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라오, 그리고 챈에서 한 명 한 명 이탈하는 챈럼들이 가시적으로 보이는 것도 그렇고, 작금의 상황에 비춰볼 때, 어떻게든 악착같이 남아있으려는 나 포함한 챈럼들은 왠지 우라사와 나오키의 만화 《20세기 소년》의 주요 등장인물 중 하나인 '요시츠네' 같은 처지라는 느낌이 듦.



이 만화 속에서 주인공 무리는, 초등학교 4학년 때까지만 하더라도 마을 공터에 풀을 엮어 만든 비밀기지를 거점으로 해서 이런저런 장난감들이나 스낵 등을 짱박아놓고선 같이 우르르 몰려다니는 친구들과 함께 악의 개구리제국과 전쟁을 벌이는 정의의 닌자부대 놀이를 한다든지 해서 재미있게 놀았던 시기가 있었음.


그렇지만 5학년이 되면서부터 슬슬, 누구는 중학교 입시를 준비한다면서 슬슬 놀이판에서 빠지고, 누구는 우르르 몰려다니며 마을에서 요란하게 놀던 방식 대신 뭔가 다른 놀잇거리를 찾아 놀이판에서 빠지고, 누구는 이제 집안일을 돕는다니 어쩌니 하면서 놀이에 시간을 낼 여유가 없어서 놀이판에서 빠지고 하면서 이런저런 현실적인 이유와 함께 인원들이 '성장'하면서 참여인원이 슬슬 줄어감.



이 시절 '켄지'와의 놀이 추억을 공유하는 친구이면서도, 세계를 장악한 '친구' 일파에게 저항하는 레지스탕스의 리더이기도 한 노년의 요시츠네가 이 무렵 자기는 뭘 했었는지 도통 기억이 잘 나지 않아, 친구 일파가 세뇌 장치로도 사용하던 VR머신에 접속해서 재현된 그 시절의 기억을 들여다보고서는 비로소 기억을 되살려 깨닫게 되고, VR 속 어린 요시츠네를 있는 힘껏 껴안아 소리없이 오열하면서도 정말 대견하고 기특하고 장하다고, 고생했다고, 고맙다고 격려함.


그 시절 요시츠네가 무엇을 했는고 하니, 5, 6학년 시기쯤 되어 이제 대부분이 떠나가고 비어버린 그 비밀기지를, 그래도 언젠간 모두 다시 모여 놀 거라며 자기가 임시 대장을 맡아 계속 그 비밀기지를 유지보수하고 관리하고 있었던 거였음. 풀을 엮어 만든 비밀기지의 천장과 벽면에 어디 바람 뚫리고 비 새는 구멍이 없는지, 침입자를 막을 수 있게끔 풀을 엮어서 만들어 둔 함정 장치는 여전한지, 가져다 둔 놀잇감 등은 괜찮은지......



거의 5년여에 걸친 세월을 버텨 온 라오와도 유독 흡사해보여서 저 '요시츠네'라는 캐릭터한테 이입되는 느낌이었음.


더욱이, 올해로 5년차를 맞이한 라오와 이런저런 직격탄으로 인해 라오에서 이탈해나가는 챈럼들,

그리고 5학년 시절부터 서로의 갈 길을 찾아 조금씩 갈라져나가기 시작한 '20세기 소년'들.


그럼에도, 끝끝내 침몰할 것이든, 정말 천문학적인 확률을 뚫고 기적처럼 소생할 것을 희망하든

끝까지 남아서 바이오로이드들을 애정하는 챈럼들,


그럼에도 끝까지 남아, 다 같이 어울려놀던 옛 놀이터 비밀기지를 계속 책임지고 묵묵히 관리하는 '요시츠네'.



하... 이게 뭐라고 이렇게 겹쳐보이냐.



어쩌면,

정말 어쩌면,


'아직 어른이 되지 못한' 우리들이 하나 둘씩 '성장'해서 비로소 어른이 되어가는 게 아닌가 하는 서글픈 생각도 들긴 하는데,

그래도 난 포츈 찌찌 만지고 있을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