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번 떨어지다 말 것 같았던 비가 억수같이 쏟아져내리던 어느 날의 오후.",


"「비가 그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조용히 비가 내리는 광경을 바라보던 밴시가 창문에서 떨어지고는 당신에게 돌아서며 이야기했다.",


"오늘 당신은 밴시와 함께 외출하며 이곳 저곳 거리를 돌아볼려고 했었지만",


"쏟아지기 시작한 장대비를 보며 이대로 밴시와 함께 같이 시간을 보내도 괜찮겠다고 생각하며 그녀의 옆에 앉는다.",


"잠깐 놀란 밴시였지만 곧 당신을 향해 미소를 짓고는 자기도 모르게 엉덩이를 들어 좀 더 가까이 붙었다.",


"......",


"순간 밴시가 놀라며 당신에게서 살짝 거리를 떨어뜨리고는 고개를 돌렸다.",


"당신은 의아해하며 가만히 밴시를 쳐다보고 있었다.",


"당장이라도 소리 내는 순간 깨질듯한 분위기.",


"이어지는 침묵 속에서 무언가 결심한 듯",


"밴시가 천천히 입술을 움직였다.",


"「제가 사령관님의 집에 온지도 꽤 많은 시간이 흘렀습니다.」",


"「사령관님은 처음 제가 이 곳에 왔을때를 기억하십니까?」",


"당신은 기억한다고 대답했다.",


"「그때의 저는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고 그저 흘러가는대로만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남들이 느끼는 기쁨과 슬픔. 환희와 행복...이라고 합니까?」",


"「저는 그런걸 불필요하다고 느끼고 있었습니다.」",


"「왜냐면 전 알고 있었습니다. 전략적인 가치로 따지면 지대공 미사일 한발보다도 싼 값으로 설계된 저니까요.」",


"「운 좋게 살아 돌아오면 다음 출격까지 한번 더 살 수 있는 그런 몸밖에 되지 않는 기체 모델...」",


"「그런 모델이 감정을 가져봐야 그 짦은 삶에 얼마나 도움이 될까요?」",


"「전쟁터에서 얼마나 살지 모를 그 1분 1초의 순간에 감정이란게 과연 얼마나 도움이 될까요?」",


"의문을 던지며 당신에게 속마음을 쏟아내던 밴시의 몸이 점점 떨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런 절 사령관님은 전쟁도 하시지 않을거면서 돈을 주고 구입하셨었습니다.」",


"「...처음엔 무서웠습니다. 세상 밖의 소문을 들었었습니다. 차라리 전쟁에서 죽는게 나을 정도로 극심한 짓을 당하는 바이오로이드들이 많다는 걸 들었었으니까요.」",


