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악역 빙의물 소설 재밌게 보고 관심생겨서 구상해봤던거 시놉시스만 올려봄

바이오로이드 빙의니 TS물이긴 하지만 암컷타락 전개는 없다

이미 챈에 다른 델타 빙의물이 올라와있기는 한데 그 소설이랑은 다르게 진행됨



이야기는 스발바르 제도에서 시작합니다.


레모네이드 델타는 마리오네트 병사들을 이끌고 기억의 방주를 침략합니다. 오드리 시리즈의 유전자 씨앗을 확보하기 위함이죠. 방주를 지키는 건 므네모시네 한 명 뿐이었기에 델타는 이를 얕보고 직접 전선에 나서서 지휘합니다. (페누와 빙룡은 아직 방주가 공격당하고 있다는 것 조차 모릅니다.)


그러나 므네모시네가 최대한 힘을 끌어모아 쏜 냉기 공격에 수많은 마리오네트들이 동사해버리고, 델타는 얼마 안남은 부하들을 데리고 후퇴하다가 므네모시네의 회심의 일격에 맞아 머리에 치명상을 입고 의식을 잃어버립니다.


***


시점은 현실 세계로 바뀝니다.


라붕이는 메인스토리 10지역 업뎃 공지를 보면서 횡단보도를 건너다가 대충 차에 치여 죽습니다.


시야가 어둠으로 물들고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게 되나 싶더니, 갑자기 머리에 극심한 통증이 몰려옵니다. 고통에 못이겨 천천히 눈을 뜬 라붕이는 낯선 천장 아래의 침대에 누워있는 자신을 발견합니다.


여긴 병원인건가? 내가 살은건가? 하고 생각하지만 병실이라기보단 무슨 고급 호텔처럼 온갖 고급 가구로 가득찬, 이상하리만치 호화로운 방. 거기다 침대도 병원 침대가 아닌 푹신푹신한 퀸사이즈 침대.


라붕이는 자신의 몸에 뭔지모를 위화감을 느낍니다. 머리에 붕대를 감고 있기 때문만은 아닌 것 같았습니다. 침대에서 일어나 화장대 거울로 걸어간 라중이는 자신의 모습을 확인하고선 경악합니다.


거울에 비친 얼굴은 레모네이드 델타의 얼굴이었기 때문입니다.


***


이 거지같은 상황이 꿈이 아닐까 했지만 계속해서 욱신거리는 머리의 통증은 이것이 현실이란 사실을 일깨워줬습니다. 조금 진정된 라붕이는 우선 상황을 정리해보기로 합니다.


'단순한 TS 이세계 전생도 아니고 빙의, 그것도 하필이면 악명높은 레모네이드 델타한테 빙의라니! 얼굴이야 예쁘긴 하지만 그 얼굴을 내가 갖고 싶었던 건 아니라고.'


'그런데 내 인격이 여기 들어와있는거면 델타의 인격은 어디간거지? 죽은건가? 아니면 머릿속에 잠들어있나? 모르겠다. 그보다 델타는... 어떤 미래를 맞이하게 되는거지?'


라붕이는 메인 10지역이 나오기도 전에 죽어서 빙의해버렸기 때문에 델타의 서사에 대해선 잘 모르는 상태였습니다. 델타에 대해 기억나는 거라곤 9지역 초반부에 나온 단편적인 모습과 기억의 방주에 깽판쳐놨다는 정도 뿐. 델타가 마지막에 가서 어떤 최후를 맞이할지는 모릅니다.


'뭐, 죽겠지. 보나마나. 오르카호랑 싸우고 패배해서. 워낙 저지른 업보가 많다보니 어쩌면 죽는 게 더 나을 정도로 끔찍한 꼴을 당할수도 있고...


근데 그게 이제 내 미래잖아.


차라리 오르카 손에 처형당하거나 고문받기 전에 자살하는 게 더 나을지도... 어차피 델타가 죽는게 이 세상의 해피엔딩이잖아.


내가 죽는 게.


내가.


내가 죽어야 해?


나한텐 죽는 길 밖에 없어?


