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째됫든 아직 문 닫은건 아니지 않겠습니까? 한 편 올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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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리스의 기분은 그야말로 구름 위를 걷고 있었다.

자신에 앞서 주인님에게 안긴 이들이 있긴 했지만, 리리스가 보기에 그네들은 무례하게 혹은 위험하게도 주인님에게 '달려들어' 안긴 것.

어떤 이유에서인지 절제하고 계신 주인님의 욕구를 천박하게 자극해 폭발하게 만들었거나, 마음약한(?) 주인님께서 '감히' 요구한 이들의 요망에 관대하게 응했을 뿐이라고 여겼기에 -


'주인님께서 먼저 원하시어 안긴 최초의 바이오로이드는 나'


라는 타이틀이 블랙 리리스의 태생적인 독점욕이며 자부심 따위를 충만하게 채웠고, 그다지 바람직하지 않았던 첫만남이나 전임 사령관의 측근..이라는 포지션이였던데 기인한 불안감이 한방에 해소되면서 뿜뿜 뿜어져나오는 긍정의 에너지가 주변까지 밝게 만들어 주었다.


" 이거야 원.. 투덜거리지도 못하겠군. "


탐색이 아닌 자체생산으로 보급하기 시작한 카스테라 빵을 포크로 잘라내던 아스널이 악의없는 투정을 건냈다.

마찬가지로 카스테라 한조각을 잘라 입에 넣은 리리스의 눈이 즐겁게 휘었다.

극한까지 뽑아낸 퀄리티의 식감. 적절한 달달함. 과거에는 흔했지만, 지금은 없는 바닐라(향신료!)를 대신하여 가미된 향긋한 무언가.

입안의 즐거움이 최근에 쌓은 소중한 추억거리를 떠오르게 했다.


아직 부족한 자원상황에 채택한 메뉴에 내심 걱정하던 주인님.

아우로라의 솜씨로 극한까지 끌어올린 퀄리티에 감동하던 주인님.

긴장하고 있던 아우로라의 두 손을 잡고 어린아이 같은 감탄사를 연발하던 주인님.

주인님. 주인님. 주인님. 주인님...


" ... 단단히 홀렸네. 하긴.. 블랙 리리스니까. "


악의가 담긴 것은 아니지만, 그리 듣기 좋다고는 하기 힘든 레오나의 말투에도 그저 잠시 눈을 맞추었다가 빙긋- 웃어 넘길 정도로.

리리스는 이어받은 기억으로부터 더듬어봐도 최근처럼 마음이 넉넉했던 적이 없었다.


" 근데 그 ... 후~ 지금 이런말이 좀 아닐... 수도 있지만. 꼭... 그.. 그걸 해야되는건가..? "


리리스와는 반대로. 그 어느때보다도 자신감이며 자존감이 바닥을 치고 있는 이도 있었다.

멸망의 메이. 

상호확증파괴를 막기위해 핵무장의 최종 안전장치로서 의도적으로 설계된 그 드높은 콧대는 아군 오폭이라는 최악의 실책에 한껏 쭈그러들어있었다.


보통이라면 감히 주인님께 안기는게 - 라며 적대감을 보였을게 블랙 리리스라는 기종이였겠지만, 지금의 리리스는 평범한 블랙 리리스가 아니였다.


" 글쎄요.. 저에게는 특효약이였지만. 다른분들에겐 적절하지 않은 조치라면, 굳이 강요하시지는 않으실 것 같네요. 다들 보셨겠지만 .. 저.. 저를 원하실 때만 봐도 주인님께서 3번이나 고민하시는걸... ..혹시 못느끼셨나요? "


진심으로 이해가 안된다는 기색의 리리스였지만, 이것은 좀 억지스러운 부분이 있었다.


" 조심스러우신거야 느꼈지만, 어디 옆에서 그 속을 들여다보고있던 경호대장 같을리가 있겠습니까.  ...사실 그래서 마련한 자리이지 않습니까. "


그래서 마련한 자리. 

마리의 직접적인 언급에 잠시 외면하던 불쾌한 주제의 부상에 리리스의 포크질이 조금 거칠어졌다.

비정기적이나 나름 꾸준히 행해지고 있는 부대장급들의 모임.

보통은 각 부대간의 협조나 마찰을 조율하고, 특별한 사안에 대해서 사전에 토론하는 회동의 이번 주제는-

여자를 들이기 시작한 사령관에 대한 것.


리리스와의 동침 이후, 사령관은 여자를 안기 시작했다. 

일과시간의 업무나 긴급대응, 고충처리며 아이들과 어울려주는 등은 변함이 없었기에 성욕에 잠식됬다고 보기는 어려웠지만, 지난 2주간 거의 매일 같이. 

