의 옆에 붙여두었건만.. 폭주하는 마리를 멈춰세울 시도조차 하지않고 컴패니언을 보존하는데 집중했다.


스틸라인의 차석 지휘관인 레드후드 대령과 오랜 경력으로 우왕좌왕하는 주변 부대를 장악할 수 있었던 임펫 준위의 필사적인 수습.

아머드 메이든과 스트라이커즈 대원들의 영웅적인 활약.

3분함대와의 합류가 끝나자마자 아르망의 판단하에 급파한 라비아타와 어찌어찌 설득해낸 버뮤다 팀의 네오딤과 에키드나의 참전.

어느 하나라도 부족했다면 정말 치명적인 피해가 발생했을게 확실시 될만큼 전투의 흐름은 엉망이였다.


이걸 어찌하면 좋을까. 

몽땅 처벌을 하자니 저항군 체계 자체가 무너질 판이고, 사실 처벌의 근거도 애매했다. 

작전 역시 현장 지휘관들의 재량에 맞겼었으니...이걸 무슨 근거로 처벌한단말인가? 막말로 패전한건 아닌데.

그렇다고 손놓고 넘어가지니 누가봐도 엉망인 이 상황에 일선 대원들의 불만은 어쩔 것이며, 부상으로 누워있는 블러디 팬서가 말했던 지휘관들의 '이상징후'를 생각하면...

하아 - 나는 대부분 명령 받는 입장였지, 전체를 이끄는 자리에서 조율하는 사람은 아니였단 말이다.

그래서 지휘관급 개체들의 능력에 기대야 하는 판에, 그 지휘관들이 망가져있으면...

이걸 어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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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령관의 고민과 침묵이 깊어질 수록 분위기는 삭막하게 가라앉았다.

그렁그렁 맺혔던 눈물이 슬슬 중력을 못이겨 뚝-뚝 흘러내리기 시작한 리리스는 오늘만큼은 닥터가 원망스러웠다.

사령관의 양쪽귀에 걸려 마치 안경을 거꾸로 쓴 것처럼 뒷통수에 자리한 얇은 기계장치.

사령관의 기묘한 뇌파방출을 '정류'해주는 장치로 인하여 무슨 생각을 하는지 쉽게 알 수 있었던 사령관은 더이상 없다.

그간 사령관의 특이성에 적응되버린 탓일까. 

사령관의 그... 솔직한 욕망이 마구 느껴지는 관계로 리리스 본인 역시도 꼭 필요한 장치라고 찬동했던 바이지만, 그게 하필 오늘이라니.

지금. 이 추태를 벌인 이때에.. 너무나 답답하고 불안했다.


" 일단.. 당분간 메이, 레오나, 칸, 아스널, 마리의 지휘권을 회수한다. "


그리고 떨어지는 폭탄선언.

고개를 번쩍 들었지만 우묵한 지휘관의 눈빛에 쭈글해진 메이

입술을 즈려 문 레오나

눈을 감아버린 칸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아스널

머리가 더더욱 바닥을 향하는 마리


" 이번 작전에 지휘관들의 .. '이상'에 대해서 보고 받았다. 이 문제에 대해서 확실하게 파악이되든, 해결이 되든 할때까지 임시적인 조치임을 밝힌다. 그리고... 각 지휘관들. "


사령관의 부름에 제각각의 눈들이 하나로 모였다.


" 그간 닥터... 2호의 심리상담을 자율로 맡겨왔지. 부관들 중에서도 상담받은 인원이 몇 있지만, 지휘관급들은 하나도 없더군. 지휘관이란 입장상 바쁠수도 있었겠고.. 뭐- 여러 다른 이유가 있었겠지만. "


사령관이 가볍게 한숨을 몰아쉬며 호흡을 가다듬었다.


" 더이상 자율로 둘 수 없는 상황이 발생한거 같다. 휴식..아니, 근신이라고 하지. 근신기간을 가지는 5명부터 시작해서. 지휘관들은 필수로 심리상담을 시작하도록. 기간은 내가 납득 될 때까지. 횟수나 기간, 진단은 닥터2호에게 일임하겠다.

...심리상담이란게 썩 유쾌한건 아니라는건 나도 알지만... 명령하지. 성실하게 임하도록. 혹시라도 계급을 내세워 대충하거나 짬때리는 경우에는. "


한층 낮아진 사령관이 목소리가 그르렁 거리듯 가볍게 목을 긁으며 튀어나왔다.


" 그건 정말 용서하지 않겠다. 그리고 블랙 리리스. "


" 네..넷! "


" 저치들은 작전실행은 형편없었지만 어쨋든 명령했던 목적은 달성한셈다만, 너는 다르지. 너는 내가 내린 명령을 방기했다. 반박할 말 있나? "


마리를 쏴죽이든지, 반병신이라도 만들지 않았다면 막아세울 수 있는 상태가 아니였다는 말이 목구멍까지 차올랐지만 리리스는 꾹 참아 삼켰다.

속박되어 무리하지 않도록 성기게 내려졌던 명령은 주인님의 믿음과 배려였을터이고, 그에 부응하지 못한 것은 결국 자신.

스스로 가슴에 새긴 주인님을 향한 맹목적인 마음이. 그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는 사실이 리리스 스스로를 아프게 했다.


" ...아닙니다. 죄송합니다 주인님. 어떤 처분이라도 달게 받겠습니다. "


표정을 감추려는 듯. 무표정하게 굳은 얼굴로 눈물은 주르르 흘르고 있는 리리스. 아름다운 금빛 눈동자는 빛을 잃었다.

