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물] 라오 문학) 수영교습

ㅇㅇ



  바캉스를 보낸 부대원들의 요청으로 수영장을 만들었다. 잠수함의 한계상 청소년용과 성인용밖에 만들질 못해 깊이 잠수하는 걸 좋아하는 트리... 는 많이 아쉬워했지만, 그래도 대다수의 반응은 만족에 가까웠다.




  실제로 LRL과 코코가 주에 몇 번이고 수영장을 방문해줬다. 안전요원으로 활약 중인 프로스트 서번트와 시설관리 엠프리스가 수영교습 또한 겸임하며 아이들과 놀아준다는 소식에 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복도에서 마주칠 때마다 수영장 냄새가 물씬 나는 게 200% 즐겨주고 있는 것 같아 다행이었다.




  사령관은 수영을 싫어하는 건 아니었지만 우선순위가 낮았다. 하루의 태반을 업무로 보내고 남은 시간은 맛있는 음식과 간단한 웨이트로 채우다 보니 물에 닿는 일은 샤워 말고는 없었다.




  그랬던 사령관이 지금은 수영장에서 답답함을 토로하고 있었다.




  “숨을 좀 쉬라고!”




  수영판을 쥐고 잠수 중이던 뗑컨이 물속에서 튀어나와 성질냈다.




  “물속에서 숨을 어떻게 쉬라는 거야! 난 제비야, 물고기가 아니야!”


  “넌 펭귄이 어떻게 수영하는지 몰라? 봐! 이렇게 어? 호흡 들이마시고, 배에 힘 꽉 주고, 코어에 텐션 올리고 손 다리만 펼치면 물에 둥둥 뜨는데 왜 공벌레처럼 몸을 마는 건데!”


  “난 제비야!”


  “펭귄은 그렇게 헤엄치지 않아!”




  사령관의 말에 격분한 뗑컨과 그녀에게 공격받은 사령관은 수중에서 진이 빠질 때까지 다퉜다. 물속에서 허우적대다 물을 마신 뗑컨을 끌어올린 사령관은 콘스탄챠의 따뜻한 커피를 그리워했다. 참고로 두 사람이 싸운 곳은 청소년용 수영장이었다.




  사건의 시작은 단순했다.




  아군의 오발, 혹은 적군의 도탄으로 엔진을 격추당한 슬레이프니르가 전시 중 바다에 추락했다. 저속, 저공, 수상 비행 중 발생한 사건이었기에 다행히도 인명피해로 이어지진 않았으나 문제는 그녀가 수영하지 못한다는 점이었다.




  패널 너머로 살려달라고 소리치는 그녀를 시급히 구출하란 명령을 내린 사령관은 슬레이프니르에게 치명적인 결함이 있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대공에서 막대한 전력을 자랑하던 뗑컨이 수영을 못한다는 사실은 단순한 개성 문제로 넘어갈 게 아니었다. 커다란 문제다. 단순 기능 고장만으로 유능한 인재를 잃을 수 있단 얘기가 아닌가.




  원래는 호라이즌 부대원들에게 뗑컨의 교육을 일임하려 했지만 무적의 용이 출몰했다는 지역으로 탐색을 떠난 그녀들은 출격한 지 꽤 됐다. 그렇다고 자존심 강한 슬레이프니르가 청소년 수영강사들에게 가르침을 받는다는 건 그녀로서도 스트레스일 게 분명하다. 결국엔 사령관만이 적합한 인재였다.




  뗑컨의 물장구를 받은 안구가 물을 먹어 퉁퉁 불었다. 손가락으로 눈가를 압박해 압력을 맞춘 사령관은 녹초가 된 똉컨을 쳐다봤다. 발전하지 않는 건 짜게 식은 뗑컨의 정열 탓일까? 혹은 자신의 미숙한 교육 탓일까?




  물배가 불룩 튀어나온 뗑컨이 헛구역질하며 불평했다.




  “수영을 왜 배워야 한다는 거야. 튜브만 있으면 문제없잖아.”


  “철충이랑 튜브 끼고 싸울래?”


  “닥터한테 부탁해서 비상용 튜브를 장착하면 되잖아!”


  “그것도 방법이긴 한데, 안돼.”