사령관의 마음가는대로.


" 하핫.. 나야 불러주시기만을 기다리고 있지만, 모두가 나 같지는 않겠지. 이 부분은 경호대장이 너그럽게 이해해줄 수 없겠나? 뭐어- 바이오로이드 주제에 수절이라도 하냐고 하면 할 말들은 없겠지만..? "


그리고 아직 불분명한 기준과 사령관의 변화에 조금... 아직은 조금 시간이 있었으면하는 사람이 있는 것도 사실이였다.

그 것이 첫사랑이 남긴 열병의 흔적때문이든, 그 다음이 남긴 악몽에 기인해서든.


" .....나도 시간이 좀 더 있었으면 좋겠다는 쪽이지만, 사령관 각하께서 억지로 우리를 취하려고 하지 않으실 것 이라는데 동의한다. 경호대장 이후 다른 상대들을 대하실 때에도 강압적인 경우는 없었다고 본다만. "


칸의 경우는 전자의 흔적이 남아있는 쪽 이였다.

그 애정의 흔적을 차마 다 흘려보내지 못한 자신 스스로에게도. 그리고 그런 것이 남은채로 안기는 것은 사령관에게도 올바른 태도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였다.


" 그래. 그건 사실이지. 내가 보기에도.. 뭐랄까. 속마음과는 별개로, 정중하게 문을 두드리는 느낌이랄까? 정중하지만 직설적으로 말이지. ' 난 너를 원한다. ' 라는 것 처럼. 거기에 거부권이 있는지는.. 아직 거절해본 사람이 없어서 잘 모르겠지만. "


레오나 역시. 아직은 시간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쪽이였다.

계급, 상황, 성향 .. 이유야 여러가지 있겠지만 늘 그랬듯이 '장군'들 위주로 흘러가는 대화는 여느 때와 같았지만,

그 꼴을 보며 대마도에서 복귀 한 블러디 팬서는 눈을 감고 속으로 가만히 중얼거렸다.


'지랄들 하고 있네'


지난 제주도 작전에서 그 추태를 보였던 지휘관들이 공식적으로 근신 및 지휘권 회수라는 처분을 받고, 비공식적으로는 직접 각 부대와 의무실을 방문해 사죄를 건냈던 것은 사실이지만..

어쨋든 저들의 당혹스러운 헛짓거리로 날아간 목숨이 몇 인가.

한동안 조용히 자숙하더니 슬슬 쓸데없는 주제로 토론이나 하고 있는 꼴이 영 탐탁치 않았다. 지휘관들의 공백으로 일선에선 개같이 구르고 있는데...

저치들은 마치 - 


" 꼭 사령관님께서 본인들과 동침을 원하실거라고 확정해놓고 논의를 해봐야.. 애초에 출발선이 잘못된건 아닙니까? "


역시 베이스는 동종기였다는게 어디가지 않았는지. 시티가드를 이끌고 있는 경정 사디어스가 블러디 팬서가 꾹 삼키고 있던 말을 시원하게 내뱉었다.


" 사실 경호대장님 외에는 사령관님이 먼저 지목하셨다고 보기에도 어려우니, 사령관님의 취향이 파악된 것도 아니구요. "


이미 안겼던 라비아타, 콘스탄챠, 금란(03), 리리스에 더하여

리리스와의 동침 이후 유난히 더 틱틱거리더니, 어느날 양해를 구한 콘스탄챠에 슬그머니 따라들어왔던 바닐라가 하나.

치료를 마치고 근무에 참여해 잠깐 간을 보는가 싶더니, 금새 노골적으로 유혹하던 포이와 그날 함께 근무에 들어왔다가 어-어 하는 사이 함께하게된 페로까지 셋.

식사를 가져올때마다 스몰토크가 늘어가다가 어느 순간 형성된 '그런 분위기'에 자연스럽게 올라탄 소완까지 넷.

모두 사령관이 먼저 덮쳤다고 보기엔 애매한 부분이 있었다.


그래서 리리스는 남몰래 행복감에 '젖었다'.


" 아스널 준장님이 간접적으로 '청원'을 전달드린 상황인데도 불려가지 않으시고 있는 걸 보면.. ...솔직히 지금 그런 토론을 하고있을 때가 아니실텐데 말이지요. 극단적인 의견이긴 하지만. 부관급에게 지휘모듈을 증설하여 지휘관을 아예 교체하거나, 동종기를 새롭게 생산하는 방안까지 제시된 건 알고들 계십니까..? "


부관과는 조~금 다른 취급으로, 속칭 '비서 3인방' 이라 불리고 있는 대원 중 시티가드의 소속인 리앤의 푸념을 들어주다가 알게된 민감한 정보.

