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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하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하다.

 

며칠을 심사숙고하며 생각해낸 서프라이즈였는데 지금의 반응은 상정 외다. 아니, 분명하게 말하자면 예상한 것과 정확히 반대의 반응이다.

 

 

“야이, 미친...!”

 

 

돌연 장화의 눈이 휘둥그레지면서 입술이 파르르 떨리기 시작했다. 얼굴빛이 새파래지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눈동자마저 좁쌀마냥 쪼그라들었다.

 

성큼성큼 걸어가는, 아니, 뛰어간다고 표현해야 맞을 듯한 걸음걸이는 헬리콥터의 날개짓이 내뿜는 거센 바람에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그녀는 반쯤 사색이 된 얼굴로 헬리콥터에서 내리는 내 아들에게로 달려갔다.

 

이글거리는 눈빛은 마치 은행에서 갓 뽑은 현금을 땅바닥에 쏟아버린 사람처럼 절박하다. 안쪽에 함께 타고온 일행들이 미처 반응할 새도 없이 조카를 안아 들고는 나를 향해 윽박지르듯이 소리쳤다.

 

 

“당신! 대체 무슨 정신머리로 여기에 인간을 데리고 온 거야?! 아니, 인간인 걸 둘째치더라도 이런 꼬마애를 데리고 오면 어떻게 해!”

 

“안전한 건 몇 번이나 확인했는데.”

 

 

일단 여기 있는 이 귀여운 꼬마 아이는 내 눈앞에서 걱정에 몸부림치고 있는 녀석의 조카이기 이전에, 내 아들이다. 자기 자식을 위험한 곳으로 데리고 오는 대책 없는 부모가 이 세상에 어디 있겠는가?

 

주변 탐색은 물론이거니와 근처의 102체의 폐건물 조사, 근방의 바이오로이드 세력권과 정지 궤도에서의 인공위성 관측본 분석까지. 다 쓰러져가는 리오보로스 가문의 궁전 방문의 사전 준비라기엔 차고 넘칠 정도로 확인했다.

 

 

‘유럽 재개발 산업을 시작하면서 몇 번을 확인했는데. 위험 요소가 있을 리가 없지.’

 

 

교황을 죽인 이후로 우리는 유럽 전체에 대한 개혁안을 계획하고 실행에 옮겼다. 델타에 의해 망가진 바이오로이드 무리를 규합하고, 무너진 도시를 다시 세우며, 오비탈 와쳐와의 연결 고리를 만들기 위한 궤도 엘리베이터까지 건설하고 있다.

 

이 근방에 그런 흔적이 보이지 않는 것은 단지 이곳이 마리아 리오보로스의 마지막 유산이 남아 있는 곳이기 때문이었다. 바르그가 원했던 것은 마리아를 추억할 수 있을 만한 장소였고, 이 저택은 그런 바르그에게 더할 나위 없는 안식처였기 때문에 이 구역을 건들지 않았던 것이다.

 

지금 바르그가 보이지 않는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몇 번? 고작 몇 번?!”

 

 

아니면 눈앞에 있는 이 녀석 때문에 바르그를 찾을 정신이 없는 걸 지도.

 

어느새 자기 조카를 등에다 업어 맨 장화가 나를 향해 일갈을 날렸다. 건틀릿 탓에 뾰족한 손가락이 가슴팍을 쿡쿡 찌른다.

 

 

“그거 몇 번 확인했다고 이런 괴팍한 곳에 애를 데리고 오는 미친놈이 어디 있어! 공기도 안 좋고, 치안도 안 좋은 곳이 애한테 뭐가 좋다고!”

 

“누가 보면 자기 아들인 줄 알겠네...”

 

“당신 아들내미니까 그렇지! 아오! 진짜, 이렇게 갑자기 오면 어떻게 하라는 거야!”

 

 

목청이 터져라 소리를 지르는 장화. 언성을 높이는 와중에 핑- 하는 쇳소리가 들린다. 자세히 보니 등에 매고 있던 아들과 자신의 몸을 와이어로 칭칭 묶고 있었다. 

 

절삭용 와이어는 아니고, 두께가 꽤 두꺼운 것이 와이어보단 밧줄에 가까운 형태다. 손이 보이지도 않을 만큼 빠르게 움직이는 와중에도 등 뒤를 힐긋힐긋 쳐다보며 자기 조카의 눈치를 보았다.

