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슈팅스타 5화



"날씨 미쳤지 말입니다, 그래도 하계전투복 챙겨올 수 있어서 다행이지 말입니다"




브라우니가 풀숲에 어울리는 위장무늬가 그려진 구형 위장망토을 뒤집어쓴체 말했다.


역시, 같은 위장무늬가 그려진 구형 위장망토를 입은 노움이 맞장구 쳤다.




"사용자 설정에 따라서 시가전용으로도 색상과 무늬가 바뀌는 기능이 좋지만 더운건 맞아요."




"이런 겁쟁이같은 징표는 이 몸에게 필요없을지도 모른다."




LRL이 중얼거리며 위장망토를 펄럭이자 이프리트가 그 위장망토를 잡아당겼다.




"필요없으면 내놔, 내 박격포에 뒤집어 씌우게"




"그, 그럴필요 없다! 모두가 같은것을 입고있는데, 이 몸만 다른 것을 입고있기엔 이상하지 않겠느냐?"




"쉿, 목소리 낮추세요 LRL"




레프리콘이 약간 긴장한 표정으로 나지막히 말한다.




"우린 이제 오르카1호의 점령지역을 벗어나서 언제 철충을 마주쳐도 이상하지 않은 지역으로까지 넘어왔어요, 불필요한 대화는 삼가해 주세요."




가장 선두에 선, 방탄장갑판을 부착한 쓰레기통과 그 옆에 붙은 브라우니는 이따금, 수통의 물을 약간 들이켰다.




쓰레기통과 브라우니 뒤로 분대장 레프리콘이 LRL과 같이 따라가고 있으며, 그녀들의 뒤에는 전장감식 레이더를 부착한 깡통과, 그 깡통에 접이식 박격포를 얹어놓은 이프리트,


그리고 그녀의 옆에 같이 걷는 노움이 있다.




"그런데, 레프리콘"




LRL 이 레프리콘의 위장망토를 잡아당겼다.




"무슨일인가요?"




"만약 진짜로, 철충이 나타나서 싸우게되면 나는 아까 설명들은대로 하면 되는거야?"




LRL이 약간 불안한 표정으로 말하자 레프리콘은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우선 우리가 먼저 철충을 발견한 상황부터 다시 설명할게요."




레프리콘이 주변을 잠시 살펴보다 다시 입을 열었다.




"우리가 이동중 먼저 철충, 혹은 철충 무리를 발견했을 경우부터 설명하자면, 철충이 우리를 발견 못했을 경우를 전제조건으로..."




LRL이 약간씩 어려워 하는 표정을 짓자 이프리트가 킥킥대며 끼어들었다.




"그러니까, 철충은 우리를 못봤는데 우린 철충의 위치를 이미 알고있을때, 저 철충들을 상대해야할지 말지는 레프리콘이 결정할거야"




레프리콘은 끼어든 이프리트를 바라보곤 우선 이프리트 병장의 설명이 LRL에게 더 쉽게 들리지 않을까 하는 알 수없는 기대감이 생겨 조용히 있기로 했다.




"만약 우리가 상대하기 너무 벅차거나, 굳이 싸울 필요가 없다면 조용히, 그 자리에 자세를 낮춰서 그 철충들이 지나갈때까지 기다려야겠지"




이프리트는 깡통의 뒷부분에 매달아둔 자신의 군장의 한 부분에서 수통을 꺼내 뚜껑을 돌려 열기 시작했다.




"반대로 우리가 싸워야겠다 판단을 하면 순서는 이렇게되."




수통을 기울여 한모금 마신 이프리트는 뚜껑을 닫았다.




"우선 저기 저, 방패같은게 붙은 폴른보이지? 쟤가 쓰레기통, 그리고 그 옆에 바보같은애가 브라우니야, 레프리콘이 싸우자고 결정하면 저 둘이 앞으로 엄청 빠르게 뛰어나갈거거든?


그때 네가 철충 방향으로 빛을 쨘! 하고 쏘면 끝"




"빛?"




LRL이 고개를 갸웃이다가 금새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바뀌며 입을 열었다.




"아하! 큭큭, 이 몸의 '봉인되어있는 사이클롭스 이터널-빔' 을 말하는 것 이군.."




