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없는 방에  앉아서  서류들을 훑어보던 와중 문을 박차고 들이닥친 붉은 머리칼의  소녀, 멸망의 메이를 익숙하다는 듯 덤덤하게 사령관은 맞이했다.




"갑자기 사령실에 들어와서 한다는 말이 그거라니, 너무 무례한거 아니야? 메이."



"이제 와서 알 바야? 오늘도 또 작전안 폐기라니, 내가 대체 얼마나 오랫동안 이 작전만 기다려 왔는지 알기나 해?"


손안에서 잔뜩 구겨진 종이뭉치들을 사령관 앞의 책상 위로 신경질적으로 던진 메이는, 그 자그마한 체구에서 나온다고는 믿어지기 힘들 정도의 흉흉한 기세를 뿜으며 자기가 들어온 문을 쾅 소리와 함께 닫고는 잠그었다.


 


"어차피 이미 늦었어. 니가 이러는건 알 사람들은 다 아니까 이제와서  숨길  필요는 없잖아. "


최고 사령관 해임이라는 빅-뉴스를 홧김에 입에서 낸 주제에 이제와서 뭘 남 시선을 걱정하는건지.. 하고  사령관은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멸망 이후 만인지상, 즉 인류의 왕이나 다름없는  그에게  이렇게 불손한  태도를  보이는 건  엄연히  사형에  준하는 행위였기에  보통의 야생-바이오로이드들에게는  거품을 물고 쓰러질  사태였지만, 정작 당사자인 사령관은 그런 그녀의 태도에 익숙한 듯 보였다.





"너와는 다르게 이 몸은 제대로 정신이 박힌 바이오로이드라서 말이야. 아무리 위신이 바닥에 떨어졌다지만 사령관이 일개 소장에게 면박을 당하는 모습이 보여져서 좋을 건 없잖아?"




"..."



"너도 쳐다보지 말고 당장 화면 꺼!"


자기 책상을 향해 공공연히 설치된 카메라를 향해 사령관이 슬쩍 고개를  돌려 시선을 주자, 그제서야 또 다시 허가 없이  설치된 카메라를 발견한 메이의 호통소리가  화면 너머에서 지켜보고 있을 누군가를 향해 스피커를 찢을 기세로 전달되었다.


이제  사령실에서 오가는 대화가 밖으로 유출  될 일은 없다.  아마도.



  

"지금까지 1년간 있었던  39차례의 작전안 건의와 56차례의 수정 제안,  그리고 최후 승인 9회."


 


"그리고 지금까지 있었던 작전  횟수,  총  2회. 이 숫자가 의미하는 바가 무슨 뜻인지 알아? 사령관."




"..."




"임무 방기야. 아주 심각한 수준이지."


메이는 팔짱을  낀 채, 손가락을 나 짜증났다는 기색이 물씬 느껴지는 투로 두드렸다

호전적인 성격인 그녀가 화가 날때면 이런 버릇을 보이는건  한두번 있는 일이 아니었기에 익숙한 광경이었고, 그때마다 사령실은 두 사람만의 공간이 되곤 했다.


사령관, 김라붕이가 오르카 호의 우두머리에 옹립된 지 어언 1년, 그동안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정작 가장 중요한 군사적 출격은 고작 2회에 불가했다. 그리고 그중 한번은 철수 작전. 결국 이 멸망의 인도자, 둠 브링어의 지휘관의 피를 진정시키기에는 포탄과 화약의 양이 부족했다는 소리다.





"아무리 그래도 해임은 너무 급발진 아니야?"





"그럼  나 말고 다른 사람.. 아니, 바이오로이드를  작전장교로  세우던가!  

밤에 잠도 못짜고 짜낸  작전안이 최종심사에서 계속 거부당하는 입장을 넘겨줄 수 있으면 당장 내 옥좌도 얹어주고 싶은 기분이거든?"




"메이.. 니 옥좌 터졌잖아. 첫 작전에서 습격당해서."





