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팅스타 4화



2081년




[ 귀하의 자녀가 혹시, 대인관계의 어려움을 느끼지 않습니까? ]










잡지에 끼어서 흘러들어온 삼안산업 V-VIP 에게만 배부된다는 글귀가 적힌 나름 정성스러운 봉투를 뜯자 들어있는 패널형 광고지 하나,


광고지의 화면에서 화장실 표지판에서 볼법한 남자캐릭터가 교실 한 구석에 홀로 앉아있다.


아마도 남학생을 표현한 것 같다.




[ 귀하의 자녀, 혹시 왕따를 당하고있지 않습니까? ]




이번엔 광고지의 화면에서 홀로 앉아있는 남학생에게 음료수 캔 따위의 쓰레기 몇개가 날아들며 웃음소리가 퍼진다.




[ 귀하의 자녀가 친구가 없다면, 귀하의 자녀를 지켜줄 인원이 있어야하지 않겠습니까? ]




구석에 있던 학생에게 날아들던 쓰레기들을 갑자기 난입한, 역시 남학생과 같이 화장실 표식에서 볼법한 그림으로 그려진 여학생이 쓰레기들을 막아내고


자리에 앉아있던 남학생을 일으켜 세운다.


여학생 캐릭터 머리 위로 시계 아이콘이 나타나 한바퀴를 돌고 사라진다.




[ 걱정하지 마십시오! 우리 삼안산업이 자랑하는 신규 라인업에 주목해 주십시오! 시중에서 판매되는 흔한 양산형 바이오로이드가 아닙니다!]




화면에 우후죽순으로 늘어나며 기어이 화면을 꽉 채워버리는 수 많은 여학생, 정확히는 여성의 그림.


번잡하게 지나가는 여러 사진들을 슬슬 질린다는 표정으로 바라보는 오규식는 거의 벗겨져 머리가 얼마 남지 않은, 정수리를 슥슥 긁고는


패널형 광고지를 테이블로 던져 머리속에서 잊으려던 찰나




[ 길거리에서 마주치는 똑같은 바이오로이드가 아닙니다, 귀하의 자녀에게 최고의 친구를 만들어 주십시오! ]










최고의 친구, 오규식은 튀어나온 고도비만의 뱃살을 긁다가 들려온 구절때문에 광고지를 다시 들여다 보았다.


화면에는 삼안산업의 애니웨어 시리즈의 로고가 띄워지며 계속해서 나래이션이 말했다.




[ 자녀에게 최고의 친구가 되어줄 바이오로이드를 저희가 이번 신상품으로 찾아뵈었습니다. ]




"거, 말 많구만."




오규식은 입고있는 목욕가운의 이곳 저곳은 손바닥으로 툭 , 툭 두드려 보다가 담배가 이 옷에 있을리 없다는걸 깨닫는다.




[ 그러나 자녀에게 친구를 만들어 주었다고 하곤, 그 친구라는것이 바이오로이드였을경우 자녀의 자존심에 매우 큰 상처를 줄 수 있습니다 ]




오규식이 담배를 찾는것 같은 제스쳐를 목격한 콘스탄챠 S1은 황급히 다가와 앞치마에서 두터운 시가담배 하나를 두손으로 꺼내 그의 입에 물려주곤, 능숙한 손놀림으로 라이터를 꺼내


불을 붙였다.




"역시 네가 최고다"




오규식이 껄껄 웃자, 콘스탄챠S1은 이어서, 재떨이를 들고 조용히 서 있었다.




[ 그렇다면, 우연을 가장한.. 진짜 사람으로 착각할만한 사람같은 친구는 어떻습니까? ]




광고지의 화면에는 한반도의 지도가 나오며 이삿짐 트럭과 학교라는 표식의 도형등이 이리 저리 움직인다.




[ 고객님의 옆집, 혹은 같은 집에 신세를 지게 된 새로운 가족, 친구를 소개하십시오. ]




" 당신! 또 담배피우고 있어요?! "




신경질적인, 쇠를 긁는것 같은 불쾌한 고성이 들리자, 재떨이를 들고 있던 콘스탄챠S1이 소리가 난 방향으로 몸을 돌려 고개를 숙였다.




"아아 피우고 있지"




오규식은 소리의 근원은 눈길한번 주지 않고, 생각보다 신기한 광고내용에 더 집중한다.