"맞아, 그 뭐시기 눈에서 만화같이 빔-! 하고 나가잖아 . . 그걸 쏴주면 쓰레기통이랑 브라우니가 철충에게 더욱 안전하게 접근 할 수있어."




레프리콘은 이프리트의 간단명료한 설명에 합격점이라 생각했다.




"역시 이프리트 병장님이지 말입니다? 머리나쁜 저도 알아듣는 눈높이 맞춤형 설명이지 말입니다"




브라우니의 말에 레프리콘은 약간의 불안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무언가 브라우니를 막아야 할것 같았다.




"LRL씨랑 똑같은 꼬맹이 체구다 보니 눈높이 맞춤이 완-전 자동으로 팍팍 나오지 말입니다!"




레프리콘은 막을까 말까 하는 그 찰나의 고민으로 결정을 망설이던 자신을 자책했지만 때는 이미 늦었다.


이프리트는 수통을 도로 군장에 넣고는 마저 말했다.




"엎드려"




". . 엎드리면 앞으로 걸어가지 못하지 말입니다"




브라우니가 자신이 말 실수 했다는것을 뒤늦게 깨닫고 엎드리려다가 갑자기 든 의문에 도로 엎드린체로는 앞으로 못간다 말하자




"동물처럼 기어서 가"




이프리트가 싸늘하게 말했다.




브라우니가 진짜 기어가야 하나, 하고 고민하는 사이 레프리콘이 브라우니의 입을 손바닥으로 찰싹 때렸다.




"브라우니 당신은 항상 입이 문제예요!"




이프리트 킥킥 웃고는 LRL에게 설명을 다시 시작했다.




"하여튼, 처음 빔을 쏴 주고는 너는 내옆에서 나를 도와주면 돼"




"뭘 도와주면 되는 것 인가? 이 '용살자의 징표', 그래 '드래곤-슬레이어' 로 어느 철충을..."




이프리트는 깡통의 후방에 군장들과 나란히 걸려있는 박격포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무슨소리야, 나랑 같이 저거 꺼내고 펼쳐서 쏴야지"




LRL은 이프리트의 한마디에 불길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깡통 뒤에 걸린 박격포를 살짝 잡아 들어보려 하지만 황당한 무게에 깜짝 놀란다.




"지, 짐이 꼭 도와야 하는 일이냐?"




"당연하지 너 그럼 뭐하러 온거야? 너도 그, 슈팅스타라는 존재를 꼭 직접 만나보고 싶어서 온거야 저 바보처럼?"




이프리트가 제일 앞에서 쓰레기통과 걷고있는 브라우니를 가리키자 LRL은 고개를 가로 저었다.




"나, 나는 . . . "




LRL이 불안해 하며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차. . 참치캔이 너무 가지고 싶어서. . "




LRL의 말에 잠자코 듣고있던 바로 옆의 노움이 현기증을 느끼는지 눈을 질끈 감았다.




"참치캔 때문에 슈팅스타 수색조에 지원한거야?"




이프리트는 조금 담담하면서도 걱정어린 말로 묻자 LRL은 고개를 약간 끄덕이며 답했다.




"사실 그리폰이 맨날 나 쓸모없는 구제불능 식충이라고 놀리고 무시해서 . . 그래서 나도 충분히 어려운 일 할 수있다는거 보여주려고. . "




레프리콘은 LRL의 말을 듣다가 풀숲의 한 중앙, 어지러이 늘어 서 있는 자동차들의 행렬에 분대가 도달하자 입을 열었다.




"우선 여기서 15분간 휴식했다가 다시 이동할게요, 모두 위장망토 전원 끄셔도 좋습니다"




휴식이야기에 브라우니는 기지개를 폈다.




"LRL, 잠시 이리 와 주세요"


레프리콘은 LRL의 등에 매여있는 커다란 무전기에서 수화기를 들었다.




"여기, 슈팅스타 수색조 유쾌한전사자 분대, 203대대 들리는지? 현 시간부로, 휴식 개시하겠음 이상"


[.. 아, 당소 203대대 대대 본부라 알리고 귀소측, 전달사항 확인하였음 이상]




"후아, 역시 위장망토는 계속 온도가 올라가고 잘 빠져나가지 않아서 많이 덥네요."


노움이 망토를 벗었다, 위장망토의 전원이 꺼지자 주변의 숲과 어울리는 위장무늬에서 그저 칙칙한 흑철색의 색상으로 바뀌었다.