 

 

“안 아프지? 그지? 안 아플 거야. 아프면 말해. 다시 묶어줄 테니까.”

 

“... 이모... 나 아파...”

 

“아, 아프다고??”

 

 

귀여운 아들내미 입에서 늘어지게 기다란 하품이 흘러나왔다. 눈꼽도 떼지 않은 것이 오는 내내 자느라 정신이 없었던 모양이다. 그 증거로 함께 온 일행의 앞치마 중 하나가 검게 물들어 있었다.

 

조카의 말 한마디에 소스라치게 놀란 장화가 재빨리 몸에 묶은 와이어를 풀었다. 덜컹, 하고 떨어질 때 나는 둔중한 소리가 그것의 두께를 짐작케 했다.

 

 

‘대체 저런 걸로 다섯 살짜리 아이를 맬 생각은 어떻게 한 거지...’

 

 

이곳에서 무슨 일을 하고 다녔던 건지는 몰라도, 심상치 않은 짓이었을 것은 분명하다. 그렇지 않고서야 저런 상식에서 벗어난 짓을 할 수 있을 리가 없잖겠는가.

 

그러는 사이에도 장화는 몇 번이나 와이어를 묶었다 풀었다를 반복했다. 조카를 상대로 실험을 할 수는 없었는지 자기 몸에만. 오른쪽 어깨에서 왼쪽 허리로 사선을 그으며 맸다가, 다시 풀어서 이번에는 허리에만 묶어본다. 하지만 그것도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인지 이번에는 허리에만 다시 묶는다.

 

그 일련의 동작은 채 10초도 걸리지 않았다. 눈앞에서 벌어지는 신기에 가까운 곡예에 아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하지만, 그렇게 빠른 장화의 손짓에도 불구하고 10초라는 시간은 분위기를 어색하게 만드는데 충분했다. 

 

함께 온 일행 중 한 명이 곱게 만든 바구니 속에서 포대기 비슷한 물건을 꺼냈다. 배틀 메이드의 일원 중 한 명이었던 그녀는 능숙한 솜씨로 포대기를 펼쳐 아들의 몸을 감싸 자신의 품 안으로 감싸 안았다. 수백 번은 했을 듯한 부드러운 솜씨는 아들의 몸에 약간의 상처조차 내지 않으며 물 흐르듯이 흘러갔다.

 

그리고는 장화 앞에서 보란 듯이 아들의 등을 쓰다듬는다. 등에는 거친 와이어로 인해 만들어진 작은 상처가 있었다.

 

 

“헷.”

 

 

짧은 기침이었다. 거들먹거리는 표정은 덤이었고.

 

 

“... ... 아이씨! 됐어!”

 

 

구슬땀을 벌벌 흘리던 장화가 분을 삭히며 와이어를 거둬들였다. 

 

 

“놀리려고 왔어? 아니면 오르카 호에선 이제 더 이상 자식 자랑할 사람이 없어서 여기까지 온 거야?”

 

 

왠지 모르게 씩씩거리는 장화를 향해 부드럽게 고개를 저었다. 좌우로.

 

다른 누구도 아니고 오르카 호 최고 권력자의 장남이다. 아니, 그 이전에 이 아이는 인류가 멸망하지 않으리라는 확신을 보여준 첫 번째 증거다. 이런 귀한 아이를 보여주고 싶은 사람은 오르카 호 몇백 바퀴를 돌아도 다 보지 못할 것이다.

 

 

“내가 그럴 만한 사람은 아니란 거 알잖아.”

 

“... ...”

 

 

고맙게도 부정하지는 않는다.

 

 

“아직 이 애를 소개받지 못한 대원들도 많아. 심지어 오르카 호에서 일하는 사람 중에서도. 오르카 호에서 일한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는 너도 잘 알겠지.”

 

 

신화에 행하고 돌아온 인류의 마지막 방주.

 

왠지 모르겠지만 바이오로이드 사이에선 그런 소문이 파다하게 퍼져 있었다. 하다 하다 내가 직접 관리하는 보고서에까지 이런 내용이 올라오고 있으니, 그 영향력이 단순한 풍문 정도는 아닐 것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런 곳에서 일하는 사람들보다도 너에게 먼저 소개해주고 싶었어. 그게 여기 온 이유의 전부야.

