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슈팅스타 13화


관자놀이를 슥슥 눌러준다.




그리고 아주 가늘게, 눈을 떠보면, 책장앞에 한율이 서 있다.




" . . . "




오래되어 무너져내린 로봇 프라모델을 집어든 그가 내쪽을 향해 살짝 웃는다.




나는 눈을 다시 감고 고개를 약간 갸웃인다.




그리고 다시 눈을 뜨면 한율은 없다.




최근들어 점점 환각이라던가 환청이 잦아지고 있다.


드디어 미쳐버린건가 싶다.




벽에 기대어놓은 AUG-SPC 소총으로 눈길을 돌리자 불과 몇 시간 전에 나무에 고라니의 내장을 걸쳐놨던게 생각났다.




왜 그런짓을 한건가, 스스로 생각 할 수록 더욱 괴기한 행동에 두려움이 느껴진다.




"저기~"




문 너머로 브라우니의 목소리가 들린다.




내가 다시 문을 열고 나오자 브라우니가 내쪽으로 카메라로 생각되는 물건 하나를 들고 다가온다.




"헤헤, 사실 저는 슈팅스타를 만날 수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여기까지 왔지 말입니다"




"나를?"




"저는 다른 전우 자매들이 말하는 슈팅스타에게 도움을 받았다던가, 직접 목격한 건 없었지만, 그래도 우릴 도와주는 히어로라고 쭈욱 생각해왔지 말입니다"




그녀가 카메라를 들어올렸다.




"혹시 괜찮으면 사진 괜찮겠슴까?"




카메라.


멸망전쟁 이전에도 한번도 본 적 없는 구형.


저 카메라는 얼마나 오래된 물건일까.




" . . . 상관, 없어"




사진을 마지막으로 찍은게 언제였나 생각해 볼 무렵, 브라우니가 모두를 불러 모아서 거실에서 찍으려는지 거실의 한켠, 선반에 올려두고 5초의 타이머 후 찍힐 사진을


미리 예상하고있다.




"찍슴다! 모두 바짝 붙어주시지 말임다!"




반짝 하고 카메라의 플래시라이트가 터진다.




이 건물에서의 나날이 슥 지나간다.




처음, 여기 같이 있던 모두가 죽거나 떠났다.


아무도 없는 이 건물에 나는 아직 여기에 있다.




모두가 간단한 샤워를 마치고 거실에 둘러앉아있다.




벽에 기댄체 그녀들의 행동을 관찰한다.




감시하는 행동이라기 보다는 그저, 정말 오랜만에 나를 제외한 다른 존재가 이 집, 이 건물에 찾아온것이다.




"옥상, 확인할 수 있을까요"




레프리콘이 내게 말을 걸어왔다.




"옥상?"




"네, 미안하지만 우리들은 원래, 슈팅스타라고 칭해진 당신을 찾고 가능하면 오르카1호에 합류하게 하는게 목표였지만 합류하실 생각이 없다고 하셨죠"




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우리는 할 수 있는 임무를 해내었으니 날이 밝고 아침이나 점심쯔음에는 복귀하겠죠, 복귀하는 방식이 아직 정해지지 않았지만 복귀하기 전 기초적인 보급은 있어야 하죠"




레프리콘은 손가락을 들어 하늘을 가리켰다.




"이 부근, 우리의 소속 203대대가 있어서 거기서 인원들이 보급물품을 가지고 올 겁니다, 혹시 뭐 필요한거 없나요? 분명 나눠드릴만한건 있을거예요"




하늘에서 보급품목을 가져온다, 정말 멸망전쟁 이후 처음으로 보는 본격적인 단체라 할 수 있을 것 이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현관문으로 향했다.


그런와중, LRL 이라는 꼬마가 현관문에서 가장 가까운 문앞에 서 있는걸 보았다.




". . . 미안하지만, 그 문을 열면 안돼"




내 목소리에 LRL은 깜짝 놀라며 뒤 돌아 우리를 보았다.




"미, 미안하다! 이, 이,이 이몸 께서 흥미를 가지는 바람에!"




기이한 말투지만 나는 LRL 의 목소리에 고개를 끄덕이고는 현관문을 열고, 문 옆으로 난 옥상으로 향하는 계단으로 올라갔다.




