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삐이이이이이]


사이렌 소리가 거대한 지하 벙커의 적막을 걷어냈다.


다급한 통신이 이어졌으나 극심한 노이즈로 알아들을 수 없는 전파음만 남기고 끊기고 말았다. 기지 제어 AI 이지스가 많은 메시지를 출력했다.


“적들이 베리어를 공격하고 있군”

“우리 사령부 위치를 알아챈 것 같아. 역으로 데이터를 추적당했어 배리어도 얼마 버티지 못할 것 같아”

“다른 소대와의 연락은?”

“끊겼어”

“전부?”

“현재 나가있는 소대는 전부, 남은 소대는 잔류해있던 5, 8소대와 본부 병력뿐이야”


상황이 좋지 않았다. 몇 개월 간 게릴라로 철충에게 큰 피해를 주고 있었으나 그것도 이제 한계였다. 그렇게 전황을 뒤집기에는 적의 숫자가 너무 많았다. 신경질적으로 타는 듯한 붉은 머리칼을 만지작거리던 메이는 버튼을 툭툭 건드리며 말했다.


“사령관. 이제 승인을 내려. 이렇게 가다간 전부 끝장이야. 휩노스 병에 걸릴 시간도 없겠는 걸?”

“안된다”


메이는 사령관을 쳐다보았다. 참으로 한심한 남자였다. 그가 무엇을 걱정하는지 알고 있었다. 미처 피하지 못한 민간인들이 걱정이겠지. 하지만 전쟁에는 희생이 따른다. 그들은 사설무장단체였고 민간인의 희생은 우스울 지경이었으나 그의 사령관은 단 한 번도 메이에게 열화학병기의 승인을 내린 적이 없었다. 그것은 그녀의 존재 가치를 부정하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우리에게 남은 건 핵무기 밖에 없어. 그걸 사용하지 않겠다는 거야?”

“민간인이 희생할 필요는 없다. 또한 핵무기를 사용하지 않겠다는 것이 아니야. 아직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 뿐이다. 배리어의 상태는 어떻지?”

“32%”

“배리어를 해제해라. 적을 최대한 벙커 내부로 끌어들인다. 지하 사령부까지 적이 도달하면 열병기 사용을 허가해주마”

“처음이자 마지막 불꽃놀이가 되겠는 걸?”


그녀가 시니컬하게 중얼거리며 웃었다. 그녀는 설계 자체가 인류의 죄책감을 덜어주는 판단을 돕도록 만들어졌고 드디어 가장 중요한 역할을 맡는다는 것이 기뻤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다른 긴장감이 엄습했다. 메이는 잘게 손을 떨었다. 그녀의 손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남자가 말을 이었다.


“탈출용 함선을 출발 대기 시켜라”

“알겠어”



시간은 빠르게 흘렀고 어느새 탈출 포트 앞에 선 그들이었다. 대부분의 병력들은 적들을 유인하러 나간 상황이므로 포트 앞에는 나이트 호크와 메이, 사령관뿐이었다.


“사령관. 지금 출발하려는 거야?”

“물론. 지금 출발해야 폭발 범위를 벗어날 수 있다. 이제 적들은 지하 사령부에 거의 도달했어”


메이는 그녀 답지않게 머리카락을 베베 꼬았다. 아주 어릴적, 사령관이 그녀를 맡게 되었을 적에나 했던 행동이었다.


“하고 싶은 말이 있나?”


우물쭈물 하던 메이가 말했다.


“담배 좀 적게 피라고, 바이오로이드들도 죽어 나자빠지겠어. 술도 좀 적게 마시고”

“네 앞에서 피운 기억은 없다만?”

“평소에 말이야!”


메이는 소리를 빽 하고 질렀다. 마지막까지 마음에 들지 않는 남자였다. 고지식하고 속터지는 남자. 농담 하나 받아줄 줄 몰랐다. 하지만 더 이상 보지 못한다는 것에 마음 한켠이 아렸다.



서로 짧은 작별인사를 뒤로 하고 함선은 물살을 가르며 나아갔다. 통신은 계속 이어져 있었으므로 소규모 작전을 지시받고 부대원들에게 전달했다. 그러나 오래 전달 할 필요는 없었다. 소식으르 받을 자들이 줄어들고 있었으므로. 잠시 후 배와의 통신이 끊겼다. 은폐 모드에 들어갔다고 생각했으므로, 메이는 마음을 다잡고 스스로 부대원들을 지휘하기 시작하였다.