[ 저희의 신상품인 '비밀친구' 프로젝트는 스스로가 바이오로이드라는 점을 숨기고 친구가 필요한 여러분의 자녀와 함께할 것 입니다 ]




"으응? 바이오로이드라는 점을 숨긴다고?"




생각이상으로 황당한 부분에 오규식은 시가를 한번 쭈욱 빨아들인뒤 코로 크게 내쉰다.




"집 안에서 피우지 말라고 몇번을 말해요!!! 어휴! 이 냄새하며 공기가 안좋아!!!"




주름살이 여기 저기에 자리잡은 그녀는 오규식과 비슷한 체구의 비만을 가진 여성이였다.




"콘스탄틴! 이거 담배 연기! 빨리! 환기시켜! 피부에 안좋다고!!!"




중년 여성은 손수건으로 얼굴을 가린체 허공을 손을 붕붕 휘젓는다.


휘 젓는 손의 손가락에는 각기 반지들이 휘황찬란하게 빛난다.




"예, 박정련 사모님! 즉각 환기를 하겠습니다, 그런데 저의 명칭은 콘스탄틴이 아니라.."




콘스탄챠S1이 고개를 가볍게 숙이곤 환기를 하러가기 자신의 명칭에 대해 말하는 순간 박정련은 콘스탄챠S1의 뺨을 강하게 때렸다.




"어디서 토를달아 토를!!! 내가 너를 콘스탄틴인지 콘.. 뭐시기인지 부르던지 내 마음이야! 어! 그리고 그런건 네가 알아들어야지!!!"




뺨을 맞아 바닥에 떨어진 안경을 황급히 주우려는 콘스탄챠S1이 안경에 손을 뻗자 박정련은 비릿한 미소를 띄우며 신고있던 하이힐의 굽으로 콘스탄챠S1의 손을 강하게 밟았다.




" . . ! "




"누가, 안경을 주워도 좋다고 했어?"




"죄송합니다!"




콘스탄챠S1은 손을 빼고 차렷자세로 일어나려했지만 박정련은 콘스탄챠S1의 손을 더욱 강하게 밟아 그 밑에 깔려있던 안경의 다리가 부러졌다.




"무슨일 있어?"




박정련이 웃음을 참지 못하고 큭큭 거리며 묻자 콘스탄챠S1은 어떻게 대답할지 몰라 우물쭈물한다.




"당신 그만좀 괴롭혀요 왜 항상 애꿎은 ... "




오규식이 끼어들지만 박정련은 어이가 없다는듯이 되려 그를 쏘아붙였다.




"당신이 담배를 안피우면 되는일 아니였어요?! 내 가녀린 피부 책임질껀가요!?"




오규식은 대꾸도 하지 않고 한숨 한번 푹 쉬었다.


그의 뒤로 아직도 환기를 안하고 있었냐며 박정련은 콘스탄챠S1에게 손찌검하는 소리가 들린다.




[ 철저히! 주문제작으로 만드는 신규프로젝트인 '비밀 친구'는, 저희 삼안산업의 vvip 고객분들께서만 구매하실 수 있는 특권을 갖고계십니다! ]


[ 비밀 친구는 친구가 필요한 여러분의 자녀에게 부모로써 비밀리에 해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입니다. ]




친구가 필요한자녀, 그리고 자신이 바이오로이드임을 숨기고 돌연듯 찾아오는 인간인 척 하는, '비밀 친구'.


오규식은 고개를 돌려 길고 긴 복도 넘어, 끝에 존재하는 방.




방에서 잘 나오지 않는 그의 자녀 한율의 방을, 규식은 한참동안 바라보다가, 천천히 다가갔다.




" . . 한율아! 나가 들어가도 괜찮겠냐?"




" . . . "




노크를 여러번, 안에서는 묵묵부답 뿐.




규식은 손을 문고리에 가져가 몇번이고 열까 말까를 고민하다, 침을 한번 삼킨뒤, 결심한듯 아주 조심스럽게, 천천히 문을 열었다.




불꺼진 방, 방 한켠에 놓인 컴퓨터앞에 앉은 한율은 뭔 이상한 고글같은걸 뒤집어 쓰고 가상공간인지 뭔지에 정신이 팔렸는지 규식이 들어온지 모르고 있다.




저게 그 버츄얼 헤드기어인지 뭔지, 몇일전에 사다 준 그건가 하고 규식은 생각하다, 방 벽면에 이곳 저곳에 붙은 홀로그램 포스터에 눈길을 돌렸다.




단정하게 정리되면서도 아주 긴 흑발에 풍만한 가슴, 양 색상이 다른 특이한 눈동자의 오드아이.


