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르카 걸즈 토크 - 엠프레시스 하운드 편

오르카 걸즈 토크 - 시티가드 편

오르카 걸즈 토크 - 스카이나이츠 편






"불가사리, 나 도넛."

"미호 넌 손이 없냐, 발이 없냐? 그리고 살 뺀다고 하지 않았어?"

"아잇, 핀토! 그거 그만 쓰라고! 치사하게!"

"으하하하! 정정당당하게 한 기술만 써주고 있는데, 하나도 안 치사하거든?"


출격이 없을 때의 몽구스 팀은 대체로 이런 느낌이다. 헐렁한 셔츠 차림으로 침대 위에서 뒹굴며 간식을 까먹고 있는 미호와, 막 워크아웃 후 샤워를 마치고 목에 타올을 걸고 활보하는 불가사리와, 서로 무릎이 맞닿을 정도로 나란히 앉아 최근 함내에 유행하기 시작했다는 대전격투게임을 즐기는 핀토와 드라코. 조금 나태하다고 느껴질 정도의 분방함이 몽구스 팀 나름의 휴식군기였다. 밑도끝도없이 풀린 걸로 보여도 비상이 떨어지면 다들 꽉 죄어 맨 백전연마의 스페셜리스트로 돌변하기에, 그 반대급부로 평소에는 최대한 긴장을 느슨히 하고 있는 것일지도 몰랐다.


맡겨 놓은 것인 양 자기 도넛을 내놓으라는 미호의 뻔뻔한 행동거지에 불가사리의 미간이 좁혀졌다. 평소같았다면 한 소리 했겠지만 기분 좋은 뻐근함과 개운함이 온몸을 사로잡고 있어 기분이 꽤 좋았다. 불가사리는 기어를 조금 낮추고 타이르듯 말했다.


"이번 여름까지 리앤이랑 인바디 점수 내기하기로 했다면서. 슬슬 수영복 시즌인데, 아직도 당류나 밀가루 안 끊으면 되겠어?"


미호의 어깨가 움찔했다. 작년 여름에는 섹시하게 태운 갈색 피부와 군살 하나 없이 쪽 빠진 복근을 자랑하는 리앤 앞에서 통한의 1패를 기록했었다. 미호도 못 봐줄 몸매는 결단코 아니었으나, 실의에 사로잡혀 사기를 잃은 패잔병마냥 그 여름엔 주욱 래쉬가드만 고집했었다. 미호는 이번 여름도 래쉬가드로 때울 생각이 없었다.


"으응, 아직까진 괜찮지 않을까? 게다가 여자는 살집 조금 있는 편이 포옹? 력? 이라는 게 생겨서 좋다는데..."

"포용력이겠지... 그리고 그건 살 찐다고 생기는 게 아니라, 마음이 넓어야 생기는 거야."

"오오, 그럼 우리 중엔 엄마가 제일 포옹력 높은 사람이겠네?"

"아니, 그건... 아니, 아닌 건 아니지만... 하, 됐다. 그렇다 치자."


현상을 설명하는 데에 있어서 드라코의 접근 방식은 인과관계를 전혀 고려하고 있지 않았지만, 얼추 실제와 부합하는 결과를 이끌어냈다. 풀이 방식이 엉터리인데 어쩌다 보니 답만 맞은 꼴이었다. 정정할 생각을 접은 불가사리는 피곤하게 얼굴을 감싸쥐었다.


간만에 불가사리를 논리(?)로 제압해 신이 난 드라코는 눈에 띄게 들뜬 채로 말을 이어갔다.


"후후, 이 드라코 님의 포옹력도 이젠 불가사리한테 안 질 정도라고? 핀토만 해도 봐! 마음이 좁아서 포옹력이 없으니까 저런 야비나 쓰고 있잖아!"

"뭐, 뭐라고?!"