물론, 내 아들이 이모를 만나고 싶어한 것도 있고. 그렇지, 아들?”

 

“응. 이모 보고 싶었어.”

 

 

유모의 품 안에 안겨 있는 아들의 눈에서 치명적인 기광이 뿜어져 나왔다. 

 

얼핏 애처롭게 들리기까지 하는 목소리. 망울거리는 눈동자. 고사리 같은 손을 꼭 쥐면서 바둥거리는 몸짓까지.

 

벌써 함께 온 대원들 중 몇은 앓는 소리를 내며 뒤로 쓰러졌다. 세상에 예쁘고 잘생긴 것은 취향 차이라지만, 귀여운 것은 만국공통이라 하지 않았던가. 하물며 예쁘고 잘생긴 아이가 귀엽기까지 하니, 그 기세는 아빠인 나도 감당하기 힘든 것이었다.

 

직접 아들을 품에 들고 있던 유모마저도 바들거리는 손으로 코와 입을 감싸며 벽을 잡고 간신히 신체를 지탱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그 기세 하나만으로 대원들 사이에서는 ‘감정 없는 메이드’, ‘프로 중의 프로’ 소리를 듣고 있는 엘리트였다.

 

그러니 그런 사람들이 봤을 때 아무렇지도 않게 서 있는 장화가 얼마나 피도 눈물도 없는 냉혈한으로 보였겠는가.

 

 

“... 으, 으으...”

 

 

다만 내가 보았을 때는 조금 달랐다. 실룩거리는 입술, 손으로 가리고 있지만 숨길 수 없는 홍조. 진동하고 있는 눈동자와 꼼지락거리는 손가락까지.

 

이 녀석의 과거를 알고 있는 사람이 봤을 때는 더할 나위 없는 희극이었다. 바르그가 여기 있었다면 아마 오글거리다 못해 경멸하며 자리를 박차고 나갔을 것이다.

 

 

‘그래도 여기서 심경의 변화가 있기는 있었던 모양이지.’

 

 

예전이었다면 이런 감정은 인정할 수 없다면서 뛰쳐나갔을 텐데 지금은 여전히 자리에 서있다. 그것 하나만 봐도 장화가 이곳에서 장족의 발전을 이뤄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렇다면 다른 아이들이 아닌, 이 아이를 데리고 온 것이 분명 도움이 될 것이다.

 

삐이이---

 

돌연 사이렌 소리가 들렸다. 소리의 근원지는 헬리콥터 밖이었다. 

 

빨개진 장화의 얼굴이 순식간에 원상태로 돌아왔다. 당혹스러움이 느껴지는 눈빛. 그러고 보니 아까부터 조카를 보는 얼굴에 원인 모를 근심이 드리워져 있었다.

 

 

“빨리! 여기서 벗어나던가, 아니면 저택 안으로 들어가던가 선택해!”

 

“뭔데?”

 

“최근 들어 쥐새끼들이 여기까지 쳐들어오는 경우가 많아졌어! 저것도 놈들이 여기까지 도착했다는 신호라고!”

 

 

‘쥐새끼’라는 말이 들리자 아들의 귀를 막는 대원들. 다들 눈썹을 찌푸린 채 장화를 보고 있었다.

 

 

“아이씨! 멀찍이서 보고만 있지 말고 수송기 시동부터 켜! 하늘이 보일 정도로만 올라가도 놈들이 공격할 수는 없을 거야!”

 

“진정해. 일단 상대가 어디까지 왔는지부터...”

 

“진정하게 생겼어?! 당신 아들 목숨이 달린 일이라고! 저것들이 얼마나 피도 눈물도 없는데!”

 

 

장화의 얼굴은 수천 마리의 벌레가 움직이는 것처럼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재빨리 바닥으로 내려온 장화가 자신의 패널을 보고 더욱 사색이 된 표정으로 입술을 짓씹었다.

 

 

“300... 아니, 400? 갑자기 왜 규모가 뛴 거지? 설마 이 수송기의 신호를 받고...?”

 

 

패널 너머로 시선을 슬쩍 옮겼다.