차에 치여서 이미 한 번 죽었는데, 또 죽어야 해?'


하필이면 델타에 빙의해서 심란한 와중에 델타의 미래가 자신의 미래일 것이라 생각하니 이루 말할 수 없는 절망감이 닥쳐옵니다. 여자의 몸에 들어온 탓에 눈물샘이 헐거워진 라붕이는 배게에 얼굴을 파묻고 흐느끼기 시작합니다.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고, 아무것도 생각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누군가 문을 똑똑 두드리기 전까지는요.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크흡, 훌쩍... 누구?"


"테일러 리스트컷입니다.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낯선 이름의 등장에 라붕이는 얼떨떨해하면서도 들어오라고 합니다. 문을 열고 들어온 건 게임에서 본 적이 없는 캐릭터. 복장이나 언행으로 보아 펙유미같은 델타의 부관 포지션이란 걸 어렴풋이 눈치챕니다. 부하로 마리오네트만 있는게 아니었구나 하고 내심 놀라기도 하고요.


테일러는 (무표정이긴 하나) 델타를 위로해주면서 기절해있는 동안 방주 공략도 성공했고 오드리 유전자 씨앗도 많이 구해왔으니 기분 풀라는 말을 합니다. 그리고 라붕이는 그 말을 들은 순간 울음을 뚝 그칩니다.


방주? 바아아앙주우우우우???


현황파악용 키워드가 업데이트되자 라붕이의 머리가 팽팽 돌아가기 시작합니다. 다급히 창 밖을 내다보자 보이는 건 푸르른 바다와 멀어져가는 눈덮인 육지. 여기는 유럽에 있는 델타집이 아니라 배 안이었고, 지금은 기억의 방주를 턴 뒤 철수하는 시점었습니다.


시발 왜 저지르고 난 후인거야 빼도박도 못할 썅년 확정이잖아


"...유턴해."


"네?"


"유턴하라고! 스발바르 제도로! 그리고 거기서 얻은 유전자 씨앗 전부다 한곳에 담아놔!!"


갑작스런 명령에 테일러는 약간 놀라다가 금새 진정하고는 알겠다면서 방을 나갑니다.


'하다못해 훔친 유전자 씨앗 돌려주고 사과라도 하자. 나중에 므네모시네가 오르카호랑 만날때 델타가 그래도 사과는 하더라고요 이렇게 말해주면 내가 살아날 가능성이 조금은 생기겠지.'


나갈 채비를 시작한 라붕이. 거울을 보니 아까 울면서 마스카라가 흘러내렸길래 닦으려고 수건으로 벅벅 문지르니까 더 번집니다. 그냥 화장실 들어가서 세수하고 나오니 이번엔 화장이 다 지워졌습니다.


다시 화장해야 하나? 무슨 여자의 매너 같은 거라도 있나? 하면서 도로 화장대로 가보니 비싸보이는 고오급 화장품들이 잔뜩 있는데 뭐가 뭔지 모르겠네요. 라븅이가 알아볼 수 있는 물건은 립스틱 뿐이에요. 그냥 화장 안하고 나옵니다. 어차피 원판부터가 미인인데 굳이 화장할 필요 없잖아.


델타의 군함이 도로 스발바르 제도에 정박하고, 라붕이는 길안내 겸 짐꾼인 마리오네트 한 명만 대동하고서 기억의 방주로 향합니다. 테일러가 호위를 더 붙여야하지 않겠냐고 묻지만 라붕이는 한시코 거절합니다.


그리고 방주에서 므네모시네와 만나게 된 라붕이는, 약탈한 유전자 씨앗을 전부 반납하고 방주를 공격하고 망가뜨린 건에 대해 허리숙여 사죄합니다.


므네모시네는 잠깐 프리징 걸렸다가 사죄를 한다한들 이미 저지른 일을 없던 일로 할 수도 없고, 사죄의 의미를 찾을 수도 없으며, 델타가 어떻게 배상을 하든 건물은 다시 짓는다 해도 파괴된 유전자 씨앗은 복원할 수가 없다고 차갑게 쏘아붙입니다.