평소라면 이렇게 떠벌리고 다닐 사디어스가 아니였지만, 현장 지휘관 및 화력(포병) 지원의 이유로 이키섬쪽으로 출장을 나갔던 파트너- 소니아가 꽤 심한 부상을 입고 돌아온 탓에 안그래도 좋지 않은 마음에 '자신의 역할'도 수행하고 있지 못한 치들이 저런 태평한 걱정이나 하고 있으니.. FM인 사디어스의 신경을 건드리기에 충분했다.


" .......아 - 그래. 사령관이 품을지 말지도 모르는 판에 헛물 들이키지말고, 내 모가지 간수할 궁리부터 하라는 말이네..? "


날카롭고 직설적인 레오나의 대답에 가라앉기 시작했던 분위기는 차갑게 얼어붙어 버렸다.

아직 사령관실 밖으로 나가면 안됬던 내용을 떠벌린 것에 아차 싶은 사디어스였지만, 없는 말을 지어낸 것도 아니고 계급이 높다지만 따지고보면 직속 지휘계통의 상급자도 아니니 바른말 하는데 꿀릴 것은 없었다.

하물며 상대는 '처벌'을 받고 있는 자들인데.


" 뭐.. 그저 걱정의 순서가 잘못된 것 같다는 정도로 들어주시지요. 그래도 함께한 세월이 있는데 '교체' 되시면 마음이 좋지는 않을 것 같으니까요. ..그럼 바빠서 먼저 일어나보겠습니다. 이키섬의 요새화 작업 책임자로 홍련작전관과 교대해야 해서요. "


지휘관들이 대체되어버리면 마음이 좋지않을 거라는 건 진심이였다. 어쨋든 좋았던 날도, 힘들던 날도 함께한 전우이지 않은가. 

눈부신 능력을 뽑내던 전우들이 가진 고민이야 알만하다지만... 이렇게 영락해버린 듯한 모습은 탐탁치 않았다.


" 저도 먼저 실례하겠습니다. 마리 대장님. 커피 잘마셨습니다. "


한 사람이 자리를 뜨니, 내심 불편하던 이들도 하나씩 일어나기 시작했다.

정원에서 보았던 마음과 달리 찾아주지 않는 사령관에 슬슬 고민이되는 사람 앞에서 저런 건방진 소리들을 하고 있는게 불편했던 레아가 사디어스의 뒤를 이었고.


" 흐우우... 죄송합니다아. 저도 너무 피곤해서 안되겠어요.... "


둠브링어가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는 탓에 출격횟수가 한계에 달하고 있는 스카이나이츠의 슬레이프니르는 순수하게 피로를 참지 못해 자리를 떳다.

평소 모임을 주도하던 라비아타나 용이 모두 출진 중이고, 둘 모두가 부재했을 때는 부드럽게 분위기를 이끌어가던 아르망도 불참한 탓일까.

끝인사도 없이 파해버린 모임은 어색함만을 남긴채 끝나버렸다.

- 그저 행복한 리리스만 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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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싱글생글 ... 행복한 리리스. 오늘따라 더더욱 행복해보이는 리리스. 

사령관실에서 패널 3개를 띄워놓고 열심히 업무를 처리하고 있는 사령관을 보며 헤실대는 착한? 리리스.

언제나와 같이 참 예쁜 웃음이지만 오늘은 왠지 더더더 각별났다. 

머리위에 '물어봐주세요~' 라는 글자가 떠다니는 것 같아 조금- 오싹할 정도로.


" 리리스. 무슨 좋은 일이 있나 ? "


남은 업무가 대강 정리할만 해진 사령관이 결국 백기를 들었다. 


" ㄴ ㅔ에- 니요. 주인님과 함께하는 시간이라면 리리스는 언제나 행복하답니다? "


나오는 말과는 다르게 몸짓이 전혀는 제스쳐는 '정답!'을 외치고 있었다.

그 귀여운 모순에 피식- 웃음이 새어나올 수 밖에 없던 사령관이 손짓으로 리리스를 불러 무릎위에 앉혔다.


" 물어봐줄 때 말해봐. 그렇게나 '물어봐주세요~' 하고 쳐다봐놓고서는...예쁘다고 봐주는 건 한번만이니까, 어서 말해보도록. "


장난기 어린 목소리에 약간의 부끄러움과 행복감에 잠시 어물거리던 리리스가 이내 조그마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 그냥.. 행복해서요.. 주인님께서... 안아주시구... 좋아해주시구.... "


콕콕 - 오답! 사령관이 리리스의 볼을 콕콕 찔렀다.

만남이 길지는 않았지만 리리스는 꽤나 속을 읽기 쉬운 타입이였고, 관계가 깊어지면서 몇 가지 습관을 눈치채게된 사령관이였다.


