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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키리의 수기]










[3527년 6월 1일]


장례를 치르고 왔다.

지난 주에 시신 수습이 완료되어 오늘 치를 수 있게 되었다.



우리가 사령관님쪽 인류에게 구조되고, 여러 과정을 거쳐 사령관님 부대로 합류하는 동안,

우리가 살았던 우주에서는 저항군 시신 수습작업이 진행되었다.



최대한 수습 할 수 있는 만큼 한것 같다고 판단되자 지휘부에서는 사령관님과 우리를 그쪽 우주로 보냈다.

다시 온 우리가 살던 우주... 우리가 살던 지구는 푸른 행성이 아닌 수백 수천개의 갈색 돌덩어리들이 어지럽게 떠다니는 우주의 먼지가 되어있었다.



고통스런 기억을 다시 마주하게 된 자매들은 저마다 감정을 애써 억누르려는지 그저 주먹에 힘을 주며 묵묵히 창밖을 보고만 있었다. 



수습작업의 최고 책임자분께서 우리에게 최종적으로 수습된 시신의 명단을 넘겨주며 시신이 안치된 곳으로 우리를 안내했다.

우리의 눈은 이제 차가운 함선 바닥에 누워져 흰색 천으로 덮힌 수많은 존재들을 보게 되었다.

그제서야 자매들은 조금씩 눈물을 흘리며 먼저 떠나간 이들을 조용히 되뇌었다. 



책임자분께서 말씀하시기를, 시신 훼손 정도를 떠나 신원이 확인되어 수습할 수 있는 모든 시신을 회수했으며 나머지는 사고 당시 고열의 태양 플라즈마와 우주로 솟구친 멘틀때문에  전부 녹아 사라졌다고 한다. 그들에게는 대형 묘비에 단체로 이름을 넣기로 했다.



레오나 화력조장님께서 이쪽 우주 생존자 대표로 시신 인수 및 장례절차 승인을 하는 뜻의 서명을 하셨고 이윽고 시신들은 차례로 냉동되어 장례가 치뤄질 때까지 보관처리 되었다.



그래도 이렇게라도 자매들의 넋을 기릴 수 있다니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차디찬 우주에서 편히 쉬지도 못할 뻔 한 자매들을 수습해준 사령관님의 인류에게도 감사를 표한다. 



그리고 오늘 자매들은 지구에서 진정으로 편히 쉴 수 있게 되었다.

비록 우리의 지구는 아니지만 이곳에서도 우리의 지구와 같이 기분좋게 부는 바람과 익숙한 풀내음이 있었다.



장례를 동시에 치뤄야 할 시신이 너무나 많아 매장지가 부족해질까 염려되어 불가피하게 화장을 진행했다.

하나 둘 차례로...

구인류가 만든 과거의 고통을 짊어지고 살아온 육신이 불길로 정화되어갔다.

그리고... 우리 모두가 또렷이 기억하는 한 사람의 차례가 되었다.



한때는 우리가 사는 의미였고,

우리의 구심점이었으며,

우리의 희망이었고,

우리의 사랑의 공통된 목표였던 사람...



오르카 저항군의 사령관님...



그 분의 시신을 끝으로 모든 화장이 완료되었고 곧바로 작은 함에 담긴 이들은 엄숙한 분위기 속에서 우리들의 경례와 조총(弔銃)을 받으며 하나 둘 또 다른 지구의 일부가 되어 묻혔다.



부디 먼저 간 그곳에서는 어떠한 고통도 없이 행복만 가득하길.....



사실 원래계획은 사령부가 있는 다른 행성에 안장하는 것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사령관님께서 "이들의 고향은 지구이고 지구를 지키려다 죽은 것이니 마땅히 지구에 묻혀야 한다."라고 하시며 자신의 주장을 관철하셨다고 한다.



사령관님께서는 지구태생은 아니지만(케플러-452 출신이라고 하셨다.) 지구만 보면 마치 고향에 온 듯 하다고 말씀하시곤 했다.

아마 그런 감정의 연장선으로서 그런 결정을 내리신 걸지도 모른다.

나중에 자매들 모두 사령관님께 감사의 뜻을 전해야겠다.



이제 자매들을 잘 떠나보냈으니, 산 사람들은 다시 현실에 집중해야지.

당장 내일부터 나를 위한 저격특훈이 기다리고 있다. 

저격에 달인이라는 스파르탄 교관님이 오신다는데... 특기가... 이동 중 무조준 저격이라고...

내일 만나보면 알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