라붕이는 내가 한 짓 아니라고 시바 하는 생각이 목구멍 끝까지 차오르지만 델타가 했던 짓인건 사실이고 자신이 그 델타이기에 아무말도 못합니다. 하지만 므네모시네가 계속 꼽주면서 무슨 속셈이냐고 캐묻자 욱해서 "난 오드리 씨앗같은 건 필요없다고" 말해버립니다. 


어이가 없어진 므네모시네는 또 프리징 걸려버렸네요. 오드리 씨앗 얻겠다고 그 개지랄을 떨었던 년이 이제와서 뭔 헛소리지?


"안믿어도 돼. 어차피 너에게 있어서 난 세상에 둘도없는 쓰레기일테니까... 적어도 다신 찾아오지 않도록 할게."


므네모시네는 끝내 델타의 사죄를 받아주지 않고, 라붕이는 씁쓸한 마음을 삼키며 배로 돌아옵니다.


"가져간 유전자 씨앗은요?"


"버렸어."


"..."


테일러는 묻고 싶은 게 더 있었지만, 철저히 속마음을 숨긴 채 델타에게 복종하면서 살아왔기에 더 캐묻지 않고 넘어가게 됩니다.


***


배로 돌아온 델타는 자신을 위해 마련된 특실에 들어가고, 좀 전에 비해 냉정해졌으니 앞으로의 일을 정리해보기로 합니다.


'예정된 엔딩은 오르카와 싸우다 패배해서 죽는거겠지. 사령관 성격상 '오드리가 고통받은 만큼 너도 100년치 고문을 받아라'하지는 않을 것 같지만... 혹시 또 모르지.


다른 미래는? 펙스 회장의 부활에 성공하거나, 사령관한테 날 죽이거나 고문하지 말라는 조건 하에 항복하는건...


그러면...


잠깐 그러면 나 박히는건가?


상대가 사령관이든 펙카스든 간에 내 엉덩이에 고추가 들락날락하면서 앙앙거릴지도 모른다니 상상만 해도 끔찍하네. TS만으로도 거지같은데 여기서 그치지 않고 암컷타락 당할 바에야 자살하고야 말지.


무조건 항복은 절대 안돼.


항복하되 가진 영토, 자원, 병력 다 바치는 대가로 상처없이 받아달라고 하는건? 평생을 감시 속에서 살아야 하겠지만 그럭저럭 잘 살수 있으려나? 설령 사령관이 솔깃해한다 해도 그쪽 오드리가 이악물고 반대하지 않을까 싶은데...


아니, 다시 생각해보니 그것도 안되겠네. 내가 문리버 회장이 어떻게 생겼는지조차 모르는 거 보면 델타의 기억이 연동되지 않은 건 분명해. 그래서 그런 가치있는 정보에 대해 아는게 하나도 없지. 테일러 시켜서 '오르카에 항복할테니까 가치있는 정보 좀 모아줘'라고 할 수도 없고.


그보다 모든 보고를 테일러 통해서 보고듣고하는 상태인데 애초에 테일러 몰래 뭘 할수가 없잖아. 나 진짜 병신이네. 델타가 아니라 내가.


난 그냥 똥만드는 기계네. 먹고자는거 밖에 못하는 무해한 백수. 델타가 저지르던 악행 멈추는 걸로 개심했다는 이미지 메이킹이라도 해둬? 아니, 100년간 질리지도 않고 오드리 학대하다가 이제와서 괴롭힘 멈춘 정도로는 누가봐도 개심했다고는 안보이겠지.


이게 포스트 아포칼립스 세계관만 아니었다면 신분세탁하고 잠적하는 것도 옵션 중 하나였을텐데 이 라오세계에선 뭘 하든 오르카랑 펙스랑 철충 눈치를 봐야만 하고.


차라리 자살하는게 라오 세계와 주인공인 사령관의 미래에, 오드리들의 앞날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또 들지만... 역시 죽기는 싫다. 무섭다고. 이미 죽었는데 또 죽으면 진짜 끝일것같다. 남의 인두겁을 뒤집어쓰고서라도 살아남을테다.