" 그게..에... 주인님께서 다른 누구보다 자주 찾아주시고.. 머..먼저 원해주신건 아직 저밖에 없어서.... 저말고도 다른 고급 바이오로이드도 많은데도요... "


" 뭐..? "


" 최근 그-- 인류재건활동을 활발하게 '해주시고' 계신데.. 저..저를 가장 .... 저어- 혹시 제가 혼자 착각을..?  "


사령관에게서 약간의 당혹감이 읽혔기에 리리스의 목소리는 갈 수록 작아졌다.


" 아니. 음... 아니야. 아니, 아닌 건 아니고.. 그게 그렇게 비출 수 있다고는 생각 못했는데. "


품안의 리리스의 기색이 불안해져가는 것은 눈으로 보지않아도 알 수 있었다.

아직도 잘은 모르겠지만, 가깝게 붙어있는 바이오로이드들이 자신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는 정도로 이해하게 된 사령관은 너무 늦기 전에 입을 열었다.


" 그래.. 어찌됬든 틀린 말도 아니네. 그렇게 따지자면 내가 먼저 덮친건 리리스가 유일하긴 하지. 하지만... "


품안에서 바짝 긴장하는 리리스를 사령관이 꽉 잡아안았다.


" 고급형이니 보급형이니 저가형이니들 나누는 모양이지만, 이미 몇 번이나 말했듯이 나한테 너희들의 외모 차이는 개성이나 취향차이 정도의 영역에 불과해. 

내 미적감각이란게 1~5점이 있다면 1, 2 점은 좁고. 3, 4 점은 겁나 넓은데 둘 사이에 경계가 희미하고, 5점은 아주 좁달까.

누구는 눈동자 색이 예뻐 -예쁘다, 누구는 눈매가 예뻐 -예쁘다, 누구는 풍만한게, 누구는 슬림한게... 그런 정도의 차이라고. 딱히 급을 나눠서 그걸로 차별하고 있는 건 아니야. 이건 분명히 해야할 것 같네. "


' 그러면 왜...? '


라고 묻고있는 물기어린 적금빛 눈동자와 눈을 맞춘다. 노을 져가는 태양처럼 빛나는 그 눈에 매료된건 언제였을까.

저격을 막아내고 처음으로 주인님이라 불렀던 그 순간? 그 작전을 짜면서 1:1로 대화를 나눴던 그 때? 아니, 어쩌면.. 시험관에서 깨어나 처음 마주쳤던 그 날.

숨막힐 정도로 아름다운 미인이 애처롭게 떨다가 사정없이 두드려맞던.. 그걸 말리려고 했던 그 날에 이미.


" 그런... 누구라도 좋으신 거라면..... 주인님께서 원하시면 누구라도 안으실 수 있습니다. 만약 거부하는 건방진 것들은 제가...! "


" 그래. 모두들 예뻐. 누구도 마음에 들어. 그러면, 나를 좋아해주는 사람이 눈에 먼저 들어오는게 당연하지 않나? 내가 좋다고, 내게 사랑받고 싶다고 한껏 표현하고 있는 이가 가까이 있는데, 굳이 좋아할지 싫어할지도 모르는 상대를.... 굳이? "


정말로. 그리 복잡할 것 아닌 이유였다.


" 그.. 그러면 아스널 준장의 요청은 어째서 ... "


" 걔는 지금 엄연히 징계 중이잖아. 아스널에게는 섹스가 본인에게도, 주변에서 보기에도 '벌'이 아니라 '상'으로 여겨질 수도 있다는 문제가 있으니까. " 


정해진 시간에만 업무를 보고, 정해진 휴계시간을 지킨다고 하지만. 

그 시간에 기록보관실에서 마냥 흥미거리만 찾아보고 있는 것은 아니다.

호수 위의 백조처럼. 사령관도 나름의 노력을 계속하고 있었다.

사령관으로서. 또 남자로서.


" 그래도 슬슬 날을 잡긴 해야겠지. 징계의 의미보다 일선의 부담을 덜어주는게 우선이 되야 할 것 같으니까. 하지만 오늘은 아니야. 오늘은- "


" 아-? 주..주인님..... "


고삐를 풀어버리자 슬금슬금 느껴지던 감촉이 단숨에 단단해졌다. 

바짝 안긴 피부의 감촉에서, 사령관의 뇌파로부터 그 기색을 눈치채는건 어렵지않았다.


" 오늘도 내가 좋다고, 내가 좋아해줘서 행복하다고 온 몸으로 말해주는 우리 리리스가 함께해줬으면 좋겠는데..? "


" 네 주인님. 기쁘게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