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모음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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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안길을 따라 이어진 도로는 폭이 좁은 외길이었다.

누가 봐도 병력을 배치할 이유가 없는, 그런 길.


다행인 점은 철충도 그렇게 생각했을 거라는 예측이 맞아떨어졌다는 것이다.

덕분에 포위망을 뚫는 게 수월해졌으니까.


전방에 나이트 칙 셋, 후방에 런처 둘.

우릴 포착하자마자 전투태세를 갖춘다.


하지만 놈들보다, 내 혀가 훨씬 더 빠르다.


"요안나, 막아!"

"맡겨주게나!"


요안나는 그리폰이나 콘스탄챠처럼 화기가 아닌, 냉병기로 무장하고 있다.

그러니 전투 스타일 역시, 다른 양상을 띄고 있는 건 당연한 노릇.


"내 주는 강한 성이니, 나를 뚫을 순 없으리!"


그녀가 읆은 것은 주문일까, 아니면 장비를 가동시키기 위한 시동어일까.

요안나가 왼팔을 치켜들자 들고 있던 카이트 실드가 황금빛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황금빛을 은은하게 발산하던 방패가, 요안나의 호령에 맞춰 일종의 에너지 실드처럼 보이는 방어막을 구현한다.


한발 늦게 날아온 총탄과 미사일이 매섭게 방어막을 두드린다.

보기만 해도 정신이 아찔해지는 공격.

그러나 요안나는 미동조차 하지 않고 그 자리에 우뚝 서서 버텨낸다.


"대단하네."

"운이 좋아 성능이 좋은 방패를 들고 있는 것 뿐이라네. 하지만 칭찬은 고맙게 받아들이지."


자신은 문제없으니 안심하라는 듯 XXX를 향해 미소짓는 요안나.

하지만 자세히 보면 왼팔을 바들바들 떨고 있다.

아무리 요안나라고 한들, 저 무지막지한 공세를 계속 버틸 순 없겠지.

방어 태세가 무너지기 전에 빨리 끝내야 한다.


"콘스탄챠, 후방에 있는 놈들을 잡아!"


지시가 끝나자마자 콘스탄챠가 총으로 나이트 칙 런처들을 꿰뚫는다.

아직 살아 있지만 몸도 제대로 못 나누는 이상, 큰 문제는 되지 않는다.


"그리폰! 나머지 놈들 다 쓸어버려!"

"알았음!"


그리폰이 하늘 높이 솟구친다.

나이트 칙들은 그제서야 상황을 파악하지만 이미 늦었다.


"지금이야, 콘스탄챠!"


그리핀이 아무리 위협적이라한들, 한눈을 팔다니.

콘스탄챠의 견제사격에, 철충들은 다시 이쪽을 향해 사격을 가한다.


하지만 요안나는 미동도 없이 그 공격들을 모조리 막아낸다.

런처의 미사일 공격이라면 모를까, 칙의 얄팍한 공격 따위로 무너질 그녀가 아니다.


이어서 그리폰이 쏘아올린 작은 미사일들이 내리꽂힌다.


"음...!"


이번 폭격은 폐허에서 썼던 것보다 훨씬 가까운 곳에서 일어났다.

여파와 열기 역시, 아까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다.


아마 요안나의 방어막이 아니었다면 우리도 휘말렸겠지.

아니면 그걸 우려해서 쓸 생각을 못 했거나.


"해치웠나?"

"주군!"


그런 반응 안 보여도 되는데.

지금 이 전장에서 철충에 대해 가장 잘 알고 있는 게 바로 나다.

비록 아무리 하급 개체여도 이 정도로 죽거나 하진 않지만, 이 공격을 맞은 시점에서 이미 끝난 거나 마찬가지다.


연기가 걷히자, 드러나는 충격적인 광경.

폐허에서 썼을 때도 바닥이 큰 구멍이 나 있었건만, 이번엔 도로에 커다란 구멍이 뚫려있다.


철충 역시 그 공격을 멀쩡히 버텨내지 못했다.