자신의 상대적으로 휑한 흉부를 저격당하자 당황한 핀토가 패드를 떨구었고, 드라코는 그 빈틈을 놓치지 않았다.


"으히히히! 어떠냐! 으럇! 으럇! 맨날 불리해지면 맞서싸우지 않고 도망가기나 하고! 빨리 가버려라!"

"야, 야! 야! 비, 비겁하게 이게 무슨...!"


해석하기에 따라 불순할 수 있는 말을 내뱉으며 핀토의 캐릭터를 마구 밀어붙이고 있는 드라코에게 대응하기 위해 핀토도 놓친 패드를 득달같이 주워들었으나, 이미 KO 화면이 떠 있었다.


"빅토리!"

"으으으...!"


자신만만하게 웃으며 승리의 피스 사인을 내밀고 있는 드라코와, 캐릭터와 마음 모두 너덜너덜해진 채로 완패해서 분함에 땅을 치고 있는 핀토. 피해자는 핀토였지만 불가사리는 별로 옹호해 줄 생각이 들지 않았다.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드라코를 상대로 봐주는 거 없이 원 패턴으로 10연승을 쌓은 업보라 생각하고 본인이 받아들였으면 했다.


바닥에 엎어져 부들부들 떨고 있는 핀토에게서 금방이라도 꺼질 것 같은 목소리가 새어나왔다.


"으으... 뭐냐구...! 사, 사령관은 손 안에 꽉 차는 게 딱 좋아서 귀엽다고 말해줬는데...!"


그 위에 불가사리의 자애로운 손이 위로하듯 얹혔다.


"괜찮아, 핀토. 너도 미호처럼 모델의 카탈로그 스펙을 초월할 정도로 노력하면 커질 수 있어."

"지, 진짜? 하지만 다들 이미 오리진 더스트 시술 받아서 어지간한 같은 모델들 중에서는 최상위권이잖아... 구체적으로 어떻게?"

"저거 보이잖아. 맨날 놀고 먹고 해서 찌우면 돼. 아마 역사상 미호 모델들의 가슴둘레 스펙 상한도 갱신하면서 몸무게도 같이 갱신했을 걸?"

"하, 하지만 난 공중 기동 유닛이라 무거우면 전투력에 손실이 가는데... 히어로로서의 나인가, 여성으로서의 나인가...!"

"아잇! 그만해, 이 바보들아!"


은근슬쩍 자신을 돌리고 있는 둘을 향해 미호는 고함을 질렀다. 보통 이런 식으로 은근슬쩍 놀려먹는 건 자신의 역할이었는데, 대체 누구한테 배워서 여우처럼 능글맞게 자기를 비꼬고 있는 걸까? 화끈해진 볼을 문지르고 있는 미호에게는 정말 모를 노릇이었다.


"근데, 사령관은 진짜로 큰 편을 더 좋아할까?"

"음, 남자라면 어쩔 수 없지 않을까..."

"여자는 역시 넓은 마음에서 나오는 포옹력이지! 사령관도 매번 출격 갔다올 때마다 포옹해 주는데, 그 때마다 꽈~악 껴안아 주던걸?"

"아, 아니 그게... 여긴 오히려 큰 편이 대다수니까... 작은 게 희소하잖아...? 크면 의외로 쉽게 질린다고도 들었고... 그, 그러니까 나처럼 오히려 아담한 편을 더 조, 좋아할..."


말하면서도 비참함과 부끄러움에 더 잇지 못하던 핀토는, 이내 열이 펑 터져서 고개를 푹 떨구었다. 곰곰이 생각하느라 핀토의 정수리께에 있던 불가사리의 시선이 미호에게로 향했다.


"...미호한테 물어보면 되잖아."

"에, 또 나야?"

"그야, 여러 의미로 성장한 게 너밖에 없으니까. 작았을 때랑 약간 커진 지금, 언제를 사령관이 더 좋아했던 것 같아?"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아니, 뭐... 있잖아. 반응이라던가, 그... 단단함이라던가."