"쓰레기통, 잠시 군장좀 볼게요~"




"군장확인 요청사항 확인."




쓰레기통은 자세를 낮추었고 브라우니는 그런 쓰레기통의 등 뒤에 매달린 자신의 군장에서 무언가 군것질 거리를 하나 꺼내는듯 했다.


레프리콘은 이 기회에 다시한번 교전당시에 취할 전술을 LRL을 포함해 모두에게 다시 알려주려 입을 열었다.


그녀는 작은 뾰족한 돌 하나를 집어들어 그녀들의 등 뒤에있는 넓적한 승용차의 본넷 위에 쓱쓱 긁어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자, 한번더 설명할게요! 평소와 같은 전술이지만 LRL씨의 합류로 아주 사소한 차이가 생겼어요"




여기저기 늘어서있는 수 많은 차량 행렬과 빼곡히 들어선 풀과 나무의 배경이 이질적인것을 생각하며 LRL은 본넷을 쳐다보았다.




"우선 우리가 철충을 상대해야 한다고 판단할 경우 우선 LRL씨가 제일 먼저 눈에서 빔을 쏘아서 철충들에게 조준능력을 빼앗아 버리세요"




LRL은 등에 맨, 묵직하고 커다란 무전기를 바닥에 내려놓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후에는 브라우니가 쓰레기통과 함께 철충쪽으로 돌격합니다."




브라우니는 초코바를 씹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돌격 너무 좋지말입니다, 쓰레기통의 방탄장갑 덕분에 안전하기까지 하지 말입니다"




브라우니는 자신의 소총 앞에 부착된 넓직한 총검을 손가락 끝으로 툭툭 건드렸다.




"이후, 노움상병님은 발포콘크리트 수류탄을 제 옆으로 던져주세요"




노움이 상냥한 미소와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콘크리트로 만들어진 간이 사로에서 제가 경기관총으로 앞서나간 브라우니와 쓰레기통을 엄호합니다."




레프리콘은 이어서 LRL로 생각되는 그림을 동그라미 쳤다.




"그 다음, LRL씨는 제 옆에서 무전기로 교전에 돌입했다고 아까 입력해둔 채널값으로 우리랑 가장 가까운 아군 기지인 203대대에 무전을 한 뒤에,


이프리트병장님이 계신 곳 까지 기어서 가시면 됩니다."




"그냥 나쁜 철충이랑 싸우기 시작했다고 말하면 돼?"




"레프리콘은 음~ 하고 잠시 뜸을 들이다가 입을 열었다.




"이렇게 말하는게 제일 좋겠지요, '여기, 슈팅스타 수색조 '유쾌한 전사자' 분대! 현재 적 철충무리와 교전을 개시했다!"




LRL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이때 쯔음이면, 이프리트 병장님이 깡통에게서 박격포를 빼서 설치를 시작했을 쯔음이예요, LRL씨는 깡통의 뒤에 매달린 목재상자를 열어서 박격포탄 한발을 꺼내서 대기해 주세요"




"LRL, 네가 꺼낸 포탄을 바로 내가 받아들어서 쏠거야"




"내가 포탄을?"




"아주 조심히, 떨어뜨리면 안돼요."




노움이 LRL의 머리를 쓰다듬자 LRL은 고개를 미소지어보였다.




"조금 무섭지만 나 할 수있어!"




레프리콘은 이어서 노움을 보며 입을 열었다.




"노움 상병님은 평소처럼 이후 이프리트 병장님 주변에서 후방 경계를 담당해 주시면 됩니다."




노움은 고개를 끄덕였다.






한 차례, 전술 설명을 끝마치고 다들 자리에 앉아 오랫동안 방치된 차량을 그늘삼아 태양을 피하는 유쾌한 전사자 분대의 정적을 깬 것은 브라우니였다.




"그런데 여기 숲 아닙니까? 왜 차량이 이렇게 많습니까?"




브라우니는 제법 비쌌을것으로 생각되는 스포츠카의 더러운 사이드 미러에 반사되는 자신의 얼굴을 보고 여러 표정을 짓고있다.




"그러게, 생각해보니 여기 숲 한가운데인데 차가 많네"




이프리트는 자신의 옆에있는 차량의 문짝을 톡톡 두드렸다.




"이상하네요, 잠시만요"




레프리콘은 지도를 꺼내 위치를 확인하기 시작했다.