새까만 하늘에 조용한 공기.




옥상에 도착한 레프리콘은 무전기를 가지고, 이 건물의 옥상을 설명하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한다.


옥상에 올라오는것도 오랜만, 별 의미없는 심호흡을 해봤다가, 스스로도 왜 했는지 약간 의문을 품고 반성한다.




무전을 끝내었는지, 레프리콘이 다가온다.




"경치가 좋네요"




레프리콘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다시 묻지만, 유라씨는 멸망전쟁 이전부터 살아온거죠?"




". . . 2081년부터."




레프리콘은 내 말에 손가락 몇개를 움직이다가 이내 그만 둔다."




"정말 오래되었네요, 브라우니에게 설명하려면 고생할겁니다"




레프리콘은 주머니에서 비닐포장이 된 초코바를 꺼내어 내쪽으로 건내었다.




아, 정말 오랜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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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RL, 아까 유라씨가 한 말 잊었나요? 들어가선 안돼요"




노움이 거실에 앉아 타올로 머리의 물기를 닦아내며 말했다.




거실의 소파에는 작은 체구만큼이나 물기를 금새 닦아내고 새 군복으로 갈아입은 이프리트는 자고있었다.




"이 진조의 피가 가리키고 있다! 이 문 너머에 거대한 진실이 있도다!"




LRL은 잔뜩 긴장한 표정으로 현관에서 가장 가까운 문, '그 문' 앞에 서 있다.




브라우니도 슬쩍, LRL의 옆에 섰다.




"솔직히 궁금하긴 하지말입니다?"




LRL과 브라우니가 서로 마주보더니 문고리로 손을 뻗는다.




"잠깐만요, 정말 열 생각인건 아니죠?"




노움이 다가오자 샥, 자세를 바꾸어 노움을 막는 자세가 된 브라우니.




"LRL! 이 앞은 내가 막을테니 진리의 문을 열어주시기 바랍니다!"




브라우니의 외침에 비장한 표정의 LRL이 말했다.




"큭, 이 진리의문 너머, 설령 숱하게 많은 참치가 있을지더라도 브라우니 너를 잊지 못할거야!"




LRL이 문고리를 잡고 돌렸다.




"잠깐! 진짜로 그만두는게 좋아요!"




노움이 말하며 LRL을 막으려 하지만 브라우니가 힘껏, 노움의 접근을 막는다.




오랫동안 열리지 않았던 방의 문이 개방된다.




모든 창문을 막아두고 최소한의 불빛으로만 집안을 밝힌것과 달리, 딱히 켜둔 불이 없는 방안, LRL이 자그마한 랜턴을 들고 안으로 들어선다.




먼지가 쌓인 방안에는 LRL의 발자국이 하나씩 남는다.




정말로 , 아득한 오랜 기간동안 아무도 출입하지 않았는지 바닥과 같은 양의 두께로 쌓인 먼지가 책상과 침대에도 쌓여있다.




"와아. . ."




LRL의 감탄을 자아낸것은 이 방의 벽이였다.




벽면이란 벽면에는 빼곡하게 홀로그램 포스터가 붙어있었다.




이런것을 LRL은 어렴풋이, 그녀가 태어난지 얼마안돼었을때 등대로 보내지기 전에 인류의 사회에서 본 것 같은 기분이였다.




LRL의 빛에 반응하여 유라와 이상하리만치 닮은 캐릭터, 오오카미 소라의 홀로그램들이 움직인다.




그외에, LRL이 등대에서 오랜세월동안 정독한 만화의 주인공이라던가 혹은 오르카1호에서 때때로 그리폰이 주워다 주는 멸망전 인류의 만화책등에서


본 것 같은 캐릭터들이 한 가득이였다.




"보물창고, 아니 진리의 문이 맞았도다!"




LRL은 한껏 들뜬 목소리로 ' ㄴ ' 모양으로 두가지의 벽면을 가득 채운 방대한 량의 책장에 꽂힌 만화책을 보며 외쳤다.




"어서 나오세요! 들어가지 말라 한건데 왜 들어간건가요!"




브라우니도 체격차이를 극복하지는 못하는지 노움이 힘껏, 브라우니를 떼어놓자 결국 브라우니도 바닥에 자빠진다.