총구와 다리 부분이 녹아내렸다.

이제 공격은커녕 제대로 움직이는 것조차 불가능하겠지.


그런데도 날 어떻게든 죽이고 싶은 걸까.

필사적으로 기어오는 모습은 동정심마저…느껴지진 않네.


"마무리는 맡겨주게나."

"고마워."


철충을 요안나에게 맡기고, 가드레일을 넘어 옆쪽 풀밭으로 넘어간다.

도로에 뚫린 구멍이 워낙 크니 그냥 지나갈 수 없다.


“어.”


그러고 보니 저 차…

오래 전에 버려진 것 같지만, 아직 굴러가려나?


"이건 정말 생각도 못했군."


창 너머로 불어오는 바닷바람, 그것에 몸을 맡긴 요안나가 감탄을 내뱉는다.

하긴, 내가 생각해도 버려진 차를 타고 등대까지 간다는 건 매우 훌륭한 발상인 것 같다.


물론 이게 아직까지도 굴러 간다는 것도 놀랍지만, 내 말을 듣자마자 자연스럽게 실천에 옮긴 콘스탄챠도 대단하지만.


“설마 철충 부품을 뜯어다 차 문을 딸 줄은 몰랐는데.”

”말도 마, 인간. 저런 걸 알고 있는진 나도 몰랐어. 손놀림이 예사롭지 않더라.”


별 것 아니라는 듯 가볍게 답하는 콘스탄챠.


"언니한테서 필요할 때가 있을지도 모른다고 전수받은 거야. 난 언니처럼 차 문을 뜯어낼 순 없잖니."

”라비아타 공이 그런 걸 알려줬다니. 콘스탄챠 자네가 한 말이 아니었다면 그냥 우스갯소리로 넘겼을텐데.”


…차 문을 뜯는다고?

음…보리가 철충을 물고 버티는 걸 보면 가능할지도?


“그나저나 정말 다행이에요. 요안나 씨…덕분에 무사히 빠져나올 수 있었어요. 주인님도 안전하게 지킬 수 있었고요.”

"어려운 자를 돕는 것이야말로 기사의 도리이지. 아, 그러고 보니 주군께 제대로 인사를 드려야겠군."


요안나를 한 손을 가슴깨에 올린 채 나를 향해 고개를 숙인다.

그것은 마치 옛날 중세시대에 신하가 군주한테 취했을 법한 모습.

그걸 행한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너무나도 잘 와닿는다.


음…좀, 당황스럽네.

물론 그녀 나름대로 예우를 표하는 거겠지만.


"동쪽과 남쪽, 바다 건너의 기사. 모든 사제들과 예언자들의 여왕, 외로이 신앙을 지키는 자들의 보호자, 사제여왕 요안나일세."


자신의 신분을 밝히고,

이어서 다른 손을 뻗어 내 손을 천천히 잡아당겨,

손바닥에 살짝 입을 맞춘다.


"이건..."

"이제는 오롯이 홀로 남으신 귀하신 분께 경의를 바치노라."

"...화려한 환영, 고마워."

"아니, 이렇게 나타나 주어서 짐이 오히려 기쁘군."


자세를 풀고 다시 고개를 든 요안나가 슬쩍 미소 짓는다.


"하지만 그보다 더욱 급한 전할 말이 있네. 이 기쁨을 시로 표현하지 못하는 걸 부디 용서하게나."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분명 좋지 않은 일이 벌어졌다.


"혹시...기지에 관한 이야기인가요? 기지에 무슨 일이 생기기라도 했나요?"

”그대는 역시 총명하군. 라비아타 공이 그대에게 이 일을 맡길만도 해.”

”요안나가 마중을 나왔는데도 기지와는 통신이 되지 않았으니까요.”


아무래도 요안나는 근처에 머무르던 것이 아니라 우릴 맞이하러 본부에서부터 이곳까지 온 모양이다.

본부 기지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왜 통신이 되지 않는건지, 알고 있겠지.