 

화면의 절반이 빨간색. 상태를 알려주는 글귀들은 전부 다 검붉은색으로 물들어 점멸하고 있었다. 무장 규모, 세력의 크기, 전체적인 움직임까지. 어떻게 이런 정보를 얻을 수 있는 통신망을 구축했는지 신기할 정도다.

 

 

“... 하아. 아냐. 해야지. 늘 그랬잖아. 정신 차려. 할 수 있어.”

 

 

크게 호흡한 장화가 자신의 무기를 살폈다. 하지만 무기라고 해봤자 두 손이 전부. 건틀릿 끝에서 나오는 거미줄 같은 와이어가 햇빛에 반짝거렸다.

 

그녀의 시선이 가는 곳으로 눈을 돌렸다. 무너질 듯한 폐건물의 1층 기둥에서 멈춰선 눈동자. 자세히 보니 무언가 그 위에 붙어 있었다.

 

얼기설기 만들어놓은 폭탄. 그것이 주변 수십 군데에 붙어 있다. 척 보아도 폭탄의 질보다는 양을 늘리기 위해 싸구려 재료들을 모아 만든 티가 났다.

 

영리한 선택이다. 수백 명의 무법자를 상태로 공성 전략을 세우기 위해서는 건물을 무너뜨려서 방해물을 만들고, 겁을 주는 게 최선이니까.

 

 

‘아니지.’

 

 

겁을 주어도 놈들이 돌아가지 않으면, 그걸로 끝이니까. 아무리 장화라고 해도 400명을 상대로 저택을 지킬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런 상황에서 할 수 있는 것은 걸레짝이 된 폐건물 몇 채를 무너뜨려서 동귀어진의 각오를 보여주는 것 정도이다.

 

애초에 이 저택이라고 하는 것도 다 망가져가는 유산에 불과한 것. 사상자까지 보면서 담쟁이 덩굴이 가득한 저택을 털 바에는 차라리 다른 곳을 가는게 이곳 바이오로이드에게도 상책이었을 터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정체 모를 수송기의 신호가 발각된 상황. 이만한 세기의 신호라면 수송기의 크기도 짐작할 수 있을 테니 놈들은 고작 건물 몇 채가 무너진다고 도망가지 않을 것이다. 냄새를 맡았다면 살점이 잘리더라도 취하는 게 이 무법지대의 법칙이니까.

 

 

“조금 섭섭하네.”

 

 

눈빛을 갈무리하던 장화의 어깨를 잡으며 뒤로 당겼다.

 

 

“내가 왔는데도 너 혼자 하려는 거야?”

 

“뭐?”

 

“간만에 만났으니까 힘을 좀 합쳐보자, 아니면 내게 부탁을 해도 된다, 뭐 그런 거지. 아까 보니까 한 400 정도 몰려온다면서. 혼자서 하려고?”

 

“하, 무슨 시건방진 생각이야! 여기 있는 게 나와 당신뿐이라면 몰라. 우리가 뭘 지키면서 싸워야 하는 건지 한 번 봐봐!”

 

 

장화가 눈동자를 굴리며 주변을 재빨리 훝었다.

 

 

“방호 기능이라곤 눈꼽만큼도 없는 수송기에, 손에 굳은살도 안 박힌 메이드들 몇 명. 

게다가 애들까지 있는 상황이지! 400명을 상대로 한 명도 죽지 않고 싸우는 건 무리인 게 뻔하잖아!”

 

“하지만 장화, 너는 지금까지 잘 버텨왔잖아.”

 

 

주변 지형을 스캔해보면 격렬했던 전투의 흔적을 쉽게 볼 수 있다. 하지만 저택 근처 어디에도 무덤 같은 건 보이지 않았다. 이 아이의 성정을 생각해보면 저택 안에다가 죽은 시체를 숨겨놓지도 않았을 터.

 

지난 몇 년간 홀로 싸워왔다는 뜻이다. 아무도 죽지 않도록 지키면서.

 

 

“하긴, 그러니까 그게 힘들 줄을 아는 걸 지도 모르지.”

 

“옛날 얘기는 나중에 언제든지 들어줄 테니까 지금은 도망가라고-”

 

“아니. 나중에 듣지 않을 거야.”

 

 

수송기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뒤에 있던 대운 중 한 명이 수송기 벽에 걸려 있던 커다란 확성기를 건넸다.