포화 소리는 점 더 가까워졌다. 메이는 꺼져가는 통신 채널들을 보고 있었다. 들려오는 신음소리, 선명한 단말마의 비명소리가 그녀의 귓가에 메아리쳤다. 마지막 부대원과 통신이 끊어지자 그녀는 자신의 감정을 더 이상 감출 수 없었다. 그녀의 손이 다시 떨려왔다.


“너무 두려워......! 이런 곳에서 죽고 싶지 않아, 희생하고 싶지 않아, 사령관이 나를 잊진 않겠지? 나이트호크?”

“나이트호크. 메이의 의식을 끊어라”


메이가 의문을 품은 소리를 내뱉기가 무섭게 나이트 호크가 달려들어 메이의 전기 신호를 강제 차단시켰다. 원격으로 절대 명령 코드를 입력당했기에 즉각 반응할 수밖에 없었다.


“사령관님....! 은폐 모드에 들어가신 게 아니였습니까? 도대체 왜 이런 명령을?”

“변덕이라고 해두지”


나이트호크는 이해할 수 없었다. 그는 부하들에게 미리 모든 계획을 설명해주는 사람이었고 한번도 강제 명령코드를 입력한 적이 없었다.


“미끼가 없으면 탈출이 불가능해. 적은 지상형 유닛만 데리고 온 게 아니야. 하도 시달렸는지 비행형 유닛을 잔뜩 데려왔더군. 하지만 위장 모드를 해제하여 내 생체 신호가 감지되면 내쪽으로 올거다”

“적들을 유인하시겠단 말씀이십니까?”

“그 틈에 탈출해라. 명령이다.”

“사령관님. 그것은 잘못된 판단입니다. 바이오로이드에게 명령을 내릴 인간의 수가 줄어들고 있습니다. 하물며 사령관님과 같은 경험을 쌓은 사람은 드뭅니다. 명령을 철회해 주십시오”

“어차피 죽을 목숨이었다”


나이트 호크는 깨달았다. 어째서 경험많은 그가 기지의 위치를 노출시키는 실수를 한 것인지. 또한 전염병이 그들의 사령관을 비껴나가지 않았다는 것을


“예 알겠습니다. 지금 이탈하겠습니다”


나이트호크로의 통신이 끊겼다. 잘 빠져나갈지는 알 수 없었다. 스텔스를 찾아내는 기술은 철충놈들도 가지고 있었으므로. 그러나 생체 신호가 감지된다면 대부분의 병력들은 이쪽으로 빠질 터였다.


“우습군”


자조적인 웃음이었다. 그가 희생시킨 바이오로이드와 사람들이 얼마나 되던가? 아마 셀 수도 없을 터였다. 정보를 누출시킨 것도 자신이 사망하기 전 최대한 적들에게 피해를 주기를 위함이었다. 그의 병력들은 모두 철충과 싸우다 죽어갔다. 자신이 당하면 어차피 희생될 목숨들이었으나 그것을 앞당긴 것은 자신이었다. 그런데 메이 하나를 따로 빼낸다? 나이트 호크가 아무리 빠르더라도 폭발 범위를 벗어나긴 힘들 터였다.


‘살아남길 비는 수밖에’


그는 블랙 리버의 몇 안되는 사령관이었으므로 하늘에 기도하는 일 따윈 있지 않았다. 모든걸 계산하고 처리하는 그의 스타일과는 정반대의 선택을 한 것이었다. 그는 뒤늦게 깨달았다 자신은 민간인이 죽는 것을 걱정하지 않았다는 것을, 그는 자신의 죽은 딸과 닮은 바이오로이드가 사람을 해치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을 뿐이었다. 마지막에 와서야 솔직해질 수 있는 답답한 사람이었다. 그는 어린시절, 장래희망에 적었던 꿈을 기억해냈다 ‘좋은 아빠가 될래요’ 이번 생엔 실패한 듯 싶었다.


“좀 더 빨리 결정했다면 좋았을 것을”

“사령관. 열화학무기의 사용 승인 코드를 입력해주십시오”


이지스의 통신이 그의 상념을 끊어냈다. 그는 자신이 할 일을 기억해냈다.


“알겠다 코드는....MHQ3PPRU92UF77FM"


기지에서 강력한 폭발이 감지되었고 몇분 후 강렬한 열 폭풍이 그의 함선을 덮쳤다.



코드 하나 재밌게 뿌리려다가 글 길게 써버림


잘써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