"이미 대충 짐작하고 있을테니 간단하게 말하지. 지금 기지는 공격을 받고 있다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우리 모두 퇴각하고 있는 중이지."

"퇴각이요?"


설마했는데 정말로 본부가 공격받았던 걸까.

다른 곳도 아닌 본부를 수사하지 못했다면…보통 일은, 아니다.


"라비아타 공이 전투 중에 좀 많이 다쳤다네. 적도 너무 많아 이대론 버틸 수 없을 것 같아서 말야. 일단 흩어진 다음 다시 전열을 가다듬는 게 낫다고 판단한걸세."

"말도 안돼! 인간도 찾았으니 명령만 받는다면 그까짓 놈들쯤이야...!"

"그리폰, 너라면 그렇게 말할 줄 알았지. 그래서 라비아타 공이 날 보낸거겠지만."


요안나의 말이 맞다.

적의 규모가 얼마나 되는지, 어떤 적이 도사리고 있을지 모를 상황.

무작정 병력을 보내봤자 희생양만 늘어난다.


"언니는...괜찮은가요?"

"상처가 제법 크긴 하지만 시간이 가면 낫는 부상이니 그리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네."


콘스탄챠의 얼굴이 보이진 않지만 안도하는 게 분명하다.

언니라고 부르는 걸 보면 가족 관계 또는 그만큼 친밀한 사이일테니까.

걱정이 안 될래야 안될 수가 없겠지.


"그건 다행이네요. 그럼 언니가 요안나 씨를 보낸 건..."

"주군의 안전을 위해서도 있고 혹시 기지로 돌아오려 했다면 등대 지하로 안내해주려고 할 생각이었지. 뭐, 그럴 필요는 없어보이지만."

"그럼 다른 자매들도 등대 지하 쪽으로 오는 건가요?"

"아니, 그렇진 않네."

"왜? 더 오면 좋지 않아?"


그리폰이 우는 듯한 절규를 내지른다.


등대까지 가는 길목에 철충이 얼마나 더 잠복하고 있을까.

거기에 추가 병력 없이 셋만으로 길을 뚫어야 한다.

도착한다한들, 당장 우리가 할 수 있는 것도 없을테고.


그런 상황에서 추가 병력이 없다는 말은...


“거기까지 들킬 수는 없으니 일부러 따로 흩어져서 유인하기로 한건가?”

”바로 그걸세. 걱정말게나. 등대까지 가는 길은 정비된 길도 얼마 없네. 철충이 다니지도 않는 곳이니 괜찮을걸세."

"등대 지하에 뭐가 있는진 모르겠는데, 안전한 곳은 맞지?""그건 괜찮아요, 주인님. 거기 있는 건..."

"잠깐, 콘스탄챠."


요안나는 쉘터에 대해 설명하려는 콘스탄챠를 제지한다.

…왜?


"주군. 짐은 주군이 그곳을 보고 놀라는 모습을 보고 싶다네. 조금만 지나면 바로 볼 수 있으니 그때의 즐거움을 위해 참아주지 않겠나?"

"응?"


기대할만한 게 있는 걸까.

뭐가 있길래 저런 말을 하는 거지?


"그거 좋은데? 나도 처음 봤을 땐 깜짝 놀랐거든. 설레기도 했고. 인간도 보면 납득할 것 같은데, 어때?"

"정말...주인님, 어떻게 할까요? 나중에 알려드려도 될까요?"

"음...그럼, 까짓거 그렇게 하지 뭐."


잘 모르겠지만…기대해서 나쁠 건 없겠지?


"후훗...그럼 '그곳'으로 모셔다 드릴게요, 주인님♪"


콘스탄챠가 즐겁다는 듯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엑셀을 힘차게 밟았다.


어느새 노을이 저물어 간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 뭘 해야 될지 아직 잘 모르겠지만…


우리의 앞날은, 저 노을빛처럼, 밝을 것 같다.

아니, 내가, 그렇게 만들어야겠지.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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