노움은 자신의 바로 옆에있는 차량의 문짝을 열기위해 손잡이를 당겼지만 열리지 않았다.


그녀가 약간의 힘을 더 주자 문이 차량에서 떨어져 나오며 안을 들여다 볼 수 있었는데, 차량 안 시트에 앉아있는 자세인 백골이 무너지며 두개골이 바깥으로 떨어지려는것을


노움이 서둘러 문짝 통째로 밀어 도로 닫아버리자 이프리트와 LRL이 방금 무엇이 있었냐며 물어본다.


노움은 난처한 얼굴로 아무것도 없었다며 얼버무렸다.




"음 . . 여기가, 고속도로였네요?"




지도를 들여다보는 레프리콘의 한마디에 브라우니가 머리를 긁었다.




"무섭습니다, 이게 그럼 다 철충피해 도망치던 인간들이였다 그말입니까?"




"우와 진짜다 진짜 아스팔트다"




언제 빼앗은건지 이프리트는 LRL의 도끼로 땅을 파헤치자 부스러지고 있는 아스팔트의 일부분이 눈에 들어왔고 LRL은 도끼 돌려달라며 투닥거리고 있었다.




"언젠가 정말 머나먼 훗날, 오르카1호를 비롯한 우리가 철충에게서 승리한다면. . . 여기에 다시 고속도로가 생기지 않을까요?"




노움은 어느 차량의 위로 올라가 걸터앉은채로 중얼거렸다.




"이프리트 병장님이랑 노움 상병님은 전역후 무엇을 제일 하고 싶으십니까? 저는 고향에 있는. . ."




브라우니가 킥킥대며 말하자 노움이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그건 사망플래그니까 대답하지 않을게요."




노움이 말하자 이프리트도 이어서 입을 열었다.




". . . 왜인지 지구에서 철충을 모조리 밀어내고 인간이 다시 지구에 번영하는 순간보다 내 전역이 더 멀게 느껴져. . ."




어두운 이프리트의 목소리에 브라우니가 대답한다.




"3개월 정도 남지 않았습니까? 얼마 안남았지 말입니다 저는. . ."




브라우니는 자신의 남은 복무기간을 생각하는 사이 이프리트가 브라우니에게 말했다.




"넌, 전역하는것보다 우리들과 함께 다시 일어선 인간이 다시 멸종해서 사라지는게 더 빠를걸, 우리들이 찾는게 밤하늘을 밝히는


한줄기의 슈팅스타라면 넌 그냥 밤 하늘이야, 깜깜하거든. 앞으로 남은 군생활이 . . ."




브라우니는 슬픈 표정으로 어깨를 추욱 늘어뜨렸다.




레프리콘은 지도를 접어서 주머니에 넣은뒤,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 주변에 뭐 떨어뜨린거 없나 확인하시구요, 각자 탄입대, 소총 부속품, 장구류 떨어뜨리거나 분실한거 없는지 확인하세요"




뒤늦게 이프리트에게서 도끼를 되 찾은 LRL은 쪼르르 달려가 아까 내려놓은 무전기를 등에 다시 매었다.




"히잉, 이거 너무 무겁다"




"자 그럼 다시 출발 하겠습니다, 위장망토 전원 켜세요! 약 한시간 반 뒤 적당한 위치에서 점심식사 하도록 할거예요!"




레프리콘은 이어서 LRL의 옆으로 다가가 무전기의 수화기를 잡고 입을 열었다.




"여기, 슈팅스타 수색조 유쾌한전사자 분대, 203대대 들리는지? 현 시간부로, 휴식 종료후 다시 이동 개시하였음 이상"


[.. 아, 당소 203대대 대대 본부라 알리고 귀소측, 전달사항 확인하였음 이상]






쓰레기통과 브라우니가 힘찬 한발을 내딛었다.




그 뒤로 레프리콘과 LRL이 따라 걷기 시작했고, 귀찮다는 표정의 이프리트를 노움이 다독이며 따라간다.




"와아.. 우리 분대 파이팅이다..."




휴식때의 기운은 어디로 간건지 이프리트의 맥빠지는 말에 모두 킥킥거리며 풀과 나무, 그리고 자동차들이 늘어선 숲을 계속 걷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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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조림 하나를 들고 점심식사를 해결하려 뚜껑을 열려다가, 한켠에 쌓아둔 빈 물통들을 숫자를 세어본다.