 

겉으로 보기엔 별 볼 일 없지만. 손잡이 뒤쪽에 작은 돌출부가 있어서 안에 작은 기계가 들어가 있는 확성기를.

 

 

“더 일정을 미루기엔 나도 바쁜 사람이고, 그건 너도 피차 마찬가지일 테니 못다한 이야기는 오늘 안에 마치자고.”

 

 

장화가 무어라 반박을 하려 했지만, 아들을 안고 있던 대원이 그녀의 앞을 막아 세웠다.

 

그리고는 그녀에게 아들을 건넸다. 이번에는 포대기도 함께였다.

 

 

“받으십시오. 주인님의 말씀입니다.”

 

 

간결하고 딱딱 떨어지는 손놀림에 장화의 입이 뻐끔거렸다.

 

 

“하지만 너희 목숨이...”

 

“주인님께서 결정하신 일입니다. 왈가왈부할 이유도, 시간도 없습니다. 옛정을 생각하여 당신에게 시간을 내어주신 주인님께 감사하십시오.”

 

 

메이드가 장화의 손목에 묻은 먼지를 털어주었다.

 

 

“게다가, 이모라면 제대로 이모 역할을 하십시오. 저희 도련님께 염려 끼치지 마시고.”

 


망치로 한 대 얻어맞은 듯한 장화는 물끄러미 자신의 조카를 바라보았다. 이모라는 단어의 힘은 상당한 것이었어서 적들의 진군이 발뒷꿈치로 느껴질 지경이 되어서도 망설이고 있었다.

 

마치 거대한 바위를 감싸 안으려는 것처럼, 장화의 어깨는 무언가에 짓눌린 채 구부려졌다. 자신의 향해 손을 뻗는 조카를 마지못해 껴안은 것은 그 이후였고, 그 탓에 상체가 앞으로 고꾸라졌다.

 

아이의 등에 닿은 손에서는 규칙적인 박자가 느껴졌다. 와이어로 얼기설기 동여매려고 했던 때에는 느낄 수 없었던 맥동. 심장의 고동. 둥, 둥, 손끝을 울리는 이질적인 맥박. 자신의 심장이 내뿜은 것이 손끝에서 터져 나오는 것인지, 안겨 있는 이 아이의 것이었는지 모를 만큼 신비로운 생동감.

 

지금의 장화라면, 그 옛날의 그녀가 느끼지 못했을 것을 느낄 만큼 성숙해졌을 것이라 믿었다. 그렇게 믿었기 때문에 지금 내가 온 것이다.

 

장화의 손가락을 보았다. 거친 일을 멀리한 덕에 굳은살이 조금 녹아 있었다.

 

 

“... 내가 도와줄 수 있어.”

 

 

그 순간에서도 장화는 아이를 메이드에게 다시 건넸다. 벗었던 건틀릿으로 부드러운 손가락을 감쌌다.

 

 

“당신 혼자보다는 둘이 나을 거 아니야. 발목 잡을 일은 없으니까 나도 함께-”

 

“안 됩니다.”

 

 

그런 장화의 손에서 건틀릿을 부드럽게 빼내는 메이드였다. 역시, 에이스는 에이스다.

 

 

“그래, 계속 붙들고 있어. 아니다. 그냥 아예 묶어서 저택 안으로 끌고 가. 걔는 내가 말한다고 들을 얘가 아니거든.”

 

“알겠습니다.”

 

“자, 잠깐만! 당신 무슨 대책이 있는 거야?”

 

 

장화가 말을 더듬으며 물었다.

 

 

“당신, 여기에 저런 무리가 있는 것도 모르고 있었잖아! 저것들, 낮에는 땅속에 숨어 있다가 밤에만 지상으로 올라오는 놈들이라고! 제대로 관측했을 리가 없어!”

 

“흔적 정도는 본 적 있어.”

 

“아니, 제대로 봤다면 고작 이 정도 규모로 왔을 리가 없잖아! 애초에 몇 번씩이나 ‘안전’을 확인했다고 말했을 때부터 당신은 여기 지리를 아무것도 모른다 말한 거랑 다름없다고!”