"그, 그런 걸 설령 안다고 해도 대답해줄 것 같아?!"

"에이, 그러지 말고. 너도 하나 까면 나도 하나 깔게. 핀토도 괜찮지?"

"으, 응?! 나?! 난..."


고민을 거듭하던 핀토는 무언으로 고개를 주억거렸다. 이제 합의가 필요한 남은 사람은 한 명 뿐이었고, 모두의 시선이 드라코에게 몰렸다.


"?"


드라코는 새끼 강아지마냥 바로 앉아서 머리 위에 물음표를 띄운 채로 고개를 갸웃했다. 역시 드라코에게는 아직 이른 주제였구나. 묘한 안심감이 셋을 휘감았다. 드라코는 아직 착한 그대로 있어 주길 바라는 마음은 모두가 같았다.


잠시 뜸을 들이던 미호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뭐, 나랑 사령관은 워낙 오래 본 사이라 그... 핑퐁이 착착 맞달까, 말 안해도 서로 어디가 약한 지 정도는 알고 있어서..."

"어? 미호도 사령관이랑 탁구 쳐?"

"그, 그냥 예전보다 커졌다는 것 정도는 인식은 하고 있는 거 같은데... 그것 때문에 더 흥분한다거나 그런 건 모르겠더라... 거기를 특히 오래 괴롭히는 것도 아니고..."

"흐음, 매너리즘인가?"

"나 알아! 한 사람이랑만 오래 치면 그 사람의 구질이나 스핀에 너무 익숙해져서 좀처럼 실력이 안 늘잖아!"

"안 그래도 그렇게 되기 싫어서 다른 애들처럼 밤새 하지 않고 두세 번 정도에서 만족하는 편인데..."

"애걔, 겨우? 난 사령관이랑 하면 11점 내기로 최소 10판 이상은 하는데..."

"그런데도 워낙 오래돼서 권태기가 슬금슬금 오는 거로구만."

"드라코, 슬슬 헷갈리니까 그만해..."


미호는 늘어진 머리카락을 손가락으로 베베 꼬았다.


"아니, 권태기랄 것도 딱히... 예전처럼 막 밑도끝도없이 부끄럽지도 않고... 이것저것 서로 시험해보면서 가장 선호하는 순서 같은 게 고정돼서... 그냥, 편안하게 기분 좋으니까. 그렇다고 기분 좋은 게 예전보다 덜하지도 않고..." 

"으음, 뭔가 짜증나네. 신혼은 진작에 지나서 처음 같은 떨림은 없는데, 애정은 줄지 않아서 아직까지 닭살 떠는 잉꼬부부 같은 느낌?"

"아, 알 것 같다. 제삼자로 보면 예쁘고 흐뭇하겠지만, 가족 같은 미호라고 생각하면 은근 눈꼴시렵지."

"아니... 무, 무슨 사람을 그렇게... 그래도 가끔 그, 특별한 날에 이벤트 같은 거 준비하면 또 예전처럼 서로 엄청 설레서... 여유 없이 마구잡이로 해 버릴 때도 있고..."

"그래, 말 안해도 알아. 그 구미호 때지? 나랑 핀토가 그 머리 세팅하는 데에 진짜 죽는 줄 알았다. 사령관이 흥 난 김에 하다가 머리카락에 뿌렸으면 진짜 찾아가서 주먹으로 팼을지도 몰라."

"내 머리카락도 그렇게까지 관리 안 하는데..."

"아, 알았어. 고마웠어! 그, 그때도 고맙다고 했잖아..."


미지근한 눈으로 수줍게 비비적대는 미호를 보던 불가사리는, 문득 처음 질문인 '사령관은 작은 가슴을 선호하는가, 큰 가슴을 선호하는가?'에 대한 해답이 전혀 나오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그래도 계속하기로 했다. 그냥 재밌으니까.