그 얼굴을 바라보는 사령관의 표정도 변함없이 딱딱해보였다.


" .....처벌이 정해질 때까지는 개인실에서 근신하도록. 지금부터. "

빠드득 -


" 네. 주인님. .. 실망시켜드려서 죄송합니다. "


블랙 리리스가 먼저 회의실을 떠나고, 사령관은 폐회를 선언했다.

저마다의 복잡한 안색으로 모두가 떠난 회의실.


여전히 자리에 앉은 사령관과 오늘의 당번인 금란만이 다소곳이 뒤에 선채로 고요한 침묵이 이어지기를 한참 -.

업무에는 참여하기 시작하였지만, 단 한 번도 사령관에게 먼저 다가선적이 없던 금란이 특유의 조용한 걸음걸이로 사령관에게 다가갔다.

닥터(1호)의 새 발명품이 사령관의 뇌파를 정류해주는 거리는 약 1.5 m 밖 부터. 

그 안으로 가까이 다가갈 수록 예전과 같은 뇌파의 폭풍이 몰아쳤다.

사령관의 바로 옆. 1m 안까지 들어서자 특유의 예민한 감각까지 자극되는 듯한 느낌에 순간 휘청였던 금란의 허리를 사령관의 팔뚝이 받쳐냈다.


" ..뭐하는거냐. 예민해서 가까이서면 힘들다더니. "


결함이라고 생각해야 할 수준으로 너무 예민한 탓에 어지간해서는 뜨지 않는 금란의 눈동자가 자신의 옆구리로 튀어나온 사령관의 주먹을 향했다.

얼마나 세게 쥐었는지, 피가 흥건하게 흐르고 있는 큰 손.

자신의 후각이 때때로 느껴지는 환상 속의 피냄새를 맡은 것이 아니라, 진짜 피냄새를 맡았음을 시각으로 확인한 금란이 품에서 하얀 손수건을 꺼내들었다.


" 어찌 손을... "


딱딱해보이던 사령관의 얼굴이 그제서야 조금 바뀌었다. 


" 안.. 풀리는군. 미안하지만 손가락 좀 펴주겠나. "


금란이 가만히 무릎꿇고 앉아 사령관의 왼손을 자신의 양손으로 가볍게 그러쥐었다.

어디가 어떻게 터진 건지, 주먹에서 흐르는 제법 많은 양의 피가 금란의 새하얀 장갑을 빨갛게 물들여갔다.

시각에서 전해지는 빨간색의 구역질을 꾹 참으며 금란이 사령관의 손가락을 하나씩 펼쳐냈다.


" 고맙다. 이제 떨어져. 나보다 네가 먼저 기절할 것 같다. "


양 손바닥 위로 향한채 두 손을 금란에게 내민 자세에서 일어나려던 사령관은 자신의 양 손바닥 위로 올라오는 금란의 양손의 감촉에 반쯤 들었던 엉덩이를 다시 내려놓았다.


" 어찌 그리 슬퍼하시는지요. "


장갑이 없는 금란의 맨손. 흥건한 핏물의 기분나쁜 질퍽함 사이로 그 가늘고 섬세한 손이 느껴졌다.


" 슬프다라. 글쎄... 너무 복잡한 기분이라 나는 잘 모르겠는데. 내가 지금 슬퍼하고 있나? "


" 복잡..예. 말씀하옵신대로 매우 혼란스러워하시는 것 같사옵니다. 하오나 소첩의 모자란 능력으로 감히 제단컨데, 몸이 보내시는 기색은.. 슬퍼하시는 것 같사옵니다. "


가만히 - 그 자매들도 보기 힘든 옅은 홍차색의 눈동자를 마주보던 사령관이 먼저 입을 열었다.


" 자세히 설명하기는 내 어휘력이 너무 딸리는데.. 뭐랄까. 최근에 내게 너희들이 필요하다는걸 다시 한 번 자각하는 일이 좀 있었지. 그런데 이런 상황이 생겼고. "


" ..... "


" 지휘관들의 '이상'이 인간인 내가 없는 상황으로 인해서 발생한 것 같다는 닥터(2호)의 이야기를 들었을 때.. 안도감이라고 해야하나. 만족감이라고 해야하나. ..죽은 인원수를 보고 받으면서도 그런 생각이 들더군. "


사령관의 뇌파가 요동쳤지만, 금란은 사령관의 손을 조금 꽉 쥐는 것으로 참아냈다.


" 그러다가 나랑... 밤을 보냈던 분대가 어떻게 됬는지도 들었단 말이지. "


" 아 ... "


" 솔직히 나는 아직 이 시대며, 지금 이 몸뚱어리며.. 철충이니 바이오로이드니. 그냥 좀.. 복잡하네. ...이와중에도 널보고 커지고 있는 이걸 어째야되나 싶은 것 까지. 일어나지. 별소릴 다했군. "


몇 마디하지 않았지만, 속에 담았던 말을 풀어내서일까. 

요동치던 사령관의 뇌파가 정돈되며 마치 슬라이드쇼와 같이 그 속이 금란에게 엿보였다.


사령관이 금란의 손을 조심스레 풀어놓고, 어느새 자연히 멈춘 손바닥의 출혈을 바지에 슥슥 문질러 닦는 동안에도.

금란은 쳐다보지도 않고 앞서서 터덜터덜 사령관실로 돌아가는 와중에도.

금란의 눈동자는 닫히지 않고 사령관을 담아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