 

 

장화의 말과 함께 땅울림이 심해졌다. 수송기 밖에서 느껴지는 진동은 확실히 바이오로이드 몇백이 만들어낼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유럽 바이오로이드 명가인 리오보로스의 생산 시설이 있던 곳. 하물며 인간의 멸망과 함께 죽음에 대한 공포를 잃어버린 충성스러운 바이오로이드들이 생존을 위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환경이 주어졌다. 백 년이 넘는 시간도 함께.

 

폐건물 사이로 모습을 드러낸 것들 중에는 2층에 닿을 만큼 커다란 것들도 있었다. 팔 몇 개 한쪽에 몰려 있는 그림자가 보이기도 했고, 이빨을 딱딱거리며 기괴한 소리를 내는 것들도 있었다.

 

 

“한두 놈이라면 나도 상대할 수 있었어! 하지만 당신도 저만한 수를 한 번에 싸울 수는 없을 거 아니야! 궤도 폭격이라도 떨구지 않는 이상 저것들 중에 하나는 여기까지 닿을 수 밖에 없어!”

 

 

장화의 말이 맞다. 델타의 영향이 아직까지 남아 있는 유럽에서 사지 멀쩡한 바이오로이드를 만나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철충이 도처에 도사리고 있기 때문에, 지켜야 할 주인이 죽어야 했기 때문에, 언뜻 생각했을 때는 살아야 할 이유가 전혀 없는 아이들. 차라리 죽는 게 더 편했을 아이들.

 

하지만.

 

살아남기 위해서, 죽은 자신의 주인을 위해서, 철충에게 복수하기 위해. 조금만 더 생각해보면 살아야 할 이유는 얼마든지 만들 수 있었던 아이들. 그래서 죽기보다 괴로운 삶을 선택했을 아이들.

 

 

“괜찮아. 아무도 다치지 않아.”

 

 

지평에, 건물의 층 사이사이마다 붉은 안광이 퍼져 있다. 이지라고는 느껴지지 않는, 아주 단순한 배고픔과 광기에 빠져 있어 으르렁거리는 것 정도의 목소리 밖에 낼 수 없는 바이오로이드들이 보인다.

 

 

“아무도.”

 

 

확성기를 든 손을 입으로 가져가 대었다. 입술은 목소리를 내기 위하여 한 번 굳게 다문 다음, 천천히 벌려 숨을 토해냈다.

 

몇 번씩이나 확인한 곳이다. 땅속에 숨든, 하늘 위에 날아다니든, 벌레 한 마리 놓치지 않도록 샅샅이 확인하고 검토했다. 1549개의 야생 바이오로이드와 그 중 위험 등급이 높은 491개의 위치와 신상, 실시간 이동 경로까지 전부 다 확인하였다.

 

그리고 수많은 작전관들의 검토와 장성들의 의견을 규합하였다. 일말의 거부감이라도 느껴진다면 전부 다 백지화한 다음 처음부터 다시 검토하는 회의를 하며 ‘과연 내가 이곳에 직접 와도 될지’를 확인하였다.

 

그렇게 칠주야, 일주일을 고민한 끝에 모든 이들이 만장일치로 내린 결론.

 

 

[위험한 것은 없다.]

 

 

“오늘 여기에 닿을 바이오로이드는 아무도 없을 거야. 장화.”

 

“하지만 어떻게 혼자서...”

 

 

대답 대신, 손에 든 확성기를 흔들어보였다.

 

정신을 집중한다. 손잡이에 달린 버튼을 누르고, 안에 담긴 뇌파 증폭기를 틀고, 깊게 심호흡하여, 다른 잡념이 방해할 수 없을 때까지.

 

그렇게 반복하고, 마음을 조각하여, 생각이 희미해지고 눈앞에 있는 바이오로이드만이 내 모든 시야에 들어올 때가 되면.

 

 

“인간이니까.”

 

그때 비로소 말할 수 있게 되는 것이 있다.

 

 

“세상 모두가 너를 버려도, 인간이 너희를 버릴 수는 없는 거야.”

 

 

이것이 내가 지금까지 걸어오기를 포기하지 않게 만든 마음이었고, 내가 최후까지 버리지 않기로 택한 불인지심이었으며,

 

내 아이에게 가르치기로 한 첫 번째 가르침이었다.

 

 

“멈춰라.”

 

 

그렇게 목소리에는 힘을 주고,

 

발은 한 발자국 앞으로.

 

나를 필요로 하는 아이들에게로.

 

 

“인간의 명령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