"자, 미호도 깠으니까... 핀토는 어때? 아직 서로 좋아하는 걸 찾아가는 중?"

"나, 나?! 그... 그게..."

"설마 핀토... 정의롭지 못하게 약속을 어기는 거야? 여기서 악당처럼 빼려고?"

"으, 으으으...! 알겠어, 알겠다고!"


발바닥을 맞붙이고 양반다리를 한 채로 발 사이만 내려다보던 핀토는, 이내 힘겹게 입술을 달싹거렸다.


"아, 아직도 사령관이 어떻게 해 주는 걸 좋아하는 지 까지는 어렴풋이밖에 모르겠지만... 내, 내가 좋아하는 건 알았어..."

"오오, 뭔데?"

"마, 마주 본 채로 껴안고, 드, 들어올려 주는 거..."

"...그거 꽤 고난도네."

"으음~ 난 처음에 몇 번 해 보니 생각보다 그렇게 기분 좋지도 않고 매달려 있기 피곤해서 안 했는데..."

"출격 나갈 때마다 비행하는 걸로도 만족 못 해서, 침대에서도 날아다니는 거야?"

"부부부부, 불가사리 너, 무무무무, 무슨 소릴!"

"그게 왜 좋은 거야?"

"...이, 일단 깊기도 하고... 그, 안 떨어지려면 꼬옥 밀착해 있어야 하니까 사령관의 몸이 잘 느껴지고... 그렇게 의지하고 있다 보면 든든하게 보호받는 느낌도 나고... 어딘가 위태로우면서 아슬아슬한게 짜릿하기도... 아오오, 무, 무슨 말을 하게 하는거야..."

"아니, 니가 혼자 다 말해 놓고... 난 그렇게 적나라하게까지 설명하라고 하지 않았어."

"어흐, 갑자기 나도 열이 확 오르네... 다음에 한 번만 더 시도해 볼까...?"

"아, 아... 그러고보니 그것도 있었다..."


문득 뭔가 떠올려 낸 핀토에게로, 불가사리와 미호의 주의가 집중됐다.


"뭔데?"

"그... 사령관이 좋아했던 거 같은 거..."

"음, 드디어 쓸만한 게 나오는 건가?"

"으으, 아니... 안 말할래..."

"에엥?! 뭐야, 궁금하게 만들어 놓고!"

"이럴 거면 말을 아예 꺼내지 말든지..."

"이럼 나만 손해잖아! 그래도 난 핀토 네가 궁금해하던 거 최대한 대답해 주려고 했는데!"

"으으으, 아, 알았어..."


뭐라 몇 번 구시렁대던 핀토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썰을 풀기 시작했다.


"...아니, 처음엔 그럴 생각은 없었는데... 어쩌다가 탐색에서 가면 용사 코스튬을 찾아서... 사령관 앞에서 그거 입고 역할극 놀이를 했단 말이야..."

"음, 벌써부터 알 거 같다."

"그, 그게... 사, 사령관이 악당 역할이고... 내, 내가 히어로 역할이었는데... 몸싸움 하다가 내가 사령관한테 깔린 채로 침대 위로 넘어져서..."

"..."

"자, 자기가 악, 악당이라면서 막 내 몸을 괴롭히기 시작하는데... 스위치가 들어갔는지 엄청 흥분해서는 내가 싫다고 하면서 저항해도 풀어주지 않고... 서로 그대로..."

"..."

"그, 그때가... 느껴본 것 중에 제일 딱딱하고... 야, 양도 역대급으로 많았고... 회, 횟수도..."

"..."

"흐흥~ 항상 규칙이니 뭐니 반장 같은 얘기만 하면서, 핀토도 꽤 변태였네?"

"그렇지. 진짜 싫었으면 사령관도 그만했겠지. 지금도 그때 생각하는 거 보면 마음에 들었나 보네? 어땠어, 패배한 히어로가 되어 본 감상은?"