  자신을 귀찮게 하려 든다고 의심하는 뗑컨에게 상황을 설명했다. 오르카호의 시설 정비, 철충을 대상으로 한 병기 개발, 그리고 신약의 제조까지 도맡은 닥터에게 더 이상의 업무를 줄 수 없다는 배려 차원에서의 거부였다.




  설명을 들은 뗑컨은 눈에 띄게 시무룩해졌다. 좋아하지도 않는 수영 연습을 거절할 명목이 사라졌다는 게 주된 이유였다.




  사실, 수영을 못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당시 최신 기술의 집약, 보여주기식으로 만들어진 그녀에게 개발진들이 추구한 건 기동전 최고의 성능이었다. 오죽했으면 기체를 제외한 장비가 바이저 뿐이었을까.




  하지만 상황이 상황인지라 결국엔 그녀도 수영을 배워야만 한다. 사령관의 결정엔 변함이 없다. 수영하기 싫다고 발버둥 치는 뗑컨을 잡아끌며 청소년용 수영장으로 내려왔다.




  시원한 물의 감촉이 느껴졌다. 뗑컨에겐 배꼽에도 오지 않는 물 높이었지만 이마저도 싫었는지 울상이었다.




  “끝나고 케이크 줄게. 조금만 더 힘내.”


  “그래도 싫어. 인간은 달리고, 물고기는 헤엄치고, 새는 난다는 말도 몰라, 사령관? 난 새야. 날아야 한단 말이야.”




  그러고 보니 펭귄이 난다는 건 신박한 설계였다. 어떻게 펭귄이 하늘을 날 수 있을까.




  의문점을 제쳐두고 사령관은 교육에 집중했다.




  “자, 봐봐. 펭귄도 헤엄칠 땐 코어라고 불리는 몸통 중간 부분의 근육에 힘을 주고 수평을 만들어.”


  “펭귄 아니라고!”




  화가 난 펭귄이 두 손으로 파도를 쏘아냈다. 거대한 몸집에 사령관이 떠밀려갔다. 코와 입으로 한바탕 수분을 섭취한 사령관은 말없이 슬레이프니르의 앞으로 돌아왔다.




  “켈록. 일단 손부터 잡아봐.”


  “이렇게?”




  내심 미안한지 뗑컨이 순순히 따랐으나 서투르다. 그래도 사령관은 화내지 않고 차분히 설명해줬다.




  “두 손으로 잡는 게 아니라 하나씩. 고무판 잡듯이 이렇게. 그리고 코어에 힘 꽉 주고 숨을 들이 마셔봐. 물에 몸이 뜰 거야.”




  교육에 성실히 임한 뗑컨은 그래도 가라앉았다. 잠수하는 뗑컨과 이를 지켜보는 사령관 사이를 오가는 건 말 대신 침묵이었다. 폐활량에 한계를 느끼고 물속에서 일어난 똉컨이 고개를 저었다.




  “이제 그만할래.”


  “잘하고 있는데 왜. 아까보다 훨씬 나아졌는데?”


  “거짓말하지 마.”




  화내서 돌아가려는 뗑컨을 사령관이 뒤에서 껴안았다. 갑작스러운 스킨십에 당황한 뗑컨이 말까지 더듬어가며 화냈다.




  “무무무무슌, 뮤슌 짓이냑!”


  “자, 봐.”




  대비될 정도로 침착한 사령관은 고사리 같은 손으로 그녀의 몸통을 감싸 안았다. 명치에서부터 갈비뼈, 늑간근, 옆구리, 광배근, 척추기립근을 손바닥으로 쓰다듬으며 정의을 설명했다.




  “이렇게 몸통의 중간 부분을 코어라고 설명할 수 있어. 봐봐, 여기 근육들에 집중하고 숨을 깊게 들이마셔서 참으면 돼. 풍선이 터질 때까지 숨을 마셨다가 조금씩 뱉어서 유지해. 어? 좋아, 지금처럼. 너무 좋은데? 힘 잘 주고 있어. 뒤돌아볼래?”




  엉거주춤, 뒤돌아서는 뗑컨은 볼을 부풀린 채로 눈을 질끈 감고 있었다. 단 한 번도 동침하지 않았던 그녀에게 사령관의 접촉은 소년일지라도 크나큰 놀라움이었다. 하지만 사령관은 이미 이 교습을 작전의 연장선으로 보았기에 한없이 진지한 태도였다.