" 말이 그렇다는 거야! 말이!"



분통이 터진 듯  이젠 애꿎은 바닥까지 걷어차며 길길이 날뛰었지만, 작달막한 소녀가 그런 모습을 보여  봐야 무섭기는 커녕 귀여워 보일 뿐이다. 


...이런 생각을 들켰다가는 당장 맨몸으로라도 사령관 주둥이에 폭탄을 투하겠다고 격납고로 뛰어갈테니 결코 입 밖으로 내지는 못하겠지만.





"아무튼, 이번 작전 취소는 절대 그냥 넘어가진 못하겠어.  작전장교이자  오르카  유일의  지휘관 바이오로이드로서, 김라붕 사령관에게 정식으로 요청할게. "


"첫째. 나, 둠 브링어 소속 메이 소장 이외의 바이오로이드 몇몇을  당분간 임시로 작전 회의에 참석 시키도록 할 것."


"둘째. 해당되는 바이오로이드에게  나와  동등한  의결권을  가지도록  할 것."


"셋째. 작전 안이 과반수 이상의 동의를  얻을 경우 사령관이 이를 거부하기 위해서는 합당한 이유를 댈 것."





"이상이야."





"그게 의미가 있어? 어차피 다른 사람들은 내 의견에 반대할 생각도 안할텐데."




"의미는 없지만, 차이는 있어. 아주 큰 차이가."



"회의에서  정식으로 취소된 임무와, 사령관 단독의 변심으로 이리저리  휘둘리는 군대. 적어도 어느쪽이 더  나은지는 알겠지?

애초부터 지금 이 상황부터가 문제야. 일개 소장이 총 사령관에게 정식 루트도 밟지 않은 항의를 하는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뭐, 정식 루트도 밟지 않고 임무 취소시킨 사령관하고 비슷한 수준이네."




"하아.."



사령관은 언제나 이런  태도였다. 기껏 고생해서 가져간 작전안을 보면 시덥잖은 꼬투리를 잡아 반려시키거나, 이를 악물고 그 누구도-설령 그 암사자나 무적의 용조차도-트집잡지 못할 정도로 화끈한 작전을 가져가면, 한참을 붙잡고 살펴본  끝에 승인 명령을 내리고.. 작전 시행 하루 전에 상의도 없이 취소시킨다. 


벌써 여덟번이나 이런 일이 있으니 혼자 작전실에서 성미에도 맞지 않는 머리를 싸매는 고생을 해가며 작전을 짜고 통과시킨 메이가 브라우니의 총기를 뺏어 들고 사령실에 들어오지 않는 것도 그 성격에 많이 참은 것일지도 모른다.





"아무리 바이오로이드가 인간님들 말에 껌뻑 죽는다지만, 적어도 생각이 없는건 아니야. 

이 상황이 별로 좋지 못하다는 점은 저기 내무반에서 할 일 없이 녹슬어가는 총기 정비중인 브라우니도 알고 있을걸?"




"물론 그렇다고 브라우니에게 의결권을 주겠다는건 아니야. 그랬다간 매일 식판에 스팸 통조림 융단 폭격이 떨어지겠지. 이성적인 판단력과 상황을 객관적으로 볼 줄 알기만 하면 돼. 전략적인 시각은 있으면 좋고 없으면 기르면 되는 문제야. "





"지금 이 순간에도 철충이 오르카를 찾기만 하면 침몰시키려고 벼르고 있을텐데  그저 패망의 시간만을 앉아서 기다리는건 이 멸망의 메이가 용납 못해. 적을 모조리 잿더미로 만든다. 이건 내가 제조되어 나온 순간부터 피할 수 없는 사령관의 숙명이야. "




"메이.."



멸망. 그 단어를 평소보다도 엄숙하게, 그리고 단호하게 메이가 고할때마다, 사령관은 대화를 이어나가기 힘들었다.