일본의 전통복장으로 생각되는 의상에 상의는 빨간색과 하의는 붉은색으로 갖춰입고 머리에는 동물귀에 손에는 부적같은걸 흩날린다.




그외에 다른 홀로그램 포스터도 비슷한경우가 많았다, 모두 같은 캐릭터의 홀로그램 포스터는 아니였지만 같은 캐릭터로 생각되는 포스터들이 더러 눈에 띄였다.




대부분 'D-ENTERTAINMENT' 라는 로고가 쓰여있고 몇몇 캐릭터들은 TV에서 본 것 같다.




일본도를 든 마법소녀라던가, 전차에 탑승한 교복의 학생들이 비장한 표정을 짓고있다, 아 저건 직장의 신입사원녀석이 챙겨본다는 그, 뭐시기 일본의 드라마였던거 같은데.


전차가 파괴될때 전차 안에서 비명을 지르며 불타죽는, 전차병 역할인 여고생 바이오로이드의 목소리가 일품이라 말하던 그 신입사원의 표정이 생각나 규식은 살짝 섬뜩했다.


정체모를 촉수같은것에 붙잡혀 묘하게 에로한 표정을 짓는 아까의 그 흑발 캐릭터도 다시 보인다.




대부분은 하나나 두개정도로 중복된 홀로그램 포스터 가운데 저 흑발의 캐릭터만큼은 자주 보인다. 저런 외모가 취향인가?




규식은 요즘 학교생활은 할만한가? 라고 한율에게 말걸려던것을 취소하고 도로 빠져나가 문을 닫았다.




비밀 친구.


규식은 무언가 곰곰히 생각하며 안방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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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자신의 직장인 삼안전자의 자리로 간 규식은 기획부 부장이라는 자신의 책상에 가방을 내려놓고는 다른 직원들의 아침인사를 뒤로한체


바이오로이드 부서가 있는 다른 층으로 향하였다.




다른부서의 부장이 불쑥 찾아오자 바이오로이드 부서의 직원들은 신기한 광경이라 생각한 것인지, 눈길만 주던와중 규식을 보고 걸어나온것은 같은 직급의


바이오로이드 기획부장이였다.




평소에 잘 쓰이지 않는 평 사원급 직원 휴게실 의자에 나란히 앉아 시중에서 판매하는 싸구려 인스턴트 커피밖에 없는것에 조금 놀란 기획부장 죠니 최 는 어쩔수 없나, 하는


표정으로 대충 만들어 커피를 한잔 내어준다.


"규식아 여긴 왜 왔어?"


규식이 찾아온 이유를 전혀 예상하지도 못하겠다는 표정이다.




"이거, 자세한 설명좀 들어볼 수 있겠어?"




규식은 어제 한참 들여다 보던 패널형 광고지를 하나 건내었다.




[ . . 귀하의 자녀가 혹시, 대인관계의 어려움을 느끼지 않습니까? ]




빛과 사람의 얼굴이 인식되자 어제보았던 광고가 다시 재생된다.




"이건 VVIP에게 홍보용으로 전달한 광고지인데, 아마 우리 부장급들에게도 전달되었을거야, 그거 받은게 마음에 안들어?"




죠니 최는 아무래도, 자녀의 문제를 운운하는 광고가 좀 자극적인게 마음에 들지 않아서 찾아온건가? 하고 속으로 생각했지만 이내 규식의 입에서


다른 답변이 나왔다.




"비밀 친구? 그거 주문하고 싶어서 그래."




죠니는 잠시 규식의 말을 골똘히, 생각해 보다가 규식에게 아내도 있고 무엇보다 방탕한 생활을 하는 사람은 아니였기에


비밀 친구로 추잡스러운 취미를 즐기려는건 아닐거라 생각했다.


만일, 규식이 바이오로이드로 재미를 보고싶었다면 죠니는 특수목적으로 주문제작을 원칙으로 삼은 비밀 친구가 아닌, 시중에 나와있는


다른 바이오로이드를 소개했을 것 이다.




"이걸 주문하겠다고? 가까운 서비스 매장이나 아니면 인터넷으로 주문도 가능했을 텐데.."




죠니가 의문을 품으며 규식에게 묻다가 이내 그의 아들을 잠깐 생각해 보고 계속 쓸데없는 말을 하는것 보다, 이 상품이 필요했다고 판단했을 규식을 존중하기로 했다.




