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 한숨이 속에서 뿜어져 나온다.


힘없이 머리를 책상에 툭 놓우며 사령관은 눈을 감았다. 지휘관들과 면담을 하면 할수록 오르카 호에 들려오는 괴담보다 더한 괴담같은 사실들이 튀어나오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도도해 보이던 철혈의 레오나는 사실 자기 물건을 소체별로 본따 만든 딜도로 밤마다 외로움을 달래질 않나, 불굴의 마리는 기왕이면 작은 소체의 물건을 따서 하나 가지고 싶다고 하질 않나. 그 뒤로 들어온 지휘관 급 개체들의 면담은 더욱 더 가관이었다. 라비아타는 딜도보단 복면을 쓴채 사령관을 범하는 역전관계의 망상을 즐긴다고 토로하고, 포츈은 이미 자기가 개발한 기계식 딜도로 밤을 즐기고 있다고 한다. 한술 더 떠서 무적의 용은 호라이즌 아이들의 제복을 자기 사이즈로 한벌 더 주문해서 항시 준비중이라고 한다.


점점 자백보다 고해성사가 되어가는 면담에 사령관의 정신이 서서히 흐려지는걸 느끼고 있었다. 요즘 밀려드는 업무량 때문에 밤에 그녀들을 안아주지 않은게 원인이겠지. 생각해보니 이 모든 일들이 전부 자기 잘못인거 같아 죄책감이 들기 시작한다.


"...몇명 남았지..."


한숨 사이로 사령관이 흐릿한 목소리를 내어 중얼거린다. 그러고보니 꼭 지휘관급에서 그 일을 벌였다는 보장도 없었다. 지휘관들이 아니라 그 휘하 아래 있는 아이들 중 한명이 그 짓을 했다면? 괜히 애꿎은 지휘관들만 불러서 훈계했다 나중에 범인이 밝혀졌을때 그녀들의 신뢰라도 떨어지게 된다면? 이 모든게 사실 닥터가 자신의 뇌를 통 속에 가두고 전기 자극을 줘서 괴롭히는 것이라면?


이상한 상상까지 가며 두통이 엄습해오는 사령관의 어깨 너머로 문을 두어번 두드리는 소리가 들린다.


"사령관. 있나?"


"...들어와."


곧이어 문이 열리면서 함장실로 들어온 사람은 앵거 오브 호드의 지휘관인 칸이었다.


"아까는 그렇게 인상을 쓰며 잡아먹을듯이 호통을 치던 당신이 어째 다 죽어가는 브라우니마냥 기운이 빠져있군."


생기없는 목소리로 사령관을 쏘아붙이던 칸은, 그러나 여전히 반응 없는 그의 모습에 살짝 헛기침을 하더니 의자를 당기어 앉는다.


"...많이 힘들거라고 생각한다. 사령관."


조심스레 그녀가 그의 손을 부드럽게 잡는다.


"오늘 사태도 그렇고, 저번 마리 소장과 지휘관들이 당신을 불러 그렇게 질타하고 힐난한거에 대해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있을거라 생각한다."


평소 칸이 보여주던 모습과 달리, 조용하고 부드럽게 사령관을 안아주는 것만 같은 목소리에 그가 천천히 고개를 들어 그녀를 바라본다.


"미안하다. 소장들이 그렇게 이야기할때 짐짓 나서지 않고 있어서."


"...크시케..."


미안해하며 그를 바라보는 칸을 사령관은 그녀의 진짜 이름을 부르며 살짝 눈물을 머금은 눈동자로 바라본다.


"...그래서 할 이야기가 있다. 좀 충격적일지도 모르겠지만 그래도 사령관이 알아야할 것 같아서 말이다."


눈을 감은 칸의 모습에 사령관은 문득 불안함이 등 뒤를 엄습해오는 것 같았다. 한번도 보여주지 않았던 칸의 불안한 표정. 사령관은 침을 꼴깍 삼키며 그저 그녀를 바라볼 뿐이었다.


"첫번째로."


긴 침묵 끝에 칸이 입을 열었다.


"그 딜도. 한개가 아니다."


"뭐?"


방금 잘못 들은건가? 사령관의 동공이 줄어들기 시작했다.


"말했지만 그 딜도는 한개가 아니다. 최근 오르카호가 상당히 바빴던건 나도 알고, 당신도 알고 있을 것이다. 당연히 밤에 동침 할 시간은 더더욱 없었을 것이고. 소장들도 여자들이다. 당연히 성욕이 쌓일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래서 그들 중 가장 마지막으로 동침한 소장의 데이터를 토대로 당신의 물건을 본 따 딜도를 만들어내었다."


