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하고 평화로웠던 그곳.


마지막 인류가 이끄는 그곳.


잠수정에 들려서는 안될 소리가 들렸다.


- 타앙 -


오르카는 신속하게 총성이 울린곳으로 모였고 비상근무태세가 시작되었다.


하지만 그 소리는 이미 울림을 넘어서 조용하게 사그라졌고


총성이 울렸던 그곳


모두가 생각했던 그 곳에는 이미 울린 총성이 끝나고 뜨거운 피만 흐르고 있었다.


"아... 아.. 주...인님..."


리리스는 지금 상황을 파악할 수 없다는듯 말이 끊어지고 있었지만 행동은 누구보다 빨랐다.


로자 아줄을 전개해 쓰러진 주인을 감싸는 방어막을 만들었고


주인을 뒤에 두고 사방을 경계했다.


이윽고 장성들이 급하게 달려왔다.


하지만 그 누구도 지금 상황을 제대로 파악한 자는 어디에도 없었다.


극도로 혼란스러워하면서도 들어온 장성들, 아니 모두를 향한 한번도 본적 없는 분노를 흩뿌리고 있었고,

그 뒤에는 로자 아줄로 보호받으며 바닥에 누워있는 사령관.


그리고 바닥에 흥건한 피.


"이게 대체 무슨일인가? 리리스 경호대장. 사령관 각하께서 부상을 입으셨다면 신속하게 수복실로 모셔야...!"


"아무도 꼼짝하지도 마.. 주인님은 일어나실거야. 착한 리리스..에게... 말도 없이... 죽으실리가 없어..

분명히 장...난 이실...거야... 그렇죠...? 주인님..? 일어나실거죠...?"


이미 리리스의 총명한 눈동자는 죽은 생선의 눈깔만큼 빛을 잃었다.


리리스를 제치고 접근하던 몇의 장성들을 손속을 두지 않고 공격했기에 

장성들은 전력으로 리리스와 싸워야했다.


그렇게 치열한 혈투끝에 리리스를 겨우 제압한 장성들은 사령관을 들쳐업었을때

이미 체온이 모두 빠져나가버린 시체를 품에 업으면서도

자기 스스로에게 최면을 걸었다.


'사령관은 괜찮을거야. 수복실에서 치료 받으면 괜찮아질거야.

부상으로 피를 많이 흘리면 체온이 떨어지기도 하니까 서둘러서 치료를 해야해...

더 늦기전에...'


하지만 그녀들이 간과한 점이 하나 있었다.


리리스의 성격...


자신의 주인을 자신을 제압하고 데려간다. 이건 그녀에게 절대로 참을 수 없는 치욕이었다.

그리고 제정신이 아닌 리리스는 쓰러져 엎드려 있는 상태에서도 자신의 총을 장성들에게 겨눠 심장에 총알을 한발 박아넣었다.


"커흑..!"


우연인지 총알은 심장을 맞추지 못했고 옆구리에 맞았다.


"...주인님을.. 내..놔..."


총에 맞은 레오나는 사령관을 마리에게 건네고 리리스를 거칠게 걷어찼다.


"나야 상관 없지만 네 주인이 맞을수도 있는데 총을 쏴?! 

이딴게 경호대장이라고? 그리고 우리가 없을때 사령관을 보호하는게 네 역할 아니야?

그런것도 못하고 감히 총까지 쏘다니! 너같은건 없어도 돼!"


그리곤 품에 권총을 꺼내 리리스를 겨누고는 자비없는 총알을 발사했다.


- 탕, 탕, 탕, 탕, 탕, 탕, 철컥.. 철컥.. -


"하아..하아..."


"그만하십시오 대장. 이미 죽었습니다..."


이미 레오나의 총에 의해 머리에 몇개의 구멍이 났고 피는 바닥을 흘러 가득 메워갔다...


"사령관은 안죽었어... 죽지 않았다고..."