적을 죽이거나,  혹은 적과 함께  죽거나.  죽이지 않는다는 선택지는 처음부터 지워버린다.

모든 바이오로이드 중에서도 가장 파괴라는 목적에 충실한 그녀의 사고방식은  항상 사령관과 충돌을  일으키기 마련이었다.





'...이런 대화도 그날 이후부턴 거의 하루도 빠짐없이 나눴던 것 같네...'



아직도 처음 사령실의 문이 부서질 듯 열렸던, 처음 작전을 단독으로 취소시킨 날의 기억이 생생하다. 

전날까지만 해도 옥좌의 복수를 하겠다며 의욕을 불사르던 메이가 잔뜩 약이 올라 양갈래 머리를 휘날리며 오르카 호의 출입구부터 사령실까지 한달음에 달려왔었더랬지.


그때까지만 해도 꼬박꼬박 총 사령관이라며 깍듯하게 예의를 지키던 메이가 반쯤 말을 놓아버리고  사령관과 투닥거리기 시작하던 때도 그 날 부터였다.




"메이. 너한테는 미안하게 생각해.  고생은 고생대로 시켜놓고, 정작 결정은  맘대로 하는 사령관은 실격이지."




"..."




"그래도 나는 사람이 죽는 것 보다는 조용히 스러져 가는 쪽을 택하겠어. 너도 저기 기록된  숫자가 뭘  의미하는진 알잖아."


사령관이 흘깃 시선을 준 끝에는 작은 문자들의 나열과 몇개의 숫자가 기록되어 있었다.

메이의 시력으로도  정확히는 읽을 수  없었지만 끝 문단에 크게  기록된  숫자 하나는 눈에 들어왔다. '31'





"저 숫자를 더 늘리고 싶지 않아. 인류재건? 엿 먹으라 그러라고 해. 난 누가 내 눈앞에서 죽는 걸  볼때마다 아주 기분이  더러워져."

"내 평생 누가 사람 죽는걸  뉴스에서 숫자로만 보면서 살았는데, 지금은 내 명령 때문에? 차라리 죽는게  낫지."



 


"네가 죽는다는 말 함부로 하지 마!"


책상을 쾅 소리나게 내려친  메이는 잔뜩 화가 나서 소리쳤다.





"나는 아무래도 좋아. 어차피 나는 병기일 뿐이니까.. 하지만, 너를 처음 발견하고 옹립한 대원들에게 너는 희망이자 빛이야. 이 쓰레기같은 세상에서 유일한 구원이라고."





"사령관. 너는 이미 네 맘대로 군모를 벗을 수 있는 옛날 인간님이 아니야. 그런 달콤한 선택지는 그날 수색대에게 당신이 잠들어  있던 캡슐이 발견된  순간에  끝났다고."




"그게 아니면 나를 제조한 순간일지도 모르고."





"지금까지는 몰래 신관을 해체한 미사일을 사령실을 겨누고 버튼을 내려치는걸로 짜증을 풀어왔지만..

더 이상은 안돼. 상황이 좀 변했으니까."




'내가 방금 잘못 들었나? 버튼? 눌?러?'


그 망할 옥좌 버튼 파편조각은 나중에 꼭 뺏어두기로 하고서, 우선 사령관은 메이의  말에  집중하기로 했다. 

사령관이 자세를 고쳐 앉자 반쯤 박살난 테이블을 대충 쓸어내려 치워버린  메이는 품 속에서  사진 몇장과  서류뭉치를  꺼냈다.

상공에서 지상을 찍은 사진들과 몇번이나 수정된 흔적이 보이는 새로운 작전안이었다.


밤을 세웠다는 것이 허언은 아니었던  모양인지 군데 군데 엎어져 잠들어  생긴 것으로  보이는 자국들이 보였으나 괜히 지적해 봐야 얼굴이 빨개진 메이에게 한대 맞기밖에 더 하겠냐는 생각이  들어  잠자코 못본 척 하기로 했다.