"「저는 사령관님이 그런 취향을 가지고 절 사신게 아닐까 의심하고 있었습니다...」",


"「...착각이었습니다. 사령관님은 그런 사람들과는 다르게 너무나 바보같을 정도로 절 아껴주셨었습니다.」",


"이야기를 이어가던 밴시가 살짝 미소를 지어보였다.",


"하지만 그런 밴시의 몸은 비에 젖은 작은 동물마냥 심하게 떨리고 있었다.",


"불안한듯 무언가를 잡고싶어하며 허공에 손을 들어올리는 그녀의 모습에 당신은 밴시의 손을 잡아주었다.",


"「...이제 대답해주시겠습니까?」",


"「사령관님은...」",


"「왜 저에게 관심을 가지시고...저를 아껴주시려고 노력하시고...」",


"「다른 사람들처럼 그저 절 물건처럼...도구처럼 대하시면 그만이신데...」",


"밴시의 목소리가 지독한 고통을 맛본듯 극심하게 떨리고 있었다.",


"「...사령관님...대답해주시겠습니까...?」",


"「......」",


"「...제가...」",


"「...아무런 감정을 느끼지도 못했고 표현도 하지 못했던 제가...」",


"「제가...아...」",


"말을 이어가던 밴시의 붉은 눈동자가 커지기 시작했다.",


"자신이 살면서 단 한번도 흘리지 않을 것만 같았던",


"평생을 생각조차 해보지 않았던 상황을 맞이한 밴시의 두 눈동자에서",


"자신의 삶을 새롭게 조각해낼 첫 단추가 될 보석이 액체가 되어",


"새하얗고 고운 피부를 타고 흘러 내려가고 있었다.",


"당장이라도 무너져내릴 것 같이 떨리는 손가락을 천천히 들어 얼굴에 가져다 대어 본다.",


"끈적거리며 그 고운 손가락으로 타고 흘러내려오는 맑고 투명한 액체.",


"밴시의 두 눈동자는 자신이 처음으로 흘린 눈물방울에서 쉽사리 떼어내지 못하고 있었다.",


"그것이 신호탄이 된 것일까?",


"밴시의 고운 두 눈가 사이로 반짝이며 빛나는 그녀만의 보석들이",


"때를 맞아 내리는 장맛비처럼 주륵주륵 쏟아져내리기 시작했다.",


"당신은 당장이라도 쓰러져버릴것만 같은 밴시의 떨리는 몸을 부드럽게",


"그러나 강하게 끌어안고 등을 토닥여주며 미소를 지어주었다.",


"그런 당신에게 밴시는 힘겹게 터져나올 것만 같은 울음을 간신히 삼키고서",


"당신에게 다시 한번 물었다.",


"「...제가...제가 사령관님을...좋아해도 되나요?」",


"「...제가...사령관님이 주신 애정만큼...사령관님에게 기대어도 되나요...?」",


"당신은",


"밴시를 끌어안으며 달래어주던 당신은",


 "밴시에게 밴시가 원하는 만큼 사랑해달라고 속삭여주었다.",


"......",


"곧 처음으로 당신은",


"밴시의 울음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슬픈 일을 당하거나 고통에 겨워 울부짖는 목소리가 아니었다.",


"옛날 옛적 어른들이 들려주던 동화 속의 끔찍한 밴시 울음소리가 아니었다.",


"그녀는 세상에서 그녀에게 붙여준 이름답지 않게",


"오직 당신을 소망하며 당신을 바라보던 그 간절한 마음을 순수하게 토해내고 있었다.",


"「...으흑...으아...아아아-」",


"「사령...사령관님...저...몸이 이상합니다...」",


"「예전엔 전혀 이런적이 없었는데...으흑...흐윽...」",


"「...왜 이런 걸까요? 몸이...너무 떨리고...불안해서...」",


"「흑...으흑...심장이...심장이 너무...아픕니다...너무 심하게 두근거려서...」",


"「대답해주세요...사령관님...이게...감정이란 겁니까?」",


"불안에 떨며 갈피를 잡지 못하는 밴시의 얼굴을 당신은 조용히 마주하며 눈물들을 닦아주었다.",


"당신은 밴시에게 이것이 사랑하는 감정이고, 밴시가 느꼈어야 할 잃어버린 감정들이라고 천천히 이야기 해주었다.",


"「...그렇게 이야기하셔도...저는 아직...잘...모르겠습니다...」",


"「...하지만...하지...만...」",


"「적어도 사령관님만 보면...무언가가 마음 속에서 차오른다는걸...알 것 같습니다...」",


"「그게...사령관님이 말씀해주시는 사랑이라면...그게 그렇다라고 하시면...」",


"말을 잇던 밴시가 다시 울음을 터트리며 당신을 끌어안고 오열하기 시작했다.",


"당신은 그런 밴시를 가만히 끌어안아주며",


"밴시가 느끼고 있는 서러움과 아픔, 그리고 깨달음에서 오는 기쁨들을 가슴으로 받아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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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그럼 명령이라도 내리지 그래...!」",


