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 섹스. 지휘관이 마렵군."

'또 시작인가.'


비스트헌터는 생각했다. 대체 저 섹스무새는 언제쯤이면 철이 들런지.


그러나 그녀의 상관이자 오르카의 부대로 재편성된 AA캐노니어의 대장. 로열 아스널은 섹스를 생각하느라 부하들을 아껴주면 아껴주었지 홀대하지는 않았다. 날을 잡아 한 명도 빠짐없이 병 하나하나의 이야기를 듣는가 하면, 어느 뇌에 가야 할 지성과 부관의 것까지 가슴으로 가버려 자신의 일을 남에게 떠넘기는 이와는 달리 할 업무를 적재적소에 분배했다. 자신의 업무에 집중하고 남는 시간에 사령관 기습 작전을 짤 여유까지 챙겼으니 말이다.

그렇다고 사령관에게 성적인 부분으로 극한의 쾌락 혹은 절대적인 공포를 안겨주었냐 묻는다면 그것 또한 아니었다. 이는 그저 사령관의 방에서 자주 일어나는 해프닝일 뿐이다. 게다가 사령관에게 전략적인 조언은 해주지 못할지라도 전술적인 부분에 관해서는, 특히 화력에 관한 부분에서만큼은 다른 지휘관급 바이오로이드 분들보다 더 강한 모습을 보였다. 이는 단지 화포에 국한하지 않고 총기류와 비대칭 전력도 포함한다. 비대칭 전력의 최고봉인 전술핵만큼은 메이 소장의 관할이자 특권이나, 어느 정도 조언을 해 줄 수 있을 만큼 탁월한 존재였다. 그야말로 그녀는 한 부대에 있어 이상적인 대장의 모습이었다.


그런 그녀가 일어서서 발걸음을 거닌다면, 필히 그 걸음엔 이유가 있으리라. 비스트헌터는 그리 생각했다.


"대장님, 어디 가십니까?"

"아자젤에게 간다."

"어떤 연유로...?"

"오망꼬 댄스보다 더 천박한 춤이 있지 않은가 해서. 코헤이 교단의 총본산은 일본에 있었으니 물어보려 한다. 재밌어 보이는군."


비스트헌터는 등에 매달린 예거 캐논을 빼들어 존경해 마지않았던 대장의 정수리를 찍어눌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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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아프군."

"...많이 아파? 비스트헌터한테 한 마디 할까?"

"아니다. 내가 잘못한 게 맞으니 그만두지. "


아스널이 머리에 붕대를 칭칭 감고 나타났다. 오늘이 할로윈이었던가에 의심 한 번, 또 무슨 플레이를 즐기려는가에 의심 두 번. 하지만 이내 풍기는 철 냄새에 자초지종을 물었다.


"대체 무슨 짓을 하면 그 온화한 비스트헌터가 하극상을 일으켜?"

"하극상이라니. 부풀려 말하지 말게. 단순한 투탁거림이지 않나."


보통은 골통을 부순 것을 투탁거린다 말하지 않는다.


"하지만 걱정해주는 것은 나쁘지 않군. 후후. 어떤가. 해가 지면 그대의 침소에 떡치러 가도 괜찮겠나?"


떡친다. 대놓고 말하는 것을 보아 다행히 잡아먹힐 각오는 하지 않아도 되었다. 아스널이 진심으로 나올 경우, 깊디깊은 심연에서 올라온 대왕오징어와도 같았다. 먹이감이 눈치채지 못하게 스물스물 올라와 확 낚아채 먹물로 질척하게 만든 후 골수까지 쪽 빨아먹으니 그 처세술은 가히 알파를 보는 것만 같다.


"나야 언제든 환영이지만 네가 찾아올수록 다른 애들이 불만이 많아지니까 평소엔 자중해줘."

"나도 첨언은 언제나 환영이다. 특히나 사령관이 해준다면 더욱 좋지."