아무튼 자살까지는 에바고 뭘 할 수 있을까... 아니, 반대로 델타면 그냥 무능하게 일 안하는게 세계평화에 도움되지 않을까, 그래야 오르카가 쉽게 이겨먹을테니까. 아 그럼 내가 죽지. 아님 그 전에 오메가가 일 안하냐고 쪼인트 깔지도. 원점이네.


그건 그렇고, 나는 회장 보면 어떻게 되는거지? 응기잇 주인님 뇌파 하면서 자동으로 노예가 되는건가? 이미 부활불가 상태의 냉동육이 됐으면 좋겠지만, 만에하나 냉동수면 기술이 좋아서 깨어날 가능성이 존재한다면... 그건 반드시 막고 싶다.


...그전에 회장 동면포드는 대체 어디에 보관돼있는거지. 역시 오메가네 집 지하실 냉장고에 일곱명 다 보존중인건가? 만약 회장 부활 성공해서 대면했을 때 자동으로 회장을 명령권자로 인식했다간... 끔찍하군. 명령권 제약만 아니었으면 손수 고려장해줄텐데...'


여차저차 델타 일행은 유럽에 도착하고, 배에서 내려 또 비행기 타고 몇시간 날고, 프랑스에 도착한 뒤 테일러가 모는 리무진에 타서 또 먼 길을 가고 나서야 델타의 본진인 문리버 산업 본사 건물에 도착하게 됩니다. 군함에 고급호텔같은 특실 차려놓은 것도 얼탱이없었는데 지 방은 더 휘황찬란하네요. 군함의 특실에 있는 건 퀸사이즈 침대였는데 여기있는 건 킹사이즈야.


방 한켠에는 척봐도 고급진 액자에 왠 처음보는 노인의 초상화가 끼워져있는데, 아무래도 저것이 델타의 주인인 문리버 회장인 것으로 보입니다. 문제는 그게 침대를 바라보는 쪽 벽에 있어서 아침에 일어나면 저 노친네 면상이랑 아이컨택하면서 하루를 시작하게 생겼다는 거죠.


'...저것도 치워놔야지. 뭐 아무튼 간에.


내가 델타가 아니라 딴 놈이란 걸 눈치채면... 주변에서 가만히 둘까? 최소한 오메가나 다른 레모네이드는 분명히 안그러겠지. 빙의한 걸 숨기고 델타인 척 연기해야해. 물론 그렇다고 진짜 델타처럼 오드리 괴롭히는 등의 악행까지 따라하는건 본말전도고. 주변에서 델타는 어디가고 니놈이 그 껍떼기를 뒤집어쓴거냐 하는 소리를 안들을 정도로만...


일단 델타가 해오던 악행부터 멈추고 생각해보자. 오드리 괴롭히지 말고 치료해주고, 마리오네트 생산도 멈추고... 그런데 후자도 굳이 멈춰야 하나? 생명윤리 거스르고 창조된 생물이라 하지만 구체적으로 누가 피해 보는것도 아니잖아. 진작에 개발 완료되서 더이상 누가 실험대에 올라올 일도 없지 않아? 마리오네트 안쓰면 나만 피해보지.


...아니,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고 욕 먹을만한 행동은 다 멈추자.'


라붕이는 곧장 실행에 옮기기로 하고선 테일러를 호출합니다.


"부르셨습니까."


"어어, 피곤할텐데 또 오라가라해서 미안한데, 일 좀 하자."


"...예?"


단순한 인사말이라 해도 델타가 사과를 했다는 사실에 테일러는 겉으로 티내진 않으나 크게 놀랍니다.


"수복실 있지? 오드리랑 올리비아랑... 아무튼 걔네 자매들 전부 다 치료해."


"예?"


"왜?"


"아, 아뇨. 치료 말씀이시죠. 알겠습니다. 어느 정도로 고쳐놓으면 되겠습니까?"


"그야 완치가 목표지 당연히."


"대다수가 중환자라 자원이 상당히 들어갈텐데, 괜찮겠습니까?"


"자원 얼마나 들든 상관없으니 알아서 해."


"예?"


"뭐가 또 예? 야."