" 아. "




오늘이 벌써 물을 가지러 가야 하는 날이였나, 최근들어 이 주변에 철충이랑 아직도 싸우는 바이오로이드 무리들을 스코프를 통해서 간간히 보게되었다.


분명 몇달 전까지만 해도 없었던 애들인데 어디서 나타난건지, 그저 작은 숫자의 무리들이 생존을 위해 돌아다니며 어쩔 수 없는 교전을 펼치는 것이 아닌


무언가 목적을 가지고 이 지역의 철충들을 싸그리 박멸하려는 움직임이다.


처음엔 스코프를 통해서 확인해도 아주 멀리, 폭발의 연기정도만 확인 하던 수준이지만 어느덧, 점점 가까워 지면서 특정 방향으로 전선을 밀고 나가는 것 같다.




나는 여기에 있는 사실을 알리고 싶지도 않았고 내가 해야할 일로 판단한 마지막 일은 내 소중한 친구의 묘소인 이곳을 내 생명이 다하는 순간까지 지킬 생각이기에


저들이 함께 하자 해도 할생각이 없다.




오히려 만일 나를 발견하고 이곳에 찾아온다면 그것이 나를위한 호의였던, 적개심을 가졌던 쫒아내야한다.




나는 배낭 두개를 등에 매고 바닥에 놓아둔 소총을 집어들었다.




이거다. 신세를 지고있는 저 길쭉한 레일건보다 처음 내가 태어나면서 집었던 이 화약식 소총이 손에 꼭 맞는다.


소총의 탄창을 결합 후 노리쇠를 전진시킨다.




나는 현관문에서 약간 떨어진 어느 방 앞에 다가 섰다.




" . . . "




똑똑 하고 노크를 두번 한다.




"오늘은, 물을 가지러 가는 날이야 조심히 다녀올께."




" . . . "




당연히 대답은 없다.




나는 현관문을 조심스레 열고 주변을 살핀 뒤 계단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이 주변으로 바이오로이드들이 철충과 작정하고 싸우고있다.


그래서 조용하던 이 주변, 불과 1km 를 걸어가는것도 상상 이상으로 매우 위험천만해졌다.




불과 8년전 까지만 하더라도 세 층 밑, 9701호에는 마지막까지 포티아가 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옆집에는 바닐라A2.


7907호에는 바닐라A1, 4008호에는 CS페로가, 2222호에는 아쿠아와 다프네가 살고 있었다.




모두 주인을 잃거나 철충의 대대적인 공세에 주인들이 버리고 간 경우도 있었다.


그녀들은 대부분 철충에게 복수한다며 되려 뛰어나가 소식불명이 된 경우도 있었고, 페로의 경우에는 지켜내지 못한 주인을 생각하다


스스로의 목을 매달기도 했었다.




결국 마지막까지 남았던 소수의 바이오로이드들은 피폐해져가는 삶과 한정되어있는 자원, 그리고 의견불일치


이 건물에 바이오로이드들은 나를 포함하여 모두가 서로 비난하고 싸우기도 했었고


그 끝에 이 건물에 남은건 나 혼자다.




이 영묘를 지키는건 나 혼자만으로 충분하다.




여태까지 그렇게 해왔다.








얼마간 걸어 주변에 다 쓰러져가는 마트에 도착했다.


먼지만이 흩날리는 마트안에 아직도 물건이 담긴체 녹슬어 점점 바스러져가는 쇼핑카트나 내용물이 홀로 사라져버린 과자봉투들, 그리고 흔적만 간신히 남은 일부 음식들.




소총을 잡은 손에 힘을 주고 나는 마트 안을 계속 돌아다닌다.


몇년, 몇십년간 오랜 세월동안 이 마트 안에 식수로 활용 할 수 있는것들은 모두 한자리로 옮겨두었다.


이제 이 마트에도 5L 드럼캔에 담긴 생수가 얼마 남지 않았다.


내가 활동을 극도로 제한한다면 일주일에 1L 면 충분할텐데, 이 마트가 일곱번째인 만큼 곧 여덟번째 새로운 마트를 찾아야 할것 같다.




나는 배낭에 5L 드럼캔을 집어넣었다.