그리곤 자신의 연적이라고 생각했던 발키리의 품에 안겨 서럽게 흐느꼈다.


...

...

...


"...닥터 각하의 수복은 얼마나 걸리겠나?"


"...모르겠어."


"닥터-!"


"나도 모른단말야! 심장도 이미 멎었고 총이 어딜 뚫었는지나 알려줄까? 관자놀이를 관통해서 뇌까지 완전히 날아갔다고.

수복실에 넣어서 몸이야 회복되겠지, 심장도 억지로라도 다시 뛰게 할 수 있어.

근데 문제는 뭔지 알아? 오빠가 그런다고 회복이 될거같아? 나도 과학을 연구하는 자로서 말하고 싶진 않은데,

몸을 강제로 회복한다 한들 내가 할 말은 아니지만.. '혼'이 돌아오리라는 장담은 못해...."


그리고 닥터는 무너지듯 수복기계의 앞에 주저 앉아버렸다.


마리는 닥터를 달래려고 어깨에 손을 대려했으나 닥터는 차게 말했다.


"나가."


"...."


"나가라고, 나는 필사적으로 오빠를 살릴 방법을 찾을거야. 그게 인간적이든 아니든

이제 내게 중요한건 하나도 없어. 반드시 살릴거야. 필요하다면 무슨짓이라도."


평소의 닥터와는 다른느낌이었으나 마리를 비롯한 여러명은 그 말에 수긍하고 나갈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 일은 생각보다 빠르게 진정되어갔다.


라비아타의 지도아래 각 부대는 모든 활동을 정지하고 최소한의 활동만 하며 

닥터의 결과를 기다리는 쪽으로 설득했고

혼란스럽던 부대들을 진정시키는데 주력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흐를수록 부대에서는 많은 이야기가 나왔다.


여러 불만이 있었지만 사령관의 자리가 너무 컸던 이유가 컸다.


각 부대의 대장이 필사적으로 달랬으나 그것도 한계가 있는법이었으니까.


그리고 며칠이 더 흐른 뒤...


닥터의 요청으로 모든 바이오로이드가 광장으로 모였다.


"...모여줘서 고마워. 길게 얘기해봐야 소용없으니까 짧게 결론만 말할게.

떠날 부대는 떠나는게 좋겠어. 

이대로 모여서 혼란을 가중하는거라면 특히나 더."


"닥터, 그게 무슨소린지 이해가 안되는군. 제대로 설명을 해주길 바란다."


"...알겠어 칸 언니. 지금 오빠의 몸을 해체해서 정자를 확보했어.

하지만 신체가 죽은곳에서 건져낸 정액이다보니 양은 한정되어있어.

그리고 평소의 오빠의 정액에 비교해도 활동성이 낮아.

제대로 착상된다는 보장도 없고, 제대로 된 아이가 태어나리라는 보장도 없지.

그런 와중에 착상하면 정실이 되고 그런것때문에 혼란이 올거라고 생각했어.

그래서 떠날 부대는 먼저 떠나라고 한거야."


"그렇다면 각하의 아이를 베는것이 아닌가?"


"맞아, 오빠는 죽었어. 이건 어떻게 해도 바꿀수 없어. 바뀌지도 않을거고.

오빠의 씨를 받아들여 키우는 방법밖에 없어.

그리고 가장 큰 문제가 또 있잖아?"


일동 수근거림이 있었지만 닥터의 말에 다들 탄식을 내뱉었다.


"잉태한 아이가 여자아이면 어쩔건데?"


그 말까지 듣고선 적지 않은 혼란을 가져왔다.


하지만 반대로 자신들이 잉태하겠다고 지원하는 경우도 많았다.


"잊지마, 우리는 오빠를 이미 잃었다는걸."


그리고 지원하는 부대의 장성과 지원병력에게 사령관의 약해진 정액을 투입했다.


...이제 남은건 기다리는 것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