"..."


핀토는 이미 머리 꼭대기에서 김을 피워 올리며 기능정지해 있었다.


"..."


그리고, 또 한 명. 머리에서 김이 피어오르고 있는 사람이.


"드, 드라코?"

"이, 이거... 그, 그런 이야기였어? 다, 다들 부끄러운 얘기 했으니... 나, 나도 해야 하는 거지?"


미호와 불가사리는 경악했다. 이 주제를 드라코가 따라오고 있었다고? 대체 언제부터? 우리 착한 드라코가 순수한 그대로 있어 주길 바라던 바람이 이렇게 무참하게? 그러거나 말거나, 드라코의 부끄러운 폭로는 시작되고 있었다.


"나, 나는... 하, 할 때마다 매번 머리가 새하얘져서... 사, 사실 잘 모르겠는데에... 그, 그래도... 다 끝나고 나면... 같이 누운 사령관이 머리 쓰다듬어 주면서..."


이리저리 맴돌던 드라코의 눈이 깊게 내리깔렸다.


"'역시 드라코는 몸 쓰는 건 빨리 배우네, 엄청 기분 좋았어.' 라고... 칭찬해 줘서... 헤헤, 그, 나도 기분... 많이... 좋았어..."


부끄러움에 맺힌 눈물과 함께, 드라코는 그런 와중에도 행복하게 배시시 웃었다.


'순애네, 이거.'

'순애구만.'


이런 주제로까지 마음을 따뜻하게 만들 수 있다니, 역시 드라코는 그런 경험을 하고도 여전히 착하고 순수한 그대로였다. 미호와 불가사리는 깊게 통감했다.


"...자, 이제 한 분만 남으셨죠?"

"눈치 안 줘도 안 뺄 거니까 안심해."


미호의 은근한 재촉에 불가사리는 작게 한숨을 쉬었다. 내가 시작한 주제이니만큼, 내가 끝맺어야겠지. 불가사리는 작게 심호흡했다.


"...어쩌다가 그런 몹쓸 페티쉬가 생긴 건진 모르겠는데... 땀 냄새에 꽂힌 거 같더라."

"...오우."

"씻지 말고 그대로 오라는 말 들었을 땐 솔직히 기겁을 했는데... 엄청 마음에 들어 하더라구. 그, 내가 부끄러움까지 무릅써 가면서 뒤에 다 보이는 스웨터까지 입었을 때에도 그렇게 좋아하진 않았던 거 같은데... 그건 좀 짜증나네."

"...그럼 가끔 운동 끝나고 숙소 와서 샤워 안 하고 땀 범벅인 채로 손이랑 얼굴만 헹구고 어디 가던 게 설마...?"

"...노 코멘트."

"그거 사실상 자백 아니야?"

"으, 난 찝찝해서 못 할 것 같은데..."

"나도 항상 해 주는 건 아니야. 아무리 그래도 매번 대놓고 코 묻은 채로 냄새 맡아지거나, 이상한 곳까지 구석구석 핥아지는 건 장난아니게 부끄럽거든. 어디까지나 특별한 날에만..."

"완전 인간 페로몬이네. 주로 어디를 그렇게 집요하게 빨리는데?"

"...이런 것까지 말해야 해?"


덤덤함을 가장하고 있던 불가사리의 홍조가 더욱 짙어졌다. 그러나, 결국 미호의 압박을 이기지 못하고 눈을 피했다.


"...주로... 겨, 겨드랑이랑..."

"...랑?"

"...사, 사타구니 쪽이... 진하다고..."

"..."

"...그, 그렇게 보지 마. 이거 엄청 부끄럽네..."

"흐흐, 어때?"

"네, 네. 제가 졌습니다..."


드디어 만족한 미호는 고개를 뒤로 뺐다. 이쯤이면 나름 쌤쌤이었다.


똑똑똑.