"어제 다이카 대령이 내게 전달한 상황에 따르면, 우리가 정박중인 장소에서 그리 멀지 않은 구역에서 철충이 발견되었어."


메이가 손을 짚은 장소는 기동형 대원이 날아서 가면 고작 한시간이면  다다를 장소였다.


인력이 부족해서 사령관이 생존물자 탐색에 힘쓰고 있었기에 이러한 철충 탐색은 그나마 공중으로 다닐  수 있는 둠 브링어가 전담하여 우선적으로 메이에게 전달되고 있었기에 사령관은 처음 듣는 정보였다.




"왜 이걸 이제서야 나한테 보고한거야?!"



"어차피 오르카는 반쯤 고물이 되어서 도망도 못치는데, 공격도 안할거면서 알아서 뭐해?"



"그래도.. 철수 작전 정도는 세울 수 있잖아.."



" 인원 다수가 탐색에 파견된 빈 군대로 어디로? 익스프레스가 대원들을 특급배송이라도 해 준대? "



"난 불가능한 작전은 딱 질색이야. 그게 제공권을 빼앗긴 상태로 적군 화망을 뚫고 핵폭탄을 투하하는 정도로 화끈하면 모를까.


하여튼 뇌수까지 상호파괴에 절여진 여자답게 결론이 항상 불꽃놀이다.

한마디 비꼬지 않고는 참을 수 없다는 표정을 한참이나 지으며 메이를 노려보던 사령관은  결국 한숨을 내쉬었다.


사령관은 메이 소장에게 약했다. 언제나.


오르카 호의  서열이 어떻게  되는 줄 아는가. 멸망의 메이가 1위, ...가  2위이며, 사령관은 3위에 불과하다.

처음 오르카에 들어온 바이오로이드들은 그 어이없는 광경에 바이오-리얼리티 쇼크를 겪으며 명령?애머슨 어디?를  소리치곤 했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오르카 호를 지휘하는 것은 최후의 인류다운 철인이 아니라 그저 라붕이인 것을




"그리고 이제부터 말할 것은.. "


충분히 화끈하고 실현 가능성도 충분한 아주 딱 내 취향인 작전이란 말씀이지."


 

그래도 한가지 다행인 점은


사령관을 꽉 잡고 있는 바이오로이드가 바로 그녀, 멸망의 메이라는 것이었다.



.


.


.





"..."


메이 소장이 나간  이후, 다시금 정적이 찾아온 사령실에 홀로 남은 사령관은 무언가 생각에 잠겨 있었다.

최후의  인간, 그 현실에서 비롯된 무게감에  짓눌린 것인가. 혹은 메이 소장과의 대화에서 오간  작전 내용을 생각하는 것인가.



그도 아니면 오늘 밤 잠자리에 부를 바이오로이드를 고르느라 고심 중인  것인.. "페더야"





"..."




"네 사령관님."




"나한텐 니 대답 안들리니까 대답하지 말고.

..너  자꾸  촬영물에 내 속마음 맘대로 날조해서 나레이션 넣는거 하지 말라고 했잖아."




"메이한테 그거 들키면 너 진짜 코어 반납할래? 아니면 미사일에 묶여서 철충한테 날아갈래? 하게 된다고.."



"..."





"어차피 죽을 판인데 그게 문젠가요" '앞으론 이런 일 없도록 하겠습니다.'





"어차피 내 말 안들을거 아니까 대답 안해도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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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걍 팬소설 보는 재미로 지내는데


언제고 써야지 하고 몇년째 미루다가 겜 닫기전엔 써야지 싶어서 자기만족용으로 씀


제목은 그냥 어그로용 패러디고 사실  메이한테 사령관 직위해체  권한따위는 당연히 없음


메이 성격이 ㅈ같아 보이는건 사령관이 ㅈ같은 짓만 해서 그럼


쓰고보니 더럽게 짧네 길게 쓰는 사람들 진짜 대단한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