".. 알았다, 잠깐 기다려봐 맞춤형 주문제작이라 그냥 달라고 하면 뚝딱 나오는게 아니라서."




죠니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매장에서 사용하는거랑 똑같은 주문서가 몇장 남아있을거야, 가져올테니까."




죠니는 자리를 나섰다.




규식은 한율을 생각하며 잠자코 기다리고 있었다.




한율은 엄밀히 따지자면 친아들이 아니다.


그저 한율이 어릴때 삼안산업의 사회공헌 대외이미지 구축이라는 상층부의 묘한 압박으로 삼안산업의 많은 직원들이 고아원에서 아이들을 입양했던 것 이다.


한율도 그런 아이들중 한명 이였다.




한율과 같은 나이인 , 올해로 열 일곱인 자신의 친아들 오병태는 7년전에 규식이 전처와 이혼함에 따라서 그녀를 따라 집을 나가게 되었고, 그래도 병태는 자신과의 악감정은 없었기에


드문드문 얼굴 보는 사이였다.




다만 매사 삐딱하고 그렇게 올곧은 성품이라 할 수 없던 병태는 중학생의 나이일때, 전처를 따라 집을 나서며 한율에게 입양된 아이라는것을 폭로해버리고


한율은 그때부터 지금까지 어두운 분위기를 두루 갖추고 등교라던가 반드시 해야할 일이 아니라면, 방 밖으로 자주 나오지 않게되었다.




어째서 전처는 병태에게 한율이 입양한 아이라는것을 알려준 걸까.




어째서인지 규식은 그 책임마저도 자신의 탓 인것 같아 다시 마음 한켠이 아려왔다.




규식은 죠니가 줄 신청서 양식에 주문제작이라는 부분이 생각나, 생김새를 정해줘야 하는데 어떻게 만들까, 하고 잠깐 생각하다 어제 한율의 방에서


자주 보았던 한 홀로그램 포스터 속 캐릭터를 생각해내었다.




" 기다렸지, 자 여기에 기입해줘. "




A4용지 한장의 신청서.


그리고 열장 짜리의 비밀 친구 비밀엄수 동의 서약서


마지막으로 이십장 정도의 분량을 가진 상세 외형 설정서를보고 오래걸리겠구나 하다, 결국 죠니에게 자신의 휴대폰으로


그 홀로그램 포스터 속 캐릭터, 바이오로이드 쿠노이치 제로에 등장하는 어느, 조연 캐릭터의 이름을 검색해 죠니에게 보여주었다.




"이거, 이거랑 똑같이 만들 수 있어?"




죠니는 규식의 휴대폰 화면에 나온 바이오로이드를 보자 약간 난색을 표한다.




"이건.. 아니 이거는 덴세츠의.. 아니 D엔터테이먼트의 쿠노이치 제로 라고 드라마가 있어, 거기에 등장하는 조연 캐릭터중 한명인데...


이걸 만들면 이 개체가 바이오로이드라는게 한방에 들통나기도 하고, 무엇보다 우리가 저작권 관련해서 고소먹기 충분한데.."




"똑같지 않아도 좋으니 이거랑 비슷한 정도, 그래 특징을 따와도 좋으니까 부탁한다."




규식의 부탁에 죠니는 고심섞인 한숨을 내쉬고는 규식의 부탁에 맞게, 이 캐릭터의 느낌을 살린 새로운 캐릭터를, 바이오로이드를 만들어 보자며 스스로를 다독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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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이지."




정련은 테이블에 앉아 콘스탄챠S1이 만든 차를 마시며 나름의 여유를 즐긴다.


콘스탄챠S1이 차를 한잔 더 만들어 쟁반에 놓고, 한율의 방으로 향한다.




".. 도련님 들어가겠습니다."




콘스탄챠가 한율의 방에 들어가자 한율은 침대에 누워 만화책을 읽다가 책을 덮고는 일어나 침대에 걸터앉았다.




" . . 방에 들어올때는 노크 해달라고 했잖아."




냉담한 목소리에 콘스탄챠는 난감한 얼굴로 조심스레 답했다.




"송구하게도 주인님께서 저녁 식사 전에는 반드시 한율 도련님께도 차 한잔을 대접하라는 지시를.."




콘스탄챠의 말을 듣던 한율은 콘스탄챠의 얼굴에 난 긁힌 상처와 부러진 안경 다리를 보았다.




" . . 그 여자 짓이지?"