"그... 치료가 끝난 다음에는 어떡하면 됩니까?"


"뭘 어떡하냐기 보단... 그녕 밥 잘 먹이고 푹 쉬게해서 회복에만 전념하라고 해둬."


"완전히 회복한 뒤에는요?"


"그건 뭐... 그 때 가서 생각해보지."


"알겠습니다."


"걔들 수복실로 데려가는 김에 너도 치료 좀 받고. 목이랑 손목에 그... 있잖아."


"...알겠습니다."


(얘는 보니까 델타 씹년이 막 심심풀이로 손목 붙잡고 그었나보다. 내가 병주고 약주고 하니 이상해보이겠지.)


"그리고 하나 더. 마리오네트 연구 및 생산을 전면중단한다. 공장도 철거해. 마리오네트의 빈자리는 AGS 병력으로 충당할거야. 아낀 영양은 오드리 치료나 복지에 쓰면 되겠네."


"AGS는 철충 기생 문제가 남아있습니다만..."


"그냥 해. 오메가랑 감마도 AGS만으로 영토유지 잘 하더만."


"마리오네트에 무슨 문제라도 있는 겁니까?"


"윤리적인 문제."


"예?"


(아니 얘는 뭘 자꾸 되물어? 이런 빙구같은 애가 어떻게 델타 부관노릇을 하며 살아남은 거지?)


"그럼... 이미 만든 것들은요?"


"그건 있는대로 써야지. 앞으로 안쓰겠다고 이미 태어난 애들 집단 안락사 시킬 수도 없잖아."


"...지하에 있는 것들도요?"


"? 지하에 뭐가 있는데."


"아시잖습니까. 지하 연구소에서 델타님이 오드리들을 개조해서 만든... 마리오네트."


(아씨 그게 뭐지. 난 모르는 건데. 마리오네트가 또 다른 종류가 있었나?)


"...음. 네 생각은 어떤데?"


"예?"

(내 의견을 물어봤다고?)


(이건 할 줄 아는 말이 예? 밖에 없나?)


"아, 그, 그들만큼은 안락사 시키는 게 낫다고 생각합니다만... 그게 그러니까 일반 마리오네트에 비해 효율도 떨어지고 지능도 낮고 워낙 흉한 존재들이라 델타님의 위신에도 흠이 갈테고 절대로 제 자매라서 편하게 해주려는건 아니고(횡설수설)


"? 뭐 그럼 그렇게 해. 너한테 맡길게."


"알겠습니다."


"참, 그리고 나가는 김에 저것도 좀 갖다버려."


델타가 그리 말하며 가리킨 건 문리버 회장의 초상화였습니다.


"새 액자에 넣어서 전시하면 될까요?"


"뭐? 아니, 액자만 버리라는게 아니라. 초상화를 버리라고."


"예???"


(...아 잠깐, 너무 막나갔나? 회장바라기가 하루아침에 회장따윈 필요없어 하면 존나 이상하게 보이겠지?

근데 이미 입밖에 냈으니 취소하기도 그렇고. 설마 오메가한테 가서 델타가 충성심이 사라졌나봐요 하고 꼰지르진 않겠지.)


"...흔적 남지 않게 처리해. 소문도 내지 말고."


"아... 알겠습니다..."


***


시간이 흐르면서 라붕이는 여자 몸으로, 그리고 델타로 사는 데에 조금씩 적응해나갑니다.


'젠장, 머리 더럽게 길어서 씻고 관리하기가 힘드네. 단발인 줄 알았는데 묶은거였어. 머리 푸니까 머리카락이 허리를 다 가리잖아. 잘라버리던가 해야지.


씻을 때 옷 벗으면 델타 알몸을 풀 3D로 감상할 수 있지만... 그게 또 내 몸이라고 생각하니 금방 꼬무룩해진다...

아, 아니지. 이젠 꼬무룩할 수도 없구나. 망할.