  “자, 이제 다시 해보자. 아까처럼 손잡아.”


  “아, 아까처럼?”


  “그래. 빨리.”




  아까와는 달리 뗑컨이 수줍게 손을 내밀왔다. 미적지근한 태도에 사령관이 거칠게 두 손을 잡아 쥐었다.




  “지금처럼만 하면 충분히 수영할 수 있어. 힘내, 뗑컨.”


  “그 별명으로 부르지 말라니까!”




  사령관의 말에 긴장이 풀린 뗑컨이 천천히 두 발을 뒤로 뺐다. 마지막이라는 생각에 사령관이 해준 조언들을 하나씩 떠올려봤다. 몸에 긴장을 풀고 숨을 들이마신 뒤, 코어라는 부분에 힘준다.




  공연히 사령관이 스쳐 간 감촉이 몸통을 휘감았다. 진정되지 않는 속을 물속에 가라앉히며 호흡을 참았다. 광대뼈에 맞닿은 수면은 시간이 지날수록 귓가를 지나 정수리에까지 향할 것이다.




  그렇게 예상했던 슬레이프니르는 한참을 기다려도 물로 내려가질 않자, 수영장에서 두 발로 우뚝 서며 결과를 확인했다. 수면 밖에서 기다리던 사령관은 감격한 표정으로 해냈다고 기뻐해왔다.




  가슴은 쿵쾅거리고, 온몸이 뜨겁고, 성취감에 머리가 새하얘졌다. 흥분한 뗑컨이 사령관의 얼굴을 붙잡고 짧지만 강렬한 입맞춤을 나눴다.




  한참의 시간이 지나고 떨어진 두 사람은 서로 마주 봤다.




  놀라서 굳은 사령관과는 별개로 슬레이프니르는 누구보다 당황했다.




  “이건, 입술에 뭐가 묻어서, 그, 물에 빠진 것 같아서, 아니, 그러니까...”




  두 손을 허우적대다 변명거리를 찾아내지 못한 뗑컨이 사령관을 세게 밀쳐냈다. 사령관이 어떻게 됐는지 확인도 않고 뛰어나가던 슬레이프니르는 수영장 타일 위에서 크게 미끄러졌고, 이를 지켜보던 미호의 긴급구조요청을 받은 프로스트 서번트가 뛰어올 때까지 수영장은 잔잔한 물결 소리만이 맴돌았다.




 /




  “옛날 동화 중에서 다리가 부러진 제비를 도와주면 좋은 일이 생긴다더라. 나한테도 좋은 일이 생길까?”


  “이제야 제비야?”




  침상에 누워 다리를 깁스한 슬레이프니르가 시큰둥하게 답했다. 뼈가 부러진 건 아니었지만 아킬레스건이 늘어났고 염좌가 심하게 온 탓에 깁스하는 게 낫겠다는 다프네의 처방이었다.


  머리를 5바늘이나 꿰맨 사령관이 사과를 깎던 중 지그시 제비를 바라봤다. 책망하는 눈빛에 노출된 소녀는 죄책감을 이기지 못하고 이불로 얼굴을 덮었다.




  “미안해.”


  “미안하긴 뭘 미안해.”




  서투르게나마 토끼 모양의 사과를 깎던 사령관은 담담하게 답했다.




  “휴식시간 반납하고 수영 교육하다 입술 피하지 않은 내가 잘못이지, 뭘. 수영이 이렇게 위험한 스포츠인 줄은 꿈에도 몰랐어. 애들한테 주의하라고 해야겠다.”


  “말을 왜 그렇게 해?!”




  제비가 발끈해서 사령관을 노려봤으나, 싸움의 승자는 결정된 상태였다. 무표정하게 마주 봐오는 사령관을 피해 고개를 돌렸다.




  “15살짜리 꼬마 애들도 뽀뽀한 거로 그렇게 놀라진 않는데, 너는...”


  “악! 아악! 다리! 다리가!!”


  “괜찮아? 혹시 너도 수영하다 다쳤어?”




  화제를 전환하려고 애쓰는 제비를 사령관이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자, 웃음이 터진 소녀가 사령관에게 베개를 집어던졌다.




  두 사람을 지켜보던 다프네는 멀리서 쿡쿡 웃었다. 꼭 사춘기 소년소녀들처럼 유치했기 때문이었다.