한율의 말에 콘스탄챠가 미묘한 웃음과 함께 아주 약간, 고개를 끄덕였다.




"하여간 그 '아저씨'는 쓰레기같은 여자를 데려와서는..."




한율은 콘스탄챠가 건낸 찻잔을 받아들고는 팔을 뻗어 책상위로 올려두었다.


콘스탄챠는 한율의 방에 이곳 저곳에 붙은 홀로그램 포스터를 눈을 돌려 몇가지 살펴보았다.




"콘스탄챠, 여기중에 뭐 아는거 있어?"




한율은 만화책을 책장에 꽂고는 도로 침대에 앉았다.




"TV에서 방영하던 드라마의 주인공들로 보이네요, 맞나요?"




한율은 뭐 어느정도 예상했던 답변이라 생각한 것인지 고개를 대충 끄덕이고는 나가달라는 손짓을 했다.




콘스탄챠는 정중히 고개를 끄덕이고는 방 문을 닫고 나갔다.


한율은 침대에 도로 누워 별 생각없이 천장을 응시하던 찰나, 자신의 방문 앞에 서있는 콘스탄챠의 인기척이 멀리가지 않는것을 느껴 무슨일일까 생각했다.




"다녀오셨습니까 주인님?"




콘스탄챠가 규식을 맞이하는 소리가 들린다.




"다녀왔다."




규식의 목소리.




항상 듣던 것 이다. 별다를것 없는 하루.




"어라, 여기계신 이 아가씨는..?"




콘스탄챠의 말에 한율이 약간 집중한다.




"오늘부터 빈방에서 지낼 손님이야."




"빈방?"




한율이 화들짝 놀라 침대에서 일어난다.




빈방, 다시말해 쓰지 않는 방이 하나 있다.


한율이 딱히 쓰지않는 자신의 짐같은것들을 아무렇게나 어질러 놓고 방치해두는, 일종의 자유로운 개인공간과 비슷한 곳인데 나와 상의도 없이 거기서 지낸다니?




한율이 방문을 열자 몇걸음 앞, 현관문에서 신발을 벗는 규식과, 그의 뒤편에 서있는 한 소녀.


검은 긴 머리에 약간 무표정한, 무엇을 생각하는지 알수 없는 포커페이스의 소녀와 눈이 마주쳤다.




".. 한율아, 인사해라. 내 은사님의 딸이야, 인사하거라"




규식이 약간 긴장한 얼굴로 말했다.




소녀는 눈을 감고 조용히 목례를 하며 입을 열었다.




"반가워, 나는 유라 라고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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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지가 쌓인 바닥, 유라 라는 이름이 쓰인 색 바랜 플라스틱 명찰이 붙은 교복.


낡은 침대에서 눈을 뜬 그녀는 가쁜 숨을 몰아 쉬며, 머리맡에 놓인 소총을 집어들어 방문을 겨누었다.




"허억...허억..."




푸드덕 하곤, 거실부근 창가에서 새가 날아가는 소리가 들린다.


아무래도 창문을 열어둔곳에 새가 날아든 모양이다.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벽에 걸린 교복을 입는다.


교복을 입는 와중 방 한켠 벽에 비치된 선반에 놓은 원래 어떤 색이였을지 가늠이 되지 않는, 자신의 플라스틱 명찰과 같은 플라스틱의 로봇 모형을 주시한다.


가슴한켠이 조여오는 느낌을 받은 그녀는 교복을 마저 입고 거실로 나온다.




방을 빠져나와 거실로 나오자 마지막에 사용한게 몇년전일지 아득히, 가늠이 되질 않는 티 컵과 테이블이 눈에 들어온다.




거실의 창가.


그녀는 창가로 다가가 그 옆에 놓인 2M 길이의 길쭉한 라이플을 집어든다.




조정간 안전에 위치한것을 확인후 방아쇠 울에 손가락을 올리지 않은체 총을 단단히 집은 그녀는 조준경으로 주변을 살핀다.


더이상 도시라고 보기 힘들정도로 폐허가 된 이 일대를 그녀는 천천히 주시한다.




오늘도 어제처럼, 또 그 어제처럼, 다시 그 어제처럼 아무일도 없이, 자신이 수명이 다할때 까지 이곳이 남아있기를 바라며.




그녀는 한 남자를 떠올렸다.




그녀의 가장 중요하고 소중한 친구.




그 친구가 영원한 안식을 얻은 묘소인 '이 곳' 을 지키는것이 아마 자신의 할 일이라 생각할 뿐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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