노움이 방 안으로 들어온다.




만화 책장을 둘러보던 LRL은 마지막으로, 방의 가장 안쪽에 놓인 나무로 된 거대한 상자를 보게되었다.




"이 안에, 이 진조가 찾던 진리가 들어있을 터!"




노움이 서둘러 LRL을 붙잡지만, LRL이 나무상자를 열고말았다.




"어?"




LRL이 상자 안을 조심스레, 비춰본다.




상자의 안에 있는 무언가에 LRL이 랜턴을 바닥에 떨어뜨리고 노움도 LRL을 붙잡아 바깥으로 나오려던것을 잊고 그대로 얼어 붙는다.




LRL이 경직된 표정으로 몸을 움직이지 못한다.




노움도 떨리는 손으로 LRL의 랜턴을 집어들고, 다시 상자 안을 비추어 보았다.




상자안에는 LRL이 기대한 만화책이나 장난감은 없었다.




상자 안에는 오롯이, 인간의 뼈들만 가득 들어있었다.




LRL은 노움이 상자안을 비추는 빛 덕분에 상자안 두개골과 눈이 마주친것 같았다.




"꺄아아아악!!!"




LRL이 비명을 지르고 벌벌 떨기 시작했다.




노움은 이를 악물고 랜턴을 끈 뒤, 방을 빠져 나오기 시작했고.




마침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는 레프리콘과 유라와 마주쳤다.




"미안해요, LRL을 막지 못했어요"




노움의 당황하는 기운이 역력한 말에 레프리콘이 어떻게 할까, 하던 찰나, 유라의 얼굴이 평소와 다를 것이 없지만 분명 엄청나게 화가난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유라씨, 미안합니다!"




레프리콘이 유라를 향해 사과를 했지만, 유라는 듣는 시늉도 하지 않고 천천히, 그 방으로 향했다.




"노움 상병님, 어째서 LRL이 멋대로 행동하게 내버려 두셨나요!?"




레프리콘이 묻자 노움의 대답보다 더 빠르게 브라우니가 침울한 표정으로 끼어들었다.




"죄송함다, 제가 노움상병님 막는 사이에 LRL씨가 방문을 열고 들어갔지 말임다."




레프리콘은 하늘이 빙글 돌면서 피가 거꾸로 솟는것 같았다.




레프리콘은 브라우니와 노움, 그리고 아직도 겁에 질린 표정으로 바닥만 바라보는 LRL을 뒤로한체, 유라를 향해 움직였다.




방에 들어갈지, 말지 고민하며 슬쩍, 안을 들여다 본 레프리콘의 두 눈에 비춰진것은 창문으로 세어들어오는 달빛 아래 거대한 나무 상자 옆 유라가 침통한 표정으로 서 있다.




레프리콘이 방 안으로 들어가 사죄를 표할지, 한번 더 생각하던때 상자 안에 있는 내용물이 눈에 들어왔다.




인간의 유골.




[알거같네, 너, 원래 주인을 못잊어서 거기에 죽을때 까지 남아있기로 한거구나?]




아까의 레오나의 무전이 머리를 스쳐 지나간다.




어쩌면.


저 유골이.




유라가 이쪽을 돌아본다.




". . .왜 여길 들어온거야?"




항상 무표정이던 그녀의 얼굴에 조금 다른, 슬픔이 느껴지는 표정을 읽을 수 있었다.




"분대원의 잘못을 어떻게 용서를 구할 지 할 말이 없어요, 미안합니다!"




유라는 이내 자신의 양 손으로 눈을 가리고 괴로운듯 미약한 신음소리를 내며 고개를 뒤로 젖히곤 한참을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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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정말 미안합니다 유라씨"




레프리콘이 아직도 고개를 숙이고 사과하자 유라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인다.


눈에는 눈물자국이 약간 남아있지만, 이미 표정은 평소의 무표정으로 돌아가 있다.




옥상에서 난간에 기대어있는 분대원들과 유라는 그저 묵묵히 유라가 무언가 말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 . . 방 안에 있던 거, 무엇인지 알겠지?"




그녀의 물음에 분대원들은 침묵한다.


아마 대부분 짐작은 하고 있을 것이다.