잠시 소강 상태에 접어들었던 숙소에, 단속적인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자로 잰 듯한 간격에, 너무 크지도 않고 작지도 않은 주의를 끄는 세기. 이건 분명...


"엄마!"


드라코가 반갑게 문을 열어 홍련을 맞아들였다. 홍련도 역시 한껏 풀린 실내복 차림으로, 한 손에 담긴 장바구니에는 마치 클리셰처럼 대파가 비죽 튀어나와 있었다. 핀토는 장바구니를 받아들며 안을 살폈다.


"어, 오늘은 부대찌개인가요?"

"아, 네. 고마워요. 다들 저녁 아직 안 먹었죠?"

"핀토, 그게 중요한 게 아냐."


핀토의 어깨에 손을 짚어 물러서게 한 미호는, 불가사리와 나란히 섰다. 그래, 지금은 저녁 메뉴 따위가 중요한 게 아니었다. 분명히 엄마는 방금까지의 여자들만의 남사스러운 대화의 참여자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끼워넣지 않고는 못 배기는 기분이었다. 자기들은 이렇게 부끄러움을 느꼈는데, 홍련만 아무렇지 않은 꼴을 못 보겠다는 뒤틀린 보상심리일까? 홍련에게는 더없이 억울한 처사겠지만, 그래도 어쩌겠는가. 자식 이기는 부모 없을 테니.


"엄마는 사령관님이랑 할 때 주로 어떤 체위로 해요?"

"네?! 미호? 가, 갑자기 그게 무슨...?!"

"지금까지 다 그 얘기 하고 있었어요. 다른 애들도 다 말했어요. 엄마만 얘기하면 돼요."

"아, 저도 궁금해서..."

"엄마도 말해야 해! 그게 규칙이니까!"


갑작스레 들이닥친 우악스러운 강요에 홍련은 적잖이 당혹해했다. 그렇다고 네 쌍의 기대감에 찬 눈동자를 모른 체할 수는 없었다. 불가사리는 침을 꿀꺽 삼기며 살짝 떨리는 홍련의 입술을 집요하게 쳐다보았다. 우리 중 압도적인 어른이고 관능을 형상화한 듯한 몸매의 작전관님이라면 우리의 예상을 벗어난 무언가가 있을 거란 기대를 품고.


"저, 저는... 그, 그냥 평범하게... 마주 본 채로... 가끔은 엎드리기도 하는데... 아무래도 자세를 바꾸면 좀 부끄러워서요..."

"...에?"

"그, 그럼 가슴으로... 끼워 드린 적은 있나요?"

"네, 네헤?! 그, 그런 건... 그런 건 아무래도 아직까진 너무... 그, 그냥 하는 것도 벅찰 정도라..."


보물을 썩히는 꼴이었다. 저런 농염한 몸뚱이를 하고 있으면서도 아직까지 숫처녀 같은 성생활이라니! 신혼이 따로 있는 게 아니었다. 예상치 못한 풋풋함에 평소에 엄격하기만 하던 그 엄마가 귀여워 보이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물어볼 게 엄~청 많을 것 같네요."

"네, 네?! 미호, 일, 일단 밥부터..."

"아니요, 엄마 얘기 들으면 밥 안 먹어도 배부를 거 같아요."

"부, 불가사리?!"

"으, 으와~ 엄, 엄마는 생각보다 순정파셨구나... 드라코와는 결이 다른 느낌..."

"피, 핀토. 그게 무슨 말인가요... 펴, 평소에 절 어떻게 생각하셨길래..."

"괜찮아, 엄마! 나도 처음엔 엄~청 부끄러웠는데, 그래도 모두 함께 행복한 기억을 서로 나누니까 나까지 행복해지는 거 같더라구!"

"드, 드라코?! 드라코도 뭔가 얘기했나요?!" 


아무래도 저녁 식사는, 꽤 많이 미뤄야 할 성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