말을 마친 아스널이 윙크를 날렸다. 평소에는 이렇게나 사랑스러운 말을 하면서 틈만 나면 이상한 짓을, 특히 야한 사건을 많이 일으키는 아스널이기에 정신이 살짝 홀릴 뻔한 것을 감추기 위해 패드를 들어올렸다.


"...사령관님! 긴급 구조 신호가 들어왔어요!"


콘스탄챠의 다급한 목소리가 패드에서 들려왔다.


"자세한 건 나중에. 우선 지휘관급 애들부터 회의실로 불러 줘. 나도 그쪽으로 갈게."

"알겠어요."


아침부터 갑작스런 일이었다. 안 그래도 아스널이 갑작스레 방으로 들이닥쳐 급히 옷을 입었는데, 이제는 옷을 제대로 차려입고 나가야 할 것 같다.

그러다 문득, 아스널이 다쳤다는 사실을 기억해냈다.


"아스널. 아프면 회의가 끝날 때까지 이곳에 있어도 돼."

"음? 괜찮네. 이정도는 다친 축에도 못 낀다. 자, 보게."


머리에 둘둘 만 붕대를 한 손으로 홱 쳐내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으나 그곳엔 상처만 살짝 남은 이마가 있었다. 붕대의 피가 마르지도 않았는데 상처가 나았다는 건 아무리 봐도 익숙해지지 않았다.


"그래도 아프다고 했잖아? 평소에 무리하다가 쓰러지면, 손해는 네가 보는 거야."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나. 누가 누구에게 그런 말을 하는 거지?"

"...어? 왜? 내가 평소에 그래?"

"...그대는 그대의 행실을 돌이켜 볼 필요가 있다."


한숨을 쉬듯 말하는 아스널을 보아도 아무런 생각이 들지 않는다. 내 일의 양이 다른 아이들보다 많은 건 사실이지만 그렇다 해서 무리하진 않는다. 여기서 24시간 밤을 새운다 한들 멀쩡할 테니까.


"괜찮겠지. 내가 맨날 일을 하는 것도 아니고. 밥 먹을땐 밥을 먹고, 잘 때는 잔다고."

"어제 잠은 언제 잤는가?"

"안 잤는데?"

"콘스탄챠가 고생이 많군..."


자지 않은 건 난데 왜 콘스탄챠를 말하는건지 모르겠다. 그러나 아스널은 이곳에 없는 누군가를 아련하게 쳐다보면서 눈망울을 빛냈다. 울 듯한 기세였다. 그것에는 나도 반응하지 않을 수 없었다.


"흥, 아스널은 거기서 마음대로 해. 사령관은 갈 거야."

"음? 삐진 그대라니, 정말 오랜만이군."

"뭐. 불만 있어?"

"아니. 전혀 없다 말할 수 있겠군. 게다가 이 모습을 독점할 수 있다니. 오늘은 호재가 있겠어."


아스널이 웃었다. 언제나의 모습이지만, 자연스러운 아스널의 웃음은 언제 보아도 남자의 마음을 설레게 하는 무언가가 있었다.

그렇지, 난 지금 삐져 있었다. 나는 등을 돌리고 삐진 척을 계속했다. 억지로라도 그런 척을 하지 않으면 홀려버리고 말 거다.


"하지만 모처럼의 호의이니, 이곳에서 조금 쉬다 가겠다. 만일 회의가 길어지거나 내가 필요해지면 불러주게."


나는 뒤를 살짝 돌아 고개를 끄덕이고는 밖으로 나왔다. 음흉하게 웃는 것을 보아 내가 무슨 심정인지 전부 들통난 것 같다.


정말로, 너무 요망했다.


"...비스트헌터도 고생이 많네."


저런 음란하고 호쾌한 대장 밑에서 일한다니...

오히려 좋아.



















영화보듯이 느긋하게 즐겨줬으면 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