새빨개진 얼굴로, 그러나 당당한 목소리로 판도라의 상자를 연 칸의 모습에 사령관의 정신이 오르카호를 벗어나려 하고 있었다.


"물론 나도 하나 가지고 있다. 지휘관급 개체들은 하나씩 가지고 있을거고. 오늘 아침에 창문에 붙어있던 그 딜도는 아마 레오나 소장의 것일거다. 안그래도 점호 준비때 자기 딜도가 없어졌다고 안절부절 못하더군."


"...그러니까 정리하자면...마지막에 나랑 섹스한 녀석이 자기 안으로 들어왔던 내 물건을 토대로 딜도를 설계하게끔 했고, 브라우니 찍어내듯 그걸 지휘관 개체 수대로 찍어내서 하나씩 가지고 있는데 그 중 하나가 레오나꺼란 말이냐...?"


칸은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오르카 맙소사..."


사령관의 몸에서 힘이 빠지며 의자에서 주르륵 내려 앉았다. 그러고보니...마지막으로 섹스한게 마리였지...이 자식, 아깐 그렇게 아양 떨면서 내가 안아주니까 그런건 필요없다고 하더니.


마리의 배신에 사령관의 두 주먹이 부르르 떨리기 시작했다.


"...미안하다. 내가 좀 더 빨리 이야기했어야했다."


"네 잘못은 아...니라고 하긴 그렇군. 생각해보니 너도 공범이었어."


"질타한다고 당신을 원망하진 않겠다."


"...됐어. 이 사건의 원인을 알았으니 이정도면 된거야."


두 주먹을 펴며 사령관은 한숨을 길게 토해내며 눈을 감았다. 그런 그의 모습은 칸이 보기엔 마치 열반에 도달한 스님과도 같았다.


"...그리고 하나 더 이야기할게 있다."


"......?"


칸은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뒤적거리더니 사령관의 앞으로 살며시 내밀었다. 지난번 해변가에서 스프리건이 자신에게 건네준 SD카드와 비슷하게 생긴 물건이었다.


"탈론페더가 도움이 될거라고 하더군. 그 안에 사령관이 찾는게 있을거라고 했다. 보답을 하고 싶다면 다른건 필요없고 나와 같이 자달라고 하더군."


말을 마친 칸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사령관은 그저 말 없이 그녀가 건네준 SD 카드를 만지작거릴 뿐이었다.


"...난 언제든 준비되어있다. 당신이...당신이 날 원한다면 말이다."


마지막은 부끄러운듯 말을 흐리던 칸이 면담실의 문을 열고 자리를 떠났다.









"...왜 그랬냐?"


한참의 시간이 흐른 후, 사령관은 지휘관들 중 단 한명을 제외하고 전부 소속 부대로 돌아가라고 명령하고는 사건의 범인을 면담실로 불렀다.


"......"


"설마 네가 그럴줄은 몰랐는데...아니 정말 의외라고 해야하나?"


사령관의 질타에도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손가락을 꼼지락대며 새빨개진 얼굴로 그를 힐끔힐끔 쳐다볼 뿐이었다.


그는 재차 이야기를 꺼내는 대신, 패널을 그녀 쪽으로 돌리고는 버튼 하나를 눌렀다. 곧 영상 하나가 패널 전체를 뒤덮으며  야릇한 신음소리가 스피커 사이로 흘러나오기 시작한다.


"아흣...사령과안...아앙...읏...하으읏..."


"읏으읏...아항...휘저어져어...아응..."


질척거리는 소리와 함께 복도 내에서 추잡하게 엉덩이를 흔드는 지휘관 개체의 모습. 고개를 떨군 당사자는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트릴듯 입을 꽉 물고 있었다.


영상을 정지시킨 사령관이 한숨을 토해내며 이마에 손을 짚는다. 당장이라도 패널을 집어던지며 목에 핏대를 세우고 싶었지만, 앞에 앉아 있는 그녀를 보니 그럴 힘도 사라져버릴것 같았다.


대신 사령관은 자리에 일어나 의자를 끌어다 그녀의 바로 앞에 갖다대고서 마주 앉았다.


"......메이."


사령관이 그녀를 부른다.


"...뭐라 안할테니까. 왜 그랬는지만 좀 이야기해봐."


예상 외의 부드러운 목소리에 메이는 결국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