그나저나 확실히 몸매가 좋기는 하다. 허리 날씬한 거 봐, 관리 빡시게 했나보네. 가슴은 좀 작기는 하지만, 지금같은 상황에선 오히려 작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남자 정신인데 가슴에 달린 지방덩어리가 사람머리만했으면 정신적 스트레스도 그에 비례해서 커졌겠지. 내가 찌머크를 좋아하는거랑 내가 직접 찌머크가 되는 건 완전히 별개라고. 오메가에 빙의하지 않아서 천만다행이다.


그런데 드레스랑 코트 다 빼니까 체구가 확 작아보이네. 부피가 큰 옷으로 크기 부풀리고 다닌건가, 뭔 목도리도마뱀도 아니고. 어차피 옷걸이가 좋으니 뭘 입어도 상관없을텐데.


아무튼 옷 좀 다른걸로 갈아입어야겠다. (지금은 목욕가운 입은 상태) 원래 입던 드레스는 너무 불편해. 특히 치마폭이 더럽게 좁아서 걷기가 영... 바지 없나 찾아봐야지. 그리고 편한 티셔츠도.



...사치부리는 년 주제에 방에 옷장이 왜 없나 했더니 옆방은 방이 통째로 옷장이었네. 어떻게 입는 건지도 모르겠는 별 사치스런 드레스가 다있다. 


심지어 코르셋도 있고. 허리 조여서 숨 못쉬게 만드는 그거. 바본가.


구석엔 알파나 오메가가 입는거랑 똑같은 레모네이드용 옷도 있네. 색은 파란색이지만. 델타 머리에 파란 옷은 안어울리지 않나. 역시 보라색 드레스가 잘 어울리긴 했지. 직접 만든건가?


...옷장 방을 샅샅이 살펴본 결과... 입을만한 옷이 하나도 없다... 어떻게 이 많은 옷 중 티셔츠 하나 없을 수가 있는거야? 차라리 오드리한테 적당한 거 한 벌 만들어달라고 할까? .....'


"테일러! 이리로 좀 와봐."


"부르셨습니까."


"오드리가 옷 잘 만들지?"


"델타님 솜씨에 비할 바는 아닙니다."


"...음, 그걸 물어본건 아니고. 오드리한테 옷 좀 만들어달라고 부탁하면... 들어줄 거라고 생각해?"


"......"


"...십중팔구 거부하겠죠."


"...역시 그렇겠지?"


(델타 상상속의 오드리)

Fuck you! Fuck you all! I hope you die and go to HELL!!


'여기있는 애들은 전부다 호감도 -200 일테니 설득도 안통할테고.

그냥 새 오드리를 제조하면... 유전자 씨앗 전부 다 방주에 반납해서 남은 게 없구나.'


"에휴... 그럼 멸망전에 생산된 옷같은 건 있지?"


"그것들은 델타님 취향에 맞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만..."


"그냥 어디 있는지나 말해."


델타 라붕이는 포장된 옷 무더기에서 적당한 걸 꺼내 입습니다. 또한 공적인 자리를 위해 테일러가 입고다니는 것처럼 정장도 한 벌 챙겨놓습니다. 테일러는 델타의 변한 모습에 다시한번 놀랍니다.


***


델타는 오메가로부터 레모네이드 정기회의가 앞당겨졌다는 통보를 받게 됩니다. 테일러는 앞당겨진 원인이 델타의 독단적인 방주 침략 건 때문일거라고 추측합니다.


"나 가기 싫은데..."


"화상회의라서 어디에도 안가시잖습니까."


"참석하기가 싫다는 거지... 대리 세워도 되나?"


"...안된다는 규정은 없습니다만, 레모네이드만 참석하는 회의라서 제가 들어선 안될 기밀정보가 나올 수도 있습니다만."


"기밀이라고 할 게 뭐있나. 인간 찾았냐 묻고, 아무도 없다고 하고 대충 그러고 끝날텐데..."


'그보단 오메가나 다른 레모네이드한테 의심받는게 더 문제지. 유럽 안에선 대놓고 여태까지의 델타와 반대되는 행보를 걸어왔지만 오메가한테 찍히면 곤란하다고. 앱실론처럼 눈에 띄지 않고 있어도 그냥 없어도 그냥인 존재가 되고싶다...