"「여왕한테 당장...당장...」",


"「나한테 지금 당장 행복해지라고! 고통스러워하지말고 아픈것도 느끼지말고 지금부터 당장 행복해지라고!」",


"그간의 서러움이 한껏 폭발했던지 티타니아는 당신의 옷깃을 꽉 붙잡고 고래고래 소리치고 있었다.",


"차갑다 못해 한없이 냉기가 서려진 당신의 옷 때문에 당장이라도 피부가 터질 것 같이 아팠지만",


"그러나 당신은 가만히 티타니아를 바라만 보고 있었다.",


"「왜...왜 멋대로...편해지려고...당장이라도 죽고 싶은 바이오로이드를...멋대로 사들여서는...」",


"「변덕이니 행복이니 그딴 헛소리나 이야기하면서...」",


"「왜...왜 여왕을 괴롭히고 고통스럽게 만드는거야! 왜! 왜!」",


"그런 당신은 티타니아에게 죽을 지도 모른다는 공포를 느꼈지만",


"그마저도 어쩌면 그 변덕이란게 한번 더 움직인걸까?",


"조용히, 천천히 티타니아의 팔을 잡고 당신의 품으로 끌어당겼다.",


"미안하다. 너의 아픔을 아는게 아니다. 네가 겪고 있을 고통이 얼마나 커다란지 나는 모른다.",


"그래서 미안하다고, 그렇기에 지금 너에게 이렇게 진심으로 사과한다고.",


"어쩌면",


"어쩌면 정말 미친 위선자처럼 보일지도 모를 이야기들이었다.",


"티타니아는 천천히 눈을 감더니 나지막한 목소리로 당신에게 말을 건넸다.",


"「...미친...미친 놈이야. 넌 진짜...」",


"「여왕이...내가 널 당장이라도 찔러 죽일 수 있는데도...」",


"「그런데도 날 이렇게 안으면서 사과할 생각이 든다고...? 제정신이야?」",


"「그리고...그리고 그딴 사과들 건네본다고 여왕이 좋다고 할거 같아...?」",


"「너 정말이지...위선자 같아...위하는 척하면서...고통따윈 모르고...안중에도 없어보이고...」",


"그런 티타니아의 말을 듣던 당신은 헛웃음을 지을 수 밖에 없었다.",


"지금 티타니아의 행동들이 너무나 어색하게만 느껴지는건 기분 탓이 아니었다.",


"이 아이는, 자신의 의지와 속마음을 들키기 싫어 오만하고 냉정하게 굴며 사람들을 밀치고 있을 뿐이었다.",


"공교롭게도 심어진 증오가 그 의지를 밀어내는건 덤.",


"당신은 말했다.",


"비록 보이는게 아무리 사납고 차가우며 냉정해보일지라도",


"티타니아 너 자신은 상냥하며 착한 아이라는걸.",


"같이 지내온 시간들이 그걸 말해주고 있다고, 그래서 알아주지 못한 내가 너에게 더욱 더 미안하다고.",


"그렇기에 더더욱 강제로 행복해지란 명령은 내릴 수가 없었다.",


"당신이 내리는 그 '행복'이란 명령이 모든 걸 '증오'하라는 명령과 뭐가 다를까?",


"그렇기에 당신은 티타니아가 명령이 아닌 자기 의지 스스로 '행복'을 찾아나갔으면 좋겠다고 속삭여주었다.",


"「......」",


"「......바보...같아...진짜...」",


 "「여왕은...여왕은 그런거 아닌데...네가...멍...멍청...으흑...흑...」",


"여왕은 그렇게",


"처음이자 마지막처럼 평생을 보일 리 없을 눈물방울들을 펑펑 쏟아내며 당신을 끌어안고 울었다.",







예전에 에라라오에서 밴시랑 티타니아 담당했다가 파기했던 스크립트


파일이 남아있길래 한번 올려봄


라스트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