특히, 아까 있던 레오나 대장의 무전을 떠올리면 더더욱 그렇다.




". . . 내 '친구' 야"




주인이라 칭하지 않은점에 노움이 조금 이상하다 생각하고 있다.




"알려줄게, 내가 어떤 바이오로이드였는지."




아직, 203대대에서 보급품목을 가지고 오기까지는 20분이 조금 넘게 남았다.


레프리콘은 고개를 끄덕였다.




"삼안에서 만들어진 나는 사회에서 인간인 척 하며, 흔히 주인 이라 칭할 대상에게 친구가 되어주는 바이오로이드였어"




"사회에서 인간인척? 바이오로이드라고 밝히지 않는다구?"




쇼크에서 벗어난건지 LRL이 끼어들었다.


그녀의 질문에 유라가 고개를 끄덕인다.




"나를 사람이라고 착각해서, 나를 바이오로이드라고 생각조차 못할, 그런 친구."




그녀가 잠시 뒤 이어서 말했다.




"멸망전 인류사회에선 바이오로이드는 끔찍한 대우를 받아왔지, 나랑 똑같은 개념으로 만들어진, '비밀친구' 바이오로이드들이 사회에서 사람이 아니란것이 들통나고


마녀재판 받듯이 참살당하는 와중에 내 '친구' 는 내가 바이오로이드란걸 알아채고서도 평소와 똑같이 대해줬어, 그래 아무일 없다는듯이 말이야"




그녀의 눈에 그리움이 느껴진다.




"정말로, 진심으로 좋아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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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여기, 203대대 야간 수송단 익스프레스76입니다, 들리나요]




옥상, 유라의 이야기를 한참듣고난뒤, 때를 맞춘것 마냥 익스프레스의 무전이 들려왔다.




". . 여기, 레프리콘, 잘 들립니다"




[네 좋아요, 상세위치를 정해주지 않겠어요? 곧 상공에 도달합니다~]




익스프레스76과 일부 야간 수송단 인원들이 곧 도착하는것 같다.




레프리콘이 자신의 적외선 랜턴을 들고 하늘을 향해 천천히 휘두른다.




그래도, 화해가 되었는지 LRL이 유라랑 바짝 붙어앉아있다.




다행이려나, 하고 하늘 어디서 접근할지 두리번 거리던 나에게 이상한게 목격되었다.




잔해 어디선가, 빠르고 빛나는 무언가가 날아간다.




뭘까 저게, 하고 생각하던 사이.




하늘에 떠있던 무언가를 관통하고 파란빛을 내뿜으며 하늘로 계속 날아간다.




[맞, 맞았다!! 맞았어요!!! 아앗!]




익스프레스의 갑작스러운 목소리에 모두가 당황한다.




불길에 휩싸인체 익스프레스가 자세를 제어하지 못하고 추락하기 시작한다.




[추락합니다!]




제어불능 상태로 회전하듯 어디론가 추락하는 익스프레스의 뒤로, 하늘에 큰 폭발이 일어난다.




"슈팅. . . 스타?"




브라우니가 자리에서 일어난다.




[익스프레스가 추락한다!!!!]




야간 수송단 인원들의 당황한 목소리가 계속 울려퍼진다.




[메이데이! 메이데이! 나 진짜 추락. . .]




불길에 휩싸인체, 멀리 어딘가로 사라져버린 익스프레스를 망연자실하게 쳐다보던 분대원들, 모두가 갑작스러운 상황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분명, 익스프레스를 공격한 빛은, 슈팅스타의 목격담과 똑같은, 파란색의 날아드는 한줄기의 빛과 같았다.




모두가 갑작스럽게 변하는 순간들에 제때 반응을 못하고있었다.




[203대대! 여기 야간 수송단! 수송단 단장이 미상의 적으로부터 격추되었다!]




레프리콘이 더욱 세차게 옥상에서 랜턴을 움직인다, 허공에있던 익스프레스가 격추되었다,




지금 하늘에 존재하는 다른 인원들이 안전하리라는 보장이 어디에도 없었다.




"지금, 슈탕스타랑 똑같지 않았어. . . ?"




이프리트가 중얼거리자 모두가 천천히, 유라를 응시했다.




이 상황에 설명이 필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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