근데 이제와선 무리겠지. 100년간 사방에 어그로 끌어놓고선 지금부터 얌전히 산다해도 오히려 의심받을테니까.'


"그럼 델타님이 참석하시는 걸로 알고 회의실 세팅해놓고 방주 건에 대한 자료 요약본 가져다놓겠습니다."


"의자도 좀 갖다줘. 여기 의자가 없네."


델타의 의자를 갖다달란 말에 테일러의 얼굴이 굳더니, 잠시후 그녀가 데려온 건 목줄을 채운 오드리였습니다. 온몸에 멍과 흉터가 가득한 오드리는 다리를 후들후들 떨다가 쓰러져버리고, 라붕이는 이게 뭔 짓거리인가 했다가 델타가 오드리를 얼차려시키고 의자로 썼다는 걸 기억해냅니다.


"으... 으윽..."


"아니, 얘 말고 진짜 의자를 갖고오라고! 얜 도로 입원시키고."


"...!?"


"예? 아, 예... 알겠습니다."


사소한 헤프닝이 지나가고, 회의가 시작되자 알파를 제외한 다섯 레모네이드의 얼굴이 비춰진 창이 떠오릅니다. 라붕이는 자신이 빙의한 걸 들키지 않기 위해 9지역 회의 장면에서 델타가 했던 것처럼 최대한 성깔 더러운 연기를 합니다.


[멋대로 기억의 방주를 습격하다니, 제정신입니까? 제가 여지껏 거길 손대지 않고 남겨둔 건 회장님이 부활한 뒤의 미래를 위해서지, 당신의 쓸데없는 장난감을 위해 남겨둔 게 아니란 말입니다!]


"알 바야? 내가 필요해서 필요한 만큼 가져가겠다는건데. 애초에 므네모시네가 순순히 문 열어줬으면 나도 이러지 않았지."


[뭐라고요...? 당신이 끼친 피해에 대한 자각이 있기는 한 겁니까? 군대까지 동원한 주제에 고작 므네모시네 1기가 지키는 방주를 상처없이 얻기는 커녕 아주 난장판을 만들어던데, 기억의 방주도 펙스 컨소시엄의 자산이란 걸 모르냐는 말입니다!]


"거 참 말 많네. 나도 거기서 엄청 피해봤다고! 난 피해자야!"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는 겁니까? 정말로 기강잡기 한번 들어가야 하나요?]


"하, 해보시던가! 알파 따위한테 개털려서 케스토스 히마스도 상납하고 도망친 년이!"


[이...!]


비록 델타의 세력은 오메가 세력과 전면전을 하게 된다면 빼박 패배할 정도로 열세지만 오메가 쪽에도 어느정도의 타격을 입힐 정도는 됩니다. 서로 쌍욕하면서 히스테릭한 신경전을 벌여도 그게 다지, 왠만해선 오메가가 손해를 감수하고 직접 델타를 족치러 움직이진 않을 겁니다. 라붕이도 그걸 알고 까부는 거죠.


[오, 전쟁각인가? 나도 껴도 되나? 평소라면 델타 쪽에 무게추를 얹어줬겠지만 지금은 또 애매하군. 오메가에게 핸디캡이 있는건 사실이니. 도와줄까, 오메가? 필요하면 도와주세요 감마님 하고 말만 해.]


[둘 다 느그 회장이랑 같이 묻어버리기 전에 입 좀 닥쳐 주실래요...!?]


[싸.. 싸우지 마세요 모두들...]


[베타 말에 전적으로 동의해. 시간 아까우니까 영양가 없는 문책은 집어치우고 본론으로 넘어가자고. 이번 회의가 열린 이유는 앞으로 어떻게 책임지고 어떻게 뒷수습할지를 논하기 위해서니까.]


[...쯧.]


"흥."


[제타. 넌 항상 노잼이야.]


[좋아요. 본론으로 들어가죠, 델타. 기억의 방주를 못쓰게 만든 이 불미스러운 사태에 대해 어떻게 책임질 지 말이나 좀 해보시죠.]