물을 챙겨 자리에서 일어나 다시 걷기 시작한다.


그리고 마트의 바닥과 벽에 소총의 탄환이 여기저기 박힌 흔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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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여기서 제일 쓸모없는건 정원사입니다.


바닐라A2가 2222호의 다프네와 아쿠아에게 말하자 일주일에 한번, 반상회라는 명목으로 다프네, 아쿠아 자매의 집에서 열린




'제 3520회 그저 그런 재미없는 교류회' 에서 이제 진짜로 바닥나버리고 마지막 남은 식량 분배를 놓고 서로가 비난하고 싸우기 시작한다.




난장판이 벌어진다.


건물 안에서 남아있는 모든 식량과 식수가 동이났다.


1층부터 100층까지, 모든 집과 집을 돌아다니고 문을 부수고 들어가 쓸 수 있는건 모조리 챙겼다.


그 모든것이 이제 바닥난것이다.


특히, 이 건물의 25층에 존재하는 거주민 전용 마트의 물건마저 마침내 모두 소진된것이 모두에게 큰 심적 부담감으로 다가온 것이다.




-정원사가 쓸모없다지만 그렇게치면 주인에게 할것도 없는 메이드들도 쓸모없잖아!


뜯어말리는 다프네를 무릎쓰고 아쿠아가 바닐라A2의 뺨을 친다.




건물에서, 가장 리더격으로 분발하던 CS페로가 싸움을 말리려 하지만 바닐라A1는, 눈앞에서 주인이 죽게 내버려 둔 '경호원 실격'인 페로는 빠지라며 욕지거리를 한다.




페로가 처음으로 진심으로 화가난 표정으로 부들거리며 끝내 눈물을 흘리곤 자리에서 사라진다.




나조차도 바닐라들과 다른 자매들이 싸우는것을 원치않아 앞을 가로 막았지만 바닐라A2의 입은 계속 움직였


-유라, 당신도 페로와 다를것은 없습니다, 평소 사람인척 해왔던 당신이 가장 위급한 순간 주인을 지킬 경호원이라 들었는데, 결국 주인을 죽게 내버려둔거 아닙니까?




포티아가 바닐라A2를, 다프네가 아쿠아를 붙잡아 억지로 떼어놓는와중 멀찍이 떨어져있던 바닐라A1이 숨겨두었던 권총을 꺼내 아쿠아의 머리를 쏘아버렸다.




갑작스럽게 추욱 늘어진 아쿠아를 흔들며 다프네가 비명을 지르자 철충으로부터 거주지를 지킨다는 명목으로 가지고있던 소총을 집어든 바닐라 A2가 천장에 한발 쏘았다.


모두가 총성에 놀라 움츠러들때, 마지막까지 남아있는 최후의 공용식량인 식수 20L, 칼로리 바 25개를 배낭에 챙기기 시작했다.




-우리 둘은 떠납니다, 주인잃고 낑낑대는 바보같은 애견연극에 질렸습니다, 우리 둘은 생존성이 더 높아보이는 방향으로 가겠습니다.


바닐라 A1과 A2는 짐을 챙길걸 다 챙겼는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다 문득, 아까 아쿠아에게 맞은 뺨을 바닐라 A2가 슥슥 문질러 보더니 바닥에 누워있는 아쿠아의 시신에 소총을 몇발 더 쏘더니 비릿한 미소와 함께, 다프네 아쿠아 자매가


살던 2222호에서 빠져나간다.




최악으로 치닫는 상황, 말수없이 조용하던 나에게 이따금 꽃이라던가 정원가꾸는 법을 알려주고 행복해하던 아쿠아를 생각하니 나도 해야할 일이 생각났다.




-무엇입니까, 같이 떠나는겁니까? 그래도 상관 없지만, 이미 식량과 식수는 못 나눠줍니다.


바닐라A1이 따라나온 나에게 말했다.




나는 소총의 안전장치를 풀고 방아쇠를 당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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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을 가지러 가는 날마다, 마트의 주변에 놓인, 아마 인간과 철충과의 교전에서 생겼을 흔적을 볼때마다 오래전 일이 생각난다.




소총을 집은 손에 힘을 더 준다.


이 영묘를 지킬 존재는 나 혼자만으로 충분하다.


스스로에게 다독이며 발걸음을 옮긴다.


평소와 다를것 없는.


항상 똑같은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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