"책임은 무슨 얼어죽을. 그리 중요한 거였으면 니들이 진작에 군대라도 보내서 지키던가. 내가 얻은 전리품이 탐나나본데, 니들한테 나눠줄 건 하나도 없으니까 발닦고 잠이나 주무시지?"


[뭐, 역시 그렇게 나오겠지. 기대도 안했어.]


[더 얘기해봤자 시간낭비겠군요. 됐어요. 이미 문이 뚫려버렸으니 오르카 놈들이 와도 건질 게 없도록 제가 방주 데이터에 공작질을 해놓도록 하죠.]


"어이구, 그 잘나신 오메가님께서 내 뒷처리를 해주겠다니 영광이네. 그런데 이를 어쩌나? 다 박살내놔서 수정하고 자시고 할 것도 없을텐데, 가서 눈사람이라도 짓고 놀게?"


[...? 잠깐, 유전자 씨앗만 털어온 게 아니었습니까?]


"누가 그러든?"


[...당신은 대체 어디까지 일을 망쳐놔야 속이 풀리는겁니까...!!]


[지, 진정하세요 오메가. 그래도... 헛걸음 할 일은 줄었잖아요. 안그래요...?]


[입 닥쳐요 베타. 지금 고혈압으로 쓰러질 것 같으니까요.]


"오, 그거 솔깃한데? 혹시 죽게되면 꼭 알려줘. 네 시체는 비싸게 사들일게. 좋은 마리오네트 재료가 될 것 같거든."


[정말이지 입만 살았군요. 실제로 할 줄 아는 건 아무것도 없는 주제에. 그러니까 오드리 따위한테 회장의 총애를 빼앗기지. 안그래요?]


"..."


"흐으... 이, 이이... 건방진...!!"


[오, 오. 시동 걸렸나? 팝콘 가져와도 돼?]


[둘이 싸울거라면 난 나가도 될까? 앱실론은 이미 나간 모양인데.]


[...]


[오늘은 여기서 끝내죠. 다음 회의 일정은 변동이 없습니다. 그 때는 이번보다 생산적인 얘기가 나왔으면 좋겠네요. 그리고 델타. 제가 항상 지켜보고 있다는 걸 명심해두세요.]


"닥쳐... 내 주인님은 회장님 한 분 뿐이셔. 너까짓게 내 상사라도 되는 마냥 간섭하지 말라고."


[뚝-]


"개같은 년 같으니라고..."


라붕이의 혼신의 혐성 연기 덕분에 오메가는 작은 위화감만 느꼈을 뿐, 델타가 다른 사람으로 변했다는 건 눈치채지 못합니다.


***


일단 큰 위기는 넘긴 것 같네...


그나저나 다른 레모네이드들 보니 생각난건데, 나한테도 케스토스 히마스가 있었지? 뭐라더라, 유전자 디자인 및 조작도 가능한 물건이라는데, 구체적으로 뭘 할 수 있는거지? 인체를 내부에서부터 개조해나갈 수 있는 인체의 엔지니어... 같은건가?


호르몬 조작같은것도 가능할까? 남성 호르몬 뿜뿜으로 초간단 성전환... 같은 건 역시 안되겠지. 만화도 아니고.


그보다 내 지능이 델타 지능을 덮어쓰면서 델타의 능력은 아무것도 못쓰게됐고. 케스토스 히마스 사용법은 커녕 전원 키는 법도 몰라. 아니, 그 전에 델타의 케스토스 히마스가 어떻게 생겼고 어디에 있는지조차 모르지.


테일러한테 가서 내 케스토스 히마스 어디 있냐고 물어보는 건... 좀 바보같이 보이겠지.


델타에 빙의하면서 그 년의 죄는 다 내가 짊어지게 생겼는데 델타의 능력은 하나도 물려받은 게 없다니. 게다가 난 델타가 아니라 다른사람이라고 알리려 해도 그걸 기회삼아 등에 칼 꽃을 사람만 한가득하다니.


난 라오 세계에서 제일 불쌍한 새끼일거야...



델타에 빙의해버려 어떻게든 좆망엔딩을 피하고 싶은 라붕이의 이야기 

생각보다 써놨던게 많아서 분